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렘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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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휴렘 술탄/Hurrem.jpg
Hürrem Sultan
1500~1558

Celis-i halvetim, varım, habibim mah-ı tabanım

Enisim, mahremim, varım, güzeller şahı sultanım

Hayatım hasılım,ömrüm, şarab-ı kevserim, adnim
Baharım, behçetim, rüzum, nigârım verd-i handanım

Neşatım, işretim, bezmim, çerağım, neyyirim, şem’im
Turuncu û nar û narencim, benim şem’-i şebistanım

Nebatım, sükkerim, gencim, cihan içinde bi-rencim
Azizim, Yusuf’um varım, gönül Mısr’ındaki hanım

Stanbul'um, Karaman’ım, diyâr-ı milket-i Rum’um
Bedahşan’ım ve Kıpçağım ve Bağdad’ım, Horasanım

Saçı marım, kaşı yayım, gözü pür fitne, bimarım
Ölürsem boynuna kanım, meded he na-müsülmanım

Kapında çünki meddahım, seni medh ederim daim
Yürek pür gam, gözüm pür nem, Muhibbi’yim hoş halim!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 빛나는 나의 달빛이여,

나의 목숨과 같은 벗, 나의 가장 가까운 이, 아름다움의 제왕인 나의 술탄.

나의 생명, 내가 살아가는 원인 되는 나의 천국, 천국의 강을 흐르는 나의 포도주여,
나의 봄날, 나의 즐거움, 나의 낮의 의미,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그림 같은 나의 사랑, 나의 미소짓는 장미여,

나의 행복의 근원, 내 안의 달콤함, 유쾌한 나의 잔치, 밝게 빛나는 나의 빛, 나의 불꽃.
나의 오렌지, 나의 석류, 나의 귤, 나의 밤의, 침실의 빛이여,

나의 식물들, 나의 사탕, 나의 보물, 이 세상에서 내게 고통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
나의 성자 유수프, 나의 존재의 이유, 내 가슴속 이집트의 귀부인이여,

나의 이스탄불, 나의 카라만, 나의 루멜리아의 마을과 대지들.
나의 바다흐샨이자 나의 큽착이자 나의 바그다드이자 호라산,

머리카락은 아름답고, 눈썹은 활과 같고,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나를 아프게 하는 연인이여,
설사 내가 죽더라도 그 이유는 그대 때문이리니, 나를 구해주시오 오, 비무슬림인 아름다운 나의 사랑.

그대의 문에서 계속 그대를 찬양하리, 그리고 노래하리.
사랑때문에 아픈 가슴을 지닌, 눈물이 가득 찬, 나는 무힙비[1]요, 행복하도다.

-쉴레이만 대제가 휴렘 술탄에게 바친 연애시.[2][3]

1 소개

오스만 제국의 황후[신데렐라][4]. 본명은 알렉산드라 리소프스카(Aleksandra Lisowska). 알렉산드라 라 로사(Alexandra La Rossa)로 불리기도 한다. 쉴레이만 1세의 황후이자 셀림 2세의 모후. 서방에서는 '록셀라나(Roxelana)'로 불린다. 또는 록셀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5] 이 두 이름은 슬라브인 여성 이름인 '루슬라나(Ruslana)'에서 따왔다는 설과 '러시아 여자'라는 명칭에서 비롯되었다는 두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휴렘 술탄이 우크라이나 출신이기는 하지만 휴렘의 고향은 러시아보다는 폴란드쪽 영향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아랍에서는 카리마(كريمة, Karima), 혹은 후람(خُرَّم, Khurram) 술탄으로 부르기도 한다.

2 생애

본래 터키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로하틴[6] 출신으로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황후와는 거리가 먼 출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1520년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타타르족에게 포로로 붙잡혀 노예가 되어 크림 칸국의 궁정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또 다시 오스만 제국하렘으로 보내졌다. 그 당시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술탄이었던 쉴레이만 1세의 눈에 띄었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휴렘에게 반한 쉴레이만 1세는 알렉산드라에게 '휴렘'[7]이라는 호칭을 내리게 되고 술탄의 아이들을 낳게 된다.

