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환

能奐

(? ~ 936년)

1 개요

후백제의 관료.

남은 기록은 거의 없는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이찬(신라 관등 17품 중 2품)으로 기록하고 있다.[1] 견훤의 아들인 신검과 반란을 모의하여 왕위를 찬탈하는데 일조한다. 이후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키면서 항복했지만 반역혐의로 왕건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후백제의 토착 호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사극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故 정진이 열연하였는데, 대체적으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워낙 적다보니 캐릭터 자체를 대부분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정진은 사극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한명회, 풍신수길 역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드라마 식객에서는 자운 선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본래 아자개의 집에 머물면서 집사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견훤이 장군이 되어 사벌주(오늘날의 상주)를 들렸을 때, 아자개는 능환에게 "능환이 이놈, 다 네 놈 탓이다. 그래도 글 좀 꽤나 읽었고 한 때 재주 꽤나 있다고 깝죽대더니, 네놈이 이 아이(견훤)를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이처럼 견훤이 본격적으로 궐기하기 이전부터 김총, 추허조와 더불어 함께 활동하였고, 견훤이 궐기한 후에는 책사로서 활약하여 후백제 건국에 활발하게 활동하며 공을 세웠다. 의외로 외모와 체격과는 다르게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습도 나온다. 극 초반에 서라벌에서 부임하여 금성(지금의 나주)을 휘어잡기 시작한 견훤과 대립하였던 수달이 함정을 파고 견훤과 그 부하들을 집에 초대하였다가 그들을 급습하였을 때 능환은 견훤과 콤비를 이루어 난데없는 액션씬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견훤이 대부분의 적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능환도 자기에게 달려드는 적을 맨손무술로 상대하며 제 한 몸 정도는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2] 그 후 견훤이 수달에게 한 말은 "얼굴은 못생겼지만 문 모두 뛰어난 사람"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최승우를 후백제로 초빙한 것도 능환의 역할이 컸다. 거기다 후에 등장하는 술사 종훈도 능환이 천거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천거한 최승우가 견훤의 신임을 받으면서, 최승우와 사이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3] 자신과도 의형제 관계에 있던 수달이 포로로 붙잡혀 처형당하고,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를 후백제로 포섭하는 데 실패하였는데, 능환은 이를 최승우가 전략을 잘못 세웠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보면서 최승우를 원망하였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최승우와 사이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또한, 견훤의 후계자로 신검을 옹호하면서 견훤과 사이가 멀어지다가, 결국 신검과 더불어 반역을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게, 최승우를 총애하는 견훤이 대놓고 "이찬은 너무 늙었어!"라는 대사를, 그것도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밥먹듯이 하며 무시하니 마음속에 쌓인 앙금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후반부에 견훤이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한 사전 조치로서 정사를 운영하는 권한을 능환에게서 거두어 이를 최승우에게 위임하면서도,[4] 늙었다고 또 무시를 하면서 능환은 모멸에 가까운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5]

후백제의 역사 전반기에는 주로 왕건에게 후백제가 이리저리 당하기만 하는 처지였고 이때 내치정책은 능환이, 대외정책은 최승우가 맡고 있었다. 그래서 능환은 일찍부터 사석에서는 '사부'라고까지 불리면서 태자들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대외정책이 안 풀릴 때마다 전후사정을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작전의 제1책임자인 최승우를 원망한다. 나주 공략전, 2번에 걸친 대야성 전투의 실패, 아자개의 고려 귀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후백제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왕건의 고려가 견훤의 후백제에게 관광당하면서 세가 넓어지게 되고 최승우의 입지도 점점 높아지는 데 반해, 능환이 참가한 전투는 거의 신검을 보좌하면서 패배 플래그 계속해서 실패하게 되어 견훤을 실망시킨다. 예전에 최승우가 겪었던 곤경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사실 전지적 시점에서 보면 최승우의 경우 그가 올린 작전안은 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견훤이 독단으로 밀어붙여서 실패한 반면에 능환은 해당 전장을 바라보는 그의 복안부터가 어딘가 하자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능력한 덕장 신검의 삽질은 덤(...).

물론 이렇게 실패하면 능환 본인도 신검의 삽질 탓을 하지 않고 "신도 이제 늙었나 보옵니다..." 하면서 자책하기도 하지만, 견훤에게 그간의 사정을 보고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찬도 이제 늙었군! 형편없이 늙어버렸어!"가 면전에서 날아든다(...). 그 자리에서 제일 늙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자승자박 이렇게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후백제는 전쟁의 출정멤버가 견훤&금강&최승우의 본대, 신검 형제&능환&능애의 파견대로 굳어진다. 견훤 본인의 편애와, 태자 신검에 대한 테스트 욕심이 어우러져 빚어진 멤버 구성.

