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니무스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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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메탈을 세상에 널리 알린 그 유명한 사건.

1 사건의 전말

1993년 8월 10일(화) 밤, 블랙 메탈 가수 카운트(당시 20세)가 유로니무스(당시 25세)를 피살자 집에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 카운트는 그날 베르겐(Bergen)에서 동료 스노레(Snorre Ruch)와 함께 오슬로의 퇴위엔가타(Tøyengata)[1]로 유로니무스의 집이 있는 공동주택[2]을 찾아갔다. 카운트와 유로니무스는 만나자마자 격렬하게 대립했다고 한다. 유로니무스는 자기 집이 있던 공동주택의 층계참에서 머리, 목, 등에 23군데 자상을 입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살인도구로 쓰인 8 cm짜리 칼은 나중에 경찰이 입수하였다.

인터뷰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으니 그것을 읽어보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진짜 중2병적인 요소가 흘러넘치다 못해 폭발한다. 괜히 노르웨이를 위시한 대부분의 블랙 메탈 씬이 중2병 소리를 듣는게 아니다.

BURZUM(버줌)의 카운트(본명 바르그 비케르네스)가 MAYHEM의 유로니무스를 살해한 사건에 대한 기사는 사실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사건 이후 일약 주목을 받게 된 카운트는 살인죄로 징역 21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될 당시에도 수많은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물론 이것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꽤나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서술된 것을 기재하였다.

이 글은 1995년 4월에 INFERNO WEBZIN에 실렸던 것으로 이미 오랜 시일이 지난 것이지만 그 이후에도 카운트는 계속 감옥에 있었으니[3] 별로 달라질 내용도 없다. 1997년 카운트의 어머니가 카운트를 탈옥시켜 주는 대가로 모 우익단체에 돈을 댔다가 구속당하는 일이 있었고, MAYHEM이 MISANTHROPY 레이블 (인간혐오라는뜻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BURZUM의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레이블. 그리고 먼 동쪽 반도에서는 이를 패러디한 비싼트로피 인디레이블이 있다.)과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있었을 뿐.

단 여기 나온 인터뷰 기사는 유로니무스의 인간성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그에 대한 살인을 정당화하는 카운트의 일방적인 주장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피요르드 사이에 수정처럼 맑은 강물이 흐르고 세상 어디서도 접할 수 없이 파아란 하늘을 접할 수 있는 곳. 베르겐(BEGEN)과 가까운 이곳을 노르웨이인들은 '피요르드의 관문'이라고들 부른다. 이곳은 북극점에서 고작 수백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 있지 않으며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곳인데 베르겐에서 이곳으로 통하는 터널을 피요로드 곳곳에 많은 사람들 덕택에 우리가 이곳에 쉽게 와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건물은 마치 유스호스텔처럼 보였다. 빨간 지붕을 한 나즈막한 건물들은 무척이나 아릅답게 보인다.

그는 내 손을 반갑다는 듯이 붙잡았다. 그의 머리는 짧았고 오래된 티셔츠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메틀 밴드 BURZUM의 유일한 멤버인 크리스티안 비케르네스 (CHRISTIAN VIKERNES, 바로 COUNT GRISHNACKH의 본명이다)[4] 창밖으로 서치 라이트와 감시탑을 쳐다 본다. 이곳은 감옥이다. 그에게는 강도. 폭약류의 불법소지, 묘지 훼손… 방화 등의 죄명을 붙여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것은 바로 살인죄였다.

"내가 죽인 그 사람은 나의 적이었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나?"

카운트는 묻는다. 적들은 서로 싸우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 우리는 늙고 병든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민주주의 체제는 모든 생명을 보호하려 한다."

그는 심각했다. 카운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보들이다. 그들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나를 스칸다니비아의 통치자로 만들어만 다오."

