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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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바비 무어 (Bobby Moore)
생몰년월일1941년 4월 12일 - 1993년 2월 24일
국적잉글랜드
출신지런던
포지션수비수
신장178cm
유소년 팀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소속팀웨스트 햄 유나이티드(1958 -1974)
풀럼 FC(1974 -1977)
샌안토니오 선더(임대)(1976)
시애틀 사운더스(1978)
헤르닝 프레마드(1978)
감독옥스포드 시티(1980)
이스턴 AA(홍콩)(1981 -1982)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1984~1986) 
국가대표108경기, 2골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영구결번
No.6

1 개요

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매우 영리하게 플레이를 하며, 또한 용감한 플레이를 펼친다. 그와 대전했을 때는 마치 고도의 체스 경기를 하는것 같았다.

-펠레

수비수들의 우상

삼사자 군단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수비수.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로 잉글랜드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경기를 읽는 능력과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60년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간판스타였다.

2 선수시절

바비 무어의 일대기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3)

2.1 클럽

바비 무어는 17살에 1958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활약을 하며 1961년부터 웨스트햄의 주전으로 활약한다.

1964년에는 론 그린우드 감독의 지도 아래 웨스트 햄의 FA컵 우승에 공헌했고,그 해 리그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고,1965년에는 컵위너스컵 우승에 공헌했고,1967년에는 대영제국 훈장 4급을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는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했고,1974년을 끝으로 웨스트 햄과 결별했다.

이후 풀럼 FC에서 뛰다가,1977년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안토니오 선더,시애틀 사운더스,헤르닝 프레마드등을 전전하다 1978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1962년 칠레 월드컵에 잉글랜드 대표로 참가했으나,8강 브라질에게 3:1로 패하며 탈락했다.

1973년 2월 14일 스코틀랜드 전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1973년 월드컵 지역예선 폴란드 전에서 실수로 인해 골을 내주었고,잉글랜드는 1:1로 비겼다.
같은해 11월 16일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 이후 국가대표은퇴를 선언했다.

2.2.1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http://i3.mirror.co.uk/incoming/article838429.ece/ALTERNATES/s615b/Bobby%20Moore%20holds%20aloft%20the%20Jules%20Rimet%20trophy%20as%20he%20sits%20on%20the%20shoulders%20of%20his%20teammates%20L-R:%20Jack%20Charlton,%20Nobby%20Stiles,%20Gordon%20Banks,%20Alan%20Ball,%20Martin%20Peters,%20Geoff%20Hurst,%20Ray%20Wilson,%20George%20Cohen%20and%20Bobby%20Charlton.jpg
줄리메컵을 든 무어.

조별예선을 1위로 통과했으며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4강전에서 포르투갈을 2:1로 꺾으며 결승에 올랐다.
잉글랜드는 결승전에서 서독을 4:2로 꺾고 우승했다.[1]

이 때 무어를 비롯한 잉글랜드의 수비진들이 맹활약 했는데,어느 정도 였느냐면 포르투갈과의 준결승 전까지 단 한번도 실점하지 않았다.

3 은퇴 후

은퇴 후 무어는 옥스퍼드 시티 FC와 홍콩의 이스턴 AA에서 감독직을 맡았고, 그 후에는 축구분석가와 논평가로 활동했다가 1993년 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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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무어의 추모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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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무어 추모 경기(vs. 울버햄튼 원더러스전)에서 묵념하는 옛 동료들. 왼쪽부터 제프 허스트,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2], 론 그린우드, 마틴 피터스, 해리 레드냅, 빌리 본즈.

4 여담

역대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을 꼽을때 대게 센터백에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고정이고, 프랑코 바레시, 엘리아스 피게로아, 다니엘 파사렐라, 가에타노 시레아 그리고 바비 무어가 파트너로 경쟁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바레시와 무어가 서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수이다. 보통 매거진의 성향 따라 갈리는데, 영미권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경우 무어를 좀 더 쳐주고, 대륙권 영향 아래에 있는 경우 바레시를 좀 더 쳐준다.[3]
  1. 이 때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는데,월드컵 우승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바비 무어에게 우승 토로피를 건네주며 악수를 했는데,악수를 하기전 무어가 벨벳 식탁보에다 땀과 흙을 닦았기 때문이다.
  2. 現 뉴욕 시티 선수인 프랭크 램파드의 아버지.
  3. 실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공신력 있는 매거진의 올타임 베스트 선정 사례가 2013년 영국의 월드사커지의 사례인데, 무어가 바레시보다 딱 한 표 더 받고 베켄바워의 파트너로 선정되었다. 그만큼이나 치열하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