맨체스터 시티 FC

(맨체스터 시티에서 넘어옴)

2016-17시즌의 이슈에 대해서는 맨체스터 시티 FC/2016-17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레스터리버풀맨시티맨유
미들즈브러번리본머스사우스햄튼
선덜랜드스완지스토크아스날
에버튼왓포드웨스트 브롬웨스트 햄
첼시크리스탈 팰리스토트넘
시티 풋볼 그룹
(City Football Group)
맨체스터 시티뉴욕 시티멜버른 시티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C조

바르셀로나
(Barcelona)

맨시티
(Man City)

묀헨글라트바흐
(Mönchengladbach)

셀틱
(Celtic)


맨체스터 시티 F.C.
Manchester City F.C.
정식 명칭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별칭시티즌 (Cityzen)[1][2]
블루 문 (Blue Moon)[3][4]
스카이블루 (Sky Blues)
창단1880년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1887년 (아드윅 AFC)
1894년 (맨체스터 시티 FC)[5]
소속 리그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맨체스터 (Manchester)
홈 구장에티하드 스타디움 (Etihad Stadium)
(55,097명 수용 가능)
라이벌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체스터 더비
소유주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Sheikh Mansour bin Zayed Al Nahyan)
시티 풋볼 그룹 (City Football Group)
회장칼둔 알 무바라크 (Khaldoon Al Mubarak)
사장페란 소리아노 (Ferran Soriano)[6]
단장치키 베히리스타인 (Txiki Begiristain)
감독펩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주장뱅상 콤파니 (Vincent Kompany)
부주장파블로 사발레타 (Pablo Zabaleta)
공식 웹 사이트[1] (영어)
[[2]] (한국어)[7]
공식 SNS            
한국 팬 사이트[3][8]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케빈 더 브라위너 (Kevin De Bruyne)
(2015년, From VfL 볼프스부르크, 5450만 파운드)
최고 이적료 방출숀 라이트 필립스 (Shaun Wright-Phillips)
(2005년, To 첼시 FC, 3150만 유로)
최다 출장알란 오크스 (Alan Oakes) - 680경기 (1959~1976)
최다 득점에릭 브룩 (Eric Brook) - 177골 (1927~1940)
영구결번23[9]
우승 기록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1부)
(4회)
1936-37, 1967-68, 2011-12, 2013-14
풋볼 리그 챔피언십 (2부)
(7회, 최다)
[10]
1898-99, 1902-03, 1909-10, 1927-28, 1946-47, 1965-66, 2001-02
풋볼 리그 원 (3부)
(1회)
1998-99
FA컵
(5회)
1904, 1934, 1956, 1969, 2011
풋볼 리그 컵
(4회)
1970, 1976, 2014, 2016
FA 커뮤니티 쉴드
(4회)
1937, 1968, 1972, 2012
UEFA 컵위너스컵
(1회)
1970
2016-17 시즌 유니폼
HOMEAWAYTHIRDGK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 블루 문 by 비디 아이[11]

만수르의 인수 이후 영국을 제패하고 유럽축구계에서 새롭게 떠오른 신흥 강호


1 개요

맨체스터 시티 FC영국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 소속된 프로축구 구단이다.

연고지는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트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시이며, 홈 경기장은 에티하드 스타디움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 2003년 ~ 현재)이다.

맨체스터의 이름을 가진 축구 팀은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안에 무수히 있지만 개중 그레이터맨체스터 주의 중심도시인 맨체스터 시를 연고로 하는 유일한 1부 리그 팀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트래포드(Trafford)가 연고지이고 볼턴 원더러스 FC, 위건 애슬레틱 FC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볼턴위건에 속해있다. 자세한 사항은 맨체스터 항목 참조.

1880년 세인트 마크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여 1887년 아드윅 AFC로 바꿨다가 1894년에 맨체스터 시티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구단주는 아랍 에미리트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다. 법적으로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ADUG)이 시티 풋볼 그룹의 대주주가 되고 시티 풋볼 그룹과 그 회장인 칼둔 알 무바라크가 그를 대신하여 구단을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만수르가 투자청을 세운 이유는 맨시티를 인수하기 위해서이고 그 예하의 시티 풋볼 그룹은 맨시티 인수 이후 전 세계의 다른 구단들(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 등)과 함께 지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경영 구조일 뿐이므로 최종 결재권자는 여전히 만수르이다.