하지만 이 젊은이는 애석하게도 20년 이상을 이 낙원 속의 유스호스텔에서 살아야만 한다.[5]

노르웨이인들에게는 "악마"와 동의어로 통하는 그의 이름이 지어진 것은 73년 봄이었다. 베르겐에 살던 그의 어머니 LENE는 비서였고 아버지 LARS는 전기기사였다(지극히 평범한 가정이다). 베르겐은 많은 야생동물과 산들 그리고 황무지가 있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여기서 태어나 자란 탓인지 카운트의 사상엔 의외로 평화로운 부분이 있다.

"한겨울에 추운 숲속을 혼자 걸어가 보길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숲이 말해줄 거예요."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자주 어머니를 때렸고 가끔 아들을 때리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서 외톨이였고 집에서도 조용히 혼자 방안에 앉아 장난감들을 갖고 병정놀이를 하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의 관심은 비디오 게임으로 옮겨갔고 싫증이 날 땐 톨킨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읽곤 했다. 그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중 오르크를 가장 좋아했다.

카운트가 14살 되던해에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그때부터 그녀는 그동안 못다한 사랑을 보상이라도 하려는듯 아들에게 극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는 기타를 사주었고, 카운트는 하루에 수시간동안 어떤 때는 며칠동안 계속 기타를 쳐댔다. 열심히 할수록 더 큰 즐거움이 뒤따랐다. 그는 우르크하이(URUK-HAI)라는 밴드를 조직했는데 이 이름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악한 생명의 종족명을 딴 것이다. 얼마후 그는 음악에만 전념하기위해 학교를 그만두었으나 여전히 우르크하이는 그의 원맨 밴드였다. 왜냐하면 베르겐은 작은 마을이어서 같이 음악을 할 친구를 찾는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얼마후 어머니는 재혼했고 양부는 카운트에게 머리를 자르고 직업을 가져보길 권했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는 음악만이 전부였고 그의 자상한 양부마저도 간섭할 수 없었다.

그해에 카운트는 오슬로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보다 네살이 더 많은 그 남자는 검은 머리를 길게 길렀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아르세스(OYSTEN AARSETH)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이름보다는 유로니무스(EURONYMOUS)라고 불리기를 원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왕자를 뜻한다고 했다. 유로니무스는 오슬로에서 HELVETE(HELL)라는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며 DEATHLIKE SILENCE라는 레코드 레이블도 가지고 있었다. 유로니무스는 자기회사에서는 오직 순수한 악의 음악만을 발매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밴드 MAYHEM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었다. MAYHEM은 '82년부터 사악하고 빠르며. 거친 음악을 추구해오던 영국의 스래쉬 메틀 그룹 VENOM을 추종하는 밴드였다. 유로니무스는 옷에 인민군(NATIONAL PEOPLE'S ARMY) 뱃지를 달고 있었으며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MAYHEM은 공연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오직 동독의 라이프찌히와 드레스덴에서만 가끔 공연을 가졌었다.

카운트는 왜 그가 공산당에 탐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악마와 기독교도들에 대한 저주. 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등의 열변을 토할 때에는 완전히 매료되곤 했다. 점차 카운트가 오슬로로 향하는 발길이 잦아졌다. 유로니무스의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으나 언제나 블랙메탈을 하는 음악인들이 들끓었다. 모두들 그 가게에서 몇 시간이고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가게문을 닫고 나면 오슬로 유일의 '블랙메틀 바'인 LUSA LOTTE 술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술에 취해 벌이는 토론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바로 두목인 유로니무스였다. 유로니무스는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카운트를 맘에 들어했다. 카운트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지만 유로니무스를 진심으로 따랐고 그를 숭배했다. 게다가 카운트는 기타를 매우 잘 쳤다.

