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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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6기 당시 멤버.[1] 좌측부터 제이드(베이스), 김단(드럼), 신해철(리더/보컬), 지현수(키보드), 김세황(기타)>
본격 리더빼고 아이돌 밴드 넥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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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인 '불새'와 특유의 워드아트>

1990년대 한국 가요계를 빛낸 록 밴드

1990년대 초에 결성한 이래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록밴드. 리더는 '마왕' 신해철.

1 역대 멤버

  • 1992 ~ 1993 (넥스트 1기)
신해철 (보컬, 건반), 정기송 (기타), 이동규 (드럼)
  • 1994 (2집 제작) (넥스트 2기)
신해철 (보컬, 건반, 리듬 기타, 프로듀싱), 임창수 (리드 기타), 정기송 (어쿠스틱 기타), 이동규 (베이스), 이수용, 이건태, 김선중 (드럼)
  • 1994 (2집 발표 및 서울 라이브) (넥스트 3기)
신해철 (보컬, 건반), 김세황 (기타), 이동규 (베이스), 이수용 (드럼)
  • 1994 ~ 1997 (넥스트 4기)
신해철 (보컬, 건반), 김세황 (기타), 김영석 (베이스), 이수용 (드럼)
  • 2003 ~ 2006 (넥스트 5기)
신해철 (보컬), 데빈 리 (기타), 쌩(원상욱) (베이스), 쭈니(이용준) (드럼), 김동혁 (건반)
  • 2006.2 ~ 2006.11 (넥스트 6기)
신해철 (보컬), 데빈 리 (기타), 김세황 (기타), 김영석 (베이스), 이수용 (드럼), 지현수 (건반)
  • 2007.5 ~ 2007.8 (넥스트 7기)
신해철 (보컬), 김세황 (기타), 지현수 (건반), 제이드 (베이스), 테라 (드럼)
  • 2008.11~ 2012 (넥스트 8기)
신해철 (보컬), 김세황 (기타), 지현수 (건반), 제이드 (베이스), 김단 (드럼)
  • 2013.10~ 2014[2]
신해철 (보컬), 박웅 (기타), 홍성민 (건반), 제이드 (베이스), 김단 (드럼)
  • 2014.06~ 2014.09 [3]
신해철 (보컬), 정기송 (기타), 강석훈 (건반), 제이드 (베이스), 이현섭 (세컨보컬 및 신디), Shinji(김성원) (드럼)
  • 2014.09~ 2014.10.
신해철 (보컬), 정기송 (기타), Tommy Kim (기타) 김구호 (건반), 제이드 (베이스), 김영석 (베이스), 이현섭 (세컨보컬 및 신디), 이수용 (드럼)
  • 2014.12.21 가요대전 당시
신해철[4] (보컬), 이현섭 (보컬), 정기송 (기타), 김구호 (건반), 노종헌 (베이스), Shinji(드럼)

2 개요

지난 1992년 팀 결성 이래 수많은 멤버 교체 끝에 어느덧 2014년 기준으로 데뷔 22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슈퍼밴드. 영어로 쓰면 다소 난해해 보이는 팀 이름은 New EXperiment Team'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 최근에는 New Experimental Team으로 표기하는 듯. ~~ 밴드 멤버나 신해철의 철학 자체가 잠시동안 통체로 바뀐 적이 있는 5집 컴백 시기 동안에는 잠시동안 'New Expert Team'이었던 적도 있다.

팀의 이름에 비춰볼 때 근래에는 유명무실해진 면이 있긴 하지만, 밴드 초기(1~3집이라고 보면 크게 무리없을 듯 하다)부터 테크노 요소의 도입[5], 국악과 락의 조화[6] 등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를 해 왔으며, 음악적인 경계를 가리지 않고 한 앨범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팀의 상징은 보컬 신해철. 본인은 원맨 밴드를 부정하기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했다지만 방송이나 공연 홍보물 따위에서 신해철과 넥스트로 로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팬들조차 이 부분을 지적하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근데 신해철 밴드 이미지가 너무 강하잖아? 안될거야 아마[7]
신해철 다음으로는 (그나마) 가장 팀에 오래 자리잡고 있는 기타리스트 김세황이 넥스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2014년 6월 21에 있었던 신해철 솔로 6집 Part 1 싱글 쇼케이스에서 향후 N.EX.T는 초대 기타리스트였던 정기송을 중심으로 한 20인의 '넥스트유나이티드(가칭)'를 중심으로 하여 그때 그때 필요할 경우마다 멤버를 조합하여 밴드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활동이 이뤄질 것이란 리더 신해철의 언급이 있었다. 네이밍 방식은 'N.EX.T 포메이션 ?' 으로 포메이션 M, K ,B 는 본인이 언급을 하였다. 각각 메탈, 국악, 발라드 포메이션이라고.

2014년 10월 27일 넥스트의 리더이자 영혼.큰 비중을 차지한 핵인 신해철이 타계함에 따라 넥스트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8]

3 음반 목록

  • 정규 음반
    • 1집 :《Home》(1992년)
    •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1994년)
    •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1995년)
    •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1997년) 영혼기병 라젠카 OST
    •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2004년)
    • 6집 :《666 Trilogy Part I》(2008년)
  • 비정규 음반
    • 5.5집 :《Regame? - The 2nd Fan Service》(2006년)
  • 싱글
    • 〈Here, I Stand For You〉(1997년)
  • 라이브 음반
    •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 Live Concert Chapter 1》,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 Live Concert Chapter 2》(1995년)
    • 《N.EX.T Is Alive(The World Tour)》(1996년)
    • 《N.EX.T Concert Album - The First Fan Service》(1997년)
  • 참여 음반
    • 《'92 내일은 늦으리》(1992) - 〈1999〉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OST)》(1993) - 〈코메리칸 블루스〉, 〈City Riders〉, 〈하나대 Theme〉
    • 《'95 내일은 늦으리》(1995) - 〈Maximum Overdrive〉
    • 《용가리》(1999) - 〈해에게서 소년에게〉
    •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2004) - 〈하늘(with 싸이)〉
    • 《천국보다 낯선》(2006) - 〈Stranger Than Heaven〉
    • 《Happy Rock Christmas》(2006) - 《Last Christmas
    • 《Go for the Final》(2006) - 〈돌격! 아리랑 Part I〉, 〈Part II〉
    • 《Legend of Dragon》(2007) - 〈The Virgin Flight (Theme of Imoogi)〉

3.1 결성 및 1집 <Home>

<1집 자켓. 평화로워 보이는 앞면과는 달리 뒷면은….>

1992년, 무한궤도 활동을 청산한 이후에도 솔로로 2장의 앨범을 내며 아이돌 스타로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던 신해철은 드러머 이동규와 기타리스트 정기송을 끌여들여 N.EX.T를 결성하는 파격행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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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이동규(드럼)[9], 신해철(보컬, 피아노), 정기송(기타)[10]>

TV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당돌한 선언과 함께 넥스트는 같은 해 6월 1집 <Home>을 발매한다. 이때만 해도 정통 락보다는 랩, 테크노, 하우스, 신스팝, 디스코 등 다양한 양분을 섭취한 팝 밴드의 성향이 짙었다. 신해철의 보컬 역시 기존의 솔로활동에서 R&B 풍이 가미된 느낌을 받을 정도였고, 넥스트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일관된 컨셉트, 다양한 장르가 시도된 첫 음반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앨범에서 '인형의 기사'와 '아버지와 나' 등의 히트곡들이 탄생했으며 그 중 '도시인'은 다소 우울한 가사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꽃게랑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11]


아무튼 신생 밴드 넥스트의 탄생은 이슈면에서도, 음악적인 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내일은 늦으리> 환경 앨범 참여,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OST 작업을 거치는 도중 신해철의 방위 복무 및 대마초 사건이 터지고, 기타리스트 정기송이 팀을 탈퇴함에 따라 밴드는 표류하게 된다.

2010년 음악웹진 100비트에 의해 선정된 1990년대 100대 명반 중 55위에 랭크되었다.

3.2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많은 이들이 넥스트의 작품 중 최고로 꼽는 앨범. 전시공[12]에 의해 현재의 '불새'와 뭔가 있어보이기 류 최강폰트 NEXT 폰트가 탄생했다.>

신해철이 1993년, 대마초 사건으로 불명예 제대함에 따라 넥스트의 향후 행보는 어두운 듯 보였으나, 그들은 1994년 <The Return of N.EX.T part.1 : The Being(이하 '<BEING>')>을 들고 귀환한다.

참여 멤버는 신해철(보컬, 신디사이저), 임창수(기타), 이동규(베이스), 이수용(드럼).

하지만 이 멤버는 말 그대로 레코딩 멤버. 신해철의 회고에 의하면 1집에서 드럼을 맡았던 이동규는 교통사고로 인해 무릎을 다쳐 드럼을 맡을 수 없게 되어 베이스로 포지션을 이동했고[13] 임창수는 앨범 녹음 직후 밴드를 탈퇴하는 등[14] 멤버 유동이 가장 잦은 결과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신해철 본인이 땜빵질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신해철은 인터뷰에서 넥스트 2집 리듬기타 및 신디사이저 파트를 전부 자신이 녹음했기에 솔직히 넥스트 2집은 자신의 솔로 앨범이라고 봐도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 후 신해철은 넥스트가 자신의 원맨밴드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3집 활동 부터 다른 멤버들(특히 김세황)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다.