2 엠블럼

맨체스터 시티 FC의 엠블럼 변천사
맨체스터 시의회의 문장

방패를 포함해서 역대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또는 몇 군데에서만) 들어가는 상징들은 모두 본래 맨체스터 시의 상징들에서 따온 것이다. 각각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방패는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발생 계기가 고대 로마 시절 요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도시가 지형적으로 방어 능력이 뛰어났던 것을 의미한다.

방패 안에서 윗부분에 있는 것은 (船)로 맨체스터가 항구도시임을 상징하며 배 아래에 물결치는 것은 맨체스터에 있는 운하를 의미한다.

그 아래의 세 개의 직선은 맨체스터의 세 개의 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어웰 (Irwell), 어크 (Irk), 메들록 (Medlock) 강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미는 맨체스터가 지금은 분리되어있지만 본래 랭커셔 주의 일부였기 때문에 랭커셔 주와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인 장미가 들어간 것이다.

2.1 독수리

1997 City unveil a new club badge. This new design features the Latin motto “Superbia in proelio” meaning ‘Pride in battle’.
1997년 시티가 새로운 클럽 뱃지를 발표한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전장에서의 자긍심' (Pride in battle)이라는 뜻의 라틴어 모토 “Superbia in proelio”가 특징이다.
- [공식 홈페이지의 클럽 히스토리]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쓰인 엠블럼이다.

중앙의 독수리는 검독수리 (Golden Eagle)이며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는 Pride in Battle (전장에서의 자긍심)을 뜻하는 라틴어 표어인 Superbia in proelio이다. 엠블럼에는 필기체로 적혀있기 때문에 o가 a와 헷갈려 proelio, proelia, praelio, praelia 등(...) 논쟁이 있었지만 분명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proelio가 맞다.

독수리 위에 있는 세 개의 별은 세리에 A유벤투스인테르처럼 리그 우승 횟수 같은 걸 상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식이다.

사실 이 엠블럼의 문양은 화려해보이지만 이것이 만들어진 역사는 참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엠블럼이 만들어진 해가 1997년인데 맨시티는 그 다음 시즌인 1998-99 시즌, 팀 역사상 최초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등당하기 바로 직전인 당시 1997-98 시즌엔 2부 리그 강등권에서 헤매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팀 성적이 떨어지는 와중에, 구단은 뜬금없이 100년간 쓰던 역사적인 엠블럼을 버리고,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아무 의미없는 별 세개와 독수리로 엠블럼을 교체했다. 당시 팬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주변 여론은 이 사실을 비꼬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만수르 부임부터 엠블럼에 대한 얘기가 오가다가 교체 20년 뒤인 2016년에 전통의 엠블럼으로 회귀하게 된다.


2.2 새 엠블럼 (2016~ )

새 엠블럼 발표

2015-16시즌, 예전 엠블럼으로 회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다가 [영국 특허청의 유출]로 인해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현지 팬들과 30일 동안 엠블럼의 교체 여부와 엠블럼의 문양에 대해 협의했는데 이전의 독수리 엠블럼을 유지하자고 하는 입장은 1/3 (34%) 밖에 되지 않았으며 엠블럼을 교체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차기 엠블럼에 들어갈, 맨시티와 맨체스터를 대표할 수 있는 색상과 상징물들을 투표했는데 색상은 하늘색 (94%) 과 흰색 (68%) 이 채택되었고, 상징물은 이전의 엠블럼에도 있었던 맨체스터의 배 (85%), 세 개의 강 (67%), 그리고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붉은 장미 (60%) 가 채택되어 새 엠블럼에 조합되었다.

그 외 기타 팬들의 피드백과 기존 엠블럼 등을 포함하여 새 엠블럼을 만들었는데, 팀 이름의 배치를 위아래로 각각 Manchester, City로 나눈 것은 독수리 엠블럼에 있던 이니셜 (M.C.F.C)보다 더욱 맨시티를 대표하는 이름을 넣기 위해, 창단연도인 1894를 넣은 것[12][13]은 맨시티의 긴 역사와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해, 방패를 넣되 그 모양이 예전과는 다르게 바깥 원을 넘도록 만든 것은 방패 안의 문양을 돋보이게 하며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꿈보다 해몽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3 역사