물론 사적으로 견훤에게 모멸을 당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공사 구분만큼은 확실한 캐릭터다. 작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승우를 죽인 것은 견훤에게 충성하는 최승우를 제거하여 신검의 쿠데타를 성공시켜야 하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려진다. 능환은 "파진찬이 황제와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혹은 "난 이미 권력이나 안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라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철저하게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마음에 기인할 것일 뿐이지 사적인 감정으로 최승우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애초에 최승우 역시 여러 번 신검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 하였으며, 최소한 이찬과 다른 견해를 이 분야에서 피력한 경우는 없었다. 극 후반부에 결국 견훤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낙점하면서 여러 무리수를 두게 되자, 최승우는 직접 금강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신검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할 것을 권유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승우 자신이 신료들 중에서 견훤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국정의 혼란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불필요한 언행을 삼간 측면이 강하다. 능환도 신검의 후계자 계승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사이가 틀어진 후에도 최승우를 찾아와 계책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던 점을 보면, 최승우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6] 능환은 이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입장차와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신검을 위한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선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이에 최승우는 이 일이 성사되어도 이찬께서는 결국 또 소인을 원망하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속내를 읽힌 능환은 당황하나 이내 '그렇긴 하네만...' 하면서 그것을 쿨하게 인정한다(...). 그래도 나중에 정말로 그 기회가 성사되었을 때는 최승우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품는 신검에게 파진찬도 담백한 사람이라면서 그를 옹호하고 추켜세운다.

결국 신검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능환은 상귀와 더불어 병력을 이끌고 최승우의 집을 공격, 그를 제거하는 비극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끝나고 만다. 하지만, 최승우의 목을 그 자리에서 바로 베지 않고, 그의 소원대로 스스로 독이 든 차를 마셔 명예롭게 죽을 수 있게 배려한다. 비록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지만 지금까지 후백제를 같이 이끌어온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파진찬, 잘 가시게…."라고 하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최승우를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은 참으로 백미. 최승우가 숨을 거두고 나서는 그의 목을 베려는 상귀와 병사들을 두고 돌아나오면서 눈물마저 흘리고 만다. 이 부분은 실제 역사 속의 한신소하를 연상시킬 정도. 드라마상에서 최승우를 견훤에게 천거한 것도 능환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쿠데타 이후에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대단히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 제 아무리 갈라섰다고는 해도 자신이 평생 모셔온 견훤을 '노망든 늙은이' 라고 비하하는 한편, 그를 제거하자는 진언도 서슴치 않는다.[7] 그간 최승우에게 밀려 견훤에게 많은 핀잔을 받은 탓에 성격이 비뚤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신검이 부군인 견훤에게 반기를 들어 몰아냈는데 괜히 부자지간 정이라는 이유로 살려놓으면 화근이 되니 이왕 독하게 할 거 더 독하게 가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8] 해석과 상상은 각자 알아서 하자.

제왕이 행동해야 할 것을 자신이 생각하고 진언하며 행동한다는 평을 극 최후반부의 왕후 박씨에게 받은 바가 있으며, 이 이야기를 양검과 용검에게 하며 통일 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사람이라고 평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위치와 행동방식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견훤은 금강에게 보위를 물려줄때 안전장치로 신검을 지지하는 능환과 능애를 삭탈관직 하고 유배를 보내기로 결심했었다. 이는 견훤도 대장군 직위에 있던 능애와 더불어, 능환을 위험인물로 보았다는 의미일것이다.]

역사 기록으로 따지면 드라마에서 가장 이미지가 크게 변한 인물 중 하나일 듯하다. 궁예야 애초부터 재평가 되어 왔었지만. 이후 최종화에서 백제가 고려에게 항복한 직후 견훤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며 처형당한다. 일찍이 얼마든지 목숨을 끊을 기회가 많았으나, 한 나라의 건국과 망국을 동시에 지켜보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아왔노라고 유언을 남긴다.

후삼국 시대의 흔한 노인 학대(...)
  1. 물론 골품제의 제한 때문에 진골이 아니었던 이상 신라에서 이찬을 했을 가능성은 낮고 후백제의 이찬이었던 것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극 초반부 책사계 캐릭터들은 최승우를 제외하고는 의외로 무술 실력을 보여준 적이 종종 있다. 지도자 및 정치인 캐릭터인 궁예만해도 무력 굇수이며, 종간도 네임드 도적인 원회와 싸워 이길 정도로 무력이 상당한 편.
  3. 최승우는 궁예. 능환은 신라를 공격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립하기 시작하더니, 김효종이 지키는 대야성 전투에서 능환은 속전속결을 주장한 반면 최승우는 적의 빈틈을 노려야 한다고 하면서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4. 단, 이찬으로서의 지위는 그대로 두었다.
  5. 비록 늙으면서 예전의 총명한 기운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초창기에 견훤을 도와 후백제의 창업에 이바지한 공신이자 한때 절친한 의형제였다. 능환의 입장에서는 최승우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고 여겼을 것이고, 자신이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6. 능환의 부탁을 받고 최승우가 입안한 계책이 바로 수군을 이용하여 고려의 도읍인 송악을 공격하고, 고려 수군을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그 총사령관에 신검을 추천한 것도 최승우였다.
  7. 신검이 견훤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차라리 견훤을 암살한다면 신검의 즉위가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견훤이 금산사를 나와 고려로 피할 때에도 여의치 않으면 그 목숨을 거두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쿠데타를 이끈 신검조차도 이러한 능환의 모습에 부담을 느낀다.
  8. 실제로 견훤은 결국 후백제를 탈출하여 고려로 망명해 스스로 선봉에 서서 후백제의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며 단숨에 멸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