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츠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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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검증 사진

宮崎 勤 (1962년 8월 21일 ~ 2008년 6월 17일)
일본의 아동 연쇄살인범. 1980년대 말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 의 범인.

1 생애

지역 신문사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미숙아였고 손에 기형이 있어 손바닥을 뒤집지 못하는 장애 [1]로 인해 학창시절 집단괴롭힘을 당했다.

집안의 엄격한 분위기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본인을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그의 할아버지 뿐이었다. 대학교 시절 좋아하던 동급생에게 고백했으나 손을 뒤집지 못하는 장애로 인해 거절당했다. 이때 어린 소녀가 그를 위로해주었는데, 이때부터 어린 소녀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손을 뒤집지 못하는 장애로 인해 이지메, 그에 따른 사회부적응이 연쇄살인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2 행적

1988년 8월 22일. 미야자키는 사이타마현 이루마(入間) 시에서 4살의 소녀 콘노 마리(今野真理. 1984년생)를 납치해 살해했다. 그는 사후경직으로 인해 굳은 사체에 사체등오욕죄을 하였고 이를 비디오로 찍었다. 이러한 행위를 한 까닭에 대해 처음 간이감정 문진기록에서 그는 "아무래도 2차원보다는 3차원이 좋았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1차 감정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최후 피고인 질문에서는 "갑자기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며 오락가락했다. 그는 사체의 일부분을 절단해 벽장 안에 보관했고 남은 신체 부위는 도쿄 도 이츠카이치쵸(현재 아키루노시)의 숲에 버렸다.

1988년 10월 3일. 사이타마현 한노(飯能) 시에서 소학교 1학년 소녀 요시자와 마사미(吉沢正美. 1981년생)를 납치, 살해, 곧바로 시간을 저질렀다. 동기에 대한 공술조서에선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스릴이 있었다" 고 했다가 1차 감정에서는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시신이 경련을 일으켰다는 진술도 했다.

1988년 12월 9일.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 시에서 4살 소녀 난바 에리카(難波絵梨香. 1984년생)를 납치, 살해한 뒤 시신을 숲에 버렸는데 12월 15일. 에리카의 시체는 나체로 발견된다. 12월 20일. 죽은 에리카의 부모의 집에 엽서가 도착했다. 엽서에는 "에리카, 추위, 기침, 목, 휴식, 죽음" 등 소녀의 살해 당시의 정황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 잡지에서 잘라낸 활자로 적혔다. 부모가 사체라도 찾아 다행이라고 말한 걸 TV에서 본 그는 다른 소녀들의 사체도 부모에게 보내려고 계획하나[2] 요시자와 마사미의 사체는 회수하지 못했다.

1989년 2월 6일. 콘노 마리의 집에 골판지 상자가 배달되었는데 콘노 마리의 것으로 보이는 뼛조각, 치아, 문서가 발견되었다. 문서에는 "마리의 뼈, 불태움, 감정, 증명" 이라고 쓰였다. 이 뼛조각, 치아는 산에 버렸던 콘노 마리의 시신을 회수한 다음 화장하고 남은 것이었다. 2월 10일에는 이마다 유코라는 가명으로 아사히신문 도쿄 본사에 아이를 유산해 그로인한 스트레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범행 성명을 보냈다. 그는 이러한 가짜 범행 성명을 11일 콘노 마리의 집에 3월 11일 요시자와 마사미의 집에 보내 수사에 혼란을 주려고 했다.

1989년 6월 6일. 도쿄 도 고토 구에서 5세의 소녀 노모토 아야코(野本綾子. 1983년생)를 납치, 살해했다. 그는 소녀의 시신 일부분을 훼손해 직접 먹기도 했다. 11일 무참히 난도질당한 노모토 아야코의 사체가 공동묘지에서 발견되었다.