맨체스터 시티 FC의 역대 순위 변화 출처

3.1 창단과 짧은 리즈시절

1880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고튼 서부에 위치한 세인트 마크스 교회 (St. Mark's Church)의 교인들이 다분히 인도적인 목적으로 훗날 맨체스터 시티로 알려질 축구 클럽을 창단했다. 당시 많은 실업자와 범죄자들이 맨체스터 동부, 특히 고튼에 만연해있었는데 현지인들을 위한 새로운 활동을 도입함으로써 이것을 개선하고 사회적 병폐를 줄이라는 아서 코넬 (Arthur Connell) 목사의 독려에 따라 교회 관리인인 윌리엄 비스토우 (William Beastow)와 토마스 굿비히어 (Thomas Goodbehere), 그리고 아서 코넬 목사의 딸인 안나 코넬 (Anna Connell)이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St. Mark's West Gorton) 라는 교회 축구 팀을 창단한 것이다. 특히 안나 코넬은 19세기에 창단된 프로 축구 팀 가운데, 창단 멤버 중에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게다가 안나 코넬이 창단에 큰 기여를 했는데 원래는 크리켓이나 럭비팀을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지방 음주 노숙자라든지 여러 사회문제가 된 알콜중독자를 위한 스포츠로 두 종목은 맞지않는다며[14] 축구팀을 만들자고 건의한게 그녀였다고 한다.(2016년 9월호 베스트 일레븐 지 출처)

1884년,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의 또 다른 축구 클럽인 고튼 애슬레틱과 합병되지만 불과 한 시즌 뒤에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 AFC로, 고튼 애슬레틱은 웨스트 고튼 애슬레틱으로 분리되었다. 바로 다음에 연고지를 맨체스터 시 동부에 위치한 아드윅이란 동네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바꾸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기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절 리그는 매우 열악했고 지방의 중소 구단으로 자금 문제로 2부 리그로 내려갔다가 1898-99시즌에서야 드디어 1부 리그로 올라왔으나 다시 2시즌도 안 가 강등당했다. 그러다가 1시즌 만에 승격과 같이 다음 해인 1903-04시즌 FA컵 우승과 같이 리그 2위(우승은 더 웬즈데이가 2연속 우승)를 거두며 이름을 알리는가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강등과 승격을 거치며 중소 구단으로서 지내야 했다.

결국, 라이벌인 맨유가 첫 리그 우승(1907-08시즌)을 거둔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인 1936-37시즌에서야 맨시티도 첫 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린다. 웃긴건 그다음 시즌 바로 강등당했다(...). 그리고 다시 30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 1967-68시즌 우승 및 1969-70컵 위너스 컵 우승이 그나마 맨시티의 영광의 시절이었다. 이후 1975-76 풋볼 리그 컵 우승이 마지막 우승컵이었으며 그 뒤로 거둔 우승컵은 고작해야 2부 리그 우승컵 아니면 3부 리그 우승컵(...)뿐이라는 우승해도 그다지 기쁘지 않은 우승컵이었다. 이렇게 강등과 승격을 되풀이하던 하위 팀으로서 오랜 세월을 지내야 했다.


3.2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

1992-93시즌부터 프리미어 리그로 새롭게 개편하면서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을 거두며 세계적인 강호이자 인기팀이 될 때 맨시티는 1995-96시즌 챔피언십 리그(2부), 더 나아가 1997-98시즌 리그 1, 즉 3부리그까지 강등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리그 강호는 아니지만, 이는 역대 유럽 클럽 국제 대회 우승팀 역사상 처음(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으로 3부 리그 강등기록(2004-05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을 가진 노팅엄 포레스트가 리그 1로 강등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이란 불명예였다. 그나마 1시즌만인 1998-99시즌 도중에 조 로일 감독이 취임하여 1999년에 다시 2부리그로 승격했고, 1999-2000시즌에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여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으나, 한 시즌만에 강등되었다.

그러나 2001-02시즌에 새로 부임한 케빈 키건의 지휘 하에 곧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와서 승격 첫 시즌인 2002-03시즌을 9위로 마감하여 나름 선전했고, 2003년에는 영광과 오욕의 메인 로드를 떠나 새 구장인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둥지를 틀었다.

구장 이전 이후의 리그 성적은 연이어 16위, 15위, 14위로(단, 2004-05시즌에서는 8위를 했음.) 하위 팀으로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는 신세인 팀이었다. 2006-07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3부 리그 팀 체스터필드에게 털리고, 리그 내내 홈에서 10골만을 넣고, 리그 후반기 1월 이후엔 홈에서 단 한 골도 못 넣는 미친 대활약을 벌이면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고, 이 때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는 맨시티의 흑역사가 되어 쫓겨난다.[15] 컬트적인 인기를 좀 얻긴 했지만...

