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학생 활동

1 개요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의 학생 활동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이다.

2 학생회

2.1 남성 중심 총학 첫 탄생

1999년 이전 까지는 총학의 구성원이 여성들로만으로 구성되었고, 단일의 후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21세기 첫해 15대 때 처음으로 남학생이 부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였다. 또한 가톨릭대학교 첫 남학생이었던 95, 96학번 예비역들이 학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따라서 15대 총학선거는 그동안 드물었던 복수 후보자로 선거가 치루어졌으며 상당히 과열의 양상을 보였다.[1] 당선된 총학 임원진들은 처음으로 남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그 해 15대에 당선되었던 총학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로 당선되었다.[2] 바뀐 총학의 분위기 때문인지 학기 초부터 이전과 달리 등록금 투쟁을 강력하게 진행하기도 했고[3], 축제나 농활 등의 규모가 커졌다.[4] 하지만 학생회 전반이 임원진들의 개인 역량에 기대어 움직였고, 기존의 학생회와의 연결고리가 약했기 때문에 다른 대학과의 네트워크와 전국적인 학생운동의 흐름과 단절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2 25대 총학생회장 후보자 낙선

2007년도 이후 가톨릭대학교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선지 몰라도 누구도 총학 일에 잘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대로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총학의 학생후보는 전통적으로 단일후보가 나왔다. 다른 학교 총학선거와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이 총학후보들은 대부분이 새로이 나오거나 2~4개의 계보에서 나와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단대 학생회장, 학부 학생회장 등의 기존의 총학과 연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회장후보에 출마했고 회장후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보면 공약도 똑같고, 하는 짓들도 똑같고, 사람도 똑같고(...)

그런데 2011년 11월, 2012년에 활동할 25대 총학선거에서는 꽤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단일후보로 기존의 총학이나 학생회에 연관된 사람들은 출마하지 않았고, 한대련, 민주노동당 소속 대학생이 선본을 꾸려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쪽에서는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의 경력으로 인하여 학교가 소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하는 생각들도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일이 대학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학교의 중심 커뮤니티라고 말할 수 있는 '가톨릭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하, 가좋사)' 사이트에서 총학생회 후보자의 거짓말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총학생회 후보자의 선거 포스터에는 한대련, 민주노동당에서의 활동 내역이 완전히 누락되었고, 이로 인해 가톨릭대 학생들은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적인 경력을 고의적으로 누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시했다. 후보자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민주노동당 활동은 인정하지만, "제가 한대련 소속이라는 말은 유언비어에 불과합니다" 라며 한대련과의 연관성을 끝까지 부인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에서의 활동도 인정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다녔는지[5] 밝히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물의를 빚었다.

후보자가 한대련과의 연관성을 끝까지 부인했으나, 선거의 유권자인 가톨릭대 학생들에 의해 후보자가 활동한 '대학희망'이라는 단체가 한대련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후보자 본인이 대학희망을 한대련에 종속시켰으며, "대학희망은 한대련과 함께합니다" 라는 발언을 하고 한대련에 회비를 납부한 사실까지 가좋사에 낱낱이 폭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후보자와 대학희망에서 함께 활동하던 한 09학번 학우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총학 후보자가 가톨릭대 8000명 학우들을 향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분명해지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투표 거부 운동을 펼쳤다.

