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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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 라틴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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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목록
극장판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1986)이웃집 토토로 (1988)반딧불이의 묘 (1988)마녀 배달부 키키 (1989)
추억은 방울방울 (1991)붉은 돼지 (1992)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94)귀를 기울이면 (1995)
모노노케 히메 (1997)이웃집 야마다군 (1999)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고양이의 보은 (2002)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게드전기 (2006)벼랑 위의 포뇨 (2008)마루 밑 아리에티 (2010)
코쿠리코 언덕에서 (2011)바람이 분다 (2013)가구야 공주 이야기 (2013)추억의 마니 (2014)
지브리 설립 이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파일:Attachment/반딧불의 묘/Grave of the Firefiles.jpg

火垂るの墓/Grave of the Fireflies

1 내용

1967년에 출간된 노사카 아키유키[1]의 단편 소설과, 1988년 개봉된 동명의 지브리제 애니메이션이 가장 유명하다. 2008년 4월에는 실사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감독은 애니메 명작동화 시리즈(빨간머리 앤 이라든지)와 추억은 방울방울 등으로 이름이 알려진 타카하타 이사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소규모 상영회에서는 반딧불의 묘가 아닌 '반딧불의 무덤'으로 번역되었다.

간략한 내용은 주인공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태평양 전쟁 중 겪는 피난생활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남매가 태평양 전쟁통에 군인이었던 아빠를 잃고 폭격에 엄마도 잃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무모하게 자존심을 세우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다. 알려진 것과 달리 주인공이 불쌍하게 나오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게 나온다. 사실 죽음의 직접 원인은 폭격보다는 친척의 집을 나오고 자존심 때문에 버틴 것이다.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반전 작품 같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 메시지는 일절 실려있지 않다' 고 했으나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누이가 둘만의 가정생활을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공생을 거절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모습이 현대에도 통한다고 해설하고 고등학생과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참고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그 시대, 미망인이 말한 것쯤은 특히 냉혹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이타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방공호로 옮겨살 것을 결심하고 세이타는 말한다. "여기서라면 아무도 없고, 세츠코와 둘이서 마음대로 할 수있다." 그리고 생각없이 '순수한 가정'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수 없으니까 세이타는 세츠코를 죽게 만들었다." - 아니메쥬 1988년 5월호. 타카하타 감독 인터뷰에서 [2]



미국판 DVD에 수록된 타카하타 감독의 인터뷰 영상.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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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등장인물