그러다가 2007년 쿠데타로 태국에서 쫓겨난 전 태국 총리 탁신 친나왓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구단을 매입한다. 사실 맨시티 서포터들이나 영국 반응은 무덤덤했다. 탁신은 이전에 리버풀 FC를 사려다가 실패했었고 이 와중에 자신이 리버풀 팬이란 언론 홍보를 하는 바람에 맨시티 팬들에게 '리버풀에서 거절하자 꿩 대신 닭이라고 맨시티를 샀다'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 좀 들여서 과거 잉글랜드 국대를 지휘한 바 있는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과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할 만한 몇몇 선수들을 영입했다.[16] 2007-08시즌 맨시티는 초반 프리미어리그 3연승을 거두며 선두에 오르기도 했고, 맨유에 홈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17] 좋은 성적을 내며 리그 2/3 정도 치른 시점까지 챔피언스리그를 사정권에 두었다. 리차드 던마이카 리차즈의 센터백 라인은 맨시티의 호성적에 큰 뒷받침이 되었다. 물론 첼시 원정 0:6 패배라는 옥의 티도 있었지만. 그리고 이적생인 엘라누와 마틴 페트로프도 적응기 없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풍 팀들이 겪듯이 맨유 원정 승리 후 리그 12경기에서 3승2무7패에 그치며 리그 9위(포포투에서는 중위권 성적인 9위도 잘한 것이라고 평을 내렸다.)로 리그를 마쳤다. 9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그 해 페어 플레이 팀으로 선정되며 1차 예선부터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는 진출권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탁신 구단주는 하위 팀을 중위권 성적을 거두고 25년만에 UEFA 컵에 진출시킨 감독을 경질하고[18][19],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겠다고 떠들면서 정작 팀의 주전 수비수 리처드 던의 주급을 올려주지 못해 잃을 뻔하던 일[20] 등 한심하고 답이 없는 운용을 거듭하다가 태국에 있던 그의 자금이 법으로 막혀버리자 구단을 냅다 알 파힘을 통해 알 나얀에게 팔아 버렸다.[21]

이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한국에서는 순지하이가 활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순지하이는 팀이 2부 소속이었던 2001-0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이적했고, 다음 시즌 팀이 1부로 승격한 뒤 탁신이 구단주로 취임했던 2007-08 시즌 이전까지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탁신이 구단주가 된 이후 선수 보강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잃어 결국 200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악동 중 한 명인 조이 바튼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한국 언론에서 종종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마르크 비비앙 푀의 소속팀으로 알려져 있었다.


3.3 구원자 만수르의 등장

술레이만 알 파힘을 내세워 맨시티를 영입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은 여태까지 축구계에 뛰어든 인물 중에 가장 많은 재산을 소유한 인물이다. 덕분에 맨시티는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의 갑부 구단으로 거듭났다.

구단주가 워낙 돈이 많다 보니 맨체스터 시티의 클럽 하우스를 호날두, 메시, 카카, 제라드, 드록바 등등 이름만 들으면 알 거 같은 유명선수로 채우겠다는 장밋빛 미래상을 제시했으며, 당시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었던 마크 휴즈는 "겨울 이적 시장에서 제라드를 사 오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 불가능했다. 그러나 대신 램파드는 사올 수 있었다. 제라드, 의문의 1승?

또한, 세계적인 건축가 라파엘 비놀리를 앞세워서 1억 파운드를 들여 현 구장을 올드 트래포드를 뛰어넘게 크고 아름답도록 구장을 증축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사실상 이건 힘들다고 보면 된다. 또 일부 좌석에 히터 설치를 했는데. 이는 코치진과 선수진, 그리고 VIP석 등 일부 좌석에만 설치한것으로 팬들의 좌석에는 그런거 없다. 단순히 구장을 증축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맨체스터시의 동부지역에서 종합 레저 스포츠 센터, 5성급 호텔, 최첨단 훈련시설, 식당가와 바까지 만들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단지를 조성하는 야심 찬 사업이다. 여기에 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추가로 박물관과 미술관 건설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만수르가 구단주가 된 뒤 2007년만 해도 포브스 지 축구단 유형자산 평가 선정에서 50위에도 못들어가던 맨시티는 2014년에는 7위로 선정됐는데 이는 맨유와 아스날-첼시 다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높으며 리버풀을 제쳤다.(참고로 2007년만 해도 리버풀은 물론, 토트넘이나 뉴캐슬 유나이티드, 심지어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보다도 맨시티 평가는 낮았다)

자세한 사항은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항목 참조.