라이브에서는 상기 언급된 것과 같이 임창수 대신 '다운타운' 출신의 유망주기타리스트 김세황이 팀에 합류해 기타를 쳤다. 팬덤 사이에서는 임창수가 있던 레코딩 멤버를 2기, 김세황이 합류한 라이브 멤버를 3기로 보는편이다. 이 앨범이 발매된 직후 이동규가 팀을 떠나 솔로로 데뷔하게 되는데 당시 팀에 첫 합류했던 김세황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신해철과 이동규 사이의 알 수 없는 기싸움이었다고 한다. 신해철과 이동규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으나, 이동규가 드러머를 맡지 못하게 되고 베이스와 보컬에 욕심을 내면서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동규는 솔로 앨범 2장을 낸 뒤 음악 활동을 접었다. 그런데 2008년 '살아있는 미술관(Alive Gallary)'이라는 프로젝트(?) 앨범에서 DkLee라는 이름으로 2곡을 불렀다. 이후에는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듯 했으나, 2015년부터 수상레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과물로 말하자면, <BEING>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메시지는 날카로웠지만 음악적으로는 다소 말랑말랑한 느낌을 주었던 전작 <HOME>과 달리, <BEING>은 헤비 메탈프로그레시브 록, 일렉트로니카가 혼재한 헤비하고 어두운 음악을 담고 있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헤비메탈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곡들이었다. 음악적으로도 당시 메탈의 정수를 표현하면서도 제도권 교육에 대한 저항('껍질의 파괴')이나 현대인의 이중적인 심리('이중인격자'), 영생을 욕망하는 자에 대한 경계('불멸에 관하여'[15]) 등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내용면에서도 충실한 컨셉트 앨범이 바로 <BEING>이었다.

이 중 특히 웅장한 신디사이저 오프닝 'The Return of N.EX.T'에 이은 대곡 'The Destruction of Shell(껍질의 파괴)'은 청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자그마치 9분 53초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속주대결을 펼치면서 변주를 거듭하는 기타와 드럼은 물론, 저음과 고음을 두루 거치는 4옥타브의 음역대를 소화하는 보컬 신해철의 변신 등 이 한 곡으로 정점에 선 헤비메탈 밴드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보컬으로서의 신해철의 능력은 술안주 급으로 자주 까이는 대상이긴 한데, 이 시기 넥스트의 라이브를 들으면 결코 신해철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유튜브에 넥스트, 빅쇼 따위의 검색어로 검색해보자.(원본은 KBS 빅쇼) '껍질의 파괴'를 무리없이 불러제끼는 굇수 신해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빅쇼 껍질의 파괴'


하지만 팬들이 넥스트 최고의 명곡으로 꼽는 곡은 역시 마지막 트랙인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인데, 흡사 킹 크림슨을 연상시킬 정도로 서정적이고 웅장한 멜로디, 대곡 지향적 전개와 현학적이면서도 통렬한 가사가 더해져 소름끼칠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마치 파도치는 바닷가 근처에 와 있는 것 같은 사운드에,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처절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은 이 곡을 넥스트의 상징으로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다. 당연하게도 콘서트에서 가장 호응이 좋은 넘버 중 하나. 신해철도 생전에 고스트스태이션에서 20대 시절 자신이 하고 있던 고민들을 농축시켜서 만든 곡이라고 자평했다.

  • 'The ocean-불멸에 관하여'

이외에도 '이중인격자' 역시 메가데스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스래쉬 메탈 넘버이며, 'The Dreamer'는 오케스트라와 헤비 사운드가 결합된 웰메이드 락 발라드라고 할 수 있겠다. 비장미가 넘치는 가사는 대마초 사건을 겪고 난 당시 신해철의 심정을 담은 것이라고. 이후 5.5집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 다만 이렇게 쟁쟁한 곡들 중 타이틀로 선정된 것은 다른 곡들에 비하면 앙증맞기(?) 짝이 없는 '날아라 병아리'(…).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어쿠스틱 기타와 화음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멜로디에 끌려 앨범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보았다고. 어찌보면 파워 메탈 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와도 비슷한 케이스일 듯.[16] 이 곡에 얽힌 사연이 또 골때리는 게, KFC에서 치킨을 먹다가 흘러나오는 이승환의 '플랜더스의 개[17]'를 듣고 '무슨 노래를 개를 주제로 만드냐ㅋㅋㅋ'라고 웃고 있었는데 "그럼 나도 닭으로 노래를 만들어볼까?"하고 순간 삘받아 만든 곡이라고(…). 아마도 루머. 콘서트나 방송에서 얄리의 죽음이 충격이 커 후에 철학과 진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다 한다.

웹진 '가슴네트워크(www.gaseum.co.kr)'에서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38위에 랭크. 신해철 관련 앨범으로는 솔로 2집인 <Myself>도 포함되었다.[18] 2010년 음악웹진 100비트에 의해 선정된 1990년대 100대 명반 에서는 15위에 랭크되었다.

전술했듯이 넥스트의 심볼 및 특유의 강렬한 워드아트가 확립된 것이 바로 이 시기. 심볼인 불새는 호루스의 눈에서 착안한 거 아니냐는 팬들의 의문이 있었는데 디자이너인 전상일이 그런 거 없고 신해철의 눈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정-빨강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제복과 완장을 착용하고 공연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이러한 무대매너는 바로 그 나치의 선전수단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당시 까들이 넥스트를 비난한 이유 중 하나가 콘서트가 나치 전당대회 같아서 싫다였다는 건 아이러니. 한마디로 팬만큼 안티도 많은 그룹이었다. 게다가 일부 팬들이 이를 두고 '나치의 만행을 비판하기 위한 해철님의 메시지'라는 되도 않는 드립을 쳐댄 것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신해철은 특유의 말빨과 쇼맨십으로 히총통 교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후에 신해철 그가 밴드 멤버가 바뀌고 해가 갈수록 음악적 스타일이 바뀔 때에 팬들이 2집 때를 그리워하면 당시 2집은 밴드다운 밴드가 아니라 레코딩 멤버들이 만든 앨범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3.3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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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시기는 멤버 구성이나 활동에 있어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질적인 존재'에 대한 탐구가 메인이었던 전작 <BEING>에 이어 '세상'으로 영역을 넓힌 앨범. 이동규가 떠나면서 공백이 생긴 베이시스트 자리에 김영석이 영입되면서 넥스트의 리즈 시절 멤버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리드보컬-키보드에 신해철, 기타에 김세황, 베이스 김영석, 드럼 이수용이라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넥스트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후덜덜한 진용이 갖춰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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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 멤버들. 왼쪽부터 김영석, 김세황, 이수용, 신해철>
사진을 보면 느껴지겠지만 스매싱 펌킨스빌리 코건 마냥 신해철이 혼자 다 해먹었다.
본격 신해철과 아이들[19]

가장 큰 골칫거리중 하나였던 멤버 구성이 안정을 찾음에 따라 기존의 신해철 1인 독재 체제에서 일정 부분 멤버들이 역할을 분담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부클릿의 작곡자 표기란에도 신해철 이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커다란 시디 케이스와 부클릿에 수록된 부끄러운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컨셉트에서 포괄하는 범위가 커짐에 따라 곡 구성도 매우 풍성해졌다. 기존의 '세계의 문' 중 'THE WORLD WE MADE'와 '나는 쓰레기야'[20] 연작 같은 메탈 노선 뿐 아니라 'KOMERICAN BLUES'에서는 국악과 락의 조합을 시도했고, '날아라 병아리'의 소박한 감성을 잇는 발라드 'mama'에 김세황의 기타 솔로가 두 곡이나 포함되어 있는 등 스케일이 전작에 비해 확실히 커진 것을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백화점식 구성이 한층 더 난삽해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의 붕괴에 모티브를 얻은 'THE WORLD WE MADE', 물질만능주의를 조롱한 'MONEY'[21], 심지어 발라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도 당시 대표적인 악법으로 위세를 떨치던 동성동본 금혼법에 강력한 딴지를 건 노래였다.

지금 와서는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이지만, 이 법은 헌재의 헌법불합치결정에 의해 효력이 소멸된 1998년까지만 해도 '사회문제'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해당 법령으로 지정한 근친혼의 범위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넓어서 국민의 기본권(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데 있었다. 중국에서 유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성동본 금혼을 법으로 제정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었고,[22] 근친관계라고 하는 것도 모계는 제외한 채 부계 쪽만 따진다거나, 과학적 근거가 전무함에도 '동성동본끼리 결혼하면 유전적으로 기형아를 출산한다더라'는 병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돌던 시대였다.[23]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의 발표가 이 법의 폐지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단초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고 사회의 싸늘한 시선에 맞서야 했던 동성동본 커플들의 편에 서서 위로를 주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밝힌 바로는 동성(同姓)뿐 아니라 동성(同性)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비판의 의미로 담은 노래라고 밝힌바 있다.[24]

<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 활동으로 인해 넥스트는 사회비판적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껍질의 파괴'를 잇는 대곡 'THE WORLD WE MADE'는 새 멤버들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곡으로, 특히 잉베이 말름스틴을 연상시키는 김세황과 신해철의 속주 배틀이 인상적이다. 김세황은 레코딩 당시 너무 힘들어서 유약한 성격으로 감히 신해철한테 개기며(…) 이런 연주 한 번만 더 시키면 밴드를 탈퇴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코 꿰여서 같이 음악하잖아 아마 안 될거야 각 멤버의 살벌한 연주에,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굴 위한 진보인가"에서 보이듯 (내실은 고려하지 않고)눈에 보이는 발전에만 집착하는 당시 풍토에 던지는 독기어린 가사가 일품인 노래.


'마츠다 야스히로'라는 한 일본인 평론가가 심야 라디오에서 이 곡을 들은 후 '오오 넥스트 오오'를 외치며 일본의 'BURRN!'지에 투고한 리뷰가 있는데[25]원문 보기 , 하이텔 메틀동의 한 회원이 번역한 버전이 웹상에 떠돌아다니며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평론가는 <WORLD> 앨범을 '1995년도 최고의 앨범'이라고 평하며 넥스트를 '한국의 드림 시어터'로 비유하기도 했다. 단, 드림시어터적인 접근을 보여 준 트랙은 The World We Made 하나라고 생각한 듯. '이런 낚였다. 하지만 다른 것도 좋은데? 아시아에서 이 정도 레벨이 있었다니!'가 총평. 또 The World We Made의 기타 솔로를 잉베이 말름스틴에 비유하기도 했고. The Question의 경우는 데이빗 길모어에 비유하기도.