  • 세이타 : 1931년생으로, 이 만화/소설의 주인공. 아버지는 일본 해군 고위 장교로, 과거 회상씬이나 숙모의 말로 비추어 볼 때 원래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습을 피해 어머니랑 니혼마츠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마을 회관(임시대피소)에서 재회한 어머니는 3도 화상을 입었던 상태였던 탓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세츠코와 니시노미야에 있는 숙모님네 집으로 향한다. 거기서 숙모네 가족에게 모진 대우를 받으며 살다[3] 근처 방공호에 가서 산다. 처음 며칠은 남매끼리 행복하게 살지만, 있는 재산이 완전히 떨어지고 거지꼴이 된다. 돈이 다 떨어진 뒤 갖고 있던 물건들을 팔아 연명한다.[4] 도둑질을 하다가 들켜서 죽도록 얻어맞고 경찰서에 가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세츠코마저 영양실조로 떠나보내고 만다.[5] 세츠코가 죽은 이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산노미야역에서 부랑아로 생활하게 되었다. [6] 수중에 있던 돈은 바닥난 지 오래되어서 부모님의 유품과 신고 있던 신발과 옷을 역 근처 암시장에 팔아치운다. 그렇게 얼마 동안은 먹을 걸 구할 수 있었지만 갖고 있던 물건이 다 떨어진 뒤에는 거지나 다를 바 없게 된다. 결국 산노미야역 구내에 눌러앉아 비참하게 살아간다.7,000엔은 어디로[7] 이미 갖고 있던 돈이 다 떨어진데다가 부모님의 유품과 옷가지까지 다 팔아치운 뒤라 먹을 걸 구하지 못해 굶주리는게 일상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이 거지꼴의 세이타와, 역시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고 간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8] 여기에다가 제대로 먹지 못해 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영양실조로 인한 지독한 설사까지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그냥 기둥에 기댄 채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9] 그러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인한 전신쇠약으로 객사하고 만다. 성우는 김일
  • 세츠코 : 1941년생으로 작중에서 히로인이라고 봐도 될 듯. 오빠인 세이타를 따라다닌다. 울보인 듯하며 어머니가 죽었다는 걸 모른다.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유골함이 클로즈업된다. 그러다 결국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만다. 향년 4세. 성우는 김서영
  • 어머니 : 세이타에게 세츠코를 맡기고 니혼마츠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을 직격으로 맞게 된다. 나중에 대피소에서 본 어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10]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고생하다 결국 얼마 안 되어 사망하고 만다. 사망 후 파리 떼와 구더기가 끓는다. 세이타의 언급으로 봤을 때 원래부터 심장이 약했던 듯. 그녀의 유골함은 세이타가 들고 다닌다.
  • 아버지 : 함선도 지휘하는 나름 높은 일본 해군 장교인 것 같으나, 비중은 공기(…). 하지만 회상에선 꼭 나온다. 전쟁 중 전사.
  • 숙모님: 왜인지 천하의 개쌍년이라고 서술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를 구타하기는커녕 특별히 학대한 적이 없다. 남매의 어머니가 입던 기모노를 팔아버린 것도 잘 보면 자기 옷도 같이 판 것. 남매를 은근히 구박하면서도 밥을 다 준다. 오히려 주인공 가족이 남긴 돈[11]을 가로채지도 않았고, 남매가 독립하려고 하자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였는지 남매를 붙잡지는 않고, 애당초 진심으로 걱정했으면 뒹굴거리는 세이타에게 돈 벌어오라거나 잔소리는 할지언정 다른 친척들에게 가라는 식으로 비아냥대진 않았을 거다. 물론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숙모의 행동 중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건 맞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남매들하게 잘 대해줬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이러나저러나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눈칫밥을 먹여도 할 말 없는 얹혀 사는 입장이라도, 애들 엄마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너무 대놓고 짐덩어리 취급이 심하긴 했다. 딱히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닌, 그냥 그 시기 보통사람으로 보면 된다.[12]
  • 친척 형: 근처 공장에 다니는 형. 딱히 싫은 소리는 안 한다.
  • 친척 누나: 학교에 다니는 누나. 세츠코의 신발을 사주고, 오빠와 마찬가지로 세이타 남매에게 큰소리는 하지 않는다. 형보다는 세이타 남매를 걱정하는 듯한 말도 한다.[13]
  • 아주머니: 폭격당시 대피했던 마을 회관에서 만난 아주머니.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랑 친분이 있는듯. 잠깐의 등장이지만 남매를 걱정하기도 하고 챙겨준다.
  • 농부 아저씨: 세이타 남매에게 반찬거리 등을 파는 아저씨. 세이타 일가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없는 형편에도 찬거리, 식량 등을 팔아주었다.
  • 가게 주인: 세이타 남매에게 기타 가재용품 등을 팔아준다.
  • 숯가게 주인: 세츠코가 죽었을 때 세이타에게 숯을 만들어서 준다.
  • 밭 주인의 형: 세이타가 배고픔에 밭의 농작물을 훔치자, 세이타를 빈사 직전까지 패서 경찰서로 끌고 갔다. 그러나 순사에게 폭력죄가 더 크다는 말을 듣고 도망치다시피 경찰서를 나온다.
  • 나이 든 순사: 세이타를 변호해 준 순사. 세이타를 타일러주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 행인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역전 기둥에 앉아 있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 맨발에 남루한 옷을 걸친 세이타와 다른 전쟁고아[14]들이 역에서 거지꼴로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미군들이 보면 안 된다, 더럽다, 등등 말을 하면서 지나간다.
  • 역무원들: 세이타가 죽은 뒤 등장. 역 바닥을 청소하다가 아사한 세이타를 발견하고는 부랑아가 또 죽었다고 한다.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들이 역 구내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한다.[15][16] 이후 세이타의 옷을 뒤지다가 세츠코의 유골이 담긴 사탕통을 발견, 그냥 던져버린다.
  •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는 소년: 세이타가 영양실조로 죽은 뒤에 역무원들이 세이타의 유품을 뒤지다가 발견한다. 아마도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인지 기둥에 기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며, 역무원이 다가가서 잠깐 보더니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이제 글렀다고 한다.[17]