얼마후 카운트는 베르겐에서 맘이 맞는 친구 둘을 만나 OLD FUNERAL이란 데스 메틀 밴드를 조직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연습하며 공연도 했다. 그러나 카운트는 공연이라는 것에 질리고 말았다. 무대 앞에는 술취한 폭도들뿐이었다. 그들은 멍청한 얼굴로 무대위를 쳐다보다 마구 머리를 흔들어댄다. 바보들…. 그후 그는 OLD FUNERAL을 떠나고 앞으로는 오직 혼자서만 음악을 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의 나이 18세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조그마한 집을 얻어주었는데 그는 창문에 장막을 쳐놓고 촛불을 밝히며 책을 읽던가 기타를 쳤다. 그는 "반지의 제왕"에서 맘에 드는 이름을 두개 찾아냈는데 하나가 BURZUM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운트 그리쉬나크(COUNT GRISHNACKH)였다.

한편 그는 고대 조상들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은 기독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하기 전까지 전쟁의 신인 오딘(ODIN)을 섬겼었다. 카운트는 결심한다. 모든 스칸디나비아인들이 기독교도들을 모두 죽이고 다시 오딘을 섬기게 될 그 날까지 BURZUM의 이름하에 음악을 하겠노라고. 이때부터 그는 고대 무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해서 그의 집에는 칼, 창, 도끼등이 가득찼다. 그는 또한 베르겐 지방의 고대어인 BERGENSK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이후 곡 가사도 BERGENSK어로 작사했다) 이 언어에는 '전쟁'을 뜻하는 단어가 다섯 가지도 넘는다. 전쟁은 노르웨이가 기독교도들에게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991년이 되자 유로니무스를 따르는 무리들이 "THE SATANIC CIRCLE"을 조직하고 행동을 개시한다. 이 조직에는'내부(INNER)와 외부(OUTER)'서클이 있는데 이너 써클은 12명으로 구성되어 실제 전쟁을 수행하며 아우터 써클은 블랙 메틀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그 해 봄에는 MAYHEM의 보컬이던 DEAD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체를 발견한 유로니무스는 다시 오슬로로 돌아가 카메라를 갖고 와서는 죽은 DEAD의 사진부터 찍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DEAD는 좋은 가수였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유로니무스가 한 말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살을 통해 MAYHEM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는 점이다."

멤버 중 한 사람의 말을 들어 보자.

"처음 우리가 DEAD를 발견했을때 유로니무스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DEAD의 사회보장 카드를 찾아야 했다. 유로니무스가 그의 죽음에 관련되어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수주가 흐른뒤 사타닉 써클은 영국의 잡지와 음악인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인들은 종종 노르웨이인들이 VENOM을 숭배하고 보다 더 사악해지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비웃곤 했다. 영국인들의 생각에는 노르웨이인들이 공연보다는 스튜디오에서 저질 음반을 녹음하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었다. 유로니무스는 분노했고 써클측은 영국 밴드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제 어느 영국 밴드라도 노르웨이에서 공연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영국 밴드인 PARADISE LOST가 공연을 강행하려 하자 일단의 블랙메틀 팬들이 투어버스를 공격했다. 보컬리스트 닉 훌름스(NICK HOLMES)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10살에서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들 무리가 버스를 둘러싸더니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미친 것 같았다."

써클의 선전포고는 영국인들에게만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밴드들도 사악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일례로 THERION이 있다. 싱어인 CHRISTOPHER JOHNSSEN은 스톡홀롬의 자기 집에서 자다가 수명의 폭도들에게 습격을 당하고는 집이 불타버리는 꼴을 당해야 했다. 집벽에는 BURZUM의 앨범 커버가 단검에 꽂혀 붙어있었고 "카운트 그리쉬나크가 왔다 간다.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글이 씌여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 JOHNSSEN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희생자여, 나는 방금 스웨덴에서 돌아왔는데 내 앨범 커버와 성냥 한 개를 놓고 왔다…. 찾으러 갈 때까지 보관해라."

경찰은 18세의 SUUVI PRURUNEN이라는 소녀를 체포했고 그녀는 자신이 불을 질렀다고 자백했다. 그녀의 집에서는 그녀가 사타닉 써클의 일원이며 카운트의 명령에 의해 그 일을 저질렀다고 씌여진 일기장을 찾아냈으나 그 외의 증거가 없어서 카운트를 체포할 수는 없었다. 불쌍한 그녀는 이후 정신병원에 1년간 수감되었다.

