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준(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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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海焌
1926년 10월 24일 ~ 2011년 11월 29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쌍촌(雙村)이다.

1926년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서울특별시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다 3학년 때 중퇴하였다. 이후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유진산계, 이철승계 정치인이었다. 195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남원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사회대중당 박환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남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류광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류광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민주공화당 류광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남원군-임실군-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야 무소속 손주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공화당 설인수 후보와 친야 무소속 손주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게다가 1980년 지구당 위원장 자리도 손주항에게 내줬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이후 해외개발공사 총무이사를 지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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