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영등포구법정동
법정동영등포동1가영등포동2가영등포동3가영등포동4가
영등포동5가영등포동6가영등포동7가영등포동8가
영등포동여의도동당산동1가당산동2가
당산동3가당산동4가당산동5가당산동6가
문래동1가문래동2가문래동3가문래동4가
문래동5가문래동6가양평동1가양평동2가
양평동3가양평동4가양평동5가양평동6가
양화동신길동대림동도림동

이 지역 중 대림3동 북부[1]를 제외한 전 지역은 경찰은 물론이고 구청 직원들도 방검복을 착용할 정도다. [2][3][4]

원지목동(遠芝牧洞)

1 개요

영등포구법정동.

법정동 대림동은 행정동상 대림 1, 2, 3동으로 나뉜다. 1동은 2, 3동과 달리 철도역에 접하지 않은 곳으로 걸어가거나 버스를 통해 대림역, 구로디지털단지역, 신풍역, 신대방역, 보라매역으로 가는 상황이다. 신대림초, 대림중이 있으며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이 대림삼거리[5] 근처에 있다. 2동은 영등포구의 최남단으로 도림로, 대림로, 시흥대로, 도림천에 둘러싸여 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서울 지하철 7호선 대림역과 접한다. 대동초, 영림초가 있으며 BYC 본사가 구로디지털단지역 5번 출구 근처에 있다. 3동은 남쪽으로는 대림역에서 북쪽으로는 신도림역 근처까지 해당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남부학습센터, 도신초, 신영초, 영남중, 대림운동장이 있다.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주택지역이 곳곳에 분포하며 재개발되는 지역도 많다. 어디는 서울같고 어디는 시골같고...

대림동에는 재래시장이 2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대림1동 시흥대로 주변에 있던 '대림시장'으로, 2012년 8월경에 철거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대림2동에 있는 '대림중앙시장'으로 지금도 성업 중. 한국의 재래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중국화가 많이 되어서 문제지만 그런데 예전에는 대림중앙시장에는 농심가가 있었는데 1996년 대화재로 전소된 흑역사가 있다(...)[6]. 그 농심가 자리에 들어선 것은 지금의 영등포구 공영 주차장.

대림3동 남부에 두암상가건물이 있었으나 2008년 이후에는 철거를 위한 폐쇄 상태에 있었고, 현재는 재개발되어 주상복합 오피스텔로 변신하였다.

영등포구에 소속된 지역이지만, 영등포역이나 구청 인근 지역보다는 1949년 서울 편입 형제들인 구로구 구로동과 동작구 신대방동이 생활권 상으로 더 밀접하다. 즉, 구로구 동부 생활권이라는 말. 영등포구청, 영등포구 보건소, 영등포평생학습원보다 구로구청, 구로구 보건소, 구로도서관이 더 가깝다보니... 대림역의 부역명이 구로구청이다. 대림동에 거주하는 중학생들이 구로고나 신도림고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경찰서 관할구역도 과거에는 서울영등포경찰서가 아닌 서울구로경찰서에 속한 적이 있었다. 다만 보건소의 경우 대림동에 영등포구 보건소 산하의 분소가 있긴 하다.

허나 구로구 생활권이라곤 하는데 구로구 지역과 대림동쪽의 분위기는 길만 하나 건너도 엄청나게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길 하나 건너거나 블록 하나 지났을 뿐인데 갑자기 연변으로 텔레포트된듯한 느낌. 근처의 신길동, 신대방동 지역하고도 완전히 달라서 역시 단지 몇 블록 차이로 완전히 분위기가 바뀐다. 참고로 신길동은 서울의 평범한 다세대주택 지대다(1990년대까지의 대림동과 비슷).

