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드룬 부르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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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룬 부르비츠(Gudrun Burwitz), 결혼 전 성 힘러(Himmler)는 독일 네오 나치 운동가이다. 1929년 8월 8일 나치 독일SS게슈타포의 지휘자였던 하인리히 힘러와 그의 부인 마르가레테의 외동딸로 태어났다.[1]

1 유소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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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 하인리히 힘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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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와 찍은 사진.

하인리히 힘러는 소문난 애(공)처가이자 딸바보였다. 구드룬은 어머니 마르가레테와 함께 뮌헨에 살고 있었는데 힘러는 수시로 아내와 딸을 베를린으로 불러들였고 매일같이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매주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힘러는 집무 중에도 딸을 곁에 두었고 '내 강아지(Püppi)' 라고 부르며 아꼈다.

여담으로, 구드룬은 왜 또래의 남자친구들이 자기 근처에도 접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매우 의아해하면서 자신이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는 신세에 대해 푸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누군데 감히 어떤 남자가 집적거리겠나...?

1945년 5월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하인리히 힘러가 죽자 이후 구드룬은 그가 청산가리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16세 무렵) 그녀와 어머니 마르가레테는 미군에 체포되어 유럽 각지의 수용소를 전전하였다.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거쳐 1946년 11월 석방되었다. 그녀는 이 시기를 매우 고통스러웠으며 모녀는 힘러의 죄과를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다루어졌다고 술회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나치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나치 시절 아버지와 그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2 나치 옹호 활동

구드룬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불프 디터 부르비츠(Wulf Dieter Burwitz)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그녀는 네오 나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였고 1951년 이후부터는 징역을 살고 있거나 도주 중인 SS 단원들을 구원하는 모임인 '슈틸레 힐페(Stille Hilfe, 일명 조용한 손길)' 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수십 년 간 구드룬은 '슈틸레 힐페' 의 상징으로 활동했고 모임을 주최하거나 저술활동을 하였으며 나치의 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2년에는 나치유겐트를 모방한 비킹 유겐트(Wiking-Jugend)를 설립하는데 일조했다. 전후 네오 나치 활동의 주축인 '블랙 위도우' 플로렌틴 로스트 반 퇴닝엔(Florentine Rost van Tonningen)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구드룬은 현재 뮌헨 근교의 고급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근래에도 나치전범을 구원하고 원조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2]

비슷한 인물로 일본도조 유코가 있다. 행보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흡사하다. 다만 구드룬 부르비츠는 아버지와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도조 유코는 조부에게 인간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없다는 게 차이점.
  1. 후에 남동생이 입양되었다.
  2. 심지어 네오 나치가 관여한 적이 있다는 뮌헨 올림픽 참사에도 구드룬의 개입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