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하우

풀네임아서 헨리 "아트" 2세 (Arthur Henry "Art" Howe, Jr.)
생년월일1946년 12월 15일
국적미국
출신지펜실베니아피츠버그
포지션내야수[1]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71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피츠버그 파이러츠)
소속팀피츠버그 파이러츠(1974~1975)
휴스턴 애스트로스(1976~198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84~1985)
지도자텍사스 레인저스 코치 (1986~1988)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 (1989~1993)
콜로라도 로키스 코치 (1995)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감독 (1996~2002)
뉴욕 메츠 감독 (2003~2004)
텍사스 레인저스 코치 (2007~2008)

1 개요

메이저리그 전 감독. 국내에서는 2002 시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놀라운 20연승을 이끈 것과 더불어 메츠 시절 서재응을 발굴한 것으로 인지도가 꽤나 높다.

2 경력

2.1 선수 시절

와이오밍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피츠버그 파이러츠와 입단 계약을 맺는다. 3년간의 마이너 시절을 거쳐 1974년 마침내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벤치워머에 불과했고 1976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된다. 트레이드 이후 휴스턴에서 1982년까지 7시즌 동안 내야 유틸로써 주 포지션인 3루수 뿐 아니라 2루수, 유격수 등 무려 네 포지션에서 플레이한다. 특히나 1977년에는 정해진 포지션 없이 여러 포지션을 전전해야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125 경기에서 단 8개의 실책만을 내주는 견고한 수비력을 뽐내기도 했으나 1980년 시즌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 도중 투수의 공에 맞아 턱 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은 뒤로 하강세를 그리기 시작한다. 1983 시즌을 부상으로 통째로 날려버린 뒤 1984년부터 2년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뛴 뒤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통산 선수 경력은 11시즌 동안 891경기 출장 타율 .260 43홈런 293타점.

2.2 초기 지도자 경력

바비 발렌타인을 따라 텍사스 레인저스의 코치로 3년간 활동하던 하우는 친정팀 애스트로스의 부름을 받고 1989년 감독직을 시작한다. 첫 해에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나, 1990년부터 팀이 리빌딩[2]을 단행하면서 성적은 점점 내리막을 탔고 결국 1993 시즌 종료 이후 해고된다.[3] 이후 도미니카의 윈터리그 팀의 감독을 맡기도 하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스카우터 직을 역임하기도 하다가 1996년 토니 라루사의 후임자를 찾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2.3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주가 교체되면서 1990년대 중반 오클랜드는 과거의 명성[4]은 엿 바꾼 채로(...) 그저그런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나, 감독 아트 하우와 머니볼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온 GM 빌리 빈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1999년부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강자라는 명성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2001년과 2002년에는 각각 102승과 103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세웠다. 2002 시즌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 20연승은 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통계를 이용한 머니볼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번번히 뉴욕 양키스미네소타 트윈스에게 패하면서 고배를 마신다. 이 시기 하우는 나중에 책과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 머니볼에서도 묘사되는데,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연기하는 하우는 '전통적인 야구 패러다임에 얽매여 위대한 빌리 빈의 개혁을 방해하는 꼰대' 정도로 묘사되고있다(...) 당연히 하우는 자신의 묘사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 다만 빌리 빈과 사이는 오클랜드 말기에 실제로 꽤나 벌어져있었는데, 하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야구관을 둘러싼 충돌이라기보다는 라인업까지 시시콜콜 간섭[5]하는 빌리 빈의 감독 존중 부족이 주된 이유였던 듯 하다. 어쨌든 오클랜드에서의 경력으로 하우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갓동님 중 하나가 됐고, 뉴욕 메츠가 이런 하우를 최고 금액으로 모셔간다.

2.4 뉴욕 메츠

데려간 팀이 팀이었던만큼... 정말 어메이징하게 망했다.[6] 2시즌 동안 성적이 각각 69승, 73승으로 42%라는 처참한 승률을 기록하며 2년차 시즌 내내 경질설이 언론을 장식[7]했지만 그래도 시즌은 마치고 해임됐다. 이후 메츠 구단의 새로운 단장으로 선출된 오마르 미나야윌리 랜돌프를 새로운 메츠 감독으로 뽑았다. 그런데 미나야는 메츠를 더욱 망가뜨렸다. 미나야가 싼 똥이 2015년 현재서야 다 치워질 정도이니 이건 뭐... 그래도 이 시기 서재응을 발굴하면서 한국팬들에게는 기쁜 선물을 안겨주기도..[8]

2.5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의 3루 코치를 2007년부터 2008년간 2년간 맡기도 했었으나 이후로는 사실상 은퇴 상태.


최근 근황이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1. 3루수, 2루수를 주로 하긴 했지만 내야 유틸이라 정해진 포지션은 없었다.
  2. 그래도 휴스턴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게 이 당시 리빌딩의 결과물이 바로 크레이그 비지오, 제프 배그웰과 같은 휴스턴의 레전드들..
  3. 하우의 뒤를 이어 부임한게 테리 콜린스 현 메츠 감독.
  4.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요새는 라인업 짜는거에 까지 간섭하는 단장이 몇명 보이기는 하지만... 머니볼이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 걸 감안하면..
  6. 다만 이 시기 메츠는 그냥 선수들이 죄다 연봉은 많이도 먹으면서 성적은 더럽게 못내던 고비용 저효율 팀의 대명사이던걸 감안해줘야 하긴 한다.
  7. 프런트에서 일부러 뿌린 정황도 있다.
  8. 그런데 하우 감독이랑 서재응은 정작 2004 시즌 도중에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하우 감독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도중 서재응에게 '넌 선발 확정이니 그냥 이것저것 던져봐라'라고 얘기하자 서재응은 정말로 실험삼아 이것저것 던져봤고 털렸다(...) 그러자 하우 감독이 서재응을 마이너로 강등시켰는데, 서재응이 언론을 통해 이것에 대한 섭섭함을 표출했던 것.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 기자들이 전한 바이니 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추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