당시 쉴레이만 1세는 마히데브란 술탄(Mahidevran Sultan)[8]과 귈펨 하툰(Gülfem Hatun)[9]이라는 두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자식을 본 상태였고 특히 마히데브란에게서는 무스타파라는 아들을 둔 상태였다. 무스타파는 쉴레이만의 후계자로 낙점되어 있었지만 쉴레이만은 마히데브란이 아닌 휴렘을 황후로 맞이하였고 정식으로 결혼하여 '술탄의 배우자'라는 사실을 공표한다. 휴렘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10] 그러니까 쉴레이만 1세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 하렘의 모든 여성들(황자를 낳은 여자도 예외없이)은 다른 나라의 왕비, 황후들 처럼 임금의 사랑을 받고 그 나라의 국모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라 파디샤(황제)에게 순종하며 제국의 대를 잇는 혈통을 낳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휴렘 술탄은 이런 관례를 깨고 오스만 제국 최초로 술탄과 정식으로 결혼을 했으며 황후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마히데브란이 아닌 휴렘을 사랑했던 이유는 마히데브란은 단순히 술탄에게 순종적인 여성이었지만 휴렘은 성직자의 딸이었기에 어린시절부터 교육받을수 있어서 매우 지혜로웠고 술탄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지적인 여성이었다. 그 모습에 술탄이 반했다고 한다.

결국 쉴레이만 1세는 술탄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제국의 관습을 깨고 휴렘과의 결혼을 선언했다. 황족들과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휴렘을 사랑했던 쉴레이만은 이 모든 반대를 무시하고 사랑하는 휴렘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몇년전에 있었던 제국의 대재상이자 쉴레이만 1세의 절친한 친구 이브라힘 파샤와 쉴레이만 1세가 가장 아꼈던 여동생 하티제(Hatice) 공주의 결혼식보다 더 화려한, 오스만 제국 역사상 손꼽히는 화려한 결혼식이었다고 한다.[11]

노예 출신 여성이 술탄의 총애를 받자 궁정 내부에서 많은 견제를 받았다. 그러나 승자는 휴렘이었고 궁정 암투끝에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황후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정적들을 절단냈는데 술탄을 두고 다투던 마히데브란을 지방으로 쫓아보내고 자신의 아들을 쉴레이만 1세의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하여 술탄의 후계자로 낙점되어있던 무스타파를 계략으로 죽인다. 무스타파의 편을 들던 쉴레이만의 최측근이자 오스만 제국의 재상이었던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şa)가 사형당하는데에도 그녀의 입김이 컸다.[12]

이렇게 궁중 내부에서 권력다툼을 주도하면서 정치에 개입을 하면서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을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13] 어찌보면 유럽인들의 구세주. 오스만 제국의 초중반기에 술탄의 자식들간의 황위다툼이 치열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인망이 높고 능력이 출중했던 무스타파를 죽인것에 대해서 비난이 많다. 쉴레이만 1세가 유럽과 페르시아를 정복하러 자주 이스탄불을 비웠을때는 술탄과 다름없는 권력을 쥐기도 했다. 성격도 신경질적이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쉴레이만 1세와 휴렘 술탄의 사랑만큼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쉴레이만은 휴렘을 오스만 제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정식 황후로 책봉했을 뿐 아니라 휴렘을 제외한 하렘의 어떤 여인도 만나지 않았을 정도. 휴렘 술탄과 유럽 원정을 나간 쉴레이만 1세 사이에 오간 편지들[14] 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휴렘은 쉴레이만에게 있어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쉴레이만과 휴렘은 술레이마니예 모스크에 함께 묻혔다.

무힙비. 네 아름다움의 꽃밭에서 종달새는 아침이 되도록 그렇듯 너를 찬미하고 있구나.

쉴레이만 1세는 아내를 이렇게 평가 했다.

이건 여담이지만, 휴렘 술탄은 어떤 의미에서 오스만 제국의 '관습 파괴자' 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황제의 공식 황후가 되었다는 데에서 이미 관습 하나가 깨진 것이고, 황제로부터 평생 자신의 곁에 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 역시 관습 파괴. 장남이 황위를 계승하는 법이 없었던[15] 오스만 제국에서는 황태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예외없이 지방 총독으로 내려보내 자질이 어떤지 알아보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이때 황태자의 모후(황제의 입장에서는 첩)도 황태자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 황태자가 황위에 오른 뒤에야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갈 수 있었다.[16]

이스탄불에는 그녀가 후원하여 만든 하세키 휴렘 술탄 하맘(Haseki Hürrem Sultan Hamamı) 이라는 터키식 목욕탕 건물이 있다. 오스만 제국 시절 유명한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오스만 제국 시절 하맘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아야 소피아 인근에 있는데 오늘날에는 양탄자 박물관 겸 상점으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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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2세에게 보낸 편지

쉴레이만 대제와 휴렘 술탄, 휴렘의 딸 미흐리마흐 슬탄(Mihrimah Sultan)이 폴란드의 지그문트 1세와 지그문트 2세에게 보낸 우호 서신들은 그 내용과 서신의 장식미를 인정 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17]

3 평가

역사적으로는 술탄을 쥐고 흔들며 권력을 남용해 오스만을 말아먹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된다.
휴렘 술탄은 노예 출신이 황후가 된것 외에도 오스만 제국의 황후들중 최초로 술탄과 정식으로 결혼한 황후라는 사실도 유명하다. 그 이전의 술탄의 배우자들은 정식 혼인 관계가 아니었다.

