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스미스

NCFC-Home-Shirt-2014-2015.jpg
에미넴

이름앨런 스미스 (Alan Smith)
생년월일1980년 10월 28일
국적잉글랜드
출신지로스웰
포지션미드필더
178cm
유스팀리즈 유나이티드 (1997~1998)
소속팀리즈 유나이티드(1998~200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4~2007)
뉴캐슬 유나이티드(2007~2012)
밀턴케인스 던스 (임대)(2012)
밀턴케인스 던스(2012~2014)
노츠 카운티 FC(2014~ )
U-21대표10경기 3골
국가대표19경기 1골

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노츠 카운티 소속이다.

2 선수 커리어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데뷔. 리즈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상남자 태클 플레이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적 후 공격수로서 그리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얼마 안 가 웨인 루니가 맨유에 영입되고[1] 그는 더이상 공격진에 포함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는 부동의 주전이었으니. 사이드로 가자니 라이언 긱스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쌍벽은 이미 굳건했고, 후반에도 올레 군나르 솔샤르의 폭발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로이 킨의 노쇠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퍼거슨 감독은 그의 투지를 눈여겨보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시켰고 이후 나름 적응하나 했지만 투지만 보여줄 뿐 부실한 수비력에 위험한 태클이나 일삼아 실패로 끝났다. 사실상 자신의 플레이와 팀 전술이 맞지 않아 발전이 멈추는 단계였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EPL 역사상 끔찍한 부상 BEST 10 안에 들어갈 부상을 입고 거의 1년간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게 된다. 05-06 시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당대 EPL 최강의 파워키커 중 하나였던 욘 아르네 리세의 프리킥을 막다가 그 공에 왼쪽 발목을 맞은 뒤 착지하는 과정에서 골절 및 탈구 부상을 입은 것이다.[2] 당시 부상 부위를 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내 생애 본 부상 중 가장 끔찍한 부상이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3]

그 후 꾸준한 재활을 거쳐 다시 복귀했다. 원 포지션인 스트라이커로 다시 활약했으나 결국 맨유의 주전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당시 선수 사느라 바빴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사실은 호날두가 열받아서 분노한게 원인이지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였으나 30여경기를 출장하며 단 1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4]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성년자 성매매에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부리그로 강등당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팀의 승격을 위해 노력한 결과 결국 뉴캐슬은 한 시즌 만에 다시 1부리그로 복귀했다.

%EC%95%A8%EB%9F%B0%EC%8A%A4%EB%AF%B8%EC%8A%A4.jpg
253301_1.jpg
데이비드 베컴 이후 잉글랜드 축구 꽃미남 라인에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맨유에서 뉴캐슬로 이적할 당시 뉴캐슬의 여성 팬클럽 회원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또한 맨유가 한국을 방문할 당시 여성팬들이 그를 보고 하악대는 걸 보고 영국 기자들은 놀라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EPL 복귀 이후 뉴캐슬에서의 출전시간은 점점 줄어갔으며 팀내 새로운 경쟁자들의 영입으로 잉여롭게 있다가 결국 10-11 시즌 종료 후 방출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차기 행선지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유력시 된다고 하는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이제는 2부 리그용 선수가 된 것인가.(...)

다만 본인은 주급이 아쉬워 남은 기간인 2012년 까지 팀에 남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뉴캐슬의 팬들은 그의 훌륭한 멘탈과 충성심 축구 실력 등을 미루어 보아 잉글랜드의 밥장군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시간은 흘러 계약기간 만료를 6개월 앞둔 2012년 1월 현재 완벽한 잉여 취급을 당하고 있다. 경기를 뛰고 싶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내보냈는데 여기서 앨런 파듀 감독로부터 "못 뛰는 이유는 니가 더 잘 알텐데?"라는 예리한 디스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과거의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 은퇴하면 코치 자리 정도는 알아봐 주겠다"라는 말로 확인사살까지 당했다고 한다. 지못미.[5]

2012년 1월에는 리즈 유나이티드로의 임대설이 돌았고 실제로 리즈 임대에 근접하기도 하였으나 구단간 주급 분담 및 선수의 주급 삭감 문제[6], 그리고 스미스의 건강 문제로 인해 리즈 유나이티드 임대는 파토가 났다. 대신 잉글랜드 3부리그 팀인 MK 돈스로 임대를 가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지만, 시즌 종료후 끝내 뉴캐슬과 재계약을 맺지 못한채 MK 돈스로 완전이적했다.뉴캐슬 팬들은 쾌재를 불렀다 이 시즌 qpr에서 뛰는 박지성과 컵대회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감격의 재회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MK돈스가 QPR을 잡은 데 이어 2년 후에는 맨유를 4:0으로 박살내며 제법 유명해졌다.근데 왜 2부에도 못올라오지? 그리고 mk돈스는 그시즌 말 승격했다

