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 이시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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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알렉 이시고니스와 그가 디자인한 차들. 브리티시 레일랜드 창립 이후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1 개요

알렉산더 아놀드 콘스탄틴 이시고니스 경(Sir Alexander Arnold Constantine Issigonis), 줄여서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는 터키 출신의 영국인 자동차 디자이너이다.

2 생애 및 상세

1906년에 터키의 작은 해안가 도시스미느라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계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 출신의 할아버지가 기계공장을 운영한 덕분에 유년기를 부유하게 지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22년에 몰타(Malta)로 이주했으며, 아버지가 같은 해 사망하자 1923년에 어머니와 같이 영국으로 이주했고, 영국의 배터씨 공학대(Battersea Polytechnic)에서 자동차공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이후 그는 1928년에 스포츠카 업체인 로터스에 디자이너 겸 엔지니어로 취업했고, 당시 자차였던 오스틴 세븐 소형차에 자신이 디자인한 프론트 엑셀을 장착한 것을 계기로 오스틴 모터 컴퍼니(Austin Motor Company)로 이직했다. 1936년에는 모리스 모터스 리미티드(Morris Motors Limited)로 이직했고, 여기서 그는 모리스 사의 소형차인 모리스 10의 앞바퀴 독립 서스펜션을 설계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참고로 이시고니스는 자동차 광으로서 저동차 경기에 자주 참여했고, 이때 자신만의 경주용 차인 "이시고니스 라이트웨이트 스페셜(Issigonis Lightweight Special)"도 만들었을 정도였다. 특이하게도 당시 이시고니스가 모리스 사에 취직해 있음에도, 오스틴 사에서는 이시고니스를 위해 자사의 자동차 엔진을 계속 제공해주기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모리스를 위해 새 소형차인 모리스 마이너(Minor)를 설계했다. 자동차 경기에 자주 참여했던 이시고니스의 경험이 반영된 이 소형차는, 앞바퀴에 적용된 토션빔 독립 서스펜션이나 랙 엔드 피니언 스티어링과 같이, 당시에는 레이싱카에나 쓰었던 고급 기술들이 적용되어 당대 고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1971년까지 100만대 이상의 차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1952년에 오스틴과 모리스가 합병되어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ritish Motor Corporation. 이하 BMC)"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세력다툼[1]이 발생해 이시고니스도 항의하는 의미로 퇴직했지만, BMC의 회장이었던 레오나드 로드(Leonard Lord) 경의 제안으로 금세 BMC로 복귀했다.

그러다가 1956년에 당시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함에 따라 유럽 지역의 석유 공급량이 급락했고, 메서슈미트하인켈, 이소 이세타 등의 마이크로카들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BMC를 비롯한 종래의 자동차 업체들이 위기에 처했다. 이때 로드 경은 BMC를 위한 초소형차를 개발할 것을 주문했으며, 이때 이시고니스는 "ADO15"라는 프로젝트 하에 "제대로 된 4기통 4륜 마이크로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59년에 나온 클래식 미니(오스틴 미니 세븐/모리스 미니 마이너)로, 당대 마이크로카와 비슷한 크기이면서도 4명을 제대로 태울 수 있는 구조의 차가 나오자 당대 영국인들의 열광은 대단했고, 미니스커트의 유래가 되고 자동차 경기까지 참여할 정도로 2000년 단종 때까지 영국의 대표 경차이자 아이콘으로서 계속 판매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영국과 BMC에 도입한 앞엔진 앞바퀴굴림 구성을 자신이 설계한 여러 차종에 계속 적용했고, BMC ADO16 준중형차와 BMC ADO17 중형차, 오스틴 맥시 해치백, 미니 9X 프로토타입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들이 설계되었다. 이들 중에는 ADO16 준중형차처럼 성공한 작품도 있었으나 맥시와 ADO17처럼 실패한 작품도 있었고, 그 중 ADO16 준중형차는 미니에 맞먹는 성공을 거두어 BMC의 대표 베스트셀러로 거듭나기도 했다.

1969년에는 미니의 성공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 칭호를 얻었으며, 클래식 미니에 여왕을 태우고 윈저 궁을 한 바퀴 도는 "영광"까지 얻었다.이후 1968년에 BMC가 영국의 상용차 및 고급차 업체인 레일랜드(Leyland)와 합병해 브리티시 레일랜드(이하 BL)가 성립되었고, 당시 BL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고령, 지병을 이유로 은퇴했다. 이후에도 이시고니스는 미니 9X 프로토타입의 개량형이나 오스틴 메트로의 6기통 버전을 제안하는 등, 1986년에 계약이 중단될 때까지 BL/오스틴 로버 그룹/로버 그룹과 컨설팅을 하면서 자동차와의 연줄을 계속 이어 나갔고, 1988년에 타계했다.

알렉 이시고니스에 대해서는 "창의적인 디자이너 겸 엔지니어", "미니의 아버지"라는 평가가 주된 평가이며, 생전 그는 "새로운 차를 디자인할 때, 다른 차를 모방하지 말라", "고객들이 원하는 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차의 엔지니어다"[2]와 같이 독창적이면서도 독보적, 독단적인 말들을 남기기도 했다.명언 모음참고 자료

3 디자인한 차들

  1. 모리스를 인수한 오스틴 인력들이 모리스 측 인력들을 축출해버린데다가, 아예 오스틴에 협조적인 사람들도 지위를 강등시켰으며 심지어 모리스의 엔진 개발도 모두 중단시킬 정도로 상당한 갑질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모리스 마리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모리스로 나오는 차들은 죄다 오스틴 차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에 불과했다. 애당초 회장이었던 레오나드 로드부터 갑질을 공식적으로 확정했다.
  2. 다만 그는 여기에 "시장조사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다. 고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차를 잘 모른다"라는 말을 먼져 덧붙였다.
  3. 이시고니스가 생전 설계한 마지막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