이제 카운트는 써클 내에서 유로니무스에 이어 제2인자가 되었다. 그가 얘기를 시작하면 청중들은 경청했다. 그가 오딘에 대한 얘기를 하면 모두들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멤버들은 그가 외국인들을 증오하면서도 히틀러나 스탈린을 숭배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갔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행동파였다. 유로니무스는 말만 하지만 카운터는 실제로 악을 실천했다.

92년 6월 6일밤, 베르겐 근교의 Fantoft kirke라는 교회가 처음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 이 교회는 12세기에 세워진 노르웨이에서 가장 평판이 높은 교회중 하나였다. 곧이어 BURZUM의 미니앨범 "ASKE"가 발매되었는데 표지에는 불타고 있는 교회의 사진이 실렸고 레코드 회사는 경품으로 라이터를 끼워 팔았다. 그리고 그 밑에 "이것으로 교회를 모조리 불살라버려라!"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두번째 교회가 불탔고 또다른 교회가, 그리고 또다른 교회가 불타 사라졌다. 1992년 한해 동안에만 모두 8건의 교회 방화가 있었고 당연히 경찰에 소환되었지만 거기서 그는 범행을 부인했고 증거가 없었으므로 석방될 수밖에 없었다. 교회의 화재진압시 소방관 한명이 숨졌다.

카운트는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러워했으며 어느 기자에게 자신의 행동을 떠벌렸다. 당연히 경찰에 소환되었지만 거기서 그는 범행을 부인했고 증거가 없었으므로 석방될 수 밖에 없었다. 유로니무스는 그의 석방을 축하하며 "누구라도 카운트에 대해 증언을 한다면 사타닉 써클의 복수가 기다릴 것이다" 라고 경고했다. 카운트는 유로니무스가 말만 거창한 위선자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갔고 점차 그의 라이벌이 되어갔다. 유로니무스는 사탄적인 면을 원했고, 카운트는 사탄 역시 기독교 신앙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여 이러한 생각의 모든 것을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관점은 노르웨이의 신들을 다시 살려내고 진정한 노르웨이 인종과 문화를 재발견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둘 사이에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다가 폭발했다.

카운트는 권력을 원했고 이를 쟁취하기위해 전쟁을 선택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든 다른 두 원인을 간과할 수 없다. 유로니무스는 카운트의 애인이던 16세의 스웨덴 소녀 ILSA를 빼앗았으며, 카운트가 자기 어머니에게서 빌려서 BURZUM의 앨범 발매를 위해 맡긴 40.00 크라운을 꿀꺽했다.

1993년. 8월의 어느날, 카운트는 어머니의 폴크스바겐 골프를 빌려 타고 다른 두명을 더 태웠다. 하나는 ANDREAS NAGELSETT였고 다른 한명은 SNOR라는 사람이었다. ANDREAS는 자기 집에 내려서는 밤새 크게 음악을 틀고 떠들어댔다. 즉, 알리바이를 만든 것이다. 카운트와 SNOR는 오슬로로 가서 유로니무스를 찾아갔는데 먼저 SNOR가 벨을 눌러 문을 열었다. 유로니무스는 속옷만 입은채 문 앞에 서 있엇고 카운트를 보고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카운드가 몇장의 서류를 꺼내 그의 코앞에서 흔들었고 레코드 계약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싸우기 시작했는데 유로니무스가 부엌쪽으로 도망치자 카운트는 칼을 빼들었고 그의 등에 꽂았다.

