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대

한문:督戰隊
영어:supervising unit

사전적 의미는 전투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부대를 의미한다. 이것만으로는 단순히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일종의 심리전 부대로 알게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 이들에게 부여한 특정 임무 때문에 대단히 끔찍한 악명(?)을 얻게 되었다. 바로 아군을 죽여서라도 도망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병사들의 탈영 및 적전도주는 대부분 사형과 같은 중벌로 다스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생존 및 귀향에 대한 욕구 때문에 진영에서 도망치려는 병사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특히나 징병되어 군인이 된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잘 살고있는데 갑자기 납치되어 총알받이로 끌려온거나 마찬가지인데,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근대 이전의 군대는 전부 다 징병제로 인원을 충당했으니, 이들 군에서의 탈영 시도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였다. 따라서 이들을 강제적인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이를 위해 진형의 주위나 바로 뒤에 따로 부대를 배치해서 도망치는 병사들을 죽여서라도 진영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려 했는데 이 임무를 맡은 부대가 바로 독전대이다.

근대 이후에는 민족주의, 시민 인권 의식 등이 확산되면서 군인들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함에 따라 탈영 시도도 크게 줄어들었지만, 이런 것들이 언제나 그렇듯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탈영을 막을 방법중 하나로써 일부 군대, 특히 인권이라는 개념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전체주의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는 지역의 군대에서는 여전히 독전대를 운용하는 케이스가 관찰되었으며, 이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소련 등이 있다.

소련군에서는 방첩부대인 스메르시와 NKVD 소속의 독전대가 있었는데 이들은 전선 직후방에서 탈주병, 배반자들을 색출해 처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소련군의 형벌 부대에서는 각 부대마다 독전대를 편성해 형벌 부대원들을 강제로 전선에 내모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전쟁당시에 국군또한 독전대를 운영했다는 참전용사들의 증언들이 있다. 일례로;

(용인에서) 많은 사병들이 초췌한 몰골을 하고 고지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고지 후방 지대에서는 헌병이 10미터 간격으로 서서 아군의 후퇴를 저지하고 있었다. “명령 없이 후퇴하면 총살이다. 진지를 사수하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아마 이것이 독전이구나.......”하고 진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병들은 독전의 기세에 눌려 다시 고지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이라 얼마 후 다시 많은 병력이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호수 제방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이에 헌병 독전대는 계속 소리치면서 전선 복귀를 강요했다. 이때 사병 몇 명이 헌병 통제선을 넘어서자 헌병은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순간 사병 3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병들은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았다. 일제히 헌병에게 사격을 가했다. 순간 헌병 5명이 쓰러졌다. 아군끼리의 불행한 살육전이었다. 헌병들은 하는 수 없이 통제선을 열어주었다. 이에 사병들은 남쪽을 향해 패주의 길에 올랐다. 비극의 순간이었다.
<어머니와의 약속> p29

하지만 이러한 독전대의 역할은 매우 비인간적인 인권 침해라는 지적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선 독전대 개념을 폐기시켰다. 물론 헌병 등이 탈주병을 체포해 처벌하는 형태는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체포해서 군사 재판에 회부하는 형태이지 전선에서 잡자마자 즉결처분하는 형태는 아니다. 다만 북한 등 일부 독재 국가에서는 이런 독전대가 남아있다는 설이 있다.

창작물에서 이런 독전대가 등장할 때는 해당 군대가 매우 비인간적이고 정상이 아님을 강조하거나, 혹은 정상이라고 해도 독전대를 운용해야 할 정도로 전황이 막장 상황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높은 확률로 독전대의 대원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듯한 냉혹한 면모를 보인다. 다만 독전대 임무를 종료한 뒤엔 아군을 죽였다는 그 충격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PTSD를 겪고 정신줄 놓는 묘사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