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몬 칼루

헤르타 BSC 베를린 No.8
살로몽 아르망 마글루아르 칼루
(Salomon Armand Magloire Kalou)
생년월일1985년 8월 5일
국적코트디부아르
출신지아비장
종교이슬람
포지션윙어/스트라이커
신체조건186cm
프로입단2000년 ASEC 미모사
소속팀ASEC 미모사(2000~2003)
페예노르트(2003~2006)
SBV 엑셀시오르(임대)(2004)
첼시 FC (2006~2012)
릴 OSC(2012~2014)
헤르타 BSC 베를린 (2014~ )
국가대표68경기 / 23골

2015-16 시즌 헤르타 베를린 돌풍의 핵

1 클럽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풀네임은 살로몽 아르망 마글루아르 칼루. 줄여서 살로몬(몽) 칼루로 불리운다. [1]

2000년 ASEC 미모사에서 데뷔한 뒤 2003년 에레디비지페예노르트로 이적했으며, 2004년 SBV 엑셀시오르로 임대를 떠난 것[2]을 제외하고는 2006년까지 페예노르트에서 활동하였다. 이 당시 디르크 카윗과 더불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2004-05 시즌 '요한 크루이프 프리스'[3]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네덜란드 국적 취득에 실패해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뒤 첼시 FC로 이적하였다.

첼시 FC에서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주전보다는 주로 벤치에서 교체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플레이 스타일은 측면에서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받은 공을 잘 간수하고, 수비 가담 능력이 뛰어난 전형적인 무리뉴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득점 능력도 뛰어나 출전 경기 대비 스탯이 상당히 우수한 선수였다. 다만, 그의 불운이라면 같은 팀 내에 그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가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출전 부족이나 선수 본인의 여러 문제로 인하여 기량의 향상을 크게 이루지 못하고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잦았다.

칼루가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히딩크의 첼시 이후라고 봐도 무방한데, 자신에게 큰 기대와 신뢰를 보여준[4] 스콜라리 감독이 경질되고, 히딩크의 마법이 풀린 후 여러 정신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수비력에 큰 문제를 보이거나, 공격 가담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마찬가지로 기량이 매우 저하한 말루다와 한데 묶어 '말칼족' 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이후 가끔 출전하였을 때는 때때로 자신의 처우에 대한 불만을 대외적으로 표시하곤 하였는데[5], 팬들의 입장에선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이러저러하여 안첼로티 감독도 독이 든 성배를 견디지 못한채 경질되고, AVB감독이 첼시에 부임하였을 때,
칼루는 프리시즌의 아시아 투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며 눈밖에 나는가 싶더니 결국 11년 말에는 리저브(2군)를 왔다갔다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AVB가 광속 경질되고 멘탈 치유사 로베르토 디 마테오 임시 감독 대행 아래서 칼루는 첼시에서의 마지막 빛을 보게 된다. 이는 주로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일이었는데, 챔피언스리그 8강 벤피카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발로 나와 귀중한 원정골을 뽑아내는가 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도 같았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발 선수로 출전하여[6]84분 동안 11명의 방패 중 하나가 되어 훌륭히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7]

말년이 좋지 않았기에 욕을 많이 먹는 선수이나, 그에게는 언제나 디디에 드록바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첼시 FC의 잦은 감독 교체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는 영광을 얻고 칼루는 시즌 종료 후 릴 OSC로 이적을 완료했다. 이후 릴에서 공격과 수비가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2013-14 시즌 리그에서 16골을 득점해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을 펼쳐 빅 클럽들의 이적 제의를 받게 되었다.

2014년 3월 말 한 인터뷰에서 아스날로의 임대 이적을 제의받았으나 릴 OSC의 시즌 마무리와 다가올 월드컵을 우선시했다고 발표했다.

2014년 8월 31일 헤르타 BSC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시즌 13경기 10골을 터뜨리며 팀내 최다득점자로 완벽 부활중.

2 국가대표

원래는 2006년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해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06년 월드컵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8] 최종적으로 귀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덩달아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지 못해 월드컵은 물건너갔다.[9]

이후 2007년 2월 6일 기니와의 경기에서 성인대표로 데뷔하였다. 네이션스컵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1. 국내에서는 살로몽 보다 압도적으로 살로'몬'으로 칭해지는 비율이 높아 해당항목도 살로몬 칼루로 작성되었다.
  2. 참고로 엑셀시오르는 페예노르트의 위성 구단이다.
  3.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과 비슷한 상이다.
  4. 칼루의 이적을 시도한 벵거 감독을 칭찬하며 칼루를 내어주지는 않겠다고 언론에 발표한다거나
  5. 홈 구장에서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6. 사실 냉정히 평가하자면 이는 경고 누적으로 출전이 불가능했던 선수들 때문에 출전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7. 실제로, 연장전에서 드록바의 패널티 파울의 경우 칼루와 교체한 토레스의 부족한 수비력을 커버하기 위한 행동의 결과라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8. 여담으로 이 당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코 반 바스텐요한 크루이프 등이 칼루의 네덜란드 국적 취득을 지원하기도 했다.
  9. 참고로 2006년 월드컵에서 살로몬 칼루의 친형인 보나방튀르 칼루는 코트디부아르 소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기 때문에 당시 살로몬 칼루가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했더라면 보아텡 형제보다 먼저 월드컵에서 형제 대결을 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