일부 학생들을 후보자가 소속된 민주노동당과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한나라당 아르바이트로 몰아갔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05학번의 "(한나라당)알바들 고생 많다.. 이런 글쓰면 얼마주디?" 라는 발언이 있었다. 진실을 요구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한나라당 아르바이트 생으로 몰리자 더욱 격분해 가좋사에 후보자 사퇴 요구글을 실명으로까지 올리고, 후보자가 한대련에서 활동한 증거 자료를 꾸준히 찾아 업로드하였다. 선거 막바지에 후보자는 자신이 소속된 '대학희망'으로부터 자신과 대학희망(즉 한대련)과는 2011년 8월 이후 관련이 없다는 사실확인증명서를 발급받아 해명을 시도하지만, 한대련에서 12월 2일에 활동한 사실기사이 밝혀지며 거짓말로 드러난다. 12월 2일은 심지어 투표 마지막 날이었다.[6] 즉 후보자는 투표 당일까지 학생들에게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로는 한대련에서 활동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총학생회장 후보자의 끝없는 거짓말에 가톨릭대 학생들은 후보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총학선거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선거 종료 1~2일전이 되자 급해진 총학생회장 후보자측 선본에서는 자신들의 지인들을 대거 동원하여 지나가던 학생들을 납치하다시피 데려가거나, 쉬는시간 이외에도 강의에 방해가 될 정도로 투표하고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거의 강제로 투표율을 끌어올리려는 민폐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7] 후보자의 거짓말과 후보자측 선본의 파렴치한 행위를 본 학생들은 더욱 총학후보와 선거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총학선거의 투표율은 가톨릭대 역사상 최저 수치인 45.7%로 종료되었다.# 가톨릭대학교 총학 회칙에 총학선거의 후보가 단일후보일 경우 투표율 50%가 넘지 않으면 자동 낙선이 된다는 조항[8]이 있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한 총학후보는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고 낙선하였다.# 결국 2012년 총학은 구성이 되지 못했으며, 단대학생회장+총동아리연합회장으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가 총학을 대신하게 되었다. 투표율 45.7%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였는데, 이를 통해 확실해진 것은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잘못된 현실에 대해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동조하는 경향이 갈대밭에 불붙듯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이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후보자는 선거가 끝난 뒤 낙선사례에서 자신과 선본측의 잘못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채로 자신을 지지해준 학생들(45.7%)에게 감사하고(참고로 45.7%는 찬성 비율이 아닌 투표율일 뿐이다. 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45.7%의 표 가운데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알 수 없다) 더 준비하겠으며 다음에 보자는 식의 발언을 남겨 논란이 됐다. (설마 또 나오려고?!)

2.2.1 반론

그런데 2011년 25대 총학선거에서는 꽤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단일후보로 기존의 총학에 연관된 사람들은 출마하지 않았고, 전대련출신의 학생이 선본을 꾸려서 나온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라고 하여 한 쪽에서는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의 경력으로 인하여 우려하는 생각들도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일이 대학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학교의 중심 커뮤니티라고 말할 수 있는 '가톨릭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하, 가좋사)' 사이트에서 키보드워리어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에 몇 명의 키보드워리어들이 가좋사를 점령하고 이상하게 그 곳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총학이 출마하자마자 그의 이력 그리고 그의 학과를 이유로 잡아서 막장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총학회장후보가 국사학과였던 것을 이유로 삼아서 국사학과를 까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종교학과, 철학과까지 묶여지게 되면서 '종死철'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국문과 프랑스어문화학과까지 묶여버려 질낮은과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이에 열받은 인문학부 학생들을 비롯한 인예대 학생들이 가좋사를 대거 탈퇴하게 되었다. 더 심각했던 것은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잘못된 현실에 대해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동조하는 경향이 갈대밭에 불붙듯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총학선본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 그냥 무대응 원칙으로 일관하거나 강력하게 대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굽히고 들어갔다. 그러니 극소수의 키보드워리어들과 그의 지지자들은 총학후보를 더욱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사태로 몰고갔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총학선거에 참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선거 종료 1~2일전 이 되자 급해진 선본에서는 많은 학생들을 동원하여 거의 강제로 선거를 하게 하려는 병크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그런 것을 본 학생들은 더욱 총학후보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총학선거의 투표율은 45.7%로 종료되었다.