3 원작과 작가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自傳)으로 실제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었던 체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 덕에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주의가 더 강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참고로 노사카 아키유키는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인해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를 잃고, 이어서 피난을 갔던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로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노사카 아키유키는 살아남아 방황하다가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노사카의 다른 단편중에는 '고추잠자리'도 있는데 이게 일각에 도시전설처럼 와전되듯 알려진 "카미카제대원이 훈련기 몰고 자폭하려다 콕핏에 앉은 벌레를 보고 순간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적함까지 갈 남은 연료를 무인도 가는 데 써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뒤로 그뒤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 이라는 일화의 원전이다.

무엇보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던 인물이었다. 고이즈미나 아베 등의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에서는 "이 나라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시기로 다가가고 있음이 확실하다."라는 섬뜩한 경고까지 남겼다.

4 피해자 행세물이라는 관점

주인공의 대사 중 "무적의 일본 함대"라는 대사가 있다거나, 군가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이 스스로를 피해국가로 인식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만든 홍보성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1990년도 당시 9시 뉴스에서 우익 애니메이션이라고 맹비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 더빙하여 방영하였다...

참고로, 주인공들이 '무적의 일본 함대~'어쩌구 하는 대사를 하는 이유는 작중 주인공들의 아버지가 일본군 해군의 순양함(타카오급 중순양함 마야) 함장이기 때문. 때문에 아버지가 다칠 리 없다는 일종의 허황된 믿음에 의지하며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그런 탓에 한국에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평에 따르면 영화 자체에 일본인=피해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으며, 관람자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전염시키고, 아주 감동적이기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수탈 받은 피해자가 옆에 있는데 침략국인 일본이 마치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작품이라는 게 비판론의 주된 요지. 일부 감상문에서는 어느 주부가 자신의 딸이 "일본인 아이들이 불쌍하다"라는 말에 경악을 했다고 한다.

즉, 감독이 의도한 주제와는 별개로 등장인물을 어린 아이들로 설정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고집과 어리석은 행동들은 구일본제국을 상징하며 이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측은함과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자존심 하나 지키려다 자신은 물론 어린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보면서 주인공을 어리석고 끔찍한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보단 어떻게든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여동생과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전범국에서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이 작품이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 외에도 작품의 외적인 부분, 즉 반딧불의 묘를 이용하는 방법이 문제라는 의견이 있다. 일본의 매년 8월은 원폭 희생자를 추도하는 달이며 8월 15일은 종전 기념일이다. 매년 8월 즈음에는 반딧불의 묘를 방영할 뿐 아니라 <소년A> 나 <24개의 눈동자>같은 전시를 살아가던 일반인의 시점을 다룬 작품들을 방영한다. 당시 폭주하던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범국의 국민들이 '자신들도 피해자' 라고 오판하기 충분한 내용들이며, 이는 의도한 바이기도 한 것이 그들에게 8월은 피해자 추모의 달이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를 침공했지만 우리도 같은 피해자라 주장하고 패전했지만 종전이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런 것을 주변 아시아 국가에 좋게 볼 수가 없다.

