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벤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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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H조

유벤투스
(Juventus)

세비야
(Sevilla)

리옹
(Lyon)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유벤투스 FC
Juventus FC
정식 명칭Juventus Football Club SpA
별칭비안코네리(Bianconeri)
귀부인(La Vecchia Signora)[1]
유베(Juve)
창단1897년 11월 1일
소속 리그세리에 A(Series A)
연고지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
홈 구장유벤투스 스타디움
(Juventus Stadium, 41000명 수용)
라이벌인테르 - 데르비 디탈리아
토리노 FC - 데르비 디 토리노
구단주안드레아 아녤리(Andrea Agnelli)[2]
부회장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
명예 구단주조반니 아녤리(Giovanni Agnelli)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Giampiero Boniperti)
프란초 그란데 스테벤스(Franzo Grande Stevens)[3]
클럽 경영 책임자/구단장주세페 마로타(Giuseppe Marotta) 알도 마찌아(Aldo Mazzia)
재무 담당 최고 책임자알도 마찌아(Aldo Mazzia)
이적 활동 지도자주세페 마로타(Giuseppe Marotta)
감독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Massimiliano Allegri)
주장잔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
부주장조르조 키엘리니(Giorgio Chiellini)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Claudio Marchisio)
공식 홈 페이지[1]
한국 팬 페이지[2]
우승 기록
세리에 A[4]
(32회, ★★★)
1905, 1926, 1930-31, 1931-32, 1932-33, 1933-34, 1934-35, 1949-50, 1951-52, 1957-58,
1959-60, 1960-61, 1966-67, 1971-72, 1972-73, 1974-75, 1976-77, 1977-78, 1980-81, 1981-82,
1983-84, 1985-86, 1994-95, 1996-97, 1997-98, 2001-02, 2002-03, 2011-12, 2012-13, 2013-14,
2014-15, 2015-16
세리에 B
(1회)
2006-07
코파 이탈리아
(11회, )
1937-38, 1941-42, 1958-59, 1959-60, 1964-65, 1978-79, 1982-83, 1989-90, 1994-95, 2014-15,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2회)
1984-85, 1995-96
UEFA 유로파 리그
(3회)
1976-77, 1989-90, 1992-93
UEFA 컵 위너스컵
(1회)
1983-84
인터컨티넨탈컵(도요타컵)
(2회)
1985, 1996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7회)
1995, 1997, 2002, 2003, 2012, 2013, 2015
UEFA 슈퍼컵
(2회)
1984, 1996
클럽 기록
최다 경기 출장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 705(1993-2012)
리그 최다 출장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 513(1993-2012)
리그 최다 골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eo Del Piero) - 208
역대 클럽 소속 득점왕1932-33 - 펠리체 보렐(Felice Borel)[5]-29
1933-34 - 펠리체 보렐(Felice Borel)-32
1947-48 -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Giampiero Boniperti)-27
1951-52 - 욘 한센(John Hansen)-30
1957-58 - 존 찰스(John Charles)-28
1959-60 - 오마르 시보리(Omar Sivori)-27
1979-80 - 로베르토 베테가(Roberto Bettega)-16
1982-83 -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16
1983-84 -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20
1984-85 -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18
2001-02 -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24
2007-08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eo Del Piero)-21
최고 이적료 영입곤살로 이과인(Gonzalo Higuain)
( SSC 나폴리, 9,000만 유로, 2016년)
최고 이적료 수입폴 포그바(Paul Pogba)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억 1,000만 유로, 2016년)

100년이 넘는 세리에 A 역사상 최다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


1 소개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 팀으로 세리에 A를 32회 우승하였다. 참고로 2016년 기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등 주요 리그에서 30회 이상 우승을 기록한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뿐이고, 프랑스네덜란드까지 범위를 넓히면 AFC 아약스가 추가된다.

IFFHS 선정 [20세기 축구 클럽 순위] 2위. 1984년 설립된 IFFHS는 피파의 지원을 받아 축구 역사와 기록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1991년부터 월간/연간 세계 축구 클럽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20세기 기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클럽들의 순위를 집계해 달라는 각계의 요구에 따라 IFFHS는 2009년 9월에 클럽대항전 전적을 바탕으로 20세기 축구 클럽 순위를 발표하였다. 압도적인 챔피언스리그 전적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가 부동의 1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2위가 어느 클럽이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졌으나, 유벤투스가 2위를 차지,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바이에른 뮌헨 등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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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에서 주관하는 세 개의 클럽 대항 대회인 유로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현재의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컵(현재의 UEFA 유로파 리그), UEFA 컵위너스컵(1960년 개설된 각국의 FA컵 우승팀들이 참가한 클럽 대항전, 1999년 폐지)을 모두 우승한 최초의 클럽. 각각 1984-85, 1976-77, 1983-84 시즌에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이에 대해 UEFA는 이를 기리는 기념패인 UEFA Plaque를 1988년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대항전 조추첨 행사에서 유벤투스에 수여하였다.[6]

칼치오폴리로 인한 강등 처분 등 갖은 역경을 딛고 무패 우승, 최다 승점 등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스쿠데토 5연패까지 달성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클럽.

2 역사

[5탄 - 1996/97 시즌]
유벤투스의 100년 역사를 소개하는 5부작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7)

2.1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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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역사가 시작된 벤치

유벤투스의 창단은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리노의 세 고등학생이 한 벤치[7]에서 영국과 그들이 살던 토리노에서 한창 대유행이던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구단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와 만들게 된 것이 구단 창단의 계기이다. 13명의 공동 창립자 중 에우제니오 칸파리(Eugenio Canfari)가 초대 구단주를 맡았는데, 당시 그는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1년 후 형인 엔리코 칸파리(Enrico Canfari)가 구단주 자리를 이어받아 3년간 역임하였다. '젊은이들'을 뜻하는 클럽명 유벤투스는 고등학생들 중심으로 창설한 클럽이라는 역사로부터 비롯되었다.

1905년 첫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당시 구단주이던 알프레드 딕(Alfred Dick)이 승부에 집착하는 구단 운영 방향에 환멸을 느껴 반대파를 이끌고 새로운 클럽을 창설하게 된다. 이 클럽이 현재 유벤투스와 지역 라이벌 관계에 있는 토리노 FC이다. 이후 첫 우승 시 핵심 플레이어로 활약했던 카를로 비토리오 바레티(Carlo Vittorio Varetti)를 비롯한 몇 명의 구단주를 거치며 고전하였으며, 이후 다시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25-26 시즌이 되어서였다.


