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스라움

대서구 공영권(大西歐共榮圈)
유럽판 대동아 공영권

우리의 농민 인구의 증가는 동방의 슬라브 노동 계급자 무더기가 들이닥치는 것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 방어이다. 6백 년 전에도 그랬듯, 독일 농민의 운명은 슬라브 인종에 대항해 어머니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통해 독일인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늘려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 하인리히 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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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정부와 친위대 계획상에 있던, 레벤스라움을 포함한 대 게르만 제국(Großgermanisches Reich) 의 대략적 영역.그 와중에 포위당한 핀란드[1]

1 개요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란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독일의 팽창 정책이자, 아돌프 히틀러나치즘의 주요한 사상 중 하나다. 독일어를 직역하면 살 공간, 삶터, 생활권이라는 뜻이 된다.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이 처음 명칭을 제시하고 지정학의 권위자인 카를 하우스호퍼(Karl Haushofer)가 주창한 이론으로, 나치 독일의 확장/외교 정책의 근간을 이루었다. 요약하면 '독일의 영토를 넓혀서 독일 민족이 살 공간을 마련해야만 독일 아리아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 아리아 민족은 우월하니까.'라는 이야기.

레알폴리틱(Realpolitik), 안슐루스(Anschluss) 같은 독일사 용어처럼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 광기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인지 레벤스라움이라고 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관련 학과 수업에서 독일사를 배운다면 절대 번역하지 않는다. 영미 학계에선 번역하는 경우 Living space로 번역한다.

레벤스라움은 당시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대륙세력 계열 지정학 이론의 대가였던 할포드 매킨더의 '심장지역'(heartland) 이론과 유사한 개념이다.[2] 심장지역 이론은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를 차지하여 광활한 인구를 이주시키며 농지를 차지하고, 동서남북 전 방향으로 세력을 팽창하는 데 유리한 전초기지를 확보한다는 발상이었다.

2 히틀러 이전

역사적으로, 히틀러 이전에도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이미 중세부터 신성 로마 제국튜튼 기사단의 동부로의 영토 확장과 함께 동방식민운동(Ostsiedlung)이 일어났으며, 프리드리히 라첼은 1901년에 지리학적 서식지를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주는 한 요인으로 묘사하기 위해 인문지리학 용어로서의 레벤스라움을 만들었다. 라첼은 인간과 사회가 기본적으로 지리적 상황에 영향을 받고, 한 지역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회는 자연히 국가 영역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시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독일의 인구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넘쳐나는 독일인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해외 식민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의 군국주의 선전가들은 라첼의 레벤스라움 개념을 생활권을 위한 인종적 투쟁의 개념으로 발전시켰고, 다음 전쟁은 분명 독일의 인종적 우월성을 보호하기 위한 생물학적 필요가 충족되는 레벤스라움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전후 베르사유 체제에서는 카를 하우스호퍼와 그의 지정학 연구소가 레벤스라움 이론의 확립과 독일 민족주의에의 이용에 기여했다.

2.1 제1차 세계 대전

소련의 폐허 위에 동방의 독일 제국을 세운다는 히틀러의 장기 목표는 단순히 추상적인 소원에서 발한 비전이 아니었다. 1918년에 세워진 동방의 영토에서, 이 목표는 확실한 출발점을 가졌던 것이다. 동방의 독일 제국은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이미 현실이었다.

- 독일의 역사가 안드레아스 힐그루버(Andreas Hillgruber), 저서 <독일과 두 세계 대전(Germany and the Two World War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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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계획(Septemberprogramm)에 따른 독일 제국의 점령 목표(주황색)

제1차 세계 대전이 막 시작된 1914년 9월, 독일 제국 정부는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Theobald von Bethmann-Hollweg) 당시 총리가 비밀리에 지지하던 9월 계획을 공식 전쟁 목표로 제출했고, 그에 의해 전장의 승리를 거둔 뒤의 독일은 폴란드 서부 지역을 합병한 후 그곳에 독일계 개척자들을 보내고,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를 식민지화할 것이었다. 물론 전쟁에서 졌으니 지금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소련에서 독일에게 양도된 영토들

1918년 3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유럽 러시아의 많은 영토가 독일에게 양도되었다. 독일인들은 그 당시 레벤스라움이 거의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1918년 당시 최악에 빠진 서부 전선의 상황은 정부의 정보 통제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독일인이 동부에서의 승전보만 듣고 있던 채로 킬 군항의 반란 등의 사태가 일어나 독일이 항복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패전 이후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히틀러의 제1차 세계 대전 유대인 음모론과 팽창주의 선동에 넘어가게 되었다.