4.1 다른 관점의 해석

그런데 정작 작품 자체를 보면 극우나 일본의 피해자 행세와 거리가 멀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 남매가 죽는 직접적인 원인인데,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을 나와서 죽은 것이다.(...) 친척 아주머니는 주인공 남매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매 가족의 재산을 약탈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의 기모노를 판 것뿐인데 당시엔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 안 팔면 뭐 어쩌라고? 오히려 당시 남매 가족의 재산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자립을 하고 꽤나 쌀밥을 먹으며 버틸 만큼 상당했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는 주인공이 자립하려 할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남매가 안 보는 데서만 보여준다는 것에서 이 아줌마가 본심으로는 주인공을 걱정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주인공 남매는 아주머니를 자신을 구박하는 적으로만 보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워 집을 떠났다가 죽었다.

감독 자신도 극우가 아니다.[18] 타카하타 이사오는 '헌법 9조의 회' 결성집회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이 전쟁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던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반전 요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소수의 일본 국민들은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며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평화헌법을 옹호하였다. 게다가 해당 내용을 한국 블로거가 번역해서 게시해도 되는지 문의하자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소리를 자신이 평소 해왔는데 그 내용도 첨가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할 정도. 저 코멘트에 따르자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반딧불의 묘는 불완전한 반전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 논란이 있는 영화이며 외적으로 오용되지만 나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는 작중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당시 일본 국민과 지배층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도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 작품을 꼼꼼히 보면, 주인공 남매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44년에 설탕 절임 복숭아를 먹었다거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바리바리 싸간 것이 버터, 치즈, 기모노, 피아노(!)처럼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치품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불쌍하게 여기라고 만든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주인공 남매가 겪은 고난과 빈궁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평균적인 상황과는 좀 다르다. 폭격을 피해 시골로 소개되어 내려간 후, 친척 아주머니에게 천대받기 싫다는 여동생의 징징거림에, 아직 어린 오빠가 빡쳐서 우린 독립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상황이었던 것. 이 경우 문제는, 남매의 가출은 곧 토나리구미(隣組)를 비롯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편성된 식량 배급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암시장에서 식량을 사 와서 남매끼리 재미있게 살았지만, 돈이 떨어지고 전쟁의 격화로 암시장 자체가 붕괴하면서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어 굶어죽게 된 것이다.

결국 이는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오빠가 판단력이 더 미숙한 여동생이 투정부리는 것을 적당히 달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여 친척집을 나가버린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2차대전 시작 이전에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서 여유로운 상황이었던 점이나, 미국, 영국 등 서구 열강이 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리잡은 일본에게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가했던 점, 그리고 일본이 그런 압박에 대해 정상적인 대응을 하는 게 아니라, 패배가 불가피한 전쟁에 돌입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여동생 세츠코는 일본 민중을 은유하는 것, 오빠 세이타는 일본 지도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후 일본이 겪은 고난은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발간 당시 '전쟁은 국가지도층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일본 민중은 오히려 지도층의 무모한 야욕에 희생되었을 뿐이다'라는 역사관이 유행하던 것이 비추어 생각한다면 결국 지배층은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고, 전후의 참상은 결국 일본 민중들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대가를 스스로 치룬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적의 일본 함대 운운하는 대사 역시 세이타의 시점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대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주인공(그리고 당시의 일본 대중)의 무지를 상징하는 대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쯤으로 묘사되는 친척 아주머니 역시,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리 나쁜 인물도 아니다. 어머니의 기모노를 대신 내다 팔아준다고 하더니 자기들에게는 고작 쌀 한 단지 주고 말았다고 남매가 서러워하는 부분도, 사실 암시장 거래의 위험성이나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절한 분배 비율에 대한 이견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기모노와 바꿔온 쌀 중에서 자기 가족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남들은 다 농사일이나 대피훈련 등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방에서 종이를 오리거나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여동생과, [19]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오빠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고...[20]