2.2 세리에 A 개편 및 국내 강자로의 부상

1929년 세리에 A가 프로화 되면서 라운드로빈 토너먼트 형태로 개편되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제노아 CFC가 9회 우승, FC 프로 베르첼리 1892가 7회 우승으로 양강을 이루고 있었고, 유벤투스 2회, AC 밀란 3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회 등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강호들은 그다지 강한 면모를 보이지 못하였다.

이렇게 초창기에 비틀대던 유벤투스가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피아트를 이끌고 있는 아넬리 패밀리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부터이다. 1923년 피아트 그룹 창립자의 아들인 에두아르도 아넬리가 구단주로 취임하여 모기업의 돈을 클럽에 투자하면서 유벤투스는 강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리그 개편 후 첫 우승은 인테르가 차지하였으나, 그 다음 시즌부터 유벤투스는 리그 5연패를 달성하며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당시 유벤투스 선수들은 1934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월드컵에도 다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우승을 거둠으로써 이탈리아가 세계 축구계에서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골키퍼 잔피에로 콤비, 하프백 루이스 몬티, 아웃사이드 레프트 라이문도 오르시는 전경기에 출전하였다.

하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인지, 5연패 당시 레전드들의 은퇴 이후에 유벤투스는 침체기를 겪게 된다. 5연패 이후 몇 차례 볼로냐 FC와 인테르가 우승을 주고받은 뒤 토리노가 리그 5연패를 차지하며 그란데 토리노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1949년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하는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1968년 홈에서 열린 유로 우승까지 이탈리아 축구계는 침체기를 맞게 된다. 이후 세리에 A는 유벤투스-밀란-인테르의 트로이카 체제로 굳어져 1950년 이후로는 거의 이 세 클럽이 우승을 나누어 먹듯 하였다.[8]


2.3 트라파토니 시대 - 유럽 강호로의 성장

유벤투스는 1970년대부터 밀란-인테르와도 우승 회수 격차를 벌려 나가기 시작하면서,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부임한 1976-77 시즌 UEFA컵을 차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시작, 유럽 수준의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구가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들어 발롱도르 및 리그 득점왕 3연속 수상에 빛나는 현 UEFA 회장 미셸 플라티니가 입단하면서 유벤투스는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다. 1983-84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 이어 1984-85 시즌 유러피언 컵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UEFA가 개최하는 모든 유럽 대항전 대회를 최초로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하였고, 이를 기리기 위해 1988년 UEFA에서는 UEFA Plaque라는 기념패를 수여하였다. 단 하나 안타까운 점은 유러피언 컵 우승 당시 헤이젤 참사가 일어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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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 축구계는 분데스리가의 강세가 사그라들며 이탈리아와 잉글랜드가 최강 리그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상황이었는데, 잉글랜드 클럽인 리버풀 FC 및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헤이젤 참사로인해 UEFA로부터 5년간 유럽대항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음으로써 이후 세리에 A의 위상이 급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하였다. 이는 세리에 A 전체로 보면 호재였으나 유벤투스 입장에서는 악재가 되었는데, 정점을 찍은 트라파토니 감독이 사임한 이후 유벤투스는 연이어 우승에 실패하였고, 그 사이 급성장한 밀란이 리그 및 유럽을 제패한 기세는 다시 모셔온 트라파토니 감독도 막을 수 없었다.


2.4 리피 시대 - 세계 최강의 구단

이러한 침체기를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유벤투스에 전성기를 가져온 감독이 마르첼로 리피이다. 리피 감독이 부임한 1994-95 시즌 9년만에 스쿠데토를 되찾아온 것을 비롯, 이후 4년의 기간 동안 유벤투스는 스쿠데토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3회 연속 진출하여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차지하였고, 이는 플라티니 시절을 뛰어넘는 클럽 최고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당시 팀은 너무나 강력하여 다른 클럽들의 질시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당시 AS 로마 감독이었던 즈데넥 제만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인해 7년 반에 걸친 조사 및 법정 싸움을 겪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유벤투스 금지약물 복용 의혹 항목에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거듭되는 유럽 대항전 및 월드컵으로 인한 체력 부족, 에이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무릎 부상 및 위 사건의 여파로 인해 1998-99 시즌을 7위로 부진하게 마친 유벤투스는 리피 감독을 카를로 안첼로티로 교체하고 기존의 델 피에로, 필리포 인자기, 지네딘 지단, 에드가 다비즈, 안토니오 콘테, 알레시오 타키나르디, 치로 페라라, 파올로 몬테로, 잔루카 페소토, 마크 율리아노 등에 에드윈 반 데 사르, 잔루카 잠브로타 등을 보강, 완벽에 가까운 팀을 완성하며 7공주중 일약 우승 후보로 도약하였다. 그러나 1999-2000 시즌은 마지막 경기를 AC 페루자에게 내주며 SS 라치오에 역전 우승을 허용하였고, 2000-01 시즌은 전성기의 프란체스코 토티를 내세운 AS 로마가 내내 선두를 지켜 리그 우승도 실패,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맞는다. 당시 지단은 [2006년 월드컵 결승 예고편]을 선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다비즈의 금지약물 검출 및 출장 정지]로 인해 팀 전술 수정이 불가피해진 유벤투스는 다시 리피로 사령탑을 교체, 지단과 인자기, 반 데 사르 등을 팔고 SS 라치오에서 파벨 네드베드, 파르마 FC에서 잔루이지 부폰릴리앙 튀랑 등을 영입하는 [역대급 이적시장 행보]를 보인 끝에 탄탄한 팀을 만드는 데 성공하여 다시 우승을 차지하였다. 리피는 그 뒤로도 2002-03 시즌 리그 우승과 네드베드의 눈물로 유명한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거두었다. 이 팀을 파비오 카펠로가 이어받아 이탈리아 대표팀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에메르손, 그리고 유로 2004에서의 활약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까지 영입하며 다시 유럽을 제패하기 위해 팀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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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라히모비치가 구상한 드림팀. 당시 호나우두 대신 다비드 트레제게, 파올로 말디니 자리엔 막 성장하기 시작한 조르지오 키엘리니가 있었을 뿐,[9] 나머지 멤버들은 그대로인 말 그대로 드림팀이었다.[10]

2.5 칼치오폴리 및 그 이후

자세한 내막은 해당 항목 참조.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2004-05 시즌 우승은 공석, 2005-06 시즌 우승은 인테르에게 넘어갔고, 감독 포함 구성원의 상당수가 이적을 했다. 베스트11 중에 6명이 떠났는데 사이좋게 두 명씩 빅클럽으로 갔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트리크 비에이라는 인테르로, 릴리앙 튀랑잠브로타는 바르셀로나로, 파비오 칸나바로에메르손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향했다. 팀에 남은 선수는 델피에로, 네드베드, 부폰, 트레제게, 제비나, 카모라네시 정도...