참고로 The World We Made에서 울리는 코러스 중 본인들이 레코딩하는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고 라디오에서 신해철 본인이 밝힌 적이 있다. 사실 여부는 불명. 히총통 귀신이라도 부른 건가

앞서 서술했듯, 작곡에 있어 신해철 외 멤버들의 비중이 커졌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김영석을 대표하는 수작이며, 후반부의 'Questions'는 김세황을 대표하는 곡. 도입부와 중간의 기타솔로는 꼭 들어보도록 하자. 신해철+김세황의 'MONEY'는 펑키하면서도 그루브한 감을 잘 살렸으며 특히 김영석의 베이스 주법이 인상적이다.
'나는 쓰레기야' 연작, 'HOPE', 'mama' 등도 필청 트랙.

그밖에도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OST에 수록되었던, 국악과 락의 크로스오버 'KOMERICAN BLUES'의 버전 업, 라이브에서 선보인 김세황의 'LOVE STORY' 등이 수록되었다.본격 재활용 앨범

3집에서 4집까지의 기간은 팀 사상 가장 많은 비정규 앨범이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3집 전국투어 콘서트 <THE WORLD TOUR> [26] 를 기반으로 한 라이브 앨범 <N.EX.T IS ALIVE>[27], 최초의 싱글[28]이자 오프라인 싱글 최다판매를 기록한 <HERE, I STAND FOR YOU>, 1~3집 수록곡뿐 아니라 반 헤일런, 게리 무어 등의 커버와 신곡 'R.U.READY?'가 실린 라이브 앨범 <THE FIRST FAN SERVICE -R.U.READY?>가 이 시기에 발매되었다.
'HERE, I STAND FOR YOU'는 특유의 비장하고 애절한 가사와 고음역대의 보컬 등으로 어떤 병에 걸린 중고딩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ARIRANG도 필청, 역대 어떤 아리랑 보다 시원하고 통쾌한 느낌이다.

또한 멤버들의 솔로활동도 두드러졌다.

신해철은 언제나 그랬듯 영화는 처참히 망하고 음악만 흥한영화 <정글 스토리>의 OST를 히트시켰고, MBC FM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초대시장 노릇을 하기도 했다. 넥스트 멤버들은 당시 화요일 고정 코너였던 '막가는 스페셜'에서 '방송사고당'이라는 애칭을 달고 출연했는데 김영석은 매주 고정이었고 김세황과 이수용은 격주 출연이었다.

김영석은 '이지훈'의 히트곡 '왜 하늘은'의 작곡가, 신인 밴드 '에메랄드 캐슬'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결론적으로는 두 작업 모두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새로운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세황과 이수용은 주로 다른 뮤지션의 앨범 및 콘서트의 세션으로 분주했다. 이중 김세황은 평소 본인이 존경해마지않던 희대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 내한공연시 무대에 올라 잼을 펼치기도 했다. 나중에는 스티브 바이의 기타를 만드는 회사에서 한국 대표로 기타를 선물받기도 했다.

여타 넥스트 앨범과 마찬가지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서 발매되었던 것은[29]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 같이 완성도 때문에 신중을 기한 것이 아니라 신해철과 김세황이 워로드라는 게임에 미쳐서 그랬던 것이라고(…). 이것이 매니저들에게 발각, 곧바로 게임디스크에 철퇴를 가하고 둘을 스튜디오에 감금시킴으로써 그 다음달에 앨범이 나올 수 있었다는 비화가 있다.

2010년 음악웹진 100비트에 의해 선정된 1990년대 100대 명반 중 52위에 랭크되었다.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세계의 문-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라이브'
  • '이소라의 프로포즈, Here I stand for you 라이브'

3.4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 및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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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와 정규 앨범을 겸한 넥스트 최초의 앨범. 멤버들의 사진을 커버에 실었던 것도 밴드 최초. 그리고 1990년대의 종언을 고한 최후의 앨범>

부클릿을 들여다보면 Crom이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신해철의 예명이니 혼동하지 말자. 영국 유학 당시 신해철의 작업 스타일(깐깐하고 독단적인 스타일)을 지켜본 영국의 엔지니어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당시 독일 이름과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는데 독일 이름은 히틀러, 영어 이름은 크롬웰이었다고(…). 올리버 크롬웰(독재자다)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방송등지에서 신해철의 유명세에 기대어 신해철과 N.EX.T 따위로 소개를 하자 "어디 그럼 Crom과 N.EX.T라고도 하나 보자?" 할 요량으로 이름 표기를 바꿔버렸다고 한다.

신해철은 N.EX.T 외에도 프로젝트 그룹인 노땐스[30], 비트겐슈타인, 모노크롬을 Crom이란 이름으로 결성한 적이 있다.

정규 4집인 동시에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사운드 트랙격인 앨범으로 당시 신해철이 작업을 수락한 결정적 이유가 주인공 성격 더러운 게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는데 그냥 하는 이야기일 확률이 높고, 사실 신해철이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기에 예전에 라디오 시청자가 만화가로 데뷔하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전폭적인 후원을 해 주겠다고 선언했을 정도. '자기에게 대우받고 싶으면 만화를 그려라' 따위의 얘기를 한 적도 있다.

앨범 작업과정에는 뒷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특히 제작비 관련 설왕설래가 많았다. 제작진으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았는데 그 금액이 워낙 일천했기에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고 모자라는 금액은 자기가 음반을 팔아서 충당하겠다는 마인드로 만들었다고 신해철 본인이 밝힌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정작 라젠카 제작진들은 꽤나 많은 돈을 넥스트에 지급했다는 썰도 있다. 어찌 됐든 넥스트 앨범 중 유일하게 억대의 제작비가 든 앨범인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넥스트의 이름을 달고 나왔던 앨범 중 신해철이 사운드적으로 완성을 이루었다고 직접 자랑질발언한 작품. 실제로 청취해보면 가장 근저에 발매된 6집보다도 시원하게 잘 빠진 사운드를 자랑한다. 6집 지못미 다만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은 애시당초 저비용의 홈레코딩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비교 불가.[31] 앨범의 방향은 '현실에 치중하는 락의 성격과 판타지적인 애니메이션의 성격의 중간을 잡으려 했다'고.

상당한 완성도의 앨범이지만 정작 애니메이션은 망했어요.[32]

영국 출신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의 관현악 작품집 'The Planets(행성)' 중 화성 파트인 동명의 곡을 으로 재해석한 연주곡 'Mars, The Bringer of War'를 필두로[33] 마지막을 장식하는 'The HERO'에 이르기까지 전곡에 스트링이 깔려 사운드가 한층 풍성해졌음을 알 수 있다.괜히 우주 롹 오페라가 아니다

영혼기병 라젠카의 오프닝으로 쓰인 <Lazenca, Save Us>와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베스트로 꼽힌다. 특히 전자는 도입부부터 남다른 포쓰를 내뿜는 필청트랙.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가 이곡에 꽂혔다는 썰이 있는데, 자세한 근거가 있다면 추가바람. 그리고 약 20년 뒤, 공중파 주말 메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배가 엄청난 가창력으로 소화하며 화제가 되었다. 후자는 유려한 현악의 선율과 멤버들의 연주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멋진 곡이다. 전자보다는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좋아 라디오에서는 주로 이 곡이 선곡되는 경우가 많았다.

<The POWER>의 경우 권력을 위해서라면 목적수단 안가리겠다 백성 니들은 굶주린 쥐떼보다 정원에 매인 개새끼가 되는게 더 낫다 같은 파격적인 가사와 단순하고 강렬한 기타리프가 인상적. 그리고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바로 이 사건의 시각자료를 사용해서 충격 두 배. 저 싹퉁머리 없는 가사의 주인공은 대갈장군이었단 말인가 싶어지는데,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이 곡을 테마로 쓰는 악역의 이름은 바로 '모노스타'(……)[34] 결국 노래 하나로 두명의 독재자를 까버리는 위엄을 선보인다.라이브에서는 엇비슷한 느낌의 <이중인격자>와 마찬가지로 애창하는 곡이다.

<먼훗날 언젠가>는 차분한 진행의 발라드로, 그동안 동고동락하던 팬들에게 애정을 표하는 듯한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The HERO>는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오덕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노래로,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는 전개가 일품. 숨겨진 수작이라면달랑 8트랙밖에 없는 앨범에 숨겨진 운운도 어색하지만 그리고 애초부터 다 수작 아닌가? 'A Poem of Stars/별의 시'. 곡 말미에 '불멸에 관하여'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라이브에서는 단 한 번도 시연된 적이 없고 현재 신해철의 목 상태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없을 듯 해서(…) 팬들에게는 말 그대로 꿈의 노래로 남아 있다.

1997년 12월 31일, 이 앨범만을 남긴 채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음악계를 뜨겁게 달군 거물, 넥스트는 해체를 선언한다. 당시 신해철은 "우리는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35], "빙하기의 공룡 신세로 음악적 지향이 같은 동료 밴드 하나 없이 내부적으로만 답을 구하려다 보니 깨질 수밖에 없었다."고 변을 전했다.[36][37]

한편 2008년, 신해철은 음악평론가 임진모와의 했던 인터뷰에서 당시 넥스트 해체의 배경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는데, 해체의 결정적 계기는 일본진출 제의 수용 여부 대한 멤버들간 의견차이였다고 밝혔다. 해당 인터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출처

왜 해산한 거죠? 세황씨가 너무 커서 그랬던 건가.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어요. 더 큰 건, 우리나라 시장이 너무 좁아서 질식할 것 같았어요. 아니 그래도 '남조선 일급 록 밴드'인데 일 년 중에서 공연이 300일이 잡히고 막 이래야할 거 아니에요. 공연이요, 2주일이면 전국투어가 끝나요. 나머지 11개월 반 동안 뭘 하라고. 넥스트가 텔레비전을 나가요 오락 프로를 나가요, 우리가 뭘 해요. 진짜 짜증나는 거야. 그래서 나이트에서 술 처먹고 졸라 시간 죽이고.