즉, 일본 입장에서는 가혹해 보이는 전쟁 전 미국의 요구도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당성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 협상도 가능하던 것이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태도가 마치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 가능한 셈. 작중에서의 묘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런 의도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 작중에서 숙모가 주인공 남매가 부모님 돈으로 밥을 사먹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집을 떠날 때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숙모가 주인공 남매의 재산을 뺏는 장면도 없다. 작중에선 물가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는데, 주인공 남매가 물건을 한번에 사지 않고 천천히 쓰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돈이 엄청났다는 증거인데, 이걸 뺏지 않은 것만 해도 과연 악당인지 의문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세이타와 세츠코는 희생자인 동시에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고(세츠코는 아직 어린 아이니 어느 정도까진 봐줄 여지가 있지만)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기에는 석연찮은 인물임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아이들이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계급이던 해군 고급장교의 자식들로써, 남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은 작중에서 명확히 묘사된다.

이러한 비평적 해석과는 별개로 적지 않은 독자나 시청자가 이 작품을 일본인의 자기연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분명히 작가나 감독이 책임져야 할 영역인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시청자는 드물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남매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연민에 빠지는 연출이 의도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제대로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의도된 결과다. 원작에서 나오는 표현조차 생략해 가며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행세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감독 자신이 전쟁 개시 전부터 일본 국민들이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며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에 당시 일본 국민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주장한 바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전쟁의 광기에 대해 그 국가 구성원인 국민 자신들 역시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에 따라 본다면, 이와 같은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일본의 좌파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흔히 박혀있는 책임회피의식[21]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해왔다.

5 스태프 일람(극장판)

  • 제작, 기획 - 사토 료이치
  • 음악 - 마미야 미치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콘도 요시후미
  • 레이아웃, 작화보좌 - 모모세 요시유키
  • 미술감독 - 야마모토 니조
  • 촬영감독 - 코야마 노부오
  • 음량감독, 음량연출 - 우라카미 야스오
  • 원화 - 오오타니 아츠코, 안노 히데아키, 카와치 히데오, 오쿠야마 레이코, 우메츠 야스오미, 오가와 히로시 외
  • 동화 - 동화공방, 오! 프로덕션, 드래곤 프로덕션, 그룹 라이너스, 스튜디오 포켓 외
  • 배촬 - 히라타 슈이치, 히구치 노리코, 스도 에이코, 히시야마 토오루, 히라카와 에이지 외
  • 특수효과 - 카오루지 타니후미
  • 캐릭터 색채설계 - 야스다 미치요
  • 임상 - 스튜디오 키리, 스튜디오 딘, 타츠 프로덕션, IM 스튜디오, 토레스 스튜디오 M, 포비 기획, 스튜디오 OZ, 스튜디오 샤프트, 스튜디오 엔젤, 스튜디오 톰캣, 셀 아트 스튜디오 외
  • 촬영 - 럭키 모어
  • 편집 - 세야마 타케시
  • 음량효과 - 오히라 노리요시, 이토 미치히로
  • 제작비조 - 우에다 신이치로
  • 제작 데스크 - 오시키리 나오유키
  • 연출조수 - 스도 노리히코
  • 녹음제작 - 오디오 플래닝 U
  • 녹음 스튜디오 - APU 스튜디오
  • 현상 - 토쿄현상소
  •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 프로듀서 - 하라 토오루
  • 각본, 감독 - 타카하타 이사오

6 이야기거리

원제인 火垂るの墓의 火垂る는 반딧불을 뜻하는 蛍(ほたる)의 어원으로 추측되는 말 중 하나다.[22] 물론 영제가 Grave of the Fireflies이며, 작품 내에서 반딧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제의 火垂る도 당연히 반딧불을 뜻하는 게 맞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로, 애니메이션 마지막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현대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3월 17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제작 스탭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순양함의 원화를 맡겼을 때 밀덕후답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순양함을 그려내 왔더니 정작 감독은 실루엣 처리를 해버렸다고. 그리고, 스즈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 그렇죠. 취직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해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 한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받은 과제 중에서 "'반딧불의 묘' 작가의 당시 심경에 대해서 제출하라." 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걸 아버지에게 묻자, 아키유키는 "음, 마감에 치여서 필사적이었다."라고 말했는데 그걸 그대로 제출한 딸이 낙제점을 받았다(주인공이 나름 생존을 위해 노력한걸 보면 틀린건 아닌데???)라는 일화가 있었으며, 예술가의 작품 제작 동기를 왜곡해서 해석하는 감상자, 평론가 등에 의해 정형화된 감상방법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교육방법에 대한 비판으로 자주 쓰인다. 이와 같은 일화는 한국 수능에 관해서도 전해져 온다. 작가의 아들이 "아버지가 말해준대로 답을 골랐더니 틀렸더라."라는 이야기. 심지어 최승호 시인도 본인의 시를 주제로 출제된 언어영역 문제를 직접 풀어봤는데 틀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본격 작가도 모르는 작가의 의도.