참고로 강등되었던 클럽을 다시 1부 리그로 끌어올린 데샹 감독은 승격 직후 EPL처럼 자신에게 전권을 주길 바랬으나 경질당했다. 그 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감독으로, 그는 2007-08 시즌을 3위로 마치며 유벤투스의 실질적인 시즌 목표인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라니에리의 유벤투스는 2007-08 시즌 리그에서 인테르, 밀란, 로마 등의 강팀들과의 대결에서 각각 1승 1무를 기록하며 유벤투스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8-09 시즌 중 보여준 잦은 실책과 비난 여론에 의해 결국 시즌 종료까지 2경기나 남은 상황에서 라니에리 감독이 경질되었다. 이는 팀의 대들보 중 하나였던 트레제게와 팀 내 최고로 각광받던 유망주인 조빈코를 잘 기용하지 않는 용병술이 팬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거기에 더불어 만족스럽지 못한 리그 성적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11]

2.6 페짜델 시절[12]

2.6.1 악몽의 2009-10 시즌

세리에 A의 전통적인 강호 유벤투스지만, 이 시즌은 영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라니에리 감독이 경질된 후 치로 페라라[13] 감독이 임명되었지만,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지롱댕 보르도의 돌풍(5승 1무로 유벤투스도 2:0,1:1로 물리쳤다.)과 바이에른전 패배(4:1 대패,1:1 무승부)로 예상을 뒤엎고 3위로 밀려나서(그나마 이스라엘의 마카비 하이파를 상대로 2경기 모두 1-0으로 이긴 게 전부다.) 챔스 조별 예선 탈락, 밀란과 인테르, 게다가 로마에게도 밀려 결국 페라라 감독은 경질되고 새로 알베르토 차케로니 감독이 부임되었지만, 짜짜로니차케로니 감독의 능력을 충분히 봐온 수많은 유베 팬들은 좌절했다.(…) 그래도 디에구나 트레제게 등이 나름 선전하여 리그에서는 5위로 겨우겨우 올라왔지만 아니나 다를까, 유로파리그 16강 전에서도 프리미어 리그 중위권인 풀럼 FC 원정에서 4:1 대패를 당하면서 4:5로 골득실에 밀려 탈락해버렸다. 펠리페 멜루, 디에구, 아마우리, 트레제게, 시소코, 키엘리니, 부폰, 그리고 델 피에로 같이 충분히 좋은 선수들이 아무리 있어봤자 감독이 안 좋으면 팀도 안 좋아지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이번 시즌은 그야말로 망할 만큼 망해서 이번 시즌은 7위로 전락. 윗동네에서도 비슷한 팀이 7위로 전락한 것과 어째 많이 비슷한 성적이다. 일단 유로파 리그는 나갔지만…이탈리아 최고의 명문팀치고는 굉장한 굴욕이다.

이렇게까지 유벤투스가 기운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첫 번째 이유로는 시즌 전 이적 시장에서 영입한 선수들의 문제이다. 실제 2009년 최고로 부진한 스트라이커는 아마우리였고, 큰 마음먹고 사온 디에구는 아마우리 등이 전혀 호응을 해주질 않아 혼자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14][15] 펠리페 멜루는 기대치 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부폰, 키엘리니를 포함하여 수비진들의 줄부상에… 더군다나 차케로니 감독조차 자신은 "임시 땜빵"이라는 것을 알아서 재계약이고 뭐고 없으니…의욕도 없었고, 그야말로 경기장이 불타고 계란이 날아오는 시즌이었다.

결국 자케로니 감독과의 재계약은 본인이 예상한대로 그런거 없고 차기 감독으로 삼프도리아를 챔스에 진출시킨 삼프도리아 감독인 델 네리, 그리고 삼프도리아의 단장 쥐세페 마로타를 영입하고 유벤투스의 회장 또한 안드레아 아녤리로 바뀌기로 결정된다.


2.6.2 끊이지 않는 부진의 2010-11 시즌

보드진이 물갈이되면서 대대적으로 개편에 들어간 유벤투스…유베의 상징이었던 트레제게와 카모라네시까지 팔아버리면서 대 개편에 들어간다. 마르코 모타, 시모네 페페, 레오나르도 보누치, 파비오 콸리아렐라, 밀로스 크라시치, 알베르토 아퀼라니, 호르헤 마르티네즈, 마르코 스토라리 등을 영입하며 알찬 이적시장을 보낸다. 다만 애초에 기대했던 에딘 제코가 이적자금 문제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무산이 되며 별로 바라지 않았던 콸리아렐라를 영입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델 네리 감독 체제로 바뀌면서 4-3-1-2에서 다시금 4-4-2로 바뀌면서 지에구의 포메이션 문제가 겹쳐지며 결국 헐값에 팔아버린다.

전반기 시즌 시작후 부상의 악몽 속에서도 콸리아렐라와 크라시치의 선전으로 전반기를 4위로 마치며 우승까지 넘볼 기대를 만든다. 하지만 후반기 시즌 시작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시작 3분 만에 콸리아렐라의 십자인대가 끊어지며 시즌 아웃을 당하고 펠리페 멜루가 퇴장을 당하면서 1-4로 패하며 좋지 않은 출발을 하였다. 더군다나 비노보(유벤투스 트레이닝센터)의 저주로 부폰 키엘리니 등 공격수 수비수 할 것 없이 주전 들이 줄부상 당하면서 최악의 후반기를 맞게된다.(수비수 후보가 없어서 유소년팀에서 18살이던 쇠렌센이라는 선수를 쓰기에까지 이른다.) 게다가 아마우리는 1년 가까이 골을 못 넣으며 희대의 기록을 세우고 한때 이탈리아 최고 풀 백 유망주였던 마르코 모따는 헬 게이트를 열어버리며 수비진에 구멍을 만들어 버린다. 이로 인해 공격진에 구멍이 생긴 유벤투스는 급하게 루카 토니, 알레산드로 마트리를 영입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해가는가 하더니 결국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다시금 7위를 차지하며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구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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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리그에서도 조별리그 6무라는 희대의 기록을 세우며 탈락.


2.7 콘테 시대 - 제왕의 귀환

연속 두 시즌 7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유벤투스는 팀 내에서 승부욕이 사라진 것이 문제라고 판단, 유벤투스 선수 시절부터 승부욕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던 안토니오 콘테를 델 네리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대해 페라라 감독의 실패를 지켜본 팬들은 대형 클럽 감독 경험이 없는 콘테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였다.