3.4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4 시즌별 일람

현재 시즌에 대해서는 맨체스터 시티 FC/2016-17시즌 문서를, 현재 시즌(리그)에 대해서는 맨체스터 시티 FC/2016-17시즌/리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전 시즌에 대해서는 맨체스터 시티 FC/2015-16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시즌PLFAEFLCSUCLUELUSC FCC감독
2002-03 시즌9위
(승격)
64강32강-----케빈 키건
2003-04 시즌16위
( 7)
16강16강--48강[22]--케빈 키건
2004-05 시즌8위
( 6)
64강32강-----케빈 키건

스튜어트 피어스
2005-06 시즌15위
( 7)
8강48강-----스튜어트 피어스
2006-07 시즌14위
( 1)
8강48강-----스튜어트 피어스
2007-08 시즌9위
( 5)
32강8강-----스벤 예란 에릭손
2008-09 시즌10위
( 1)
64강32강--8강[23]--마크 휴즈
2009-10 시즌5위
( 5)
16강4강-----마크 휴즈

로베르토 만치니
2010-11 시즌3위
( 2)
우승
(5회)
32강--16강--로베르토 만치니
2011-12 시즌 1위
( 2)
(3회)
64강4강준우승32강16강[24]--로베르토 만치니
2012-13 시즌2위
( 1)
준우승32강 우승
(4회)
32강---로베르토 만치니
2013-14 시즌 1위
( 1)
(4회)
8강 우승
(3회)
-16강---마누엘 페예그리니
2014-15 시즌2위
( 1)
32강16강준우승16강---마누엘 페예그리니
2015-16 시즌4위
( 2)
16강 우승
(4회)
-4강---마누엘 페예그리니
2016-17 시즌
(리그)
--------펩 과르디올라


5 선수단

맨체스터 시티 FC 2016-17 시즌 스쿼드[*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출처 [홈페이지], [위키백과], [[4]], [[5]]]
번호국적포지션성명[*? 로마자 성명의 굵은 글씨는 유니폼에 표기된 이름을 뜻한다.]생년월일 (나이)cm / kg출전도움계약시작계약만료비고
1 GK클라우디오 브라보
Claudio Bravo
1983년 4월 13일 (33)184 / 8020162020
3 DF바카리 사냐
Bacary Sagna
1983년 2월 14일 (33)176 / 7220142017
4 DF뱅상 콩파니
Vincent Kompany
1986년 4월 10일 (30)193 / 8520082019주장
5 DF파블로 사발레타
Pablo Zabaleta
1985년 1월 16일 (31)178 / 7420082017부주장
6 MF페르난두 헤지스
Fernando Reges
1987년 7월 25일 (28)183 / 7620142019
7 MF라힘 스털링
Raheem Sterling
1994년 12월 8일 (21)170 / 6920152020
8 MF일카이 귄도안
Ilkay Gündoğan
1990년 10월 24일 (25)180 / 8020162020
9 FW놀리토
Nolito
1986년 10월 15일 (29)175 / 6520162020
10 FW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Kun' Agüero
1988년 6월 2일 (28)173 / 7020112019
11 DF알렉산다르 콜라로브
Aleksandar Kolarov
1985년 11월 10일 (30)187 / 8320102018
13 GK윌리 카바예로
Willy Caballero
1981년 9월 28일 (34)186 / 8020142017
15 MF헤수스 나바스
Jesús Navas
1985년 11월 21일 (30)170 / 6020132017
17 MF케빈 더 브라위너
Kevin De Bruyne
1991년 6월 28일 (24)181 / 6820152021
18 MF페이비언 델프
Fabian Delph
1989년 11월 21일 (26)174 / 6020152020
19 MF레로이 자네
Leroy Sané
1996년 1월 11일 (20)184 / 7520162021
21 MF다비드 실바
David Silva
1986년 1월 8일 (30)170 / 6720102019
22 DF가엘 클리시
Gaël Clichy
1985년 7월 26일 (30)176 / 6520112017
24 DF존 스톤스
John Stones
1994년 5월 28일 (22)188 / 7020162022
25 MF페르난지뉴
Fernandinho
1985년 5월 4일 (31)179 / 6720132017
30 DF니콜라스 오타멘디
Nicolás Otamendi
1988년 2월 12일 (28)183 / 8120152020
33 FW가브리엘 제수스
Gabriel Jesus
1997년 4월 3일 (19)175 / 7020172021
42 MF야야 투레
Touré Yaya
1983년 5월 13일 (33)188 / 9020102017
53 DF토신 애더러바이오요
Tosin Adarabioyo
1997년 9월 24일 (19)195 / 802015N/A
54 GK앵거스 건
Angus Gunn
1996년 1월 22일 (20)196 / 772014N/A
69 DF앙헬리뇨
Angeliño
1997년 1월 4일 (19)176 / 692014N/A
72 FW켈레치 이헤아나초
Kelechi Iheanacho
1996년 10월 3일 (20)187 / 7720142016
75 MF알레시 가르시아
Aleix García
1997년 6월 28일 (19)173 / 7020152017
구단 정보
구단주감독구장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펩 과르디올라에티하드 스타디움