결정적으로 깨진 이유는, 그 당시에 넥스트한테 일본 진출 제의가 무지하게 들어 와서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었어요. 그 때 우리가 일본 < Burn > 같은 잡지에서 별들을 서양 밴드하고 대등하게 받고, 넥스트 앨범이 일본 오타쿠들 모이는 가게에서 가게 주인이 일본말로 프린트해놓은 설명서를 안에다 첨부해서 팔았어요. 그래서 당시에 일본에서 2, 3만장이 나갔어요. 그래서 요것들을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일본에서. 일본에서 요구한 건, 일본에 스테이해라. 1년에 한 번에 왔다갔다 하는 건 안 되니까, 한국 시장은 이미 잡혀있는 시장 아니냐. 일본에 와서 말뚝 박아라. 그 때 제일 날 자극한 얘기가, 전국투어가 1년 내로 종료가 안 되는 나라라는 거예요. 현 단위까지 다 돌아서.

근데 멤버들이 싫다는 거지. 개인적인 이유로. 그래서 그 당시 선택은 멤버들 반을 교체해서 넥스트를 새로 짤 것이냐, 넥스트를 허공에 띄워 버리고 멤버들을 명예롭게 은퇴를 시켜줄 것이냐. 팀워크도 최악이었고. 그런데 셋이서 팀 만들대? 그 중에 두 명은 아직도 나랑 밴드를 하고. 나머지 한 명하고도 인간적으로 친하게는 지내지만, 내가 지금도 뭐라고 하는데, “니들하고 졸라 싸워서 팀을 아작냈는데, 같이 팀을 하고 앉았고...”


이후 2014년의 인터뷰에서도 이에 대해서 얘기한 바 있다.출처

결국 넥스트는 해체를 하게 돼요.

"라인업 안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해외 진출의 기회가 있었는데 멤버들이 거부한거죠. 라인업을 전원 교체하느냐, 밴드 이름 자체를 없애느냐의 기로에 있었는데, 멤버들에게 예우를 해주고 싶어서 밴드를 없애기로 결정했어요. 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죠. 회사에서는 '솔로 앨범 몇 장만 발표하면 집도 사고 편하게 살수 있는데 왜 유학을 가냐'고 한소리했고요."

해체 이후, 신해철을 제외한 나머지 세션 멤버들은 그룹 패닉 출신으로 랩에 일가견이 있던 김진표와 함께 노바소닉이란 그룹을 결성하여 2000년대 초중반까지 활동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그 이전인 1996년에 은퇴를 선언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기에 새로운 밀레니엄까지 3년여의 시간을 앞두고, 1990년대 음악사를 장식한 두 거물의 디스코그래피가 생각보다 일찍 종결되었다.

그리고 시벌 망했어 망했다고 엉엉

3.5 재결성 및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 개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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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의 통산 5번째 앨범이자 자칭 '본격꽃미남메탈밴드'로의 변신을 선언한 앨범. 2000년대 초반 신해철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에서 "넥스트 재결성함. 5집도 낼거임 ㅋㅋ"이라는 충격적인 발언 후 적절한 발매연기를 거쳐(…) 출시되었다.

기존의 사색적인 스타일과 웅장한 스케일을 버리고 직설적인 스타일로 바꾸면서 팬들에게 충공깽과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디스코그라피 상으로는 메탈리카'St. Anger'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앨범이다. 비록 밴드민주주의 실현은 이 앨범을 끝으로 포기하고 원상복귀하기는 했지만, 신해철의 록 음악다운 직설 추구는 이후 6집 666앨범으로까지 이어져 '라이브처럼 한번에 연주하고 녹음하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게 된다.[38]

멤버는 신해철(보컬), 데빈 리(기타), 쌩(원상욱)(베이스), 쭈니(이용준)(드럼), 김동혁(키보드). 넥스트가 해체한 지도 7년이 다 된 시점에 신해철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물갈이되었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큰 혼란이 있었다. 4집까지의 넥스트를 지지하는 구 팬들과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처음으로 마왕 신해철과 데빈, 쌩 등의 멤버들을 접한 신 팬들간의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단적인 예로, 신설된 팬카페에서는 "이건 내가 알던 넥스트가 아니잖아 이자식들아"라며 난입하던 옛 팬들을 싸그리 배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같은 밴드를 두고 아예 팬덤 자체가 갈려버렸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당시 팬덤 사이의 갈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은 신해철이 직접하기도 했던 "당신들이 알던 넥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발언이다.

음악 외적인 면을 보면 역대 멤버구성 중 가장 어리고, 잘 생긴 라인업을 자랑했으며 전술했듯이 예전 팬들을 위협할만한 팬덤이 새로 탄생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떨어지거나 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신해철의 이전 프로젝트인 '비트겐슈타인'에서부터 합류한 데빈은 신해철이 그의 공연을 보고 뻑가서 영입했을 정도의 재능이었고 쭈니 역시 인디씬에서 한가닥 하는 닥터코어 911 출신의 드러머였다. 이 멤버로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 리로드' OST[39] 작업을 끝마치고 5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들의 정규앨범으로는 최초로 더블CD로 발매되었다. 1번 CD는 The book of war, 2번은 The diary of a soldier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스래쉬 메탈, 프로그레시브 메탈 등 기존에 선보였던 장르 뿐 아니라 'Anarky in the Net' 같은 인더스트리얼, 'Generation Crash'의 뉴메탈 등 새로운 문법을 받아들여 그 해 이미 작아질대로 작아진국내 락 음반시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3CD 발매 예정이었던 앨범이 2CD로 줄면서 많은 곡이 잘려나갔고, 그 탓에 앨범의 완성도가 아무래도 떨어진다는 것이 비평가들과 팬들의 평. 여기에 신해철의 바뀐 창법, 비트겐슈타인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 등등의 요소로 인해 예전 팬들 일부가 등을 돌리게 된다.

대표곡으로는 '아! 개한민국', 'Dear America', 'Growing Up', '사탄의 신부' 등이 있다.

메시지 면에서는 기존의 에둘러, 은유적으로, 현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판하던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꽤 직설적으로 사회의 쪼인트를 까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령 '존나게', '뒤질 때까지'('아!개한민국')나 '쓰레기 포르노', '씨발양년놈들'('Dear America') 같은 거친 표현들이 화제가 되었다.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 같은 곡의 가사는 비트겐슈타인 때의 장난기 넘치고 가벼운 분위기를 띄기도. 이러한 요소도 예전의 골수팬들로부터 '왠지 어색해' '내가 알던 넥스트가 아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신해철 역시 은유법에 질려서 직접 까는 걸로 가봤는데 역시 은유가 낫더라 싶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한 인터뷰에서는 본인은 싸이의 직설적인 방식보다 MC스나이퍼의 우회적인 방식을 좋아하나 래퍼의 표현에 대해 존중하는 입장으로 그대로 수록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의 신해철의 보컬은 가는 목소리로 날카롭게 내지르던 스타일이었는데, 이 앨범에서는 묵직하고 중후한 톤으로 스타일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서는 팬들의 평가가 상반되는 편이었지만 본인은 만족하여 이후에도 이러한 스타일을 유지하게 된다. 창법의 변화에 대해서는 신해철 본인이 라디오방송 '고스트스테이션'에서 크리드(Creed)의 프론트맨 스콧 스탭의 보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40]

기타 또한 현란하고 유려한 솔로가 강점이었던 김세황에서 선 굵고 파워풀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데빈으로 넘어가면서 전체적인 성향이 변화했다. 정규앨범을 낼 때마다 그 멤버들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었던 1번 트랙 '현세지옥'을 들으면 이전과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살벌한 타이틀과는 다르게 의외로 첫 선공개 싱글은 캐찌질한 유년기와 첫사랑을 회상하는 모던락 넘버 'Growing Up'. 저예산으로 만든 티가 팍팍 나는 괴악한 품질에 멤버들의 발연기가 더해져 오그라든다. 남정네 다섯 명이 구질구질한 표정으로 뜬금없이 폭포수 옆을 걸어가는 신까지... 아무튼 제정신으로 만든 물건은 아니다. 가끔 우울한 날에 보고 비웃자.