하지만 콘테 감독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며 2011-12 시즌 무패우승, 2013-14 시즌 사상 최다승점 우승 등 탁월한 성적으로 팀의 3연속 우승을 이끌며 유벤투스를 다시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되살리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클럽대항전에서는 아직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숙제를 남긴 채 2014-15 시즌 시작 전 사임 의사를 표시, 구단과의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이후 콘테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락하였다.


2.8 알레그리 시대 - 역사그리

콘테 후임으로는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선임되었는데, 당초에는 과거 AC 밀란 재임 시 안드레아 피를로와의 갈등과 콘테 감독과의 태도 차이[16]로 우려를 표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부임 직후 급격한 포메이션 변경을 자제하며 과거 콘테의 성공을 이어받았으며, 잇달은 중앙수비수의 부상으로 인해 4백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피를로를 강제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무리 없이 전술을 변경하여 비난 의견들을 잠재웠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 과거 콘테가 보였던 전술적 답답함이 알레그리에 의해 해결되자 감독 교체에 대한 팬들의 평가는 신의 한 수로 반전되었다.

2015-16 시즌에도 피를로, 테베즈의 공백으로 인한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팀 리빌딩에 성공, 다섯 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전임 감독의 그림자를 벗어났다.

게다가 코파 이탈리아 역시 AC 밀란과의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알바로 모라타의 결승골로 우승,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더블 우승을 확정지었다.

3 근래 성적

각 시즌별 상세 내용은 시즌 링크 참조.

시즌세리에 A유럽 대항전코파 이탈리아기타
2001-02우승UCL 2차 조별리그
2002-03우승UCL 준우승8강수페르코파 우승
2003-043위UCL 16강준우승수페르코파 우승
2004-05우승[17]UCL 8강16강
2005-06우승[18]UCL 8강8강수페르코파 준우승
2006-07(세리에 B 1)예선 3차전
2007-083위8강
2008-092위UCL 16강4강
2009-107위UCL 조별리그
UEL 16강
8강
2010-117위UEL 조별리그8강
2011-12우승준우승
2012-13우승UCL 8강4강수페르코파 우승
2013-14우승UCL 조별리그
UEL 4강
8강수페르코파 우승
2014-15우승UCL 준우승우승수페르코파 준우승
2015-16우승UCL 16강우승수페르코파 우승
2016-17

4 유럽대항전 전적

리그 우승은 독보적이지만 불운하게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운은 유난히도 없는 편으로, 2회 우승에 그친 반면 준우승 횟수는 6회로 5회의 FC 바이에른 뮌헨, SL 벤피카를 제치고 단독 1위이다. UEFA 유로파 리그는 우승 3회로 5회 우승인 세비야 FC에 이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리버풀 FC 등과 동률 2위이다.

[UEFA CHAMPIONS LEAGUE STATISTICS HANDBOOK 2014/15]에 따르면 2014년까지의 챔피언스 리그 통산 전적 6위에 해당한다. 승률은 49%로 50%에 미치지 못해 이로 인해 유럽대항전에서 부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여기서의 승률은 승/(승+무+패)이며 유럽대항전에서는 국내 리그보다 참가 클럽들의 수준도 높고 조별리그 및 홈&어웨이 방식으로 인해 무승부가 많이 나오는 관계로[19] 리그에서의 승률보다는 낮은 게 보통이다. 실제 50위 내에서 승률이 55%를 넘는 것은 상위 4팀인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8위인 리버풀 5팀에 불과하며, 세리에 A 내에서 유일하게 유벤투스를 앞선 5위이자 챔피언스 리그에서 강한 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AC 밀란도 승률이 50% 선이다. 따라서 50% 전후의 승률을 부진으로 보는 것은 유럽대항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UEFA EUROPA LEAGUE STATISTICS HANDBOOK 2014/15]에 따르면 2014년까지의 유로파 리그 통산 전적 6위에 승률은 62.5%로, 전적 50위권 내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자랑한다.[20] 즉, 유벤투스는 유럽대항전에서도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팀임에 틀림없으며, 세리에 A 내의 경쟁 클럽 서포터들이 사용하는 곱사등이(la gobba)[21]라는 별칭은 과장된 것이다.

단, 최근의 유럽대항전에서의 부진은 칼치오폴리의 여파가 컸는데, 칼치오폴리 이후 유럽무대에 복귀한 2008-09 시즌부터 2013-14 시즌까지의 챔피언스 리그 전적이 12승 13무 7패, 승률 37.5%로 좋지 않다. 이 전적을 제외하면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승률은 50.8%로 50.2%의 AC 밀란보다 높은 승률이다. 리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위닝 멘탈리티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인데, 2014-15 시즌 준우승으로 어느 정도 유럽무대에서의 위상을 다시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유벤투스가 유럽 대항전에서 약세라고 말하거나 심하게는 안방 호랑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는데, 대개 이는 유베의 리그 성적이 워낙에 화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쌓은 성적은 준수한 편이지만 리그에서 보여주는 위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당하는 면이 있다. 또한 세리에 A 최다 우승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유베와 리그 우승 횟수가 비슷한 레알 마드리드, 세리에 A에서 유베에게 크게 밀리는 밀란 같은 팀들과 비교될 수가 있는데, 이 팀들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게 문제. 다시 말해 압도적인 리그 기록과 비교하거나 마드리드, 밀란 같은 팀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성적이 맞으나, 이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자체를 놓고 보면 나쁜 성적이 아니다.

이후의 개별 시즌 내용은 시즌별 문서 참조.