2.3 25대 총학생회장 보궐선거

보궐선거마저 단일후보가 출마하거나 후보 자체가 없지 않겠냐는 학생들의 우려와는 달리 , 2012년 3월에 치뤄진 25대 총학생회장 보궐선거는 두 후보가 나왔다. 두 후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약에 있었는데, 기호1번은 현실성에 기반한 공약이 주를 이룬 반면 기호2번은 실현 가능성은 없으나 시도에 의미를 두는 공약이 주를 이뤘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을 남발하자 기호2번 후보자는 정책적으로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공약 이외에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기호1번 후보는 MT자리에서 성희롱 혹은 성추행을 했다는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으나 당시 MT에 참가한 학생들의 증언으로 인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비록 사실이 아님에도 불미스러운 소문이 도는 것에 대해 사과이다. 반면 기호2번 후보는 민주노동당 활동은 인정하고 나왔으나 한대련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은 이번 선거에서조차 없었다. 참고로 기호2번 후보는 2011년 25대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는 학생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이나 현실성을 떠나서 이번 기호2번 후보의 선거운동 중 또 물의를 일으켰다. 첫번째는 학교 선관위에 등록돼있지 않은 학우들을 끌어내어 선거운동을 시켰고, 두번째는 앞에서도 언급되었던 선거운동원을 투표기간에 동원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강제로 선거하게 하는 불법이 자행된 것이다. 첫번째 사유는 선관위에 적발되어 경고를 받았고, 두번째 사유는 선관위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일단 아무도 신고를 안한모양이다.) 이 일로 인하여 저번까지 지지했던 지지자들 조차도 등을 돌리게 되었으며, 대놓고 기호2번 후보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투표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기호1번은 60.82%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고, 기호2번은 37.54%의 득표율로 낙선의 아픔을 다시금 겪게 되었다.

2.4 최근의 동향

2014년 말, 총학생회 선거 때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은채 2015년으로 넘어갔다. 2015년도 4월에 보궐선거를 실시했지만 이번에도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은 개봉하지도 못한채 올해 총학생회는 꾸려지지 못했다. 이번 투표 거부현상에 대한 가대학보의 분석글 2014년도가 27대 째 총학생회로, 구성명은 '어깨동무'이다. 2013년도에는 '희망 메아리', 2012년에는 '따뜻한 드림', 2011년에는 '공감나누기', 2010년에는 '당찬우리', 2009년에는 '희망집합체', 2008년엔 '즐겨찾기'였다. 22대 총학생회의 주요 공약은 여러군데 존재하는 옥상을 쉼터로 바꾸고, 먼곳에서도 이용가능한 셔틀버스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전부 실패. 다만 등록금은 동결 성공했다. 애초에 학교에서 등록금을 올릴 필요를 못느꼈다는 의견이 많다. 심지어 2012년에는 학생들이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학교측에서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3.4% 인하했다. 셔틀버스는 최종적으로 실패로 긑났으나 니콜스 옥상을 쉼터로 만든 공약은 성공하긴 했다.쉼터라는 이름의 쓰레기장이란 문제도 있지만

23대 총학의 주요 공약은 22대에서 이어지는 정규노선 통학버스 운영 및 학생휴게시설 확보, 등록금 카드분할납부제, 도서관 확충, 군대 내에서 사이버강좌를 통한 학점 취득, 생리공결제 등등. 최근 가톨릭대가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에 선정되면서 불거져 나온 학부통폐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9]

물론 총학에서는 결사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없어질리 없다는걸 아는 과 학생, 예를들어 경영학과, 국제학부, 정경학부, 사회과학부, 음악과의 학생들은 대부분 '없어질건 없어져야지' 또는 '없어지든 말든'의 생각을 갖고 있다. 결국 없어지는 과에 대해선 아웃풋과 해당과의 교수 파워에 의해 이뤄질 듯 한데, 가톨릭대는 현재 경영학과와 사회복지학과, 국제학부의 교수진이 파워가 가장 막강하고, 법학과, 컴퓨터정보공학부의 교수진이 시니어보단 주니어가 많아 교수파워가 떨어진다.

