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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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基碩
1908년 5월 6일 ~ 1989년 2월 2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8년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재학 중이던 1931년 반제동맹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 만주국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만주국 관리가 되었다.

8.15 광복 후 학계로 돌아와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법정대학 학장,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서범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자문위원에 추대되었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부산대학교 총장,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영남대학교 초대 총장, 다시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부산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중구-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상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칠순이 넘은 고령임을 이유로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말년에는 학교법인 선인학원의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국제법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만주국 관료 경험으로 인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해외 부문에 신기석을 포함시켰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