미야자키의 정신나간 범죄 행위는 1989년 7월 23일 도쿄도 하치오지(八王子) 시에서 또 다른 소녀를 성폭행하려고 하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제압당해 현행범으로 붙잡히면서 종결되었다. 경찰 조사에서 미야자키는 과거에 저지른 모든 범죄 행위를 자백했다. 그가 범행을 자백한 지 하루만인 8월 10일 마지막 희생자인 노모토 아야코의 머리가 발견되었으며 9월 2일 검사가 기소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후 미야자키 츠토무가 시신을 묻은 장소를 안내함에 따라 9월 6일 첫번째 희생자 콘노 마리의 손발이, 9월 13일 요시자와 마사미의 사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조사 결과 그는 소녀를 살해할 때마다 집에 짚인형을 두고 방을 어둡게 한 후 머리에 머리띠를 두르고 양초를 여러 개 켜고 검은 옷을 입은 채로 손을 위 아래로 휘저으며 죽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활의식을 벌였다고 한다.

당초 범행 일체를 자백했던 미야자키는 공판이 시작되자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다중인격의 경우 정신이상자이므로 형사책임을 물지 못했고 이곳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자주 벌인 점이 고려되어 그가 진짜 다중인격인지의 여부가 재판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1990년 3월 도쿄 지방법원에서 시작된 심리는 판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중 절반은 두 차례에 걸친 미야자키의 정신 감정에 소모되었다.

1차 감정결과 '극단적인 인격적 편향(즉, 인격장애)' 으로 정신장애는 아니며 완전한 책임 능력이 인정되었으나 2차 감정의 경우 '다중인격' 과 '통합실조증' 으로 책임 능력이 일부 부정되었다. 이 경우 심신미약으로 분류되어 사형 선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법원은 1차 감정 결과를 수용했고 1997년 4월 4건의 아동 유괴살인 혐의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이에 변호인측은 재감정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었다. 10회에 걸친 피고인 질문을 실시한 끝에 2001년 6월 28일 도쿄 고등법원은 미야자키의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 이에 같은 해 7월 10일 상고를 하지만 2006년 1월 17일 최고재판소 역시 상고를 기각, 변호인 측이 판결 정정을 요청하였으나 2월 1일 기각하며 사형 판결을 최종 확정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2008년 6월 17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1994년에는 츠토무의 아버지가 그의 죄를 책임지겠다는 이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거에도 일본에서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살인 사건은 존재했고 이런 사건으로 인해 사형당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미야자키가 부각된 가장 큰 이유는 살해된 어린이만 무려 네 명인 데다가 범행 동기가 돈, 성범죄 등이 아닌 네크로필리아라는 특이한 점. 바로 언론에다 자신을 잡아보라는 도전장을 보내고 피해자의 부모에게 딸의 신체 일부를 보내는 제정신이 아닌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에 이례적으로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에 동원했다(프로파일링이 일본에서 최초로 쓰인 사건이다).

특이점으로 수감생활 중 잡지「창」편집부와 주고받은 서신을 묶어 다음 두 권의 저서를 냈다.

  • 꿈 속 - 연속 유녀 살해 사건 피고의 고백 -1998년 12월 창출판(ISBN 9784924718302)
  • 꿈 속, 지금도 - 연속 유녀 살해 사건 전 피고의 고백 - 2006년 2월 창출판(ISBN 9784924718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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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행의 종말과 후폭풍

검거됨과 동시에 전국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그의 집에서는 5763개의 비디오 테이프가 있었으며 그 안에 높은 수위의 호러 영화와 로리콘 성인물 몇 편이 있었던 것이 밝혀지자 언론이 대대적으로 오타쿠=잠정적 범죄자란 등식을 사용해 비난받았다.