화제가 되었던 곡은 정수라의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을 꼬아 만든 '아! 개한민국'. 메이저 신에서 제대로 된 헤비메탈을 듣기 어려웠던 음악계에 주는 묵직한 충격이었다고 할까. 가사는 교육, 정치, 사회 전반을 다 까는데 지역차별을 언급하며 '전라도'를 가사에 집어넣은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효순·미선 양 추모 촛불시위에 이어 이라크전 파병 문제로 반미감정이 고조된 사회분위기를 반영, 본격 미국 까는 넘버 'Dear America'는 아랍풍의 기타리프와 다양한 락 보컬/래퍼들의 피처링이 이채로웠다. 크래쉬안흥찬, 피아요한, 김진표, 싸이, MC 스나이퍼의 목소리를 이 한 곡에서 들을 수 있다. 하필 노래가 5박이라 래퍼들이 라임 짜는데 개고생(…)했음을 능히 짐작 가능하다만 다행히도 랩 부분은 4박으로 나온다. 즉 래퍼들이 개고생할 일은 없었다(…). 참고로 이 곡은 넥스트의 작업물 중 유일하게 음원이 무료제공되기도 했다. '예수 일병 구하기'는 본격 개신교 까는 곡. 사실 첫번째 CD인 'The book of war'만 놓고 보면 상당히 일관된 컨셉트 앨범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첫 번째 CD와 달리 두 번째 CD인 'The Diary of Soldier'는 주제의 일관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첫 번째 CD에 비해 훨씬 가벼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곡 과정에서 일관된 주제성이 떨어지는 곡들만 모은 것 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CD 수록곡들이 방송 불가 등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보험용이라는 성격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The book of war'의 대다수 수록록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데 비해 'The Diary of Soldier'는 이 칼날을 피해갔다. 앨범 타이틀로 보면 '아! 개한민국'이 타이틀곡이 되어야 하나 실제로는 두 번째 CD의 'Growing Up'이 타이틀 곡이 된 것도 이런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CD를 무슨 건전가요마냥 첫 번째 CD의 부록으로 볼 수도 없는데, 주제의식이나 주제의 일관성은 약해졌어도 각각의 곡은 충분히 넥스트다운 면모를 보인다.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가사가 인상적인 타이틀 곡 'Growing Up'은 넥스트 앨범에 한 곡씩은 들어가는 자기회상적인 내용이며, 에픽 뮤직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사탄의 신부'[41], 빠르고 신나는 리듬과 신랄한 주제가 조합된 'Laura', 현실 탈출을 꿈꾸는 '남태평양' 등 실험 요소를 도입하면서도 과거 넥스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곡이 충분하다. 문제는 앨범 전체로 따졌을 때는 너무 실험 정신이 강하고 과거에 비해 크게 이질적이며 너무 직설적이라는 것.

앞서 언급한 길티기어 샤프 리로드 OST에서 몇몇 곡들을 가져와 가사를 붙이고 연주를 덧입혀서 수록했다. '감염', 'Dear America', 'Laura' 등. 'Laura'는 1980년대 메탈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곡으로, 8비트의 단순하고 신나는 리듬이 특징. 하지만 정작 노래의 주인공 '로라'는 어린 매춘부를 뜻하고 가사 역시 씁쓸한 내용이다.

5집에 이어 6집 활동 계획도 의욕적으로 발표함에 따라 팬들은 이 멤버로 6집까지 가나 하고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넥스트 5기의 젊은 멤버들은 데빈 리를 제외하고 전부 탈퇴했다. 신해철은 인터넷을 통해 5.5집 <ReGame?> 믹싱 완료를 발표하면서 멤버들의 탈퇴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매번 멤버가 교체될 때마다 욕은 자기가 다 얻어먹기에 익숙한 일이긴 하지만 이번은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탈퇴한 멤버들 중 쌩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닥터코어 911에 합류해서 활동하였고, 데빈은 넥스트 탈퇴 훗날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에서 신대철 역을 맡기도 했다. 쌩은 원상욱이라는 본명으로 솔로 싱글을 낸 후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배우 박건형과 밴드 MAKE를 결성하기도.

넥스트 5기(5집) 시절 당시, 팬들이 제기한 넥스트 답지 않은 5집이라는 팬들의 평에 대해, 신해철은 본인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42]에서 팬들의 비평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당신들이 말하는 가장 넥스트답다고 말하는 2집이나 3집의 음악은 사실상 밴드 멤버가 와해된 상태에서 작곡되고 다른 이에 의해 연주된, 자신 외의 다른 멤버의 영향력이 배제된 곡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그런 곡들이 정말 넥스트다운 곡이라고? 그 시절 음악에 비하면 사실상 이번 5집이야말로 가장 넥스트 다운 곡이 아닌가?"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넥스트 5기 시절은 신해철 스스로가 꿈으로 그리던 '제2의 가족'으로서 완전한 밴드 형태가 실현됐던 시기였기 때문에, 신해철로서는 저런 자신만만한 반론을 제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분명 넥스트와 신해철이 동의어는 아니고, 밴드 음악은 궁극적으로 밴드 멤버에서 나온다는 신해철의 사고방식에 따른 반론으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기는 하다. 하지만 N.EX.T라는 밴드에 대해 신해철이 가지는 영향력, 그리고 대중이나 팬들이 그 둘을 연관짓는 방식들을 생각해보면 무엇이 정답인가에 대해서 답하기 어려운 문제기는 하다.

실제로 5기 멤버가 와해된 후 일정 기간이 흐른 후 신해철 스스로도 1990년대의 넥스트 시절과 달리 "최대한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독재'도 최대한 자제했던"[43] 5집이 결과적으로 음악적으로나 밴드적으로나 실험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한다. 결국 5기 시절 이후 5.5집을 거치며 재구성된 넥스트에서는, 다시 예전처럼 독재하는 리더 신해철의 지위[44]를 다시 세우기로 마음 먹은 것으로 보인다.[45]

'넥스트=신해철의 독재[46]'라는 특징이 형성된 과정은, 앨범 전체를 견고한 하나의 작품-컨셉앨범으로 꾸미려는 신해철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보통의 밴드들처럼 1집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밴드 멤버들 사이라 하더라도 앨범의 컨셉을 잡는 와중에는 이런저런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1집에서는 반쪽짜리 밴드로 시작했고 2집 이후부터는 밴드라는 구성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들었던 상황에서 '컨셉앨범'이라는 장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구심점은 신해철의 '독재' 외에는 답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신해철과 기싸움이 가능한 라인업이 구성된 4기 황금기 시절에도, 전체적인 틀은 신해철이 짜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런 넥스트에 신해철과 '까마득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는 후배 뮤지션들이 들어온 것이 5기 라인업. 그런 상황에서 신해철은 독재와 공존의 밸런스를 조절할 수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컨셉이 있다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들쑥날쑥한 앨범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5기가 구성되기 이전, 임형빈과 데빈 리로 구성된 비트겐슈타인으로 활동하면서 젊은 멤버와의 민주주의 방식에 대한 적응기간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part1'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던 비트겐슈타인 1집이 당 밴드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돼버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수평적인 관계가 유지되기 힘든 관계로 꾸려진 라인업으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앨범 컨셉이나 밴드 컨셉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노댄스를 함께한 윤상신해철과 싸움이 가능한 동등한 관계였고, 모노크롬을 함께했던 크리스 상그리디의 경우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멤버이기 이전에 신해철의 멘토 중 한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 신해철이 '독재'를 포기한 상황에서 '그와 싸움이 아예 불가능한 멤버'로만 밴드 라인업이 꾸려질 경우, 밸런스 붕괴로 밴드 정체성이 흐려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넥스트 5집과 비트겐슈타인 part.1앨범이 주는 교훈이었다.

3.5.1 싸이 반미주의자 해프닝과 음원서비스 중단

2012년 연말.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고공행진을 달리던 싸이가 반미주의자로 몰리는 해프닝이 일어난다. 이 앨범에 실린 'Dear America'에서 싸이가 한 랩파트의 가사[47]가 문제된 것. 엄청나게 과격한 가사 내용과 함께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했던 모형장갑차 부수기 퍼포먼스까지 거론되면서, 싸이는 반미주의자로 몰리게 된다.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전세계적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얻게된 싸이의 고공행진국위선양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급기야 팬들은 신해철에게 이 모든 원인을 돌리며 "신해철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실드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싸이 본인이 나서서 직접적으로 "과격한 단어"의 사용이 잘못됐던 것이라고 정확히 짚어 사과문을 발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은 사그라들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에는 '신해철 배후설'이 떠도는 상황. 자세한 상황은 싸이 항목의 '반미주의자 해프닝' 참조.

이 일의 영향으로 2015년 2월 현재까지 Mnet과 네이버뮤직에서는 넥스트의 '개한민국' 앨범에서 'Dear America'만 서비스되고 있지 않다. 멜론의 경우는 해당앨범 전체를 통째로 막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Dear America'는 애초에 들을 수 없던 음원. 여담으로 네이버뮤직과 Mnet에서는 이 앨범 제목을 '대한민국'이라고 고쳐서 게시하고 있다. 멜론은 음원은 앨범 통째로 막아놓았으나 앨범명은 '개한민국' 그대로.

3.6 5.5집 <ReGame?>

<3집 멤버들이 모두 복귀하며 잠시 6인체제가 된 넥스트. 앨범커버는 당연히 앨범 'Queen II'에 대한 오마쥬.>

5집 멤버의 공석(데빈 제외)에 3집 황금기 멤버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나오게 된 셀프 리메이크 앨범. 키보디스트 자리는 오디션을 거쳤는데, 배우 지현우(본명 주형태)(더 넛츠)의 친형 지현수(본명 주윤채)[48]가 선발되어 평균신장을 올리는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신해철(보컬), 김세황(기타), 데빈 리(기타), 김영석(베이스), 이수용(드럼), 지현수(키보드)라는 역대 넥스트의 최다 멤버이자 최고 멤버 구성으로 이루어진 앨범.

과거 무한궤도 시절에 나온 '그대에게'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신해철의 비트겐슈타인 앨범 수록곡 'Friends', 그리고 N.EX.T 1집과 2집의 몇몇 곡들을 리메이크했다. 더불어 신곡 'The Last Love Song'도 수록. 선곡기준에 대해서는 앨범 작업시 '원한'이 남은 곡들을 주로 집어넣었다고 신해철이 밝힌 바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신해철의 철학은 자기가 가늠하기로 완성도가 90 정도이고 나머지 10이 부족하더라도 그냥 레코딩을 저질러버리는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녹음 당시 기술의 한계와 좋지 않은 환경 등으로 아쉬움이 배인 곡들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원한'이 쌓인다는 것. 자신의 작업방식을 윤상과 비교하기도 했는데, 윤상은 그와는 정반대로 90이 완성되도 10이 부족하면 절대 발표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그대에게'나 '영원히', 'The Dreamer' 등은 리메이크한 보람이 있을 정도로 좋다. 하지만 '불멸에 관하여'나 '도시인' 등이 수록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 도시인의 경우에는 데프콘과 싸이가 리메이크한 버전이 있지만 라이브에서 느낄 수 있는 락적인 느낌의 리메이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기 그지없다.