6 역대 스폰서

6.1 메인 스폰서

사브
(1982~1984)
필립스
(1984~1987)
브라더 공업
(1987~1999)
에이도스 인터렉티브
(1999~2002)
FIRST ADVISE
(2002~2004)
토마스 쿡 그룹
(2004~2009)
에티하드 항공
(2009~ )[25]

6.2 유니폼 메이커

엄브로
(1974~1997)
카파
(1997~1999)
르꼬끄 스포르티브
(1999~2003)
리복
(2003~2006)
르꼬끄 스포르티브
(2006~2009)
엄브로
(2009~2013)
나이키
(2013~ )


7 현재 스폰서

7.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

에티하드 항공나이키에티살랏아부다비 관광문화청
아바르닛산SAP넥센타이어
HaysWixBetsafeQNET
EA SPORTS


7.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

씨티은행LGVitalityWolf Blass
하이네켄PZ CussonsWhaleyPAK Lightning
HealthpointSoccerworldJiwasrayaAstra Otoparts
TecateDigicelDJI 홀딩스MTN 카메룬
SHB BankFirst Gulf Bank


8 이야깃거리

8.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

사실 만수르는 왜 굳이 맨시티를 구매했는가라는 의문은 맨시티가 만수르에게 인수되면서 돈방석에 앉지 못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에버튼 FC 등의 팀의 팬들, 그리고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제기된 의문이다. 겉으로 보면 사실 당시의 맨시티나 선덜랜드나 풀럼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특히 대부분의 팬들이 빅클럽의 팬이고 중위권 이하의 팀과 리그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 만수르가 맨시티를 구원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두꺼운 팬층 - 맨시티는 성적에 비해서도 팬이 특히 많은 편인 팀이었다. 3부리그에서도 평균 관중이 3만 명에 육박했다는 건 맨시티 팬들이 구호로도 쓸 만큼 자랑스러워 하는 사실이고, 탁신 인수 전에도 맨시티 홈구장의 평균 관중은 사실 우승 이후의 평균 관중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조건은 사실 기본조건으로 몇 년 전 만수르가 아스널 FC를 사려다 실패한 이후로 만수르와 칼둔은 빅클럽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팬층이 두꺼운 클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기정사실 수준의 설이 있다. 당시와 현재 거론되던 클럽인 뉴캐슬, 에버턴, 토트넘 등(이 셋이 가장 가까웠던 팀이다)이 모두 만족하는 조건이다. 아스톤 빌라 FC도 팬층이 두꺼운 편이나 당시 이미 러너에게 인수된 이후였다.
  • 새로 증축된 큰+확장가능한 홈구장 - 당시 맨시티는 2002년에 맨체스터가 영연방 경기대회를 개최하며 지은 4만 5천석 규모의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가지고 있었고, 맨시티가 낡은 구장을 가진 에버튼, 확장이나 이전이 어려워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 토트넘에 비해 확실한 강점으로 쓸 수 있었던 조건이다.[26] 구단주가 올드 트래포드를 뺨치는 8만 석 이상 경기장으로 확장될 예정이란 말도 있지만, 우선은 55,097석 규모로 증축했다. 올드 트래포드에미레이트 스타디움 다음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3번째 규모 경기장이다.
  • 맨체스터의 규모, 발전 가능성 - 맨체스터는 잉글랜드 제2/3의 도시/광역권으로 버밍엄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기반시설 또한 좋다. 또한, 경기장 근처에 개발할 만한 땅이 많은 조건이었고 맨체스터 동북쪽에 개발로 자본이 들어온다는 말 역시 많았다. 뉴캐슬과 비교하면 확실한 강점이고, 에버튼과도 리버풀이 쇠퇴한 지 오래라 강점으로 작용하며, 토트넘은 런던팀이지만 주변 환경이 좋단 평가는 못 받고, 또한 런던에 팀이 많기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존재 - 전 세계에 팬이 있고 최근 20년간 잉글랜드 내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맨유의 존재는 방해거리가 아니라 강점으로 작용한다. 라이벌리를 이용한 기삿거리나 관심거리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고, 맨유는 적이 많은 팀이기도 하므로 맨시티의 지지층을 더 불러모을 수 있는 조건도 된다. 실제로 맨체스터라는 도시 이름이 맨유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맨유의 성적이 떨어지자 맨시티로 갈아타겠다는 철새라이트팬들의 존재가 많은 것을 보면, 라이벌리로써 맨유의 가치는 맨시티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에버튼과 토트넘의 라이벌인 리버풀과 아스날은 부정하기 힘든 명문 클럽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축구단 맨유보단 브랜드 가치에서 밀린다. 뉴캐슬의 라이벌은... 선덜랜드이다.
  • 하늘색의 사용 - 하늘색을 주색으로 사용하는 팀은 드물며,[27] 이는 쉽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에버튼의 파란색은 첼시 FC가, 토트넘의 흰색은 레알 마드리드 C.F.가, 뉴캐슬의 바코드흰색/검은색은 유벤투스 FC가 이미 국제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뒤였다.
  • 팀명 '시티' - 당시에도 맨시티는 전 세계에서 이름에 시티가 붙은 축구팀 중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높은 팀[28]이었으며 당시든 지금이든 영국 내에서 관련된 내용에서 시티라 부르면 맨시티를 맨 처음 연상하게 된다. 이 시티라는 이름은 역시 브랜드를 만들기 쉬운 조건이었고, 이 조건상의 유리함은 이후 맨시티가 해외로 확장할 때 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의 사례에서 드러나게 된다.
  • 전 소유자 - 전 소유자 탁신 친나왓은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돈에 쫄려 빨리 팀을 팔아치워야 할 상황이었고, 이는 맨시티 매각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에버튼과 뉴캐슬의 소유자인 켄라이트와 애슐리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며, 둘 다 만수르에게 값을 너무 높이 불렀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가격이 하락했다해도 탁신은 맨시티를 팔면서 2배가 넘는 이득을 보았지만...