2 역사

구한말까지는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 원지목리[7][8]였고 원래 지금의 대림동 일대는 대림(大林)이라는 지명에 걸맞지 않게(...)[9] 큰 숲은 커녕 도림천변의 풀밭이나 목장지대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시흥군 북면 도림리[10]가 되었다. 1936년 영등포의 경성부 편입으로 시흥군 동면 도림리로 이관되었으나 1949년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서울 편입 이후에는 법정동 신도림동이었으나 서울 편입 직후인 1955년경에 대방동의 '대'와 도림동의 '림'에서 따와 행정동 대림동을 만들었다. 당시 행정동 대림동은 법정동 신도림동(지금의 구로구 신도림동과 영등포구 대림동)과 법정동 신대방동(지금의 동작구 신대방동)[11]을 관할했다.[12] 1970년에는 행정동 대림동 중에서 법정동 신대방동 지역이 따로 행정동 신대방동으로 분동되었다. 대림동의 '대'에 해당하는 지역이 떨어져나갔다(...) 행정동 대림동이 대림1,2동으로 분동된 것은 1977년이며, 법정동 대림동은 1980년 4월 구로구 분구에 따라 신도림동 중 영등포구 잔류지역을 행정동 '대림동'의 이름을 따와서 명명한 것이다. 대림동의 옛 지명에서 따와 원지목동으로 하지 그랬어 1970년대만 해도 논밭과 자연마을, 공장, 군부대가 혼재했던 변두리였으나 1970년대 후반 혹은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과 같은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어찌된 것인지 서울로 편입되지 못한 광명동보다도 시가지로서의 역사가 짧다(...)

3 주민 구성

파일:Attachment/대림동/top neighbourhoods in the number of foreigners.jpg

조선족 타운(...) 2015년 통계에서는 대림2동의 외국인비율이 105.2%를 기록했다. 이곳은 흔히 일반인들에게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대림동, 도림동 일대에서는 주변의 구로동, 가리봉동, 가산동, 봉천동처럼 조선족화교를 많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림역 7호선 주변이 가장 밀집도가 높다. 그래서 서울의 차이나타운으로 대림 일대를 개발하자는 의견도 꽤 있는 듯. 2008년 총선에서도 이걸 공약한 사람이 있었는데 통일교였다. 흠좀무. 하지만 화교에 의한 살인사건도 일어났었기 때문에 대림동 사람들(특히 토박이)은 여기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2000년 이전만 해도 구로공단 옆의 그저 평범한 서민 동네였던걸 생각하면 그저 안습. 대림동은 시장이라던가 대중교통수단이 의외로 편리하고[13] 과거 넓은 정원이 있던 집의 주인들이 그 집을 다세대주택으로 바꾸어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관계로 아직도 대부분의 주민은 한국인이다.[14]

경찰은 대림동에서 칼을 소지하고 다니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중국어 전단지를 배포한 적도 있고 2011년부터는 대림동 전역을 특별치안강화구역으로 설정하였다.

파일:Attachment/대림동/daerim-neighbourhood-change-1.jpg
대림2동의 변화상. (좌) 2009년[15] / (우) 2013년.
사실 2009년 당시에도 주요 대로변은 이미 어느정도 연변타운화된 상태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런 동네 구석까지 중국화가 된 것. 대림2동이 고향인 사람이 지금의 대림2동을 본다면 어린시절의 문방구, 슈퍼, 미용실, 빵집 등이 죄다 중국 관련 점포로 상전벽해된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참고로 대림2동 주민센터 옆에 있는 대림2동 구립 어린이집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사립 유치원이었다.[16] '대림유치원'이 대림동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기존 건물이 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된 모양.

2013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대림동이라도 도림천과 인접한 남부지역(대림2동)은 가리봉동과 함께 대표적인 조선족 거주지역으로 변모한 지 이미 몇 년 된 상태라면, 영남중학교와 우성아파트를 위시한 동,북부지역(대림1동, 대림3동)은 대림동이 '연변타운'으로 변모하기 전의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으나, 2014년 10월 현재 기준으로는 대림3동 상당부분(특히 영남중학교[17] 이남 지역)도 연변화되었다(...). 대림동 중에서 조선족의 영향을 그나마 덜 받는 지역은 북서부 최북단쪽과 중부의 대림 우성아파트쪽 정도다. 아무튼 조선족 타운으로서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는 곳은 대림2동이다.