특이한 것은 엄정화의 가수 데뷔곡인 눈동자(작사/작곡이 신해철이다)가 이 앨범에 리메이크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채연이 불렀다. 피처링 가수 명단을 보고 '풋, 채 채연?'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을 한방 먹였을 정도로 의외로 싱크로율이 괜찮다. 특히 원곡에서는 노래의 갈피를 못 잡던 엄정화를 생각하면 초월 리메이크.

그리고 먼데이키즈소몰이창법으로 부른 버전의 '인형의 기사 Part II'가 다소 미묘한 평을 받는다. 온라인에서는 신해철이 혼자 부른 Crom Ver.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곡이 5.5집의 타이틀곡이기도 한데... 앨범의 완성도에만 신경을 써서 그런지 뮤직비디오는 전작의 'Growing Up'을 잇는 저예산 쌈마이(…) 영상물이다. 신해철의 말에 따르자면,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타이즈 스타일의 뮤직비디오에 너무 지친 나머지 '뮤지션의 연주' 위주의 연출을 뮤직비디오 감독에게 요구했었고 '드라마' 부분은 간략하게 신해철 본인이 직접 찍어서 살짝살짝 보여주기로 기획했다고 한다. 즉 초기 기획만으로 보면 뮤비의 주인공은 노래를 부른 먼데이키즈 였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하던 도중 어른의 사정으로 기획자체가 뒤집어지면서 이에 모 케이블방송에서 공개되었듯 신해철 뮤직비디오 감독 데뷔라는 타이틀로 그 발로 찍은 영상물이 주인공이 되는, 우리가 잘 아는 뮤직비디오가 탄생되었다. 그로잉 업 뮤비 보고도 비웃을 거리가 모자라면 보고 마저 비웃자.

'날아라 병아리'에 윤도현이 피처링했다고 해서 신해철과 윤도현의 화음을 기대했…지만 정작 윤도현이 참여한 것은 보컬 파트가 아니라 전주 부분의 하모니카 연주(…). 다 합쳐도 30초가 되지 않는다(…).

그 외에 무한궤도 및 N.EX.T의 이전 곡들도 현재의 나이든 신해철이 불러서 원곡과는 느낌이 제법 달라졌다. 다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경우 전반부에는 솔로시절의 애띤 목소리에서 곡이 전개됨에 따라 현재의 굵은 톤으로 부른다는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

많은 이들이 이제는 아버지가 된 신해철의 시점에서 나올 것이라 알려진 아버지와 나의 Part.3을 기다렸지만 미수록. 그 대신 신곡으로 'The Last Love Song'이 수록되었다. 신해철 사상 최초의 픽션 러브송이라고(…). 아내랑 헤어지면 어떤 심경일지를 생각해서 노래에 담았다고 한다.

N.EX.T 1집 곡인 '영원히'는 여기에 리메이크 버전이 실린 뒤에야 태진노래방에 실리게 되었다(…).[49]

3.7 6집 <666 Trilogy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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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멤버가 또! 바뀌어(…) 데빈 리, 김영석, 이수용이 탈퇴하고 제이드, 김단을 영입, 결국 현재의 5인 체제가 되었다. 이수용의 빈자리는 윤테라가 맡았으나 군입대로 앨범 한장 내보지 못한 채 떠나갔다. 안습.

과연 N.EX.T답게 무수한 발매연기를 거쳐 사람들의 기억이 흐릿할 때 즈음 출시되었으며, 그나마 나온 결과물도 '<666> 트릴로지' 중 1편에 해당, 즉 6집 정규앨범의 1/3에 불과하다는 소리. 금방 발표할 것처럼 구라를 깠던 언플을 했던 2부작은 2013년이 끝날 때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데 2014년에 놀랍게도 원년 멤버 정기송과 함께 2014년 내로 새 앨범을 발매한다고 발표했다.[50] 이를 알리는 기사의 댓글창엔 당연히 팬들의 축하 댓글이 쏟아졌다. 그러나 2014년 6월 20일에 있었던 신해철 6집 싱글 발매기념 쇼케이스에서 666 Part II는 전곡이 완성되었으나 발매가 되지 않은 비운의 앨범이라 밝히며 발매하지 않는 사유는 '왠지 내기가 싫더라고'라고 하였다고 한다.

발매 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 프로그레시브 메탈+인더스트리얼을 적절히 믹스한 '증오의 제국(The Empire of Hatred)'를 연주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근데 댓글 중 30% 정도는 "우와, 넥스트 해체한 거 아니었어요? 이제 재결성한 거임?"

후속작들을 염두에 두고 출시된 '1/3' 미니앨범이라 상세한 평가는 힘들겠으나, 이전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컨셉트 앨범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계관. 1집부터 5집까지의 세계가 과거 내지는 현재였다면, 6집에서는 인트로인 'Eternal winter suite : partⅠ The last knights'에서부터 사이버펑크풍의 세계관을 감지할 수 있다.감지하긴 뭘 감지해 그냥 불법다운로드 받는 인간들 까는거지 이어지는 '증오의 제국'에서는 넥스트 앨범의 2번 트랙이 항상 그랬듯 전반적인 세계관을 그리고, '개판 5분전 만취 공중해적단'에선 넥스트 본인들을 근미래 세계의 양아치공중해적단으로 치환시키고 있다. 마지막 트랙인 'Cyber Budha Company Ltd.'에서는 가상세계의 고객맞춤형 이 주제.

발매 후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서 후속작들의 이름은 각각 part.Ⅱ 쥐들의 왕국[51], part.Ⅲ 파멸의 발라드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으며, 부클릿 디자인이 허접하기 짝이 없는 것에 대해 '핫트랙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후속작으로 갈수록 스케치 수준의 디자인들이 정교해지고, 앨범스토리도 짜맞춰져 퍼즐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케이스도 3장을 나란히 했을때 하나의 글자가 완성되는 퍼즐로 돼 있다.'고 발언.하지만 이 인터뷰한 연도는 2009년. 몇 년째 잠수타는거냐 에헤라

부클릿은 신해철이 의도한 앨범 디자인에 대해 휘갈긴 메모가 담겨 있다. 아니, 이게 다다(…) 그리고 케이스에서 CD를 들어내면 공개수배 전단 양식으로 만든 멤버 소개가 들어있는데, 장난스럽게 적은 범죄 약력들이 꽤 재미있다.

타이틀은 알게 모르게 '개판 5분전 만취 공중해적단'으로 정해졌다. 공중해적단의 비행감(비공정?)을 상당히 몰입감 있고 씐나게 표현한 넘버이며, 김단의 미칠듯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처음과 끝의 '색연필이 필요해…'는 김단의 목소리.

2014년, 진중권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666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본인의 말로는 다 완성된 상태인데, 이 세상에선 출시될 일이 없을거라며 본격 흑역사 인증.(!!) 하지만 어느 평행세계에서는 나머지 두 앨범이 나온 세상이 있을거라며, 그 세계에서는 대한민국의 행정부의 최고수반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인 세계라고.(…) 아마도 개한민국에 버금가는 곡들이 들어있지 않을까하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3.8 7집 <제목 미정: N.EX.T UNITED>

2014년 9월 18일 넥스트의 신곡이 공개되었다. 9월 20일에 있을 <Reboot Yourself> 콘서트에서 관객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위해서 데모버전을 공개한 것. 새로 공개된 "I Want It All(Demo 0.7)'은 심포닉록 장르로 새롭게 보컬로 영입된 이현섭과 신해철의 보컬이 눈에 띄었다.

이 트랙을 동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넥스트 7기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보컬 - 신해철, 이현섭[52]
기타 - 타미김, 정기송[53], 노종헌 [54]
베이스 - 제이드[55]
키보드 - 김구호, 장기순[56]
드럼 - 이수용, Shinji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이후 행보가 불투명해졌다가 신해철이 작업했던 곡들을 발표하는 것까지는 활동할 예정이다.

12월 21일에 SBS 가요대제전을 통해 신곡 <Real World>가 일부 공개되었는데, 곡의 후반부 오케스트라 작업을 보충해 2015년 초 넥스트 신보에 수록될 예정이었다. # 신보에는 <I'm So Slow>, <Real World>, 세 곡 등이 실릴 예정이었다. 이 중 두 곡은 발매되었다.

12월 24일에 베스트 앨범 <Reboot Yourself>를 발매했다. 베스트앨범에는 <I Want It All>과 <Pink Monster>가 수록되었다.#

신해철의 1주기인 2015년 10월 27일을 맞춰 3,000장 한정으로 유작 네곡을 담은 LP <Real World>가 발매되었다. 음원으로는 2015년 10월 24일 불후의 명곡과 히든싱어가 방송된 이후 선공개되었다. 베스트 앨범 형식을 띠고 있는데 유작곡으로는 재녹음을 통해 새롭게 완성된 <I Want It All>과 <Welcome To The Real World>, 작년 베스트앨범에도 수록되었던 <Pink Monster>, 솔로 6집에서 공개되었던 <단 하나의 약속>의 데모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해 11월 11일, LP를 사지 못한 팬들을 위해 CD판으로도 재발매됐는데, 6,500장 한정판매됐다. 해당 CD에는 신해철이 홀로그램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 DVD도 삽입되어 있다.