상술된 이유로 인해 만수르는 다른 팀이 아닌 맨시티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8.2 기타

  • 만수르에게 인수되기 이전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에 의해 많이 안 알려져 있었지만, 영국 현지에서는 예전부터 팬층이 두꺼운 팀이다. 특히 1934년 스토크 시티 FC와의 FA컵 경기에서의 관중 수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홈 관중 수 최고 기록인 84,569명이었으며 3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조차 리그 평균 관중 수가 8,000여명일 때 약 30,000명 정도 기록한 것은 맨시티 팬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이다.
  • 많은 팬들이 위의 2016년 7월의 한국 방문을 구단 창단이래 최초의 방한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일부 언론보도에서도 첫 방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1976년 6월에 방한하여 동대문운동장, 구덕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세 경기를 치르고 간 역사가 있기 때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1진 화랑과 두 경기, 2진 충무와 한 경기를 가졌고 2승 1패의 성적을 거두고 돌아갔다. 동대문에서 열린 충무와의 경기는 행정절차상 문제로 급하게 치러지다 보니 홍보가 미진해서 불과 4천여명의 관중들만이 입장했고, 경기를 관전한 주한 영국대사가 관중이 너무 적다며 디스하기도 했다.
  1. 맨시티에 멤버쉽 가입을 한 전 세계의 공식적인 팬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입하고 싶다면 [여기]로
  2. 시티 (City)라는 브랜드를 살리고 싶어서인지 일반적으로 쓰는 스펠링인 Citizen이 아니라 독특하게 Cityzen이라고 쓴다.
  3.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쓰는 별명이다. 맨시티의 대표적인 응원가 이름이 블루 문이며 해외의 가장 큰 맨시티 포럼 이름도 [블루 문]이다.
  4. David Clayton이 쓴 The Man City Miscellany라는 책에 따르면 맨시티의 마스코트인 문체스터(Moonchester)와 문빔(Moonbeam)은 블루 문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5. 2016년 새로운 엠블럼에는 창단년도를 1894년으로 인정했다.
  6. 2008년까지 FC 바르셀로나의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산드로 로셀과 그 측근들이 벌인 라포르타 퇴임 운동 중 해임당했다.
  7. 축구 구단 중 유일하게 공식 홈페이지가 한글 도메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상위 도메인까지 .한국으로 되어있는 점이 압권. 이와 비슷하게 맨시티의 일본 공식 홈페이지의 도메인도 [[6]]로 일본어로 쓰여져있다.
  8. 네이버 카페이지만 도메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9.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도중 엄청난 더위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 카메룬의 미드필더 마르크 비비앙 푀의 등 번호 2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당시 푀는 올랭피크 리옹 소속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임대되어 있었지만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10. 잉글랜드 2부 리그 공동 최다 우승이다(...) 이 팀이 만수르의 인수 전까지 험난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팀은 레스터 시티 FC로 여기도 7번 2부 리그 우승.
  11. 2분35초경부터 이어지는 노래는 'The Beat Goes On'이라는 비디 아이의 1집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의 수록곡이다.
  12. 정확히는 아드윅 AFC가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꾼 연도이다.
  13. 한국에서는 연도를 저렇게 두 자씩 끊어놓은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본래 연도를 읽을 때부터 두 자씩 끊어서 읽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14. 아닌게 아니라 이전에 있던 다른 교회 스포츠팀에서 크리켓에서 하라는 크리켓 배트로 상대방을 두들겨패고 패싸움이 벌어지거나 럭비도 공은 내팽개치고 사람을 들이박아 싸우기 일쑤였다고...