그런데 이곳도 임대료 상승을 피해가지는 못했는지 2016년 4월 20일 방송된 "취재파일 K"를 비롯한 여러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대림 2동 중심가의 경우 임대료가 대단히 높아져서 거의 강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강남 수준이야 아니겠지만 상당히 임대료가 오른 것도 사실이고 예전의 낙후된 분위기와 달리 다른 지역의 화교나 조선족들도 많이 모여들고, 한국인들도 연변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해 많이 방문해서 매출도 좋아지고 하다보니 주말 낮 시간대는 치안도 상당히 괜찮다는 듯. 물론 이외에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1. 대충 영남중학교 북쪽지역인데 이쪽은 그냥 평범한 주택가와 아파트촌이다.
  2. 특히 대림1, 2동 골목지역은 늦은 저녁부터 새벽시간까지는 조선족 폭력배, 중고딩 양아치등 위험한 사람들이 자주 출몰, 범죄 우려가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큰길을 이용해야한다.
  3. 반면 대림2동 다리건너의 구로공단부근과 시흥대로변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가 없다.
  4. 그리고 구로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쪽은 예전 분위기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옛날 구로공단 생각하면 안되고 IT산업이나 설계 등을 비롯한 사무실들이 밀집한 오피스텔과 아파트형공장촌으로 바뀌었고 일부 지역의 경우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근데 번화가가 형성되다 보니 종종 온갖 사이비종교와 위험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안전 수준은 그냥 지방 번화가 수준으로 보면 된다.
  5. 신안산선 대림삼거리역이 이곳에 세워질 예정이다.
  6. 대화재로 농심가 뿐만 아니라 바로 옆 상가건물까지도 전소되었다. 안타깝게도 화재진압 과정에서 소방관이 순직하기도 했다.
  7. 대림동 지역도 문래동, 도림동, 구로구 신도림동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북면 도야미리·원지목리였다고 나와있는 경우가 많지만, 도야미리는 지금의 신도림동 지역에 가깝고 원지목리는 지금의 대림동 지역에 가깝다.
  8. 원지목리의 기원이 되는 '원지막'이 지금의 대림1동 지역에 있었다고 하니 대림동 일대를 옛 원지목리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애초에 옛 지도들을 봐도 원지목이라는 글자는 지금의 대림동에 해당하는 도림천 우안에 박혀있었지, 지금의 신도림동에 해당하는 도림천 좌안에 있지 않았다. '하원지목'은 지금의 도림동 일대로 추정.
  9. 후술하겠지만 대림이라는 지명은 큰 삼림지대의 존재여부와 상관없다.
  10. 도야미리(신도림동)+원지목리(도림동, 대림동)+사촌리(문래동).
  11. 1975년에 법정동 신길동에 편입된 현재의 신길6동 일부도 포함했다.
  12. 당시 이들 지역은 미개발지(일제강점기부터 타이어 공장이 있던 지금의 구로구 신도림동은 제외)로 인구가 얼마 없었다. 따라서 여러 개의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생긴 건 당연한 것.
  13. 서울의 다른 곳으로 뻗어가는 버스 노선들이 많고,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지나간다. 그리고 광명, 안양 방면으로 가는 버스들도 다닌다.
  14. 하지만 그분들의 편한 노후를 책임지는게 화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화교 덕분에 늘 월세가 상당히 잘나가는 상황이고 간혹 1층이 상가화 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상당히 큰돈이 잡힌다는게 아이러니...주택일때 월세 30만원 이던게 상가화되고 300만원이 되는 경우가 간혹있다.
  15. 저 사진에서 보이는 부동산 점포는 1990년대에는 문방구였다.
  16. 그 당시에도, 지금도 그 건물 3층에 독서실(새마을문고)이 있다. 그 당시에는 청소년 독서실이었는지는 확인바람.
  17. 참고로 영남중 주변지역에 대해 잡설을 덧붙이자면, 2014년 들어서면서 영남중 바로 앞 건물에 붙어있던 '에이스 교복' 간판 등과 같은 90년대 초반의 흔적들이 건물 리모델링에 따라 제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