3 뉴캐슬 팬들의 평가

최초 영입시에는 키어런 다이어의 공백을 매워줄 섀도 스트라이커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리즈 시절에도 "공격수 치고는 안 좋은 편"이라는 평을 들었던 득점력이 점차 부상과 무리한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축구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까지 퇴보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뉴캐슬의 감독들은 그의 최전방 기용을 포기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한 맨유에서라면 투지나 활동량은 괜찮은 편인 스미스가 최전방에서 그럭저럭 묻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슬프게도 같은 잉여급 선수들이 즐비한 뉴캐슬에서 그는 잉여의 왕으로 등극했다.본격 원톱 아메오비 섀도 스미스...이거 지옥이구만!

결국 스미스는 첫 시즌 중반 몇경기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업하고 있으며, 최근 몇년간 뉴캐슬의 중앙 미드필드진에 구멍이 뻥뻥 뚫린 관계로(수미 포지션에 실질적인 경쟁자가 노쇠한 니키 버트밖에 없는데다가 부상으로 인한 자동 로테이션 여파도 있어서) 굉장히 많은 출전수를 올렸다. 하지만 절대로 잘해서 계속 나오는게 아니었다. 뉴캐슬 팬들은 앨런 스미스라는 선수에 대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평을 내린다.

  • 태클은 좋아하지만, 잘하는건 아니다. 투지는 넘치지만 애초에 수비자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기가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깔끔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시기적절히 끊는것이 아니라 마구잡이식 슬라이딩 태클로 카드를 수집하고 위험한 위치에서 프리킥을 내주는 것만 반복한다. 덕분에 스미스에게는 카드캡터 앨런이라는 결코 반갑지 않은 별명마저 붙어버렸다. 프로리그 경력 333경기(2011/12시즌까지)를 통틀어 7번 퇴장당한 것만으로도 그 위력을 알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 앨런 스미스의 이런 투지 넘치는 플레이에 반해서 팬이된 경우도 허다하다. 반하지 말자
  • 우리 편에게 패스할 때보다 상대 편에게 패스할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라 함은 최후방에서 공을 받거나 적의 공격을 끊어낸 후 공을 소유함으로서 아군이 공수전환할 시간을 벌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중원에서 뛰던 선수가 아닌 스미스는 패스기술 자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닐 뿐더러 공을 잡은 순간에서의 침착성이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이없는 순간에 적에게 공을 흘리는 장면이 너무나도 많다.
  • 활동량과 투지가 굉장히 뛰어나다. 안타깝지만 이건 더이상 장점이 아니다. 산소탱크처럼 필드를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니는 덕분에 그만큼 더 카드를 많이 받고, 그만큼 더 어이없는 프리킥을 많이 내주고, 그만큼 더 적재적소에서 패스미스를 남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뉴캐슬 팬들의 평은 최악. 심지어 해외 포럼에서는 심심치않게 "스미스를 수미로 두느니 10명으로 게임하겠다."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케빈 키건 감독은 스미스를 쓰지 않기 위해 수비수 다비트 로제날을 억지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향시키기도 했고, 조 키니어 감독은 어쩔수없이 노쇠한 버트를 매주 기용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으나 결국은 대체 옵션 부족으로 인하여 스미스는 계속, 꾸준히 경기를 뛰었고, 뉴캐슬 팬들의 주름살은 늘어만 갔다. 그가 부상을 당하면 뉴캐슬 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는 점에서 이미 과거의 3B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3B는 어찌저찌 다른 클럽에 이적해서 셀레스틴 바바야로를 제외하고는 갱생에 성공했으나 스미스는 입질조차 안들어와서 팔지도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할지도...

2009/2010 시즌, 뉴캐슬의 강등 이후 첫경기에서 스미스가 주장 완장을 달고 출장하자 전세계의 뉴캐슬 팬들은 절규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시즌 중간에 부상을 당하면서 전력에서 이탈했고, 시즌 중반을 넘어서 크리스 휴튼 감독이 버트와 스미스를 모두 배제하기 위해 "차라리 수미없이 뛰자"라는 용단을 내리면서 뉴캐슬은 무패행진을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오히려 실점률도 낮아졌다. 그 이후 2010년 여름, 뉴캐슬이 코트디부아르의 걸출한 수비형 미드필더 셰이크 티오테를 영입하면서 1군에서 자취를 감췄고, 모든 뉴캐슬 팬들은 감동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티오테의 경고누적으로 2010년 11월 20일, 스미스는 볼턴 원더러스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장하게 되었고 뉴캐슬은 5-1로 패했다.(이청용도 득점했다.)