5 스쿼드

유벤투스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로마자 성명생년 월일신체 조건
[*a 홈페이지 프로필 관리를 잘 하는 팀 중 하나. 신체 변화를 잘 기록한다. EPL의 스터리지루크 쇼 처럼 4cm이상의 뻥튀기가 있는선수도 없다.]
계약 년도계약 만료비고
1 GK지안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1978.01.28192cm, 94kg20012018주장
3 DF지오르지오 키엘리니Giorgio Chiellini1984.08.14187cm, 85kg20052018부주장
4 DF메드히 베나티아Medhi Benatia1987.04.17190cm, 96kg20162017
5 MF미랄렘 퍄니치Miralem Pjanić1990.04.02180cm, 72kg20162021
6 MF사미 케디라Sami Khedira1987.04.04189cm, 93kg20152019
7 MF후안 콰드라도Juan Cuadrado1988.05.26179cm, 71kg20162019
8 MF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Claudio Marchisio1986.01.19180cm, 75kg200520203주장
9 FW곤살로 이과인Gonzalo Higuaín1987.12.10184cm, 92kg20162021
12 DF알렉스 산드루Alex Sandro1991.01.26181 cm, 76 kg20152020
14 MF페데리코 마티엘로Federico Mattiello1995.07.14182cm, 73kg2014-
15 DF안드레아 바르잘리Andrea Barzagli1981.05.08187cm, 88kg20112018
17 FW마리오 만주키치Mario Mandžukić1986.05.21190cm, 86kg20152019
18 MF마리오 레미나Mario Lemina1993.09.01184cm, 85kg20162020
19 DF레오나르도 보누치Leonardo Bonucci1987.05.01190cm, 85kg20102020
20 FW마르코 피아차Marko Pjaca1995.05.06186 cm, 85 kg20162021
21 FW파울로 디발라Paulo Dybala1993.11.15176cm, 74kg20152020
22 MF콰드오 아사모아Kwadwo Asamoah1988.12.09173cm, 76kg20122018
23 DF다니 아우베스Dani Alves1983.05.06172cm, 70kg20162018
24 DF다니엘레 루가니Daniele Rugani1994.07.29190cm, 81kg20152020
25 GK네투Neto1989.07.19192cm, 84kg20152019
26 DF슈테판 리히슈타이너Stephan Lichtsteiner1984.01.16182cm, 74kg20112017
27 MF스테파노 스투라로Stefano Sturaro1993.03.09181cm, 82kg20142019
28 MF토마스 링콘Tomás Rincón1988.01.13177cm, 76kg20172020
29 DF파올로 데 첼리에Paolo De Ceglie1986.09.17184cm, 75kg2016-
32 GK에밀 아우데로Emil Audero1997.01.08190cm, 82kg20152019
38 MF롤란도 만드라고라Rolando Mandragora1997.06.29183cm, 76kg20162021
출처 : 유벤투스 홈페이지, 마지막 수정 일자 : 2016년 10월 12일


6 주요 인물

6.1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

platini.jpg
유벤투스 스타디움 개장에 맞추어 클럽에서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던 역대 플레이어들 가운데 100명의 후보를 선정, 팬클럽 회원 투표를 거쳐 최종 50인을 선발하였고, 이들의 이름은 새 경기장 주변 보도에 별과 함께 새겨졌다. 이는 [헐리우드의 명예의 거리]를 모방한 것으로, 마찬가지로 명예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전체 명단은 아래와 같다. 이름 옆의 † 표시는 고인을 나타낸다.

이름국적포지션소속기간출장경기득점
피에트로 아나스타시(Pietro Anastasi)이탈리아FW1968-1976303131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이탈리아FW1990-1995200115
로메오 베네티(Romeo Benetti)이탈리아MF1968-1969
1976-1979
15923
로베르토 베테가(Roberto Bettega)이탈리아FW1969–1983481178
카를로 비가토(Carlo Bigatto) †이탈리아MF1913–19312331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Giampiero Boniperti)이탈리아FW1946–1961462182
펠리체 보렐(Felice Borel) †이탈리아FW1932-1941
1942-1946
307161
세르조 브리오(Sergio Brio)이탈리아DF1974–199037824
잔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이탈리아GK2001-5350
안토니오 카브리니(Antonio Cabrini)이탈리아DF1976–198944053
움베르토 칼리가리스(Umberto Caligaris) †이탈리아DF1928–19351980
마우로 카모라네시(Mauro Camoranesi)아르헨티나/이탈리아MF2002–201028832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이탈리아MF1969–197623941
프랑코 카우시오(Franco Causio)이탈리아MF1967–1968
1970–1981
44772
존 찰스(John Charles) †웨일즈FW1957–1962178105
잔피에로 콤비(Gianpiero Combi) †이탈리아GK1921–19343670
안토니오 콘테(Antonio Conte)이탈리아MF1992–200441944
안토넬로 쿠쿠레두(Antonello Cuccureddu)이탈리아DF1969–198143339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네덜란드/수리남MF1997–200423510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o Del Piero)이탈리아FW1993–2012705290
루이스 델 솔(Luis del Sol)스페인MF1962–197029429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22]프랑스MF1994–19991784
안젤로 디 리비오(Angelo Di Livio)이탈리아MF1993–19992696
치로 페라라(Ciro Ferrara)이탈리아DF1994–200535820
주세페 푸리노(Giuseppe Furino)이탈리아MF1969–198452819
클라우디오 젠틸레(Claudio Gentile)이탈리아/리비아DF1973–198441410
욘 한센(John Hansen) †덴마크FW1948–1954187124
파올로 몬테로(Paolo Montero)우루과이DF1996–20052786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체코MF2001–200932765
라이문도 오르시(Raimundo Orsi) †아르헨티나/이탈리아FW1929–193519487
카를로 파롤라(Carlo Parola) †이탈리아DF1939–195434011
안젤로 페루치(Angelo Peruzzi)이탈리아GK1991–19993010
잔루카 페소토(Gianluca Pessotto)이탈리아DF1995–20063663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프랑스MF1982–1987224104
피에트로 라바(Pietro Rava) †이탈리아DF1935–1946
1947–1950
33015
파브리치오 라바넬리(Fabrizio Ravanelli)이탈리아FW1992–199616068
비르지니오 로세타(Virginio Rosetta) †이탈리아DF1923–193631516
파올로 로시(Paolo Rossi)이탈리아FW1973–1975
1981–1985
13834
산드로 살바도레(Sandro Salvadore) †이탈리아DF1962–197445017
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이탈리아DF1974–198855232
루시디오 센티멘티(Lucidio Sentimenti)이탈리아GK1942–19491885
오마르 시보리(Omar Sívori) †아르헨티나/이탈리아FW1957–1965253167
알레시오 타키나르디(Alessio Tacchinardi)이탈리아MF1994–200540414
스테파오 타코니(Stefano Tacconi)이탈리아GK1983–19923370
마르코 타르델리(Marco Tardelli)이탈리아MF1975–198537551
모레노 토리첼리(Moreno Torricelli)이탈리아DF1992–19982303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프랑스/아르헨티나FW2000–2010320171
잔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이탈리아FW1992–199614553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프랑스MF1996–200121431
디노 조프(Dino Zoff)이탈리아GK1972–19834760

소속 기간이 짧았던 파비오 칸나바로, 에메르손은 그렇다 치더라도, 잔루카 참브로타, 릴리앙 튀랑 등 칼치오폴리 당시 팀을 떠났던 선수들은 충분한 기간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에서 팬들의 투표 기준을 엿볼 수 있다. 외국인 10명 중에 프랑스인이 4명이고 아르헨티나 이중국적도 4명으로 프랑스, 아르헨티나와의 좋은 상성을 보여주며, 이는 50인 명단 발표 이후에도 포그바와 테베즈의 활약으로 재확인되었다.


