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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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道煥
1922년 05월 25일 - 2004년 03월 2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창범(滄帆)이다

1922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메이지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 때부터 유도인으로 유명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선 후 자유당에 입당했다. 1958년 대한체육회 회장서리를 거쳐 이듬해인 1959년에는 대한반공청년단(정치깡패조직) 단장직에 취임한 후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개입하게 되었다. 같은 해 부정선거 관련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혁명재판에서 20년형을 언도받고 8년 3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정치정화법에 의해 규제를 당하였다.

이후 정치규제에서 풀리고 1970년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재기하였다. 이후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시 동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효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 때 자신의 계보인 신우회를 만들었는데 소속 의원으로는 신상우, 이기택, 이상신, 김종기 등이 있었다. 1976년 신민당에 이철승 대표 체제가 자리잡을 때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1979년 5월의 신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측으로부터 은밀히 이철승 체제가 유지되게 해 달라는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계보 밑에 있던 이기택이 독자 계보를 마련하여 나가고 이기택이 2차 결선투표에서 김영삼을 지지하여 김영삼이 총재로 선출되었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풀려나고 이듬해인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직할시 남구-수성구 선거구에 신한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치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이민우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총재권한대행이 되었으나 그 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체육인으로서 활동하여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1979년), 범태평양유도연맹 회장(1980년), 유도고단자회 회장(1993년), 대한체육회 고문(1993년), 체육인동우회 이사장(1993년)을 역임하였다. 2000년에는 한국의 유도발전에 힘쓴 공로로 유도 명예 10단증을 받았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짧게 등장한다. 배우는 김선동, 1부에서는 스즈끼 대위를 연기했다. 이때는 이정재가 동대문 조직에서 물러나고 이기붕이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를 위해 1959년에 불렀고 내년 선거를 위해 새로운 주먹조직인 반공청년단을 조직하여 여러 주먹조직들을 가입시킨다. 유지광, 도꾸야마, 독사 등은 이에 반발하지만 임화수는 자유당을 도와 정계에 올라가려 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입한다. 물론 내년 대선 에서 무슨일이 일어난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