유로니무스는 바닥에 쓰려졌으나 몸을 굴려 도망치면서 카운트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카운트는 다시 칼을 그의 목에 꽂았다. 유로니무스는 기다시피 밖으로 달아나서는 계단을 내려왔고 카운트는 천천히 뒤따르면서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다음날 아침. 이웃들이 유로니무스의 시체를 발견했을 땐 무려 23군데의 찔린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그중 16개는 등에 나머지는 목과 머리에 있었다. 물론 카운트와 SNOR는 그곳에 없었다. 카운트는 집으로 돌아와 영국의 CANDLELIGHT 레이블에 전화해서 "나는 카운트 그리쉬나크다. 유로니무스는 죽었고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경찰은 유로니무스의 여자친구인 ILSA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누가 유로니무스를 죽였는지 안다. 하지만 말을 할 수는 없다. 목숨을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SNOR를 연행했는데 그도 역시 카운트를 두려워하긴 했지만 결국 그날 카운트와 함께 오슬로에 간 사실을 시인했다. 8월 20일, 경찰이 카운트의 집을 수색했을 때 150kg의 다이나마이트가 발견 되었는데 이 폭약은 노르웨이의 국보로 11세기 이전에 지어진 NIDAROSDOMEN 성당을 폭파하려고 준비해 둔 것이었다. 14세에서 22세까지의 젊은이 13명이 체포되었고 카운트도 거기 끼어있었다. 이들의 혐의는 묘지 훼손, 강도, 강간, 방화들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94년 여름까지 13군데의 교회가 더 불에 탔다. 경찰이 밝힌 바에 의하면 써클 내에는 일종의 계급제도가 있어서 범죄를 많이 저지른 순서대로 계급이 매겨졌다고 한다. 카운트는 오슬로에서 9개월간 수감되었는데 의사가 혈액을 채취하려하자 그는 바늘로 찌르는 것은 남자답지 않다며 칼로 베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에서 그와 인터뷰를 하고 싶어 했고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그는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그의 변호사인 TOR ERLING STAFF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로 자신의 의뢰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두명의 심리학자가 카운트를 검사했는데 결과는? 지극히 정상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그 공산주의 돼지를 죽인 것이 자랑스럽다"

창밖을 바라보며 카운트가 얘기한다.

"그 겁쟁이는 싸워볼 생각도 않고 도망쳐 다니기만 했다."

이제 카운트는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것을 금지당했다. 그는 잠시 흥분하긴 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독방이나 바깥 세상과의 단절이 그를 괴롭힐 순 없다. 사실…. 그 무엇도 그를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총 21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이것이 노르웨이 법에 명시된 최고형량이다.

흔히 말하는 중2병과 같은 소아병적인 요소와 자잘자잘한 돈문제가 범죄에 이를 정도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카운트 본인의 확고한 신념이나 두려움과 불안 없이 스스로에게 충실한 태도,얹혀 사는 신세였지만 사회적 시선보다는 본인에게 중요한 인생목표를 망설임없이 추구하는 모습이나 그걸 뒷받침하는 뛰어난 실력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극우식 사고방식, 범죄행위 및 범죄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태도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아르핀 네세트와 같은 악질 흉악범에게도 가급적 관용을 베푸려 노력하는 노르웨이에서 단 한 명의 사람만을 죽인 카운트가 유기징역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4년이나 더 해야 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인터뷰 내용에서는 21년형이 법정 최고형이라고 했는데 실은 아니다. 2002년까지는 무기징역형이 적용되었고 그 뒤 무기징역까지 폐지되면서 법정 최고형이 되었으며, 노르웨이 정부는 무기징역을 대신해 예방 구금이라는 명목 하에 5년씩 형기를 연장하는 제도를 새로 도입한 상태다.

2 문답 인터뷰

당시 범죄자와 나눈 인터뷰 전문

Q> 왜 독방에서 지내나 ?
A> 경비들과 좀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이런 짓들을 생각나면 그냥 해버린다. 난 이 사람이던 저 사람이던 면회의 선택권도 없다. 그들은 간교하고 부당하다. 아무런 이유없이 그딴 짓을 한다는 것에 대해 열받는다. 그들은 개판이다.