다만, 작가의 의도한 의미와 독자가 느끼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고, 작가의 의도와 다른 해석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것을 비평 용어로는 의도의 실패(Intentional Fallacy)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작가의 의미부여의 의도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신비평에서는 작품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독점권을 부정하며 독자가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물론, 수능 처럼 후자의 경우가 맞고 전자의 경우가 틀리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자가 맞고 후자가 틀리다고 판단하는 것과 똑같이 틀린 것이다.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상영으로 공개되었는데[23]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버리는 바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이어서 나오는 반딧불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관객들의 기분이 암울해져, 어이없게도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보다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하고 있었던 탓도 있다[24].

한국에서는 대원방송을 통해서 더빙 방영을 했다. 세이타 역에는 김일이 맡았다. 그렇다, KBS판 세일러문에서 남주인공이라고 할 턱시도 가면을 맡은 그 성우다.. 세츠코는 김서영.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편이며 성우 김일이 한국어로 읊는 "대일본제국이 졌다고요?"라는 대사는 충공깽. 덕분에 한번 방영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엔 부모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왜 이런 애니를 방영하냐며 항의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그래서 요샌 방영을 못한다고 봐야하나? 한국에서는 원작의 지명도가 낮다 보니 원작소설의 작가인 노사카가 우익이라는 출처불명의 루머가 돌고 있다.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작품 속에서 세츠코가 즐겨 먹던 캔 상자안에 든 사탕[25]은 <사쿠마식 드롭>이라는 제품으로, 작중 배경인 전시에 판매된 상품을 디자인과 내용물을 복각한 상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복각판은 아니지만, 실사영화 공개 기념으로 세츠코가 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사탕을 찾는 모습이 그려진 제품이 발매되기도 했다.

도서출판 디딤돌에서 출간한 2007 수능시리즈 사회탐구 영역 사회 · 문화에서 이 작품의 일부가 실린 적이 있었다.

KBS2 주말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 29화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이 등장하였다.

일본에 이어 영국에서도 실사화가 된다고 한다.

