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 42

제2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군 항공기
전투기복엽기CR. 32, CR. 42 파르코
단엽기C. 20x 시리즈, Re. 200x 시리즈, G.50 프레치아, G.55 첸타우로, D.520F, Bf109G
폭격기中폭격기BR.20 시코그나, SM. 79 스파르피에로, SM.84, SM.81 피피스트렐로
重폭격기피아지오 P.108
급강하 폭격기Ju87G
수송기SM. 79, Ju 52G
※ 비고 F:프랑스기체, G:독일기체
제2차 세계대전기의 스웨덴군 항공기
전투기복엽 전투기스벤스카 아에로 아크트팔켄 II, 브리스톨 불독,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CR. 42
단엽기P-35, Re.2000
폭격기경폭격기Ju 86K, 호커 하트, 사브 17
中폭격기사브 18
뇌격기하인켈 He 115
공격기A-17, Saab B-17
정찰기호커 오스프리, 하인켈 He 5, Fi 156
수송기Ju 52, C-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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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at CR. 42 Falco

1 제원

  • 전장 : 8.25m
  • 전폭 : 9.70m (아래쪽 익폭 : 6.50m)
  • 전고 : 3.59m
  • 익면적 : 22.4㎡
  • 엔진 : 피아트 A.74 RIC38 복열 14기통 공냉식 성형엔진, 840마력
  • 자체중량 : 1,782kg (전비중량 2,295kg)
  • 최대속도 : 441km/h (고도 6,096m)
  • 항속거리 : 780km
  • 무장 :
기수 상면에 Breda-SAFAT 12.7mm 기관총 2정, 정당 400발
옵션으로 아래쪽 주익 페어링에 Breda-SAFAT 12.7mm 1정씩 장착가능
주익 하부 하드포인트에 200kg 폭탄 2발 장착가능

2 개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이탈리아 공군에서 운용했던 복엽전투기피아트 항공사에서 설계 및 개발하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왕국군병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

2.1 최강의 복엽기

1930년대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이름 날리던 CR. 32의 후계기종으로 CR. 32의 설계를 기반으로 장비들을 업그레이드하고 기존설계를 개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에 CR. 32의 파생기종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사상 최고의 복엽전투기를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기종이지만 문제는 이 기종이 배치되고 활동한 시기가 2차대전이란 점이다!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 공군은 대세에 따라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을 의뢰한 상태였고, 훗날 차기 주력전투기로 채택되는 MC. 200의 원형기가 1937년 12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시점에서 뜬금없이 피아트사에서 제출한 복엽전투기 CR. 42의 개발계획이 승인되었다. 게다가 CR. 42를 발주받은 피아트사는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스페인 내전 등지에서 CR. 32가 맹활약을 하여 검증받은 상태였고 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식이었으니 개발속도도 빨랐고 당연히 성능 향상도 있었다. 여기에 MC. 200을 비롯한 차세대 전투기들의 배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이탈리아 공군은 "Falco"란 이름을 부여하여 양산을 허가하였다. 게다가 CR. 32의 우수한 성능을 알고 있던 벨기에, 헝가리, 스웨덴,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지에서 CR. 42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피아트사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기종으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CR. 32와 비행특성이 유사했던 까닭에 CR. 32를 조종했던 조종사라면 별도의 기종전환 훈련 없이 적응하기에 용이한 점도 있었다.

일단 최강의 복엽기답게 속도는 441km/h, 항속거리도 780km[1], 무장도 기본이 12.7mm 기관총 2정이며, 추가로 12.7mm 기관총 2정을 더 달거나 200kg 폭탄을 2발 달수 있었다. 덤으로 튼튼하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잘 버틴다. 한마디로 말해 여러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가능하며, 취급도 쉽고 신뢰성도 높은 기체다.

2.2 시대는 2차대전

하지만 당시 전투기 개발 추세를 보면 복엽전투기에 기동성을 중시하는 설계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구식이었다. 이미 대세는 저익단엽기에 고속성능을 이용한 전술을 구사하는 시기였으며, 이미 기동성 중시의 복엽전투기는 한 주먹감도 안된다는 것을 유럽 각지에서 독일 공군이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민폐가 있었으니 당시 CR. 42가 사용하던 840마력급 피아트제 공냉식엔진은 다른 차세대 전투기들도 같이 쓰는 엔진이었다! 결국 CR. 42 만든답시고 다른 차세대 전투기들이 쓸 엔진들을 떼먹는 상황이었고 최소 생산량에서 3할 가량의 엔진이 CR. 42 개발을 위해 소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다른 전투기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다행히 1939년 말에서 1940년 중반까지 영국이 영국 본토 방어에 더 신경을 쓰느라 워낙 후달려 제2선에 신경을 못쓰고 있었기에 몰타항공전이나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CR. 42가 활약할 여지가 있었다. 일단 당시에 몰타 섬에는 같은 복엽기인 글래디에이터 3대(...)만 배치되어있었고 항공모함 함재기로 쓰이는 풀머가 있었지만 풀머는 복좌전투기라 아주 떨어지는 기동성을 자랑했다. [2]하지만 1940년 9월부터 2선급 전선에도 호커 허리케인이 배치되자 그저 격추스코어 셔틀로 전락하였다. 그럼에도 이탈리아가 항복할 때까지 계속 생산됐다. 물론 초기 모델을 계속 생산한 건 아니고 상황에 맞게 조금씩 개량한 버전들이 나오기도 했고, DB 601엔진을 넣은 개수 버전도 만들어보는 등 그야말로 별짓을 다했다. 여기에는 다른 기종 생산량이 후달리다보니 그나마 양산이 용이하고 다양한 목적으로 굴릴 수 있는 CR. 42를 계속 찍어낸 탓도 있다.

이탈리아가 항복한 이후 루프트바페에서 소량 생산해서 굴린 적이 있다. 물론 전투기로 썼다기 보다는 2선급 전선에서 지원용 목적에 가까웠다.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에도 참가한 기록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의미에서 지원군을 파견한 것인데 당시 독일군 입장에서는 "저놈들 도움도 안되면서 왜 온거임?"(…).
  1. 항속거리 긴 게 자랑거리였던 제로센에 맞먹는다.
  2. 실제로 풀머보다 CR.42의 최대 속력이 더 빠르다! 그러나 영국군 조종사들은 풀머가 단엽기라는 점을 이용해서 에너지파이팅으로 발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