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증한

金曾漢
1920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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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학자, 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민법학자로서 민법의 제정과 공동소유형태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20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김익진(金翼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익진은 1950년 5·30 선거 당시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애썼고 이 바람에 이승만의 눈 밖에 나서 검찰총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강등되는,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치욕적 인사를 겪었고, 이승만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 투옥되었다가 1심에서 무죄 석방된 적도 있다.

1937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에서 교편을 잡다가 1939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1944년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46년 9월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강사가 되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행정대학원장, 법과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민법, 서양법제사, 로마법을 강의하였다. 1967년 서울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문교부차관을 역임하였고, 특별재판소 심판관,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민사법학회장, 대한법률구조협회 이사, 한독법률학회 등을 역임하였다.

법률문화상을 수상하였고,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는 동아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2 기타

아들인 서울시립대학교 김학동 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해 '민법총칙'의 개정판을 내고 있다.

김증한 교수가 쓴 법률공부의 방법

대한민국 최초의 로펌인 김장리를 설립한 김흥한[1] 변호사가 그의 동생이다.

3 저서

  • 법학통론(1953)
  • 민법총칙(1958)
  • 물권법(1970)
  • 채권총론(1979)
  • 역서
    • 영국민법휘찬(1948)
    • 영미법의 정신(1956)
  • 편저
    • 법률학사전(1964)
  • 유고집
    • 한국법학의 증언(안이준, 1989)
  1. 서울지법 판사출신으로 1954년 미국유학을 떠나 4년만에 귀국해 국내 최초의 국제거래 전문변호사로 변신하여 1958년 장대영, 이태영(국내 여성변호사 1호이자, 김흥한의 장모이기도 하다) 변호사와 함께 국내 최초 로펌 김장리를 설립하였으며, 김장리는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외국계 회사의 국내 자문을 독점하다시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