주급은 6만 파운드, 그리고 2007년 4월 10일 UEFA 챔피언스리그 AS 로마전 이후 3년 7개월간 공식전 골이 없다. 남들 군대 2번 갔다 올 시간에 걸쳐 하나도 못 넣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2일, 위건과의 1-0 원정 승리에서 후반 교체출전하면서 대망의 100경기 무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아아...정말로 그가 한때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였단 말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그래도 실력도 어느 정도 있었고, 투지와 근성, 그리고 팀에 대한 헌신도가 지극히 높았던 점을 들어 어느 정도 애정있게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7],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팬들에게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뉴캐슬 이후 커리어

MK Dons에서 활약한 뒤 2014년부터는 리그 1의 구단인 노츠 카운티[8]로 이적, 플레잉코치로 뛰고 있다. 2015년 5월에 팀 동료인 로이 캐롤[9]과 함께 1년 연장 계약을 맺은 것을 보니 2015-16에도 볼 수 있을 듯.

5 리즈시절?

이 선수가 국내에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리즈시절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박지성 맨유 이적 후 해외축구를 보기 시작한 (당시의) 뉴비들이 올드비 행세를 하기 위해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 ㅎㄷㄷ"이란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리즈 시절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것. 더불어 리즈가 한 때는 잘 나갔지만 한 순간 몰락했다는 팩트까지 널리 퍼지면서 여러 의미로 리즈 시절이라는 단어가 옛 광명을 뜻하는 유행어로 고착됐다.

자매품으로는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도 있지만 리즈시절의 포스가 워낙 강해서 묻혀버렸다.

자세한 것은 리즈시절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스미스는 리즈시절이라고 해도 딱히 후덜덜하다고 할정도로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기량이 매우 돋보이는 유망주였긴 했지만 결과도 그냥저냥 수준이고 이걸 전성기로 쳐야 할지도 애매하기에,[10] 결국 올드비들에게 리즈시절이란 용어는 우스갯소리로 쓰이게 되었다.

믿기 힘들지만 존 테리와 동갑이다. 진짜?

6 기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는 본의아니게 구멍동서 사이가 되어버렸다. 호날두가 순수했을 시절, 파티에서 젬마 앳킨슨이라는 유명한 글래머 배우에게 첫눈에 반해서 연락처를 따고 사귀게 되었다. 젬마 앳킨슨은 호날두때문에 경기장에 가보겠다는 멘트를 언론에 흘리며 전형적인 스포츠 스타-연예인 커플의 탄생을 알리는가 했는데...

뉴스 오브 더 월드에서 폭탄이 터졌다. 폭로하길 앨런스미스와 젬마 앳킨슨이 사실은 섹스파트너로서 관계를 맺어왔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것.

젬마 앳킨슨은 호날두에게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이후 사건의 전개는 뉴스보도를 사실로 믿을수 밖에 없는 전개가 되어버렸다.

앨런 스미스가 쫒겨나듯이 딴팀으로 이적하고 호날두는 나니 등 신입들을 축하한다면서 콜걸들을 불러서 섹스파티를 연것. 그 이후로 젬마 앳킨슨은 더이상 호날두랑 연락안한다는 말을 하였다.

즉, 사건을 해석하자면 소설을 써보자면 호날두는 부모의 반대로 9살 연상의 이혼녀와 첫사랑에 실패한 후에 오랜만에 사랑을 느끼고 젬마 앳킨슨을 만났으나 언론에 의해서 그가 같은 팀 동료와 섹스파트너관계였다는 걸 알게 된 호날두는 앨런스미스에게 진실을 물어보게 되고 앨런스미스는 결국 사실대로 말하게 된다. 이에 호날두는 그동안 말하지 않은 앨런스미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낌과 동시에 젬마 앳킨슨에 대한 혐오증과 더불어서 여성에 대한 순수한 마음 또한 상처받게 되고 방황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맨유에서는 팀 케미스트리를 고려해 팀의 미래인 호날두를 선택하고 앨런 스미스를 결국 방출하듯이 딴팀으로 보내게 된것이다. 이 사건 이후 호날두는 여성에 대해 꽤 오랜 시간 동안 카사노바가 된다. 호날두의 여성편력계기는 드라마틱