오랬동안 제국을 망친 악녀, 총명한 군주를 유혹한 팜므파탈로 여겨져 왔지만 현대에는 동북공정에서 진회가사도를 재평가했듯이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재평가 되기도 한다. 가령 '술탄의 노예'에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끝에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주체적인 여성, 혹은 냉혹한 하렘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 알고보면 불쌍한 여인으로 보는 관점이라던가. 물론 이런 종류의 재평가는 일부를 확대 및 재해석하려 한 나머지 나라를 말아먹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판단은 알아서.

여담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황후들과 후궁들중에는 록셀란 황후와 같은 유럽출신들이 상당히 많다. 록셀란 이외에도 이탈리아, 보스니아, 프랑스 출신의 여성들이 오스만 제국 술탄의 배우자가 되었다.[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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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향인 우크라이나에는 휴렘 술탄의 동상이 세워져있을 만큼 꽤 위인으로 알아주는 듯. 그러나 폴란드에서는 휴렘은 폴란드계라면서 우크라이나의 이 동상을 꽤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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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나온 휴렘술탄 우표. 우측에 우크라이나어로 '록셀라나'라고 적혀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모스크도 있다.

4 각종 매체에서

노예에서 당시 세계 최강국의 황후가 된 드라마틱한 인생 덕분인지 일찍부터 유럽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각종 오페라, 그림, 음악등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장 쉴레이만 생전인 1561년에 프랑스의 작가 가브리엘 부냉이 <라 솔탄(La Soltane)> 라는 희곡을 썼는데, 이는 무스타파 황자가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휘렘 술탄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으로 프랑스 역사상 기독교도가 아닌 이교도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최초의 작품으로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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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독일 화가 안톤 힉켈이 그린 그림 '록셀라나와 쉴레이만 대제'

하이든의 교향곡 제63번 C장조에는 프랑스어로 '록슬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역시 이 황후를 가리키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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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4년 6월까지 방영했던 터키 사극 무흐테솀 유즈이을에서 진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자체가 휴렘과 쉴레이만 1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니 당연하다. 참고로 이 드라마는 유럽과 중동에서 인기가 엄청났다. 터키판 한류에 비견되었을 정도. 왼쪽이 휴렘 술탄. 오른쪽이 쉴레이만 1세. 자세한 내용은 무흐테솀 유즈이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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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하라 치에(篠原 千絵)의 만화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다. '알렉산드라'는 부모를 잃고 오스만 제국의 하렘으로 끌려온다. 특이하게도 쉴레이만 1세의 총신인 이브라힘 파샤가 알렉산드라를 술탄에게 바치지만 알렉산드라는 이브라힘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게 되고 이브라힘 역시 알렉산드라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저 위에 있는 살벌한 역사적 사실과는 상당히 다른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가 주목되는 부분.[20] 자세한것은 항목 참조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카트린 클레망의 소설 '술타나(La sultane)'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을 납치한 타타르족 청년과 친구가 되지만 이 청년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그 후 오스만의 하렘에서 쉴레이만이 처녀들을 간택하러 왔을때 휴렘은 쉴레이만의 눈에서 타타르족 청년의 모습을 떠올리고 미소짓는데 이 미소 덕분에 술탄에게 간택된다.

서양쪽 대체 역사소설에서는 쉴레이만 1세가 바람이 나 버리는데 그 상대가 술탄의 총신인 이브라힘 파샤이다. 쉴레이만은 이브라힘과 동성 결혼을 할것을 선언하고 휴렘은 버려지게 된다는 내용. 뭐야 이거 무서워[21]

노빈손 시리즈 중 '노빈손의 예측불허 터키 대모험' 편에서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 같은 이미지로, 권모술수에 능통하고 카리스마 있는 여인으로 등장. 노빈손 일행의 도움으로 아들 셀림을 황위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인 노빈손 일행이 셀림 왕자의 조력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노빈손 일행과 한편이지만, 악역 같은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롯사나'라는 이름의 NPC로 등장하며 이스탄불에 위치해 있다.

레드 소냐가 휴렘 술탄의 여동생이라는 설정이 있다.