하지만 경영학부 등 상경계 전공 교수님들도 사적으로 인문학부 교수님들과 친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같이 식사를 한다든지, 학교에서 마주치면 정답게 인사를 나눈다든지...). 그리고 생각보다 학과 통폐합이라든지 정원 조정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 문제는 전공들끼리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교수진VS학교당국 간의 갈등 성격이 강하다. 오히려 학생들이 훨씬 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없어질 건 없어져야지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학과 통폐합이 처음엔 '컴정프종'이라 불리는 가톨릭대 교내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4개 학부(음악과 제외) 컴퓨터정보공학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프랑스어문화학과, 종교학과와 심리학과 야간, 생명환경공학부(생명공학부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문제이다.)가 없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으나, 10년 1학기 전과 학생 통계 결과 국어국문학과, 국사학과가 전과 유출학생이 제일 많아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위에 나온 대로 1차 변경안이 예고되었다. 총학에선 명칭 이외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반응.

3 동아리

동아리들의 규모가 다른 대학들에 비해 상당히 작고 적은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있을 동아리는 다 있다. 하지만 종교동아리가 좀 이색적인데, 가톨릭대학교라고 하지만 가톨릭 관련 동아리는 '소피바라' 밖에 없다. 오히려 개신교 동아리로 'CCC', 'JOY', 'IVF'[10]가 있다. 종교동아리의 경우 활동이 활발해도 동아리의 성격 특성상 학생들에게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느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각 단대, 학부, 학과와 동아리간 사이는 좋지 않다. 10년도엔 단대와 학부, 학과가 합심해 동아리 측에 예산을 안줘서 총동아리연합회가 망하기 일보직전의 상태로 가기도 했다. 물론 단대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예산을 안준 이유중 하나겠지만, 총동아리연합회 수뇌부의 운영은 일개 동아리들도 분노에 치미를 떨정도로 막장이었던지라 그 부분도 이유의 하나가 될 수있다. 이는 당시 총동아리연합회의 회장이 상막장이라 그 주변에서 받쳐줄 수뇌부들, 즉 부회장과 각 부장등 다 떠나간 덕에 총동아리연합회가 수장의 1인 단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11]

2011년 이후 총동아리연합회는 잘 돌아가는 듯 하였으나 2013년 2학기 초 또다시 총동아리 연합회장이 사고를 치고 사퇴1학기 초에는 부회장이 국장들과 손잡고 갈아엎으려다 쫓겨나듯이 사퇴했다 이미개판...하고 다맛제가 병크의 마당이 되면서 망했어요(...)[12] [13] 2014년에는 동아리들 사이에서 큰 격변이 일어나며 여러 동아리가 사라지고 생기며, 동아리방이 옮겨지고 개편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아리들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총동연의 일방적인 개혁이 컸다.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동아리를 평가하며[14] 많은 동아리들의 원성을 샀다.

다른 대학들과 비교해봤을 때 대체로 중앙 동아리는 약한 반면, 각 학부에 속한 학회와 소모임이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3.1 학술분과

  • ALA
가톨릭대 유일 영어 동아리
  • 골든크로스
가톨릭대 중앙 주식 동아리
  • 가톨릭대 통일 리더 동아리
작은 통일을 실천하는 동아리
가톨릭대학교 중앙 역사 토론 동아리
가톨릭대 유일 중앙 독서 토론 동아리
  • COMA
IT 동아리(H/W, S/W, 디자인팀)
  • KOVA (SHIELD)
사랑이 넘치는 범죄예방 피해자 지원 동아리
유네스코 학생회 시사토론 동아리
  • 37.5
가톨릭대 유일 발표&프레젠테이션 동아리
  • 마이더스
공모전&창업 동아리
  • 메디치
약학대학 동아리

3.2 공연예술분과

가톨릭대학교 중앙 유일 댄스동아리
  • FOM
가대 중앙 유일 흑인 음악 동아리
  • SACRED
자유분방 락 밴드
스무번째 실험, 준비되셨나요?
가슴을 울리는 응원단, 모두 함께하는 화랑!
가대 중앙 아카펠라 동아리
  • 성심극예술연구회 링크
빛, 소리, 공간, 그리고 우리들
가톨릭대 유일 중앙 통기타 동아리
당신의 박자감각, 우리 민맥이 Keywordream!
가대 중앙 유일 클래식기타 동아리

3.3 체육분과

가대 유일 중앙 테니스동아리
얼굴로 먹고 사는 리버스, 농구동아리
  • 가로채기
남친여친 가로챌땐 농구동아리 가로채기
가톨릭대 유일 중앙 축구동아리
The Korea University, Taekwondo Club Associate'
  • 검도부
죽도와 목검 사이, 劍道部
야구를 보고 하고 즐기자, Tumblers!