리즈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해리 키웰 등과 더불어 개객끼 확정. '장미전쟁'으로 알려질 정도로 극악한 사이인 맨유로 이적한 게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출생지도 리즈였고 리즈 유스팀에서 성장했고 리즈시절 리즈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2회 수상할 정도로 팬층의 지지가 두터웠던 인물이기에 그런 선수가 맨유로 이적한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커다란 멘붕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11] 그 당시 팬들의 멘붕이 얼마나 심했는지 맨유로의 이적뉴스가 뜨자 일부 팬들이 스미스의 집을 습격하고 갔을 정도.
그러다보니 뉴캐슬에서 잉여잉여거릴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로의 임대설이 돌 때도 팬들의 반응은 매우 좋지 않았던 편이었다.

암튼 상술했다시피 수려한 외모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라운드에서는 "깔끔함", "예쁘장함"과는 거리가 먼 투사형 선수였으며 그 우직한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맨유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명사. 잘해줄 때는 그럭저럭 평타는 쳐 주었지만 가끔씩 삽풀 때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까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

그러나 지금도 맨유 팬들에게는 은근히 까임방지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EC%8A%A4%EB%AF%B8%EC%8A%A4.png
a0119508_4b11db56c740a.jpg

이 지경이 되면서까지 뛰어다니는 선수를 어떻게 까나요. 왜 눈에서 땀이 나지 여자 좀 홀리겠다 너. 이게 다 잘 생겨서 그래 리베리가 저랬어 봐 흉측한 고어 사진이지
  1. 루니의 영입 과정에 걸쳐 스미스가 본의 아니게 굴욕을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 2004/05 시즌 초반 맨유는 심각한 빈공에 의한 부진을 겪게 되고, 심지어 관중석에서 '제발 루니 좀 영입해 주세요'(Please buy Rooney)라고 피켓을 든 소년이 유명세를 탔을 정도이다. 이후 진짜 루니가 영입되고 소년은 퍼거슨과 루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게 되는데, 그 소년이 셔츠에 마킹한 등번호가 다름 아닌 달랑 몇 달 전에 영입된 공격수 앨런 스미스.#
  2. 발목이 거의 두 동강 난 상태였다고 한다. 예전에 아스날 선수였던 에두아르두 다 실바의 부상과 유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하지만 공이 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공에 맞은 걸로는 발목이 두동강나지는 않는다. 강하게 맞은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것이다.
  3. 이 부상 때문이었을까? 06-07 시즌 리그 우승을 한 맨유는, 우승 메달 수여에 필요한 리그 출전 횟수(10경기 이상 출전, 현재는 5경기로 완화)를 채우지 못한 스미스에게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줄 수 있게 해달라고 FA에게 요구했고, FA는 승낙했다.
  4. 스미스는 뉴캐슬에서 공격수로 활약한 경기가 몇 안된다. 이미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스미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기 위해 영입했고 지금에 이르러 이젠 완전히 미드필더로 전업한 상태나 다름없다. 물론 아래 항목에 나오듯이 부진한 건 맞다.
  5. 하지만 스미스를 팔리지도 않는 주급 도둑 정도로 생각하는 뉴캐슬 팬들로서는 오히려 파듀 감독의 이러한 말이 통쾌하다라는 평가도 있다. 본인이 자초한 면도 있지만 여러모로 정말 슬픈 커리어의 선수다.
  6. 주급 6만 파운드 중 뉴캐슬이 45000파운드를 부담하고 리즈가 6000을 부담, 나머지는 스미스가 주급을 자진삭감하는 형태로 팀간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당연하게도 스미스가 거절했다.
  7. 로이 킨에게 "키노게이트"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엄청나게 까인 후, 바로 다음 경기인 첼시전에서 미친듯한 허슬플레이를 선보이며 팀의 승리에 지대한 기여를 했고, 경기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뉴캐슬 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면
  8. 14-15 시즌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풋볼 리그 2 로 강등.
  9. 에드윈 반 데 사르가 오기 전까지 팀 하워드와 함께 맨유에서 뛰던 예능형 골키퍼로 유명했다.
  10. 리즈시절 부분 반론에 나와있지만...스미스의 실제 능력에 비해 외모나 경기의 임팩트 때문에 좀 더 고평가되어 있긴 하지만 03-04까지는 충분히 잉글랜드 최고 수준의 유망주였다.
  11. 하지만 맨유로 이적할 수밖에 없얶던 이유는 한푼이라도 급전이 필요했던 리즈 파산 당시에 스미스의 이적료를 유일하게 일시불로 질러준 팀이 맨유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