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르무크 전투

야르무크 전투
날짜
636년 8월
장소
시리아-요르단국경지대 야르무크 강변
교전국1교전국2
교전국동로마 제국
가산 왕국
이슬람 제국
지휘관헤라클리우스
테오도로스 트리티리오스
자발라 이븐 알 아이함
바한
우마르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아부 우바이다
병력최대 15만(추정)
최대 4만(추정)
피해 규모5만명 이상3천명
결과
이슬람 제국의 승리

1 개요

서기 636년 동로마 제국군과 아랍계 가산 왕국군이 이슬람 제국군과 교전한 전투.
무함마드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칼리프들은 정복사업으로 급격히 영토를 늘렸다. 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는 유능한 지휘관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를 파견하여 먼저 사산 왕조의 혼란을 틈타 메소포타미아를 휩쓸고 시리아로 침공했다. 동로마 군대는 격파당했고 시리아의 일부를 이슬람 군대가 점령했다. 아부 바크르가 칼리프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지만, 2대 칼리프 우마르는 정복사업에 더 적극적이었다. 그는 여러 방면으로 군대를 나누어 시리아와 레반트를 공격하게 하였다. 할리드는 이들 중 한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2 진행

2.1 제국의 역습

동로마의 헤라클리우스는 이 일이 닥치기 전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다. 최대의 위협이었던 사산 왕조도 굴복했다. 그런데 갑툭튀한 사막의 유목민들이 제국의 허리를 동강내려 하였기에 대군을 조직하여 출정한다. 그의 군대는 동로마 군대뿐 아니라 프랑크족, 슬라브족, 조지아군, 아르메니아군, 아랍계 가산 왕국군이 연합한 형태였고, 심지어는 사산 왕조의 왕자도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리우스는 안티오키아에 머물면서 이들 군대를 하나로 조직하여 4개로 분산된 이슬람 군대가 뭉치기 전에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할리드는 곧 정보를 입수했고, 다른 부대들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아부 우바이다에게 군대를 물려 하나로 모을 것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을 받아들여 이슬람 군대는 가산 왕국군의 후방 기습까지 감안해 충분히 후퇴한 뒤 야르무크 강 근처의 평원에서 동로마 군을 기다렸다. 여기서 아부 우바이다는 할리드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동로마의 대군 역시 야르무크 강변에 집결해 진영을 설치했다.

2.2 전투

사실 바로 전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헤라클리우스는 사산 왕조의 군대가 재편되어 양동작전을 개시할 때까지 시간을 끌고자 하였다. 반대로 우마르 역시 사산 왕조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에 두 군대는 협상을 하며 여러 날을 대기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마르가 할리드에게 계속해서 정예 증원군을 보내자 이에 불안감을 느낀 동로마 군은 공격을 시작했다.

전투는 약 6일간 계속되었다. 처음 5일간은 양측 모두 만만치 않았다. 서로 좌익과 우익을 번갈아 밀어내어 상대방의 측면을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자세한 과정은 추가 바람

마지막 6일째, 할리드는 동로마의 기병대를 전장에서 몰아낸 뒤 주력 보병대를 포위하기 위해 대담하게 총공격을 감행한다. 마침내 이슬람의 우익이 동로마의 좌익을 밀어내는데 성공하고, 동로마 군대의 반격 타이밍이 늦어지면서 동로마 좌익의 중기병은 전장에서 퇴각하게 된다. 그리고 동로마 군대의 좌측은 이슬람 군대의 맹공을 받아 무너지게 된다. 동로마 군대는 패주하나, 할리드는 이미 그들의 퇴각로에 소수의 병력을 파견하여 차단한 상태였다. 결국 동로마 군대는 퇴로가 막히고 포위되어 많은 수가 전사하거나 골짜기에 굴러떨어져 죽는다. 이슬람 군대는 포로를 잡지 않고 전부 죽였으나 그럼에도 상당수의 동로마 군대는 드넓은 전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2.3 결과

테오도로스와 바한 등 동로마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전사하고 더 이상 동로마는 레반트 지역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헤라클리우스는 인생의 절정기에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콘스탄티노플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가산 왕국은 이슬람 제국 밑의 속국으로 편입되었고, 육로가 단절된 이집트는 본국의 지원으로부터 취약해졌다. 이슬람 군대는 바로 사산 왕조를 상대하기 위하여 이동했다. 약 3개월 뒤 까디시야 전투가 일어난다.

3 의의

인류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전투의 하나이다. 이슬람 제국은 이 전투로 시리아, 레반트이집트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얻게 되고, 까디시야 전투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으로 몰아가게 되어 현대의 터키 지역을 제외한 서남아시아 전역에 대한 이슬람 패권을 확립한다. 이는 21세기 현재에도 14세기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