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

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 全武公等州軍事 行全州刺史 兼 御史中丞 上柱國 漢南軍開國公 食邑二千戶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 전무공등주군사 행전주자사 겸 어사중승 상주국 한남군개국공 식읍이천호

1 개요

후백제의 왕이 되는 견훤이 무진주(광주 일대)에서 892년 스스로 왕을 칭하면서 사용한 칭호.[1]

신돈, 김부식, 최충헌의 관직명과 함께 한국사에서 매우 긴 관직명으로 손꼽힌다.

2 상세

길고 긴 이름을 분리해서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 신라 서쪽의 모든 병마를 총지휘하고 군령권을 관장하는 도독
  • 전무공등주군사(全武公等州軍事): 전주·무주·공주 등의 군사(軍事)를 맡음
  • 행전주자사(行全州刺史): 전주 자사 대행
  • 겸(兼): 그리고 (아래를) 겸한다.
  • 어사중승(御史中丞): 어사중승(감찰권을 맡는 직위)
  • 상주국(上柱國): 재상급 직위
  • 한남군개국공(漢南郡開國公): 한남군의 개국공
  • 식읍이천호(食邑二千戶): 식읍은 2천 호

당나라 시대의 도독, 절도사 개념에서 만든 이름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국무총리 겸 광주광역시·전라북도·전라남도 지사 겸 전주시장 대행 겸 제9군단[2]장, 연봉 2억 4천만 원' 정도 되겠다.

사실상 신라로부터 독립했으면서도 관직명의 맨 앞에 '신라'를 붙여 형식상 신라의 신하임을 내세우고 자신을 왕(王)이 아닌 공(公)으로 자처한 이유는, 천 년 가까이 지속된 신라와 동급의 정통성을 자칭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대 사람들에게 신라 왕은 중국의 황제까지는 몰라도 다른 군주들보다는 더 높은 존재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견훤은 8년 정도 이렇게 애매한 칭호를 달고 한반도 서남부를 지배하다가 900년에야 완산주(전주)에서 백제 왕에 즉위하였다. '신라서면도통…' 칭호는 이 때 폐지되었을 듯.

이후 925년에는 중국 후당조공하고 상기 칭호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검교태위(檢校太尉) 겸(兼) 시중판백제군사(侍中判百濟軍事) 지절도독(持節都督) 전무공등주군사(全武公等州軍事) 행전주자사(行全州刺史) 해동사면도통지휘병마제치등사(海東四面都統指揮兵馬制置等事) 백제왕(百濟王) 식읍이천오백호(食邑二千五百戶)' 관작을 받기도 했다.

3 여담

  • 최충헌의 관직명으로 유명한 '벽상삼한삼중대광개부의동삼사수태사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상장군상주국병부어사대판사태자태사'보다 한 글자가 더 많다.
  1. 다만 이게 자칭이 아니고 오월에 조공하고 받은 관작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2. 제2작전사령부 창설 이전 호서·호남 지역을 방어했던 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