예를 들어 한 여성 아나운서가 코믹마켓 입장대기줄을 향해 "이곳에 수많은 미야자키 츠토무가 있습니다" 라며 츠토무를 비난하는 내용을 방송했다는 도시전설이 퍼졌을 정도. 당시 언론 보도가 대단히 비판적인 것은 사실이고 이런 방송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지만 일본의 오타쿠들도 이런 방송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현재까지도 도시전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 TBS의 인기 아나운서 쇼오지 노리코가 코믹마켓을 취재하면서 "이곳에 10만 명이나 되는 미야자키 츠토무가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가이낙스 창설 멤버인 오카다 토시오가 쓴 "마지메나 이야기" 1998년 글에 실렸고 동일 이야기가 2003년 신죠샤에서 나온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이라는 책에도 동일하게 기재되었으므로 단순히 도시전설이라고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일방적인 주장·경험담이며 무엇보다도 증거가 없다. 특히, 간판 아나운서가 취재까지 했다는데 촬영한 기록도 없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망상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미야자키 츠토무의 신상이 유포되어 그의 두 여동생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파혼했으며 사건에 분노한 사람들로부터 편지와 전화로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본가는 물론이고 친가, 외가 친척들에게까지 사건의 여파가 미쳐 직장에서 퇴사하거나 이혼하는 등 그야말로 두 가계가 풍비박산이 났다. 흉악범 신상 공개를 신중하게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흉악범 본인이야 어쨌든 자업자득이라고 쳐도 가족들에게는 보통 죄가 없기 때문이다. 미야자키와 같은 이름이나 닮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전국의 오덕들과 독신 남성들이 괴물 취급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미야자키 츠토무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큰 후폭풍이 불었다. 한국에서도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흉악범죄인이 언론에 뜨면 그 범죄인과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개명을 하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미 인생 종친 중범법자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지는 않았으니 대중의 복수심만 충족시켰을 뿐 특별한 효과는 보지 못했다.

미야자키 츠토무 이전에는 일본의 오타쿠라는 존재는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이긴 했지만 세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존재가 언론에 소개되지 않다 이 사건 덕분에 가장 최초로 소개되었다. 일본의 오타쿠들이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기에는 근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이것은 언론의 설레발이 작용한 점도 있는데 당시 기자의 고백에 따르면 미야자키 츠토무는 단순한 오타쿠이자 네크로필리아로서 5000여편의 비디오 중 문제가 될만한 건 40편 정도로 전체의 1%도 안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성 가져서 뻘쭘하실듯의 애니메이션이나 도카벤 같은 장편 야구 애니메이션의 TV 녹화 비디오였다고. 그보다는 살해 후의 시체를 촬영하여 수집한 비디오들 속에 숨겨놓으려 했다는 점에서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규범 의식의 부재가 범죄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실제 의사들의 감정 결과는 소아성애자는 아니며 노린 대상이 어린 아이들이긴 하지만 그냥 범행 대상으로 삼기 쉬워서 고른 것이라고 한다.[3] 결국 사회적 멸시에 그의 뒤틀린 인간성이 더해져 사람 자체가 심각하게 비뚤어졌기 때문에 아동 연쇄살인이라는 사상 초유의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지 그가 수집한 작품들의 영향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소견 결과가 나왔기에 재판부의 사형 확정이 오히려 더 쉽게 내려진 측면도 있기는 하다. 차라리 페도필리아였으면 소아성애 때문에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들어 감형을 노릴 수 있었지만 페도필리아가 아니기에 더더욱 엄벌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4 기타

이 충격적인 사건은 일본의 미스테리 소설이나 관련 매체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살육에 이르는 병 등이 있다. 일본의 추리 소설가 누쿠이 도쿠로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통곡' 으로 데뷔했다.

그가 남긴 말 중 지금도 세간에 널리 쓰이는 말로는 '역시 2차원으론 안돼, 3차원이 좋아'(...) 등이 있다.

재판 도중인 1994년 미야자키의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대신한다며 투신자살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미야자키는 이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가 그렇게 되어 속이 시원합니다" 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만약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자녀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저 녀석을 옹호할 생각은 아니지만 충분히 꼴 좋다 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대다수다.

재판 내내 "깨지 않는 꿈 속에서 했던 느낌", "쥐인간이 나왔다" 는 말을 했고 자신이 발언하지 않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등 재판에 관심도 주지 않았다.

사건의 영향으로 미야자키 츠토무도 미야자키 츠토무의 가족도 풍비박산이 났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해 죽어라,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편지가 쇄도했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많았던 재산도 처분했다. 아버지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형제와 자매들은 하던 일을 포기했고 은거했다. 상당한 규모였던 자택도 팔았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았다.

