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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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코 형님?

LG 트윈스 No.73
김정민(金正敏)
생년월일1970년 3월 15일
출신지대전광역시 동구
학력가양초-한밭중-천안북일고-영남대학교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3년 LG 트윈스 2차 1라운드 지명
소속팀LG 트윈스(1993~2006, 2008~2010)
LG 트윈스 등번호 12번 (1993~2006)
나진균 (1992)김정민 (1993~2006)최승준 (2007)
LG 트윈스 등번호 12번 (2008~2010)
최승준 (2007)김정민 (2008~2010)심광호 (2011~2012)

LG 트윈스포수이자, 現 LG 트윈스 1군 배터리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후루타 아쓰야처럼 안경잡이 포수

1993년 LG 트윈스에 입단했으며 1990년에 입단한 김동수와, 1998년에 데뷔한 후배 조인성이라는 대형급 포수들 사이에 끼어서 백업 포수로서 활약하다가 200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식[1]까지 가진 후 스카우터로 일했다. 스카우터로 일하면서 그가 눈여겨본 포수가 김태군이었다. 그러나 부족해진 포수 자원을 메우기 위해 김재박 감독의 권유로 복귀했다. 조인성의 안습적인 경기 운영과 프런트의 막장 행보[2]로 주전 내지 1군 백업 포수로 출전하여 LG의 상승세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2009년 5월 20일 무등야구장에서의 기아와의 경기때 정성훈의 안타때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비가와 미끄러워진 그라운드에서 3루를 잘못 밟고 넘어져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후 조인성과 교체되어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게 된 결과 원래부터 좋지않은 아킬레스 건이 끊어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 덕분에 LG 팬들은 죽을맛이다... 실제로 LG의 2009년 성적은 초반 하위권을 맴돌다가, 김정민을 주전 포수로 기용하자 급격히 승률이 상승하기 시작, 2위까지 올라갔으나, 부상 후 다시 조인성이 마스크를 쓰자 7위까지 추락하였다.[3][4] 일부에서는 김재박이 남긴 명언인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조인성과 김정민을 우규민을 예로 들어 비교하자면, 조인성과 배터리를 짤 때의 우규민은 '불규민'이 되었지만 김정민과 배터리를 짤 때의 우규민은 말 그대로 '미스터 제로'가 된다(…). 그 만큼 리드가 좋았다는 것.

프로생활 16년동안 통산 홈런은 단 14개. 그러나, 1994년 9월 8일 잠실에서 열린 해태전에서 2점 끝내기 홈런을 쳐서 팀 승리에 공헌했다. 그 홈런은 선동열KBO 리그에서 11년간 맞은 28개의 홈런 중 하나였으며, 선동열한국프로야구에서 맞은 유일한 끝내기 홈런이었다.

재활에 성공하여 2010년 시즌부터 다시 현역으로 뛰는 듯했었다. 그러나 레어템이었던 잉경을 얻은 조인성이 각성해 버리는 바람에 잊혀졌고 2군에만 쭉 머물다가 현역에서 또 다시 은퇴했다. 2010 시즌 후 1군 배터리코치를 맡게 되었고[5], 등번호는 2010 시즌 후 이적한 2호기가 가져갔다. 이후 2군에서 배터리코치를 하다가 2014년 시즌 중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뀌면서 장광호배터리코치와 맞바꿔 1군으로 올라갔다.
  1. 이 은퇴식은 후배서용빈 은퇴식에 꼽사리 껴서 가진 은퇴식이다.
  2. 2008년 6월, 안 그래도 적던 포수 자원을 한꺼번에 2명(최승환, 이성열)이나 두산 베어스에 넘겨줬다. 물론, 트레이드 이후 둘 다 폭발. 대 자에 취소선을 그은 이유는, 몇 시즌 뒤 부진으로 인해 둘 다 트레이드되었기 때문.
  3.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러 카드라에 의하면 김정민은 별로 배울 게 없는 다른 팀 내 선배들과는 달리 후배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 더 컸다.
  4. 참고로 이 시즌 김정민과는 달리 조인성은 경기중에 영 좋지못한 일을 겪는가 하면 죄잉여라고 한창 까이고 있었다. 그런상황에서 다시 주전포수가 되었으니, DTD는 가속화되어 그 시즌 LG는 7위로 추락했다.
  5. 포수리드에 뛰어나고, 고참선수로서 팀에 본보기가 되는 김정민 선수가 코치가 된것을 반기는 팬들이 많았다. 그것 말고도 2010시즌을 끝으로 철밥통 배터리 코치가 해임된 것도 김정민 코치를 더 반기는 원인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