3 히틀러와 나치즘

나치즘에서 레벤스라움이라는 곳은 히틀러의 말대로라면 피와 돈에 굶주린 사악한 유대인 패거리가 열등 인류(Untermensch)[3]슬라브족을 지배하고 있는 동유럽을 말한다. 미텔오이로파의 장악이야 진작에 선결되어야 할 기본사양이고.[4]

히틀러의 계획대로라면, 유대-공산주의의 온상인 동유럽과 러시아를 쳐부수고 동유럽을 게르만 민족이 영원무궁히 발전할 수 있도록 곡창으로 개간한 뒤, 슬라브족을 게르만 민족의 노예로 삼아 번창하는 천년제국을 세웠겠지만... 알다시피 이 또라이 같은 계획에 눈에 먼 히틀러는(...) 소련을 침략하는 뻘짓을 자행하고 패망한다. 서유럽 국가들은 나치의 사상으로는 좀 더 인종적으로 적합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었기에, 대놓고 그곳에 레벤스라움을 확보한다고 떠들지는 않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어쨌든 레벤스라움이 되었겠지만.

실제로, 전쟁 중의 독일 정책인 게네랄플란 오스트(Generalplan Ost)는 '열등한' 슬라브인들을 사살, 추방, 노예화하고 레벤스라움을 이루기 위해 독일계 인구로 동유럽을 채우는 것이었다. 도시 인구는 기아를 통해 말살될 예정이었다.

정작 레벤스라움을 주창한 하우스호퍼는 훗날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소련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히틀러와 사이가 멀어졌고,[5] 후에 일련의 사건들[6]을 이유로 히틀러로부터 팽당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독일의 군사적 팽창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의 부인과 함께 자살했다고 한다.

4 기타

레벤스라움은 나치 침략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철저히 비판을 받았고, 지리학계에서도 흑역사로 취급되었다. 나아가 지정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침략자들의 사이비 이론'으로 매도되어 없어질 위기에까지 놓였지만, 얼마 안되어 냉전 시대로 진입하면서 다시금 지정학은 국제정치의 중요한 이슈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술적, 철학적으로 유명한 고흐의 낡은 구두 논쟁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고흐의 구두 그림에 늙은 아낙네를 상정함으로써 땅과 삶터, 근간에 대한 이 사상을 담았다고 해석된다.[7] 이러한 하이데거의 구두 그림 해석은 유대계에서 민감한 주제였으며, 유대인 은사의 영향을 받았던 마이로 샤피로가 은사의 유고 논집에서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반박한 토대가 되기도 했다.

영토 확장 이론은 파시즘 계열의 특징인지 비슷한 것으로 일본 제국대동아 공영권, 이탈리아 왕국스파치오 비탈레가 있다.

더 이른 시기에 나온 자매품(…)으로는 프랑스의 '자연국경론'이 있다. 대서양, 지중해, 피레네 산맥, 알프스 산맥, 라인 강은 자연이 프랑스에 내려 준 국경이며, 이 안쪽은 당연히 프랑스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루이 14세, 루이 15세는 과거의 베르됭 조약, 메르센 조약도 씹어먹고 수백 년 간 독일 권역의 영토였던 알자스-로렌 지방을 병합하였다. 이 지방은 이후 계속 프랑스와 독일 사이를 오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추축국의 패배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며 프랑스 영토로 남게 되었다.[8] 해당 지역에 대한 더 자세한 역사는 문서 참고.

5 매체에서의 모습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했다는 가정의 대체역사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레벤스라움이 이뤄진 후의 모습이 나타난다. 선전대로 독일은 엄청난 영토를 얻었지만 정작 그 생활권이라는 것은 구 폴란드나 소련의 잔당들의 지속되는 테러와 척박한 환경 때문에 아무도 가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레벤스라움으로 이주할 경우 정부 보조금도 주고 레벤스라움이 굉장히 살기 좋다는 선전도 하고 있지만 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며 가서도 고생을 하는 모양. 주인공이 가서 살지도 않을 생활권이 뭔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6 관련 문서

  1. 잘 알겠지만 핀란드는 나치 독일과 동맹국이였다.
  2. 매킨더의 라이벌격 인물로는 미국 해군대학 학장으로 해양력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알프레드 마한 제독이 대표적이다.
  3. 영어로 번역하면 Under-man.
  4. 제3제국의 관점에서 중부유럽최초의 게르만 제국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5. 하우스호퍼는 독일이 대륙세력으로서 영국, 미국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서는 역시 대륙세력인 소련과의 제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서는 독소 불가침조약과 이후 2년 동안 계속된 독일의 유럽 지배가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었던 것.
  6. 하우스호퍼의 제자인 헤스가 영국 관계자들과 접촉하는가 하면, 그의 아들은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했다.
  7. 실제로 하이데거는 나치 초기에 협력했다는 의혹을 받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8. 함규진, 『조약의 세계사』(미래의창, 2014), 61-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