6.2 감독

  • 카를로 카르카노(Carlo Carcano)
초기 유벤투스의 리그 5연패 가운데 4개 타이틀을 따낸 감독이자, 클럽 프로화 이후 최초의 이탈리아인 감독이다. 그 전에는 헝가리, 스코틀랜드 등 타 축구 강국들로부터 감독을 영입하는 추세였다. 총 전적은 111승 27무 23패, 승률 69%로 두 시즌 이상 유벤투스를 이끈 감독들 가운데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였다. 1934-35 시즌 도중 리그 5연패를 앞두고 당시 최강 자리를 위협받던 제노아가 조감독으로 영입하였다.
  • 제시 카버(Jesse Carver)
카르카노의 성공 이후 줄곧 이탈리아인 감독이 클럽을 맡아 왔으나, 1934-35 우승 이후 계속 우승에 실패한 데다, 라이벌인 토리노의 전성기에 자극을 받아 유벤투스는 다시 외국인 감독을 시험해 보게 된다. 1948-49 시즌 먼저 스코틀랜드 출신인 윌리엄 찰머스(William Chalmers)가 왔으나 승률 50%에 그쳐 한 시즌으로 교체되었고, 이어 1949-50 시즌에 잉글랜드 출신 제시 카버가 팀을 맡아, 부임 첫 해에 15년만의 우승을 클럽에 안겨주었다.
총 전적은 51승 14무 11패, 승률 67%로, 세리에 B에서 거둔 디디에 데샹의 승률인 70%를 제외하면 외국인 감독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감독 본인이 영국 복귀를 희망하여 계약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이후 카버는 결국 영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복귀, 라치오, 토리노, 로마, 인테르, 제노아 등에서 전체적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지만 결국 유벤투스에서 거둔 1949-50 우승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 되는 불운을 맛본다.
  • 에리베르토 에레라(Heriberto Herrera)
파라과이 국가대표 출신으로 스페인에서도 국가대표 경기 경험이 있다. 라요 바에카노, 테네리페, 에스파뇰 등 스페인 클럽에서 활약하다 1964-1969 기간동안 5시즌 유벤투스 감독을 맡는다. 총 전적은 100승 73무 42패, 승률 47%로 다른 성공적인 감독들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고 우승도 1966–67 한 시즌 뿐이지만, 공식전 215경기는 전체 유벤투스 감독 중 3위, 외국인 감독 중에는 1위에 해당한다.
위 역사 항목의 트라파토니 시대 참조. 총 전적 319승 181무 96패, 승률 54%를 기록했으며, 리그 6회, 코파 이탈리아 2회, 유로피안컵 1회, 유에파컵 2회 우승 등 유벤투스를 오늘날의 명문 클럽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공식전 596경기는 전체 유벤투스 감독 중 1위에 해당한다.
감독 개인으로서도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데, 4개국에서 리그 타이틀을 획득한 다섯 감독 중 하나이며, UEFA 주최 3개 대회 모두와 대륙간 클럽 대항전(당시 인터컨티넨털컵)을 우승한 세계 유일무이한 감독으로 자리하고 있다. 유벤투스 부임 전 밀란에서, 사임 후 인테르에서 각각 스쿠데토를 획득하여 이탈리아 3대 빅클럽 모두에서 우승한 기록도 있다.
위 역사 항목의 리피 시대 참조. 총 전적 227승 104무 74패, 승률 56%를 기록했으며, 리그 5회, 코파 이탈리아 1회, 챔피언스리그 1회 등의 우승 경력이 있다. 공식전 405경기는 전체 유벤투스 감독 중 2위에 해당한다.
2006년 월드컵 우승을 통해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모두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고,[23] 2013년 광저우 헝다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두어 2개 대륙에서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칼치오폴리 이후 우승과 인연이 멀여져 있던 유벤투스는 2011년 팀의 문제가 정신적인 부분에 있다고 판단, 선수 시절부터 열정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던 유벤투스 선수 출신인 콘테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콘테는 유명 클럽 경험이 없다는 것에 대한 주위의 우려를 불식하고 2011-2012 시즌 무패 우승, 2013-14 시즌 역대 최다승점 우승 등을 비롯, 재임 3시즌 동안 3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총 전적 102승 34무 15패, 승률 68%를 기록하였다. 유럽대항전 성적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으나, 강팀의 위치에서 밀려날 위기에 있던 팀을 다시 리그 내 강자로 만든 공로가 컸고, 특히 우승 자체보다 팀에 승부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6.3 회장

아녤리가 인물 중 유벤투스 회장을 역임한 인물들과 혈연 관계는 아래와 같다.

  • 에도아르도 아녤리(Edoardo Agnelli, 1923-1935)
  • 조반니 아녤리(Giovanni Agnelli, 1947-1954): 에도아르도 아녤리의 장남
  • 움베르토 아녤리(Umberto Agnelli, 1955-1962): 에도아르도 아녤리의 막내아들
  • 안드레아 아녤리(Andrea Agnelli, 2010-): 움베로트 아녤리의 아들

가장 오랜 기간 회장을 역임한 인물은 선수로서도 전설적인 인물인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로,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하였다.

현재 명예 회장에는 조반니 아녤리,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프란조 그란데 스테벤스(Franzo Grande Stevens) 세 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테벤스는 조반니 아녤리 시절부터 피아트 그룹의 법률 고문을 맡아 온 거물 변호사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7 그 외

유벤투스는 이탈리아에서 제일 인기있는 구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자국내 서포터즈 수만 인구의 1/3 가량이라 한다. 유벤투스의 어웨이 경기만 이탈리아 전역에서 다른 구단들보다 많은 티켓이 팔린다고. 나아가서 유럽에만 4천만 이상, 대략 대한민국 국민수의 팬이 있다고 한다. 전세계에 약 1.8억명의 팬들이 있다고 한다.

왜 그런가하면 80-90대 세리에 A는 플라티니, 마라도나, 반바스텐 등의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뛰고 있던 최고의 리그였으며 그 중에서도 유벤투스는 80년대 플라티니와 함께 유럽 정상에 올랐고 90년대에도 마르첼로 리피가 이끌던 시기에 다시 한번 최강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와 챔스에서 꾸준히 강자의 모습을 보였기에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건 축구선수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것인데(마치 많은 독일 선수들이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기를 꿈꾸듯), 80-90년대에 유스 시절을 보낸 선수들이 어렸을 때 봐온 최강 리그의 모습으로 세리에A에 대한 동경이 강하게 남아있다. 대한민국보다 더 먼저 해외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일본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왜 한국처럼 EPL이 아닌 세리에 A를 선호하는지 쉽게 설명된다.