Q>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의 면회를 막는가 ?
A> 글쎄….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여자친구의 면회를 막는다 .그들은 그녀가 여기서 몰래 뭘 받아갈지도 모른다고 떠드는데 개소리다. 일단 나를 체크할때 장식을 떼고 그리고 옷을 다 벗은후 검사를 받는다. 심지어 당신과 얘기하러 나올 때조차 그랬다. 어느 것이든 평범할 수가 없다. 정말 개같은 일이다.

Q> 이곳에 있으면서부터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가 ?
A> 다른 수용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믿긴 하지만 뭔가 계락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받을 수 있는 많은 내 편지들을 그들이 중간에서 저지시키는 것 때문이다. 가끔 한두개 정도의 편지를 받긴 하지만 거의 다 그들이 막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편지에 역십자가를 그려서 보내기 때문이다. 난 봉투나 뭐 그런것에 노르웨이 국기조차 그릴 수 없도록 되어있다. 그것이 국가주의자(민족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라고 그들은 말한다.

(주: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의 국기형태는 색깔만 다를 뿐 십자가를 옆으로 뉘여놓은듯한 형태로 동일하다.)

Q> 당신이 형무소에 도착한 첫날은 어땠는가 ?
A> 첫날…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넓은 방 중앙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채 있었다. 침대도 없었고 바닥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24시간동안 불을 켜놨다. 24시간전 날 데려왔던 자들이 다시 와서 창살 사이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담요를 하나 던져줬다. 당연히 그것은 매우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요점이다. 씻지도 못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Q> 그 바닥에 누워있는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가 ?
A> 그것은 진짜 존나 웃기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내가 매우 겁먹은 걸로 생각했고 그들은 '넌 진짜 끝장난거야!' 라고 해댔다. 그곳에선 물리적 테러가 아닌 정신적 테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도 이것이 더욱 나쁜 것이라는것을 안다.

Q> 평소엔 어떻게 지내는가 ?
A> 글쎄 지금 이 순간에도 난 격리되어 있으니 평범하지가 않다. 그래도 오늘 샤워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런 할 게 없다. 평상시엔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쓴다. 이곳에선 일을 하거나 학교를 갈 수 있다. 일할때는 램프를 들고서 우르르... 매우 지적인 일이다 하하. 하지만 운좋게도 난 학교를 간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그곳으로 간 후 7시반부터 오후 2시 50분까지 있다가 점심을 먹는다. 그런후 4시에서 6시부터 원한다면 운동장에 나가서 좀 오랫동안 머무를 수도 있다. 그리곤 내 방으로 돌아온다. 다른 죄수 10명과 함께 써야하는 주방이 있고 샤워실, 화장실, 이런 구역이 있다. 방안엔 화장실이 없다. 만약 소변이 마렵다면 세면대에다가 볼일을 봐야한다. 그럼 두 번 다시 쓰지 못할걸, 하하…. 이곳에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난 Bergen에 있을때부터 책을 써왔다. 그들은 늘 이것을 못하게 해왔다. 그래서 난 억지로 할 수 있을만큼만 했고 조만간 출판인에게 구두로 말할것이다. 그 책엔 노르웨이의 'Black Metal'이라 불리는 것과 관계된 몇 개의 장(章)이 있다. 그리고 몇 개의 장은 'Esctasy dance culture' (주: 원문대로 표기하였음) 와 '이교도적 의식'의 관계에 대해서다. 그것은 정확히 고대 스칸디나비아 (노르웨이의) 마법에선 같은 것이다. 당신이 모든 기력이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춤을 춘다면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Q> 어떻게 이곳의 현실에서 벗어나려하는가?
A>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카세트나 CD 플레이어는 가지고 있을 수 있다. Bach, Beethoven, Grieg(물론, 그도 역시 노르웨이인), 그리고 약간의 테크노를 듣는다.

Q> 혹시 이곳에서 자살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가 ?
A> 내가 뭣 때문에?

Q> 굉장한 실의에 빠지지는 않던가 ?
A> 가끔. 자살은 병신이나 하는 짓이다.