한국에선 이 사건을 MBC 실화극장 죄와벌에서 다루었고 미야자키 츠토무는 방영 당시 토모야라는 가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오타쿠 문화가 정착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가 오타쿠였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지 않고 선천적인 손의 장애, 그로 인한 이지메와 함께 여자들에게 당한 무시, 엄격한 집안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범죄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가택수사를 통해 음란물을 수집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2003년 방송하던 시기는 미야자키 츠토무의 정신 감정 중이라서 그런지 다중인격설을 어느 정도 반영해 할아버지 흉내를 내는 그의 모습이 등장했다. 그리고 재연배우 이중성(현재는 이수완으로 개명)씨가 미야자키 츠토무를 연기했는데 나중에 그는 츠토무보단 천공교편의 이호섭 연기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참고로 둘 다 정상보다 약간 모자란 캐릭터였다. 마지막에 변호사(이성용씨가 연기)가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사과하자 츠토무 자신은 이렇게 죽냐며 말하다가 갑자기 할아버지 목소리로 횡설수설한다. 그러자 교도관이 머리를 때리며 변호사에게 이 자식은 교도소에서 맨날 이런다며 속지 말라고 한다. 변호사는 벙찐 표정을 지으며 끝.[4] 사족으로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꿈속의 살인인데 위에 상술한 미야자키 츠토무가 옥중에서 낸 2권의 저서에서 따온 듯 하다.

비슷한 사건으로 2004년 아동 납치 살인죄로 2013년 2월에 처형된 코바야시 카오루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제 2의 미야자키 츠토무라는 망언을 늘어놓았고 사형 확정 이후 바로 집행되지 않았고[5]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로 이 말을 들은 미야자키 츠토무는 "정신 감정도 받지 않은 자가 제2의 미야자키 츠토무 운운하지 마라" 고 반박하기도 했다. 코바야시 카오루는 명백한 소아성애자였지만 미야자키는 소아성애자가 아닌 네크로필리아였고 이전에도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질은 다르지 않지만 살인 동기가 다르다. 물론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2008년 검찰청 사형집행명령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간수장에게 마지막 남긴 말은 "아직 못 본 비디오가 있는데 말이지." 였다고 한다. [6]

미야자키 츠토무에 대해 형사 책임 능력 판단을 위한 정신감정에 참석한 의사가 정신감정에 대해 자세히 쓴 책이 번역되었다.
와다 히데키의 다중인격(이준석 옮김, 학지사) ISBN9788975489921

5 유사 사건

  1. 전문 용어로는 요척골유합증이라고 하며, 팔목과 팔꿈치를 잇는 2개의 뼈의 일부 또는 전체가 붙어 있어서 손바닥이 하늘을 바라보도록 회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희귀한 질환.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손등으로 세수를 할 수 밖에 없기도 하며,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증이기 때문에 수술로 뼈를 강제로 분리시켜도 곧 조직이 재생된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이상 물리치료만 하고 수술은 권장하지 않는 것이 중론. 징병검사에서도 정도에 따라 보충역, 제2국민역 판정을 주는 질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행되는 도중 촬영된 사진에서는 손등으로 세수하는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2. 이 때문에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던 것. 정상인이라면 오히려 겁을 집어먹고 더 철저하게 숨기거나 은폐하려 해야 정상이다.
  3. 보통 아동 성범죄나 유괴살인이 발생하면 소아성애자의 범행이라고 여기기 쉬운데 실상은 정상적인 성의식을 가진 인간이 일부러 아동을 고르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며, 오히려 선천성 페도필리아는 이런 범죄자들 중에 소수에 속한다.
  4. 방송 당시 2004년이었고 최종 사형 집행년도는 2008년이었기 때문에 대법원 상고까지의 내레이션까지만 나오고 사형 집행장면까지는 방송되지 않았다.
  5. 원래는 사형이 확정되면 6개월 이내에 집행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바로 집행하지 않으며 높으신 분들이 특별히 재촉하지 않는 이상 수 년은 기다려준다. 혹시라도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고(실제로 누명을 쓴 게 의심되어 집행을 보류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6. 사형수 전문 인터뷰어인 저널리스트 오즈카 노타카의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