지금은 다시금 불붙은 라리가의 두 강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영어권 나라(미국 등)와 아시아 시장개척, 자본을 등에 업은 EPL구단들에 밀려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 예전부터 존재해온 팬들이 가장 많은 구단인건 확실하다.

다만 토리노 현지에서는 관중 동원이 잘 되는 편이 아니다. 같은 토리노에 있는 토리노 FC에 비해 구장이 시 외곽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리노도 20년 전부터 급격히 무너졌지 그 전까지는 나름 역사가 있는 팀이다. 유벤투스 스타디움은 이러한 지역 실정에 알맞게 41,507석의 규모로 지어져 있다.

7.1 유벤투스 울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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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응원단. 1970년대 중반에 형성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1976년 설립되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열혈 팬들에 비해서는 훌리건 행위가 잦지는 않으나 간혹 부적절한 단체 응원으로 인해 클럽이 벌금을 물게 하거나 무관중 홈경기로 티켓 수입을 얻지 못하게 하는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플레이어들의 비율이 높아 과거에는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 확산된 축구에서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과 당시 유벤투스 소속이자 이 운동의 홍보대사 격으로 활약한 에드가 다비즈의 영향으로 많이 완화되었다.

21세기 들어 크게 이슈화 된 부적절한 응원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7.2 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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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가장 큰 상징은 이 하얀색-검은색 줄무늬, 이탈리아어로 bianconeri라고 쓰고 "비앙코네리"라고 읽는 무늬이다. 이 무늬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사실 유벤투스의 유니폼은 줄무늬가 아닌 핑크색이였다는 것이다. 유벤투스를 창단한 첫 해에는 핑크색을 입고 뛰다가 다음 해에 영국에 유니폼을 주문했는데, 유니폼이 잘못 배달되어 노츠 카운티 FC의 줄무늬 유니폼을 받게 된 것이다. 노츠 카운티는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으로도 알려져 있는 유명 클럽이었는데 그들이 핑크를 입고 뛰고, 유벤투스가 줄무늬를 입고 뛰게 된다. 그 영향으로 유벤투스의 홈 유니폼은 줄무늬가 되었고, 노츠 카운티는 서드 킷으로써 핑크색을 채용하고 있는데, 유벤투스도 간혹 서드 킷으로 핑크색을 입기도 한다.

팀의 지분 35%를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몰락과 죽음으로 리비아 정부 몫이 되었다. 80년대 트라파토니 시절 유벤투스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클라우디오 젠틸레의 출생지가 리비아이고 별명까지도 카다피였기에 카다피는 생전에 유벤투스 팬이었고, 2001년 유벤투스가 주식을 공개하자 지분까지 매입하였다. 카다피는 이어 2002년 수페르 코파를 리비아 트리폴리에 유치하여 당시 리그 우승팀이었던 유벤투스를 불러들였고, 2003년 카다피의 아들이자 축구선수였던 알 사디 카다피가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불합격했다. 이후 세리아 C의 AC 페루자에서도 방출당하고 이후 우디네세, 삼프도리아 등을 거친 알 사디 카다피는 칼치오폴리로 인해 유벤투스의 주가가 떨어진 2006년 가을 추가 지분 매입 의향을 밝힌 바 있으나, 그 목적이 순수한 투자인지 자신의 입단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인과도 사실 연이 있는데, 바로 최순호 선수. 그가 청소년 대표 시절 이탈리아를 상대로 2골 2도움을 성공시키며 이탈리아를 관광보내자 유벤투스의 보드진이 그를 쫓아다니기 시작했으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계속 스카우터를 파견하고 당시 구단인 포항제철과 이적 협상을 계속 요청했으나 해외 진출에 대한 부정적 풍토와 선수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포항의 세심한 배려로 인해 유벤투스 보드진은 테이블에도 앉아보지 못하고 최순호를 포기해야 했다고 한다.[#]

EPL에서부터 발전한 이적시장 인플레에서 특정 인기팀의 선수를 싼값에 노린다고 국내 해축빠들에게 거지투스(...)라 불리고 있다. 유벤투스는 예나 지금이나 피아트를 소유한 아넬리 가문이 소유한 구단이라 돈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그냥 세리에 A를 퇴물 취급하고 EPL이 아직도 최고라며 치켜세우는 정신승리와 같은 맥락.

7.3 스폰서십

  • 삼성그룹이 유벤투스 스타디움의 네이밍 권한을 사들여 삼성 스타디움으로 바꾼다는 루머가 돈 바 있다.[24] 그리고 그 루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났다. 삼성의 스폰서십은 맞고, 네이밍 권한은 아니였다. 삼성과 유벤투스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그 내용 중에는 의료 부문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 2014/15 시즌까지 나이키와 스폰서를 맺고 있다가 15/16 시즌부터는 아디다스로 스폰서를 변경하였다. 이로써 세리에 A의 나이키 유니폼은 인테르만 남...지는 않게 되었다. 헬라스 베로나, AS 로마, 아탈란타가 나이키의 유니폼을 사용하고 있다.
  • 현재 셔츠 스폰서는 Jeep다.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자회사라 가능한걸로 보인다.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잠시 달았던 뉴 홀란드도 피아트의 자회사라 달은걸로 보인다.