3.4 봉사분과

너, 사랑살기, 성공적
봉사, 만나면 좋은 로타랙트

3.5 문화레저분과

  • 애니켓
그림도 그리는 서브컬처 동아리
가대 중앙 자유로운 보드게임 동아리
  • 와락
와인과 함께 즐거운 추억의 20대를!
  • 모꼬지
즐겁고 신나는 여행동아리
  • 씨네필
영화관 말고 여기서 데이트하자!
흑백 사진 동아리
  • POCU
디지털 카메라 및 사진 동아리
  • 산악회
최고의 동아리 산악회
  • 산악회
최고의 동아리 산악회

3.6 종교분과

언제 어디서나 같이 함께하는 CCC
캠퍼스와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 운동!, IVF
  • JOY
예수님을 첫째로, 이웃을 둘째로, 나를 마지막으로!
  • 소피바라
Jesus! 무슨 말이 필요해? 소피바라!
  • 예수전도단
To know God and Make Him Known
  • 성불회
가톨릭대 유일의 불교 동아리.

3.7 그 외

가톨릭대학교의 공식 홍보대사
가톨릭대학교 입학사정관실 소속기관 홍보 동아리

4 언론사

언론사는 총 5개가 존재한다.

2주에 한번씩 가톨릭대학보를 내는 교내 신문사이다. 진보적이나 성심교지보다는 온건하다.
  • 가톨릭대 영자신문사 (C.U.F) 링크
1년에 4번씩 영어잡지를 펴내는 영자신문사이다. 주로 문화 영역을 다룬다.
  • 가톨릭대 교육방송국 (CUBS) 링크
아침, 점심으로 방송을 하고 주요한 방송행사를 총괄하는 교내 방송국이다. 중도적인 성향이다.
  • 성심교지편집위원회 (성심교지)
일년에 3번의 교지를 내는 교지편집위원회이다. 가장 진보적이다.
  • 가톨릭대학교 웹진국 가대야 (CUKYA) 링크
경력개발팀 소속으로 주로 취업에 대한 소식을 웹진으로 전하는 언론사이다. 행정팀에 속해있으므로 학교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스탠스이나, 사회 시각에 있어서 만큼은 성심교지 만큼이나 진보적이다.

현재, 학보사만 마리아관 317호에 위치하고 있고, 나머지 언론기관은 니콜스관 2층에 몰려있다.[16] 원래, '가대야'를 제외한 언론기관은 한 곳에 있었고[17] 관심주제가 같았기 때문에 매우 친했지만 현재는 소원해진 상태이다. '가대야'의 경우에는 원래 학생들의 취업을 전담하는 경력개발팀의 소속되어서 하나의 학교기관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가홍이'와 같은 취급을 받았으나, 2006~2008년 사이에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현재는 각 언론사들이 같은 언론사로 인정하고 있다.