  1. 쉴레이만 대제의 필명. 쉴레이만은 무히비라는 필명으로 몇몇 시를 썼는데, 무힙비라는 단어는 아랍어에서 온 단어로 '사랑에 미친 남자'를 의미한다.
  2. 가젤(Gazel)이라고 불리는 장르로, 엄격한 각운과 음보를 지킨다. 위에 낭독하는 영상도 있으니 들어볼것. 이전 문서에서 영어로 되어있다가, 오스만 터키어본과 현대 터키어역을 참고해서 옮겼다. 출처는 http://aysenozkaya.wordpress.com/2012/04/13/1072/
  3. 휴렘 술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터키 사극 무흐테솀 유즈이을에서 휴렘 술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편인 쉴레이만 1세에게 쉴레이만이 예전에 지었던 이 연애시를 다시 한번 들려달라고 부탁하고 쉴레이만이 읊는 시를 들으면서 세상을 떠난다. 영어자막 달린 해당 장면 동영상
  4. 오스만 제국은 멸망할때까지 황후라는 직위 자체가 없었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황후는 아니지만 쉴레이만 1세는 휴렘 술탄을 자신의 부인으로 여겼고 하렘 출신 여성으로서 전례 없이 황제와 결혼식을 올리는 등 여러면에서 타국의 황후와 유사한 대우를 받았다. 휴렘 술탄이 봉해진 하세키 술탄이라는 작위는 한국어로 옮기기에 적당한 말이 없지만 동양권에서 굳이 비슷한 작위를 찾아보면 황귀비(皇貴妃) 정도에 가깝다.
  5. 사실 한국에서는 휴렘 술탄이라는 이름보다는 록셀라나와 록셀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6. 당시에는 폴란드 영토. 우크라이나 일대를 이 당시에는 '루테니아'라 불렀다.
  7. 페르시아어로' 즐거움'을 의미.
  8. 캅카스알바니아 출신으로 추정.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쉴레이만은 그녀를 '귈바하르(봄장미)'라고 불렀다.
  9. 이쪽의 비중은 그냥 공기(...)로 보면 된다. 그도 그럴게 귈펨이 낳은 유일한 왕자는 천연두에 걸려 어린 나이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10. 표면적인 이유는 황제(파디샤)는 알라의 대리인인데 감히 인간 여성이 신의 대리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물론 이건 표면상의 이유고 근본적인 이유는 혹시 모를 외척의 세도를 막기 위해 황제가 결혼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대책을 강구했던 것이다.
  11. 오스만 역사가들은 이 결혼식을 흑역사 비슷하게 여겼던지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오스만 제국에 있던 베네치아, 신성로마제국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은 쉴레이만 - 휴렘 부부의 성대한 결혼식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출처 :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 앙드레 클로 저)
  12. 이전 버전까지에는 여기에 이브라힘 파샤에 대한 각주가 길게 달려 있었으나, 항목이 새로 개설된 관계로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고하시기 바람.
  13. 이후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보면, 이전과는 달리 술탄은 장식에 불과하고 재상이나 모후, 또는 황후가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장면이 한동안 계속된다. 물론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황후가 정계에 발을 들인 최초의 예가 휴렘 술탄이라는 것은 사실.
  14. 몇통 남아있는 편지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남편의 승리에 대한 찬미, 통풍에 걸린 남편의 건강 걱정, 꼽추였던 막내 아들 지한기르 왕자의 치료, 이스탄불 시민들을 위해 그녀의 이름을 내걸고 짓는 공중 목욕탕인 하세키 휴렘 술탄 하맘에 대한 이야기등이다.
  15. 이전까지는 황제가 죽으면 황태자들끼리 싸움을 벌여, 최후에 승리하는 자가 뒤를 이었다.
  16. 황태자가 황제가 못 되면, 평생 지방에서 썩어야 한다. 패자 부활전 같은 건 없고, 휴렘이 '내 아들을 황제로!' 를 목표로 종횡무진 활약(?)한 것도, 썩기 싫어서 바로 이 때문
  17. 폴란드와 오스만의 평화협정문과 부친상을 당한 지그문트 2세에게 보내는 위로 편지 등.
  18. 프랑스 출신으로 알려진 나크시딜 술탄은 수녀원에 가려다가 바르바리 해적에게 납치되어 이스탄불로 보내지게 되었으며 나폴레옹의 황후였던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사촌으로 알려져 있지만 근거가 불명확하다.
  19. '상당히 많다' 가 아니라, 95퍼센트 이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휴렘 술탄이 노예에서 해방되어 정식 황후가 된 데에서 알 수 있듯 제아무리 황제의 후궁이라고 해도 사회적인 신분은 노예에 불과했는데, 이슬람권에서 같은 무슬림을 노예로 삼는 것은 금지였기 때문. 그렇게 되면 황제의 후궁은 기독교도 가운데에서 데려올 수밖에 없고(물론 오스만 제국 초창기에 정략결혼한 적도 몇 번 있다), 그 말은 유럽인을 데려온다는 거나 마찬가지.
  20. 그런데 휴렘 술탄과 이브라힘이 알고보면 몰래 사랑하던 관계라는 식의 소설이 일찍부터 나오긴 했다.
  21. 실제로, 당시 '황제랑 재상이랑 그렇고 그런 거 같음' 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물론 정말 그렇지는 않았지만, 항상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는 사이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