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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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信哉
대한민국의 여류 소설가. 생몰연도는 1924년 5월 8일~2001년 5월 12일.

서울의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결혼하는 바람에 제적당했다.[1] 남편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출신으로 교수, 수필가, 국회의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서임수 씨. 이후 가정 주부로 생활하던 중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로 시대에 희생당하는 기구한 여인의 삶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이 막 끝난 당시 문단의 화두는 단연 거시적인 이데올로기 문제였기 때문에, 1957년까지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만든 작품이 <표 선생 수난기>인데, 이 작품의 내용이 당대로서도 지금으로서도 매우 흠좀무[2]한 내용이라, 한국 문단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1960년 1월 사상계에 발표한 작품이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인 젊은 느티나무인데, 이 작품으로 인해 또다시 문학계에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지금 봐도 충공깽스러운 물건[3]이라, 보수적인 문인들은 통속적인 대중소설이라며 갖은 비판을 퍼부었다. 그러나 감각적인 문체로 청춘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이 작품은, 당시까지 이데올로기 문제와 어두운 한국 근현대사에 치중한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이후 6.25 전쟁을 다룬 <임진강의 민들레>, 조선 사대부 집안 여성의 삶을 표현한 <간신의 처> 등을 집필하여 다양한 주제와 표현으로 한국 페미니즘의 싹을 틔웠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사후 유족들이 관련 서적 등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해서 2006년에 '강신재 개인문고'가 생겼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단일 작가의 개인문고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 본관 5층에 가면 볼 수 있다 카더라.
  1. 이화의 금혼 규정은 구한말 이화학당을 세우고 운영한 미국인 여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소녀들을 강제 조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린 여학생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집가는 막기 위해, 선교사들이 설득도 하고, 심지어 방학을 없애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고.)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금혼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2003년 폐지되었다.
  2. 주인공 여인이 방황하던 중 아들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다.
  3. 재혼을 통해 남매가 된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지금으로 치면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간의 로맨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