4 이야깃거리

  • N.EX.T로 활동하면서 많은 영화/만화/게임의 OST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2007년에 바뀌어 현재도 사용 중인 KBS 스포츠 오프닝 시그널을 제작하였다. #
  • 2014년 9월 18일 7집에 수록될 I want it all의 데모 버전을 선공개하였으며 9월 20일에 있을 Reboot Yourself 공연에서 관객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후렴 부분에 삽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론 12월 27일 민물장어의 꿈 공연에서 관객들의 목소리를 녹음했다.인줄 알았지? 결국 2015년 5월 2일, 신해철 팬클럽인 '철기군'의 일부 회원들이 녹음실에 모여 평소 신해철과 절친했던 성지훈 엔지니어와 함께 후렴에 들어갈 부분을 녹음했다. 현재 발매된 I want it all 음원에 들어간 목소리는 이때 녹음된 것들이다.
  • 솔로 6집 발매 기자회견에서 넥스트의 향후 멤버는 20명 정도의 오케스트라식 구성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활동시에는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멤버들을 뽑아 팀을 만들어 이룰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시나위 리더 신대철이 시나위 멤버는 앞으로 앨범마다 프로젝트식으로 자유롭게 객원들을 받아들일 것이라 언급한 것과 유사한 느낌이다.
  • 6년만에 컴백했다. 2014년 6월 20일 있었던 신해철 솔로 6집 Part I 쇼케이스 자리에서 새로운 넥스트 멤버를 공개하였다.[57] 또한 2014년 가을에 N.EX.T의 이름으로 신보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 2014년 6월 20일에 있었던 솔로 6집 쇼케이스에서 666 Part II는 완성은 되었으나 세상의 빛을 보지못한 비운의 앨범이라 언급하며 발매를 하지 않은 이유는 '왠지 내기가 싫더라고'라고 밝혔다. 모종의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기가 힘들다.
  • 이러나 저러나 신해철의 존재감이 가장 큰 밴드이다. 그러나 독재자 신해철의 밴드란 이미지는 어폐가 있다.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를 기점으로 김세황과 김영석의 곡을 배치하기 시작해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 개한민국>에서는 작사/작곡/편곡을 공동작업했고, 6집 <666 Trilogy part 1> 역시 전곡이 신해철/김세황/지현수 공동작곡이다. 신해철의 미디어 노출빈도가 워낙에 높기도 하거니와 보컬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국내 풍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 김세황은 사근사근하고 상냥한 태도로 '미스김'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다른 멤버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중인격에, 성격도 꽤 있는 편인 듯. 김영석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 팀에 들어갔을 때 '신해철이 제일 힘들겠거니'했는데, 의외로 김세황 고집이 셌다"고. 김세황은 이른바 '귀국자녀'이기도 한데, 중학생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학와서 폭력사태로 두 번 퇴학조치당했다는 이야기를 모 케이블 방송에서 신해철이 까발렸다. 그는 "나 죽기 전에 이 얘기 꼭 하고 싶었다."고 뒷담화의 변을 밝혔다(…). 참고로 노바소닉 활동 시절 김진표의 말에 따르면 스타크래프트 준 프로급이라는 듯.
  • 위 둘을 빼면 여성팬들 사이에서는 지현수의 인기가 상당히 높은 듯했다. 녹색 창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배우겸 가수 지현우의 형이다. 나름대로 비슷하게 생긴듯. 가장 장신(187cm)인데다 외모, 매너와 애교있는 똘끼(…) 등으로 많이 회자되는 듯. 2010년에는 추석특집 드라마에도 캐스팅되어 얼굴을 알렸다. 지현수의 영입에 관한 에피소드로, 신해철이 새로 키보디스트를 영입하려 할 때 업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지현수를 추천했다고. 거의 모든 장르의 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지현수는 애초에 넥스트 건반연주자의 오디션에서 한번 낙방한 적이 있다. 이유는 너무 잘생겨서. 황당한 말처럼 들리지만, 넥스트 4집 활동 당시 멤버 개인 팬들간의 분열이 심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 꼴을 본 신해철의 당시 분노를 안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이긴 하다. 어찌되었든 지현수는 재수끝에 넥스트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 몰래카메라 신해철 편에서 기획사 옮기겠다(고 거짓)말하는 지현수의 대사는 형 제가 10년 전부터 넥스트 하고 싶어한 것 형도 아시잖아요.
  • 제이드의 본명은 박종대이다.
  • 정규앨범은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를 빼면 모두가 컨셉트 앨범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첫트랙은 장엄하거나 서정적인 연주곡으로 채워 앨범의 인트로를 담당하게 하고, 이어지는 두번째 트랙에는 스케일이 크고 파워풀한 음악을 배치하는 것이 넥스트 앨범의 오랜 전통.
  • 이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얘기지만 지방 공연 때의 일이라 당시 공연장의 당사자들 말고는 아는 사람도 많이 없다. 2008년도 대구광역시 YU록 페스티벌(영남대학교 주최)에서 공연 스케줄과 다르게 고집피워 오르다가 욕먹은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이 욕먹은 계기가 참 웃긴게 본래 당시 YU록 페스티벌 사상 유례없이 2시간이나 시간이 늦춰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스케줄이 있던 닥터코어 911이 타임 테이블을 바꿔 공연한 것.
이에 신해철이 "본래 우리 차례인데, 우리라고 한가한 줄 아냐"라며 고집을 피워 닥터코어 911 공연 직후 무대에 올랐고, 본래 그 뒤에 무대에 서기로 했던 Oathean의 멤버들은 그대로 열받아(…) 집에 가버린 사건이다. 그 뒤에 무대에 올랐던 훌리건이 주최측 대신 사과하며(…) 신해철을 욕했다. 이뭐병
그 후 주최측에선 넥스트와 함께 일체의 리허설없이 마지막 무대에 올랐던 크라잉 넛을 서로 비교하기 시작했고 크라잉 넛은 리허설도 없이 무조건 오케이라고 바로 무대위에 올르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에 반해 타임테이블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한 신해철과 오딘을 은근히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 날 넥스트는 엄청난 욕을 먹었다.
물론 나중에 진상이 밝혀진 후로는 이뭐병의 태도를 보였던 공연 주최측이 욕을 먹었지만. 이 사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물론 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공연이 딜레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공연 자체가 딜레이 된 것도 몇몇 밴드가 리허설이 늦어져서인데, 그 밴드도 책임은 있었고… 물론 그것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했던 주최측의 탓도 크긴 컸다. 결국 이래저래 말 많았던 공연이 된 셈.
이는 2011년 10월 넥스트 해체및 싸이렌 음악원 폐쇄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느낀 김단의 우발적 행동으로 보여지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 2013년 8월 29일 전 멤버 김단이 자살 소동을 벌였으나 넥스트와는 무관한 듯하다.#
  • 2013년 10월 신해철의 트위터에 넥스트 7기 새 라인업에 대한 언급이 떴다. 사라진 대학가요제를 위한 역대출연진과의 콘서트에서 첫 선을 보인다는 듯했다. 콘서트 날짜는 10월 말로 계획되었다.
  •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였던 오승환과 2014년에 삼성으로 돌아오자마자 마무리를 맡은 임창용의 등장 음악이 모두 넥스트의 곡이다. 오승환은 'Lazenca Save Us'를 사용했으며 임창용은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를 등장 음악으로 사용했다. 오승환에게는 특유의 포스에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았다.
  • 2014년 12월 21일 SBS 가요대전에서 넥스트 7집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신곡 Real World의 일부를 라이브 무대로 공개하였다. 해당 무대에서의 멤버는 보컬 신해철, 이현섭, 기타 정기송, 베이스 노종헌, 키보드 김구호, 드럼 신지.
  • 2016년 7월 22일 출시된 게임 '크라이 - 검게 물든 영혼'의 메인 테마곡 작곡을 넥스트가 맡았다. 본래 개발 초기 때부터 메인 테마곡을 맡았었고 신해철 사후 넥스트 멤버들이 곡을 마저 완성했다고 한다.
  1. 신해철의 언급에 따른 것. 자세한 것은 역대멤버 항목을 참조할 것. 아마도 666 Part II 완성이 끝난 상태에서 발매될 앨범의 사진을 찍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이후 666 Part II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2. 신해철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7기’라고 언급했다.
  3. 넥스트Utd 체제로 바뀌어서 기수가 무의미할듯…
  4. 신해철은 이미 사망한 직후이다.
  5. 'Requiem for The Embryo', 'Life manufacturing' 등.
  6. '코메리칸 블루스', '아리랑', 'The Age of No God' 등.
  7. 사실 이건 보컬이 유명한 밴드의 경우 공통된 사항이기도 하다. 윤도현이 보컬로 있는 YB가 그렇고, 부활 역시 초기엔 이승철 백밴드 취급당했다.
  8. 다만, 2015년 10월 27일 현재까지는 김세황을 주축으로 넥스트가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고, 신해철로 부터 음악 자체를 많이 배우거나 스타일을 흡수한 멤버들이 (대표적으로 지현수와 데빈 리) 신해철이 남겼던 유작이나 미완성작들을 어느정도 완성하는데 성공했으며, 보컬도 이현섭이 아예 넥스트에 남은 상황이며, 행여 이현섭이 빠지더라도, 신해철의 직계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수은가은 등이 객원으로라도 채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넥스트에게 남은 난제는 신해철이 없는 상태에서 신해철의 유산과 스타일을 남기면서 성공적으로 리빌딩 하는 것 정도만 남게 되었다. 아니면 히든 싱어 신해철 편의 우승자를 넣던가