  15. 참고로 이 당시 피어스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속팀에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셌다. 물론 맨시티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청소년 대표팀 자리는 유지되었다.
  16. 엘라누와 마틴 페트로프가 대표적이다. 그 외의 영입으로는 롤란도 비앙키, 발레리 보지노프, 베드란 콜루카, 지오반니, 겔손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가리도가 있다.
  17. 2008년 2월 10일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뮌헨 참사 50주년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있었는데 맨시티가 맨유를 2:1로 꺾으며 맨유팬들을 더더욱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18. 이 때 맨시티 팬들은 에릭손을 지킨다며 Save Our Sven, 줄여서 SOS 캠페인을 벌이지만 실패한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맨시티는 리그 최종전에서 사실상 태업성 플레이를 하며 리그 최종전 미들즈브러 FC에게 8-1로 패하기도 한다.
  19.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마크 휴즈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었다. 맨유 레전드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어 논란이 있었다.
  20. 정작 그 당시 던의 폼은 완전 최악이었고 주장 안 시켜준다고 징징대고 있었다. 결국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다.
  21. 탁신은 덕분에 2배 이상 이득을 보았다. 그리고, 탁신의 후광을 입고 맨시티에 입단했던 태국 선수 3명은 2008년 10월에 전원 방출되었다.
  22. 이 당시에는 UEFA 유로파리그가 아니라 UEFA컵 시절이어서 조별예선의 개념이 없었다.
  23. 전 시즌이었던 2007~08 시즌에 '유럽 최고의 페어플레이 팀'으로 선정되어 출전했다.
  24.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3위 팀 중 상위권을 차지함에 따라 16강부터 참가하게 됨.
  25. 유니폼의 스폰서와는 별개로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명명권 계약은 2011년에 체결되었다.
  26. 결국 토트넘은 확장 이전하긴 한다
  27. 기껏해야 세리에ASS 라치오, SSC 나폴리 정도 뿐이며, SSC 나폴리가 마라도나의 힘 덕에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세계적으로 하늘색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28. 또한 이름에 시티가 들어가는 팀으로서 그나마 가장 역대성적이 좋은 팀이다. 버밍엄 시티, 스토크 시티, 헐 시티 같은 다른 팀들은 죄다 하위리그 팀이거나 늘 강등권에 시달리고 있으며, 역대 우승 성적을 봐도 맨시티보다 떨어진다. 맨시티는 유로파 리그 전신인 위너스컵을 우승한 전적이 있으며, 시티라는 단어가 들어간 팀으로서 유일무이한 유러피언 클럽 대회 우승팀이었다. 지금은 2부리그 팀인 버밍엄 시티가 1960~61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유로파 리그 전신) 준우승(우승은 AS 로마)을 한 게 있긴 하다. 이게 이름에 시티가 들어간 팀으로선 유이하게 맨시티랑 같이 유러피언 클럽 대회 결승 진출 기록. 더불어 리그에서도 맨시티가 그동안 시티라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리그 우승팀이었다가 2015-16시즌에 레스터 시티가 우승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
  29. 밴드의 리더격인 노엘 갤러거는 리즈 시절 구단주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현재는 구단 사장이랑 같이 밥 먹는 사이(...)이다. 보컬이자 프런트맨인 그의 동생 리암 갤러거는 라이브를 할 때 맨체스터 시티 티셔츠를 입고 한다!
  30. 반대로 버나드 섬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다.
  31. 그의 등장 음악이 앞에서 설명한 Blue Moon이다. 유니폼 색깔도 맨시티를 상징하는 하늘색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