  1. 1930년 출생, 2015년 12월 11일 타계.
  2. 「あの時代、未亡人のいうことぐらい特に冷酷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清太はそれを我慢しない。壕に移り住むことを決断して清太はいいます。『ここやったら誰もけえへんし、節子とふたりだけで好きに出来るよ。』そして無心に”純粋の家庭”を築こうとする。そんなことが可能か、可能でないから清太は節子を死なせてしまう」/『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の高畑監督インタビューより
  3. 사실 모질다고 해봐야 친척 남매들과 식사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부분과 잔소리를 듣는 수준이었다. 그냥 전쟁통에 얹혀 사는 대우로써는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정도. 공부하러 가는 친척 남매들과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기여도가 없는) 세이타 남매에 대해 차등 대우는 어느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일해라 세이타
  4. 근데 사실 물려받았다는 7,000엔이면 당시 가치로는 엄청난 거금이다. 1940년대 일본의 교사나 은행원 초임 월급도 100엔이 채 안되던 상황, 현재 한국에서는 200만 원이 좀 안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순계산으로 1억 4천만 원(!)에 해당한다. 이를 감안하면 전쟁통으로 물가가 오른 걸 감안해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허름한 집도 살 수 있을 테고 두 남매가 어느 정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데는 충분한 돈이다. 대체 세이타는 저 큰돈들을 어디다가 다 썼는지… 전시라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현물로 교환이 어려웠다고 쳐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5. 당시 세츠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눈에 생기가 사라진 상태. 세이타가 방공호로 돌아왔을 때 세츠코는 동네 아이들이 사탕 통에 집어넣은 구슬을 입에 넣고 빨고 있었다.
  6. 역 구내에 있으면 배는 고파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7. 세이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7,000엔이라는 큰 돈을 어림잡아도 한 달 반밖에 안되는 시간 사이에 다 날리고 여동생 세츠코를 영양실조로 보내고 본인은 부랑아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만다.
  8. 여담으로 이 때 세이타의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는데, 다 해져 누더기가 된 옷차림에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녔다. 게다가 몇 달을 씻지 못해 온몸에는 이가 들끓었고, 갖고 있던 돈도 다 떨어진 지 오래라 행인들에게 거지 취급당하며 역에서 내몰리는게 일상이었다.
  9. 세이타가 죽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설사까지 계속되었으니 죽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세츠코 또한 죽기 전에 설사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10. 상반신에 전신화상을 입어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피가 스며나와 있었다. 게다가 죽은 뒤에는 파리 떼와 구더기까지 들끓는다. 사람에 따라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
  11. 참고로 이 돈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남매들끼리 꽤나 음식을 사서 한동안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큰돈이였다. <반딧불의 묘>가 일본의 피해자 행세물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
  12. 다만 극중에선 명확히 악역 포지션에 있긴 했다. 세이타는 어머니의 죽음을 동생에게 숨겨달라 부탁하지만 그녀는 세이타가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린다. 게다가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게 세츠코가 울면서 죽은 반딧불을 묻어주는 장면인지라 빼도박도 못하고 천하의 개쌍년처럼 보일 수밖에....
  13. 밥을 따로 해먹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 자기 엄마가 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장면.
  14. 작품 초반부에 산노미야역에서 부랑아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15. 드라마에서도 나오는데, 역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던 남루한 옷차림의 소년과 구걸하던 소년들을 지저분하다고 내쫓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6. 그런데 이는 어째 보면 당연한 게, 거지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역 구내에서 머무르면 좋아할 리가 없다.
  17. 굶주림으로 인해 눈빛이 초점을 잃었다는 뜻이다.
  18. 일본 공산당 당원이다.
  19. 애초에 어린 아이인데다 폭격에 의한 공포로 인해 생긴 행동이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소리도 시끄러운 데다 전시에는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고 쓸 데가 없는 가구인 피아노를 동생 때문에 팔지도 못하니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기는 하다.
  20. 하다못해 공부라도 하라는 숙모의 말에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친척 형누나들은 공부하러 나갔다. 거기다가 숙모가 알아서 해먹으라고 쌀을 줬을 때도, 먹고 나서 뒷처리도 안했다. 숙모 입장에서 이 남매는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밥벌레나 다름없는데 내쫒기는 커녕 구박하면서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줬다.
  21. 전쟁은 당시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자신들은 그에 쓸려갈 뿐이었다는 논리
  22. 그 외에는 〈火照る〉〈星垂る〉〈火太郎〉 등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
  23. 그런 이유로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하게 되면 반딧불의 묘는 절대로 일본 피해자설을 주장하는 작품으로 해설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83~85쪽 참조
  24.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토토로 항목에서 5.2. 반딧불의 묘와의 관계를 참조할 것
  25.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세이타가 세츠코에게 입벌려보라고 하면서 사탕을 먹인 것으로, 실사영화 판에서는 친척 여자아이들이 캔 안의 사탕을 늘어놓으며 세츠코에게 사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아니메 판의 경우에는 세츠코가 심심찮게 사탕을 찾는 모습도 나오며, 세츠코가 죽었을 때 세이타가 사탕 캔도 관에 같이 넣고 화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