8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1956년11회
2 벤피카
(Benfica)
1961년2회
3 밀란
(Milan)
1963년7회
4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1964년3회
5 셀틱
(Celtic)
1967년1회
6 맨유
(Manchester Utd.)
1968년3회
7 페예노르트
(Feyernoord)
1970년1회
8 아약스
(Ajax)
1971년4회
9 바이에른 뮌헨
(Bayern)
1974년5회
10 리버풀
(Liverpool)
1977년5회
11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1979년2회
12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1982년1회
13 함부르크
(Hamburg)
1983년1회
14 유벤투스
(Juventus)
1985년2회
15 스테아우아
(Steaua)
1986년1회
16 포르투
(Porto)
1987년2회
17 PSV
(Eindhoven)
1988년1회
18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1991년1회
19 바르셀로나
(Barcelona)
1992년5회
20 마르세유
(Marseille)
1993년1회
21 도르트문트
(Dortmund)
1997년1회
22 첼시
(Chelsea)
2012년1회
ECA (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레인저스
(Rangers)
리옹
(Lyon)
맨유
(Man Utd)
밀란
(Milan)
바르셀로나
(Barcelona)
바이에른
(Bayern)
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아약스
(Ajax)
안더레흐트
(Anderlecht)
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유벤투스
(Juventus)
첼시
(Chelsea)
쾨벤하운
(København)
포르투
(Porto)
2016-17 이탈리아 세리에 A
나폴리
(Napoli)
라치오
(Lazio)
로마
(Roma)
밀란
(Milan)
볼로냐
(Bologna)
사수올로
(Sassuolo)
삼프도리아
(Sampdoria)
아탈란타
(Atalanta)
엠폴리
(Empoli)
우디네세
(Udinese)
유벤투스
(Juventus)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제노아
(Genoa)
칼리아리
(Cagliari)
크로토네
(Crotone)
키에보
(Chievo)
토리노
(Torino)
팔레르모
(Palermo)
페스카라
(Pescara)
피오렌티나
(Fiorentina)
  1. 축구 팬들은 '올드 레이디'라고 부른다.
  2. 정확히 말하면 안드레아 아녤리는 구단주가 아니라 회장이다. 구단주는 아녤리 가문.(정확히는 Exor라는 투자회사를 통해서 운영을 하는 방식이다.)
  3. 피아트의 경영진 가문인 아그넬리 가문을 위해 일해 온 변호사. 세아트 론다 소송사건 때 판사로 임명되었으나 공정성 문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4. 칼치오폴리로 인해, 2004-05, 2005-06 시즌 스쿠데토 자격 박탈.
  5. 보렐 2세로 널리 불렸다.
  6. 이후 1992년 아약스, 1996년 바이에른 뮌헨, 2013년 첼시가 3개 대회 우승 달성에 성공하였지만, 이에 대해 UEFA에서 유벤투스에게 수여한 기념패와 같은 것을 수여한 이력은 찾아볼 수 없다. 일부 국내 웹문서에서는 UEFA PLATE라는 상이 있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으나, 이에 대한 근거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7. 현재 유벤투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8. 1949-50 시즌부터 2013-14 시즌까지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가 각각 23회, 15회, 13회 우승한 반면 그 밖의 팀들은 1~2회 우승에 그쳤고 이를 모두 합쳐도 13회에 불과하다.
  9. 2005-06 당시 주전 구성은 왼쪽에 참브로타, 오른쪽에 조나단 제비나였으나 제비나가 부상을 당했다. 참브로타가 양쪽 모두 번갈아가며 뛰던 가운데 키엘리니는 2005-06 시즌 U-21임에도 불구하고 리그/유럽대항전 포함 23 경기에 출전하여 팀에서 왼쪽 풀백으로 가장 많이 출장하였다.
  10. 이브라히모비치가 인테르,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를 거쳐 [8년 후 꼽은 베스트 11]에서도 이 멤버 중 6명이 포함되어 있다.
  11. 당시 세리에 A에서 유벤투스의 성적은 3위로 칼치오폴리 이후 강등 및 승강의 과정을 거치면서 팀의 선수진이 많이 약화된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다만 그 전까지 리그 정상에서 놀던 팀이기에 팬들의 기대치가 높았고, 경질 당시 유벤투스는 9경기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2. 이 당시 감독이었던 치로 페레라, 알베르토 차케로니, 루이지 델 네리에서 한 글자씩 따온 단어이며 유베의 암흑기를 상징한다. 차케로니의 경우 자케로니로 주로 읽힌 관계로 '차' 대신 '짜'로 용어가 굳어졌다. 사실 아주 예전부터 국내 세리에 A 팬들에게 짜짜로니란 별명이 붙여진터라 이게 더 자연스러웠다.
  13. 이른바 7공주 시대에 선수로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던 그 페라라 맞다.
  14. 디에구는 브레멘 때의 활약상만 보아도 스루 패스를 찔러 넣는 것을 잘 한다. 하지만 유베에서 필요한 것은 타겟 맨들에게 크로스를 잘 올려야 하는 공미이다. 같이 월 패스를 주고받을 섀도 스트라이커(브레멘 때의 피사로처럼)가 있어야 플레이가 빛을 보는데, 아마우리를 포함한 타겟 맨 3명이 그렇게 해줄 수도 없다. 디에구 혼자 이래 저래 뛰어 다니면서 크로스를 힘겹게 올리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정말로 호흡이 맞는 짝이 유벤투스에 없었다.
  15. 비록 볼을 끄는 단점이 있지만 그 막장이었던 팀에서 7골 12어시를 했으니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팀의 퀄리티는 확 올라갔지만 수준 높은 2선 자원만 없는 12년 이후부터 팬들이 다시 그리워하는 선수이다.
  16. 콘테의 경우 경기 후 선수들의 셀레브레이션에 함께 참여하는 등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리더쉽을 보인 반면, 알레그리는 "셀레브레이션은 선수들의 무대"라고 선을 긋고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자 또는 울리기 전에도 [라커룸으로 칼퇴근]하는 차이를 보였다.
  17. 칼치오폴리로 박탈, 해당 시즌 공식 우승팀은 공석.
  18. 칼치오폴리로 박탈, 해당 시즌 공식 우승팀은 인테르.
  19. 조별리그에서 3승 3무 조 1위로 통과해도 승률은 50%에 불과하고, 홈&어웨이에서 두 경기 무승부 후 원정골이나 승부차기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면 승률은 0%이다.
  20. 인테르가 통산 전적에서는 1위이나 승률은 50.3%으로, 50% 승률이 나쁜 성적이 아님을 다시 입증하고 있다.
  21. 1950년대에 입은 유니폼 앞쪽이 트여있어 [전력질주 시 바람을 받아 등이 부풀어오른 데에서 유래한 별칭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타 클럽 서포터들은 "국내 우승컵 무게 때문에 허리가 휘어서 밖에서는 힘을 못 쓴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22. 세리에 B로 떨어지고 선수들이 이적하고 감독인 카펠로도 레알로 가버린 상황에 취임하여 06-07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을 하고 바로 팀을 승격시켰다. 그러나 선수 영입 권한으로 갈등을 빚고 사임하였다. 그 후로 몇 년을 삐걱거린 것을 보면 정말 아쉬운 점이다.
  23. 2010년 비센테 델 보스케가 월드컵 우승을 거두면서 이 기록을 달성한 두 번째 감독이 되었다.
  24. 아마도 현 유벤투스의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업체인 피아트와 삼성은 공동으로 연료전지 자동차를 연구중이며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자 부회장인 이재용씨가 피아트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