각 언론사는 2000년대 중반까지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 있어서 지원자가 많았고 기자도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건지 2007년 이후에 각 언론사는 지원자가 없어 골머리를 썩는 처지에 이른다. 각 언론사들이 2학기에도 신입기자를 뽑는 경우가 속출했고, 2008년 2학기에는 '가대야'의 경우 6명, '성심교지'의 경우에는 3명이 언론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펼쳐졌다. 현재 인력난이 가장 심한 곳은 '학보사'인데 대학의 대표 언론이라고 하는 학보사가 2010년에는 한 때 2명이 운영한 적도 있었으며, 2011년 신입기자 모집에서는 신입기자가 한명도 지원을 안하는 사태가 벌어져 기자모집기간을 1주일간 연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중립적 입장에서 벗어나 편향적이고 공격적인 기사들과, 최근 몇 년간 일어난 문제들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18] 사람들이 지원을 안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일이 고되기 때문이고 신입생들은 부활동에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성향이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학언론이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이 지경을 보고 안타까워 하는 학생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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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관위가 양측 후보캠프의 항의에 힘들어하기도
  2. 2000년 대학내일 신문 참조
  3. 단식투쟁, 등록금 추가기간 내기 운동 등
  4. 지금은 상상도 못할일이지만 메인 무대가 성당 잔디밭에 세워졌었다. 물론 축제가 끝난 뒤 잔디가 모두 압사(...)당해 그 해 내내 성당 잔디밭은 출입금지가 되었고, 그 이후로 축제 메인무대는 운동장으로 옮겨졌다. 또한 부천시장 원혜영이 와서 축사를 하기도 함. 재미있는건 당시 부총이 부천시장보다 학교에선 총학생회장이 우선이라며 총학생회장 먼저 우대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5. 정확히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중앙당위원회'로 활동했는데, 이조차도 후보자 본인이 공개하지 않고 성심교정 학생들에 의해 밝혀진 내용이다.
  6. 25대 총학생회장 투표기간은 2011년 11월 29일 화요일부터 12월 2일 금요일까지였다.
  7. 그 외에도, 어두컴컴해지는 저녁에 건장한 남학생 3~4명이 학생 하나를 에워싸고 "선거 하셨어요?"를 물어본다거나.. "예쁜 여자랑 못생긴 여자가 같이 지나갈 때는 못생긴 여자를 불러야 해. 예쁜 여자는 평소에도 시선을 많이 받아서 꿈쩍하지 않는데, 못생긴 여자는 평소에 받지 못하던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하거든" 등 이런 식으로 선거 독려하는 행위는 거의 선거회칙 위반에 가깝다라고도 볼 수 있겠다.
  8. 가톨릭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중 선거 시행 세칙 제5장 33조~35조
  9. 학교 측에서는 현재 39개인 학과/전공을 30개로 축소할 계획.
  10. 교내 동아리 IVF는 외부 종교단체인 IYF와 하등 관련이 없다.
  11. 애초에 이 당시 총동연 회장이 능력 좋은 총동연 관계자를 못생겼단 이유(...)로 일도 안시키고 쫓아낸 경력이 있어서 더 그렇다.
  12. 또 예산 안 준다, 내놔라 싸우는중이다.
  13. 당시 여초상태였던 총동아리연합회 내에서 회장vs국장들 파벌싸움이 일었다고 한다. 회장 사퇴 후 '국장+국장편 분과장'측의 일방적 활동에 회장측과 친했던 일부 분과 동아리와 총학생회가 제동을 걸기도 하였다.
  14. 나름 객관적인 평가로 보일 수 있지만 총동연 본인들의 의견이 중요한 평가였다.
  15.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계열의 구원파인 IYF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16. 불과 2011년 3월까지만 하더라도 CUBS가 니콜스관 4층에 있었고, 학보사가 니콜스관 2층에 있었지만, CUBS 자리에 글로벌라운지2를 만든다는 학교의 방침으로 인해서 학보사가 절반크기에 마리아관 317호로 이사갔고 2011년 4월 15일, 학보사가 있던 방을 공사하여 그 곳에 CUBS를 이주시키기로 하였고 공사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이다. 곧 이사할 계획이다.
  17. 가대야는 처음 생겼을 때 경력개발팀 안에 있었고, 그 후에 니콜스관 1층, 비루투스관 1층을 전전하다가 2009년에 니콜스관 2층에 정착했다.
  18. 언론에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신문사들마다 지면에 실을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만 해도 대단히 정치적이고 주관적인 잣대가 작용한다. 하물며 대학의 이면을 보도하는 학보사의 중립은 어불성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