  9. 1995년 신성우, 장호일과 같이 했던 프로젝트 밴드 '지니'의 멤버였다. 이 때는 포지션이 베이스였는데, 넥스트 2집 녹음 당시 무릎을 다쳐 베이스로 포지션을 옮긴 것. 2집을 보면 이동규가 베이스를 친 곡이 꽤 있다. '살아있는 미술관'의 대표이사였으나, 2015년부터 수상 레저 사업을 하고 있다.
  10. 넥스트 이전 2인조 밴드 '여름사냥'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당시 대표곡은 '아무튼 떠나자'. 넥스트 탈퇴 이후 작곡가, 프로듀서, 여러 가수들의 세션 활동 중.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ㅎㄷㄷ 다른 원년 멤버들은 둘 다 이사인데 신해철은 뭐했냐 뭐하긴 음악하고 고스했지
  11. 싸이도 원곡의 분위기를 살려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12. 그래픽 디자이너 전상일이 설립한 '전상일 시각 공작단'의 줄임말. 전시공의 대표적인 작업물로는 전람회, 패닉, 토이, 서태지의 앨범자켓 등이 있다. 한마디로 1990년도부터 2000년도 초반까지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과 호흡을 맞췄던 명실공히 최고의 디자인 집단이었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신해철과 서태지의 앨범 자켓을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3. 이로 인해 당시 부산에서 활동하던 드러머 이수용을 영입하며 2집 레코딩을 겨우 끝마칠 수 있었다.
  14. 임창수는 N.EX.T 탈퇴 이후 '에코'라는 여성 3인조 그룹의 프로듀싱을 거쳐 현재 MIDI 음향 장비 개발 업체인 '이고시스템'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사고로 손을 다쳐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15. '영생'을 부정한다는 단순명쾌한 논리로 어떤 종교의 근본주의자들한테 까였다는 일화도 있다.
  16.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애절한 발라드 'Forever'만 듣고 구입했다가 즉각 환불을 요구한 주부들이 적지 않았다 한다. 안습.
  17. 원래는 「프란다스의 개」다(…).
  18. 참고로 <Myself>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MIDI가 앨범 전체에 적극적으로 쓰인 앨범이며 앨범 전체의 작곡, 작사, 편곡, 연주, 프로듀싱을 신해철 혼자 해낸 앨범이다.
  19. 여담으로 넥스트 1집(카세트)은 신해철과 엑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복제 음반이 나온 적이 있다(…).
  20. M.NET '최할리의 뮤직쇼' 타이틀 BGM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 케이블TV업계 음악방송의 거의 조상격(…) 프로그램.
  21. 원래 1집 'HOME'에 도시인과 함께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심의 때문에 안 될 것 같아 묵혀두고 있었다고 한다.
  22. 일본 정도가 직계비속간 결혼을 금하고 있다.
  23. 애초 우생학적 형질변이가 일어나려면 거의 직계비속이나 사촌쯤 되는 유전자교합이 몇 대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유럽 왕실들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여서 문제긴 했지만 한국의 동성동본처럼 폭넓으면 사실 그 영향은 미미하다.
  24. 당시 라이브앨범을 들어보면 이떄의 상황이 더 편하게 와닿을것이다. 신해철이 에대해 강력히 외치자 환호하는 관객들의 소리.
  25. 이 기고자는 일반인이 맞다. 왜냐하면 이 리뷰가 기고된 파트가 일반인 기고 파트인 Ready 4 Action이기 때문.
  26. 참고로 신해철은 투어 제목이 '월드 투어'라서 잠시 설레였었다고 한다(…).
  27. The World We Made의 속주 콜라보레이션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부르기 전에는 아예 스캣트랙 비슷하게 대놓고 정부를 까는 코멘트를 그대로 집어넣었다.
  28. 나중에는 싱글 자를 빼고 발매되었다. 근데 이 앨범의 아트웍은 전상일 작가가 48시간만에 작업한 날림 물건이라고…
  29. 넥스트의 앨범은 언제나 발매 연기를 거듭해왔다. "다음 달에 우리 앨범 나옴. 곡 다 만들었음ㅋㅋ"라는 언플을 접한다면, 그 시점 기준으로 2~3년 후에 나온다고 보면 대충 맞다(…).
  30. 윤상과의 프로젝트 그룹. 전자음악이 모두 댄스음악의 보조물로만 사용되는 추세에 반발하여 1996년에 앨범을 발매했다. 유명한 곡은 '달리기'. S.E.S와는 다르다 S.E.S와는!!결국 S.E.S가 기어이 슬로우템포의 땐스곡으로 리메이크해버렸다.
  31. 예전 신해철을 까는 안티가 5집에 대해 평가하길 '4집에서 전혀 발전이 없는 앨범'이라고 까자 신해철이 그에 대한 답으로 '돈 억대 넘게 깨지면서 만든 앨범이랑 고작 3천만원으로 만든 앨범의 퀄리티가 같다고 해주니 그보다 더한 칭찬이 없다'고...
  32.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라젠카는 원래 메카닉이 등장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오페라 '마술피리'를 모티브로 한 원안에서, 완구업계의 요구로 메카닉이 들어갔는데 게다가 그 메카라는 게 성전사 단바인이랑 미묘하게 닮기도 했지만 정작 전투씬을 그릴 생각도 안하고 부족한 연출을 업계와 사회탓을 한 제작진들 탓도 컸지만...
  33. 이 트랙을 두고 김세황 왈 '신해철 이 미친 시끼… 이걸 기타로 따라고라고라… 이 작업 끝나기만 하면 보자… 끄아악…'(…)
  34. 한역해 보면 Mono+star=1+별=김일성이다(…).
  35. 이 말 뜻의 진의는 "사실상의 한계에 부딪혔다"라는 뜻인데, 이 발언을 했었던 당시에 앞뒤 내용 다 잘라먹고 이 한 문장만 들은 사람들이 "우린 만렙 찍었음. 짱 먹고 나니 재미없어서 관둠."이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비난 여론이 잠깐 일기도 했었다.
  36. 일설에 따르면 신해철은 넥스트의 3집 활동을 시작할 때 일본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넥스트의 해외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다른 멤버들의 반대와 더불어 주위 여건이 마땅치 않아 좌절되고 '이왕 이렇게 된거 차라리 앨범이나 하나 제대로 만들고 해체하자'라는 생각으로 앨범 녹음에만 1억을 넘게 들여 <라젠카>를 왼성하고 해체하게 됐다고 한다.
  37.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서태지가 좀 더 일찍 락으로 컴백해서 서로 경쟁하는 체재로 갔더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신해철의 말 그대로 하나라도 있었다면 해체를 하지 않았을수도 있었다는 것.
  38. 물론 그전부터 기미는 보였다. 솔로로 냈던 재즈 앨범 역시 라이브 느낌으로 빅밴드들과 함께 한번에 녹음했다.
  39. 신해철이 테스타먼트의 목소리를 연기한 것도 컬트한 인기를 끌었지만, 무엇보다도 전곡을 넥스트가 새로 작업했다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원곡과는 다른 풍미를 갖춘 한국판 OST는 일본에서도 관심을 끌어 일부 역수출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40. 다만 오히려 기존에 갖고있던 섬세함은 더 줄어들어서 메탈리카제임스 헷필드 스타일에 더 가깝다. 이 보컬 스타일은 2001년 발매된 '락(樂) and Rock'앨범에 실린 새로운 버젼의 '민물장어의 꿈'에서부터 이미 시도해왔다. 이 보컬스타일은 사실상 넥스트 5집의 전신인 '비트겐슈타인'에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 당시보다는 좀 더 농익은 목소리로 변화하였다.
  41. 앨범에는 악기를 전부 사용한 Full Bet Mix와 드럼과 기타 등 일부 악기를 제한하여 편곡한 Royal Alert Mix의 두 곡이 들어 있다. 공식적으로 두 가지 버전이 모두 수록된 것은 이 곡이 유일한데, '아! 개한민국'과 'Dear American'의 완전판도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이들은 히든트랙이다.
  42. SBS가 아니라 MBC 방영분 중의 이야기므로 네이션이 맞다.
  43. 자기가 선두에 서서 작업하기 보다는 밴드 멤버를 모아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그를 바탕으로 다른 멤버들이 주도적으로 음반을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44. 정확하게는 밴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리더의 마음가짐.
  45. "옛날에는 음악에만 집중을 하면 됐는데, 요즘에는 주위의 일들로 인해 군더더기가 더 많아지고, 배가 더 큰지, 배꼽이 더 큰지 모르게 되어 버렸으니까 오히려 넥스트만큼은 내가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구역으로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거죠."-쾌변독설 중에서-
  46. 엄밀히하자면 '독재'의 분위기를 풍기는 카리스마. 실제로 신해철이 멤버들을 쥐고 흔든다고 생각하는 어린 팬들이 있다면 곤란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러 의견을 조율해 한 방향으로 모으는 리더'라기 보다 '목표를 정해놓고 끌고가는 리더'형에 가까운 것.
  47.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 파트의 랩가사는 각 랩퍼들이 직접 작사했으며 앨범부클릿에도 명기돼있다.
  48. 형이 동생의 예명에 맞춰서 예명을 지었다.
  49. 참고로 공연에서도 신해철이 종종 언급해왔지만, 신해철 본인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굉장히 애착을 가졌던 곡 중에 하나다.
  50. 신해철 6집 싱글 쇼케이스 후기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당시 넥스트의 멤버는 보컬-신해철, 기타-정기송, 베이스-제이드, 키보드-강석훈, 세컨보컬 및 여러가지 악기-이현섭, 드럼-?이라고 했다. 드러머의 이름을 아시는 분 추가바람.
  51.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인물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라고. 물론 그 덕분에 앨범이 못나온다는 농담도 있었다.
  52. 노바소닉에서 4집부터 보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My Love"나 해신의 "기도" 같은 OST 곡들로도 유명함.
  53. 넥스트 원년 기타리스트. 폭넓은 세션 활동으로 유명하다.
  54. 사이렌 음악학원을 다닌 신해철의 제자이다.
  55. 넥스트 6기 멤버 중 유일하게 넥스트에 남았다.
  56. 신해철의 91년 라이트 투어 시절부터 넥스트 황금기까지 주된 라이브 키보드 세션이었다.
  57. 자세한 사항은 역대 멤버 항목을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