Q> Euronymous 를 죽인 것에 대해 후회하는가 ?
A> 절대로! 내가 왜! 중요한 점은 내가 하지도 않은 일때문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급살인죄로 날 기소했다. 그리고 모든 점들이 사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여기서 모든 죄를 다 뒤집어써야 한다. 진상이 밝혀지면 내 형량은 최대 12년이다. 그것이 내가 적어도 이곳에서 6내지 8년정도만 더 버티면 된다는 문제와의 가장 큰 다른 점이다.

Q> 그를 죽였어야만 하는가 ?
A> 글쎄…. 그놈은 내가 죽였다. 그가 날 죽이려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는 해내질 못했다 하하. 그래서 내가 대신 그를 죽여버렸다. 솔직히 자기방어라고 말하진 않겠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살해현장에서 그는 날 진짜로 위협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난 그를 두들겨 패버리거나 길거리 밖으로 걷어차버릴 수도 있었지만 죽여버렸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는 또다시 시도했을 것이다. 두 번의 기회는 줄 수 없었다.

Q> 그가 왜 당신을 죽이고 싶어했나 ?
A> 중요한 점은 그가 1984년부터 black-metal 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노르웨이내 이쪽 계통에서의 왕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시작할 때쯤인 91년도경엔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 당시 상황은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내 데뷔앨범이 92년 3월에 나왔고 Immortal 역시 9월에 나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교회들에 불이 나기 시작했고 우리가 씬에 등장하기 이전에는 저런 것들 중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는 정말로 방화에 몰두했는데 항상 교회들이 불타올랐고 그럴때마다 그는 주위의 모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다른 교회에 불을 질렀다'고 떠들어댔다. 또한 그는 사타니즘과 악마에 관련된 모든 것에 빠져들어갔고 점차 우리는 그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잠시동안 스스로를 사타니스트라고 칭한적은 있었지만 속으로는 결코 진정한 사타니스트가 아니였다. 왜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유로니무스 또한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로 악마가 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염병할 문제에 대해 의견불일치가 생겼다.

Q> 그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
A> 그가 나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말했다. 그리고 또한 나에게 이 얘기를 해준 그 친구에게 몇개의 편지가 보내졌다. 나는 그의 집 근처를 맴돌며 그에게 내 곁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였다. 우리는 새벽 3시경 성난채 말싸움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당황해있던 상태로 날 공격하려 했었다. 그래서 난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그가 일어나서 칼을 가지러 부엌쪽으로 달려가길래 만약 그가 칼을 가지게 된다면 나를 해칠테니 그가 칼을 가지기 전에 먼저 베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가 샷건이 있는 침실로 달려가길래 그를 잡아버렸더니 그는 비명을 지르며 온 동네의 초인종이란 초인종은 다 누르면서 살려달라며 도망을 쳤다. 골때린 상황이다. 그가 먼저 날 공격했는데 도와달라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참 우스꽝스럽고 가련한 장면이였다. 이웃사람들은 경찰에게 사건 당시 얘기를 증언할때 웬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크하하하. 쫓고 쫓기다 난 그가 다시 공격하기를 기다리며 주시하고 있었고 그가 갑자기 내 뒤로 돌아와 날 치려하길래 그때 그의 머리를 찔러버렸다.

Q> 그를 죽였을때 기분이 어떻던가 ?
A>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Q> 그를 죽일 당시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는가 ?
A> 내가 왜? 그냥 자연스럽게 죽였다. 당신 역시 그런 특별한 상황처럼 위협받고 있었다면 내 생각엔 아주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런 히스테리가 살인동기가 된다는 뭐 그런 말이다.

Q> 그래도 사회적 규범은 지켜야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이들이 뛰며 달리며 서로들 죽이고 죽이려 할텐데.
A> 물론 관습과 표준화된 법례는 필요하다. 하지만 돼지같은 자식이 날 납치해서 구타와 전기충격총으로 날 고문끝에 죽이려고 한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면 당신같으면 어쩌겠는가? 이건 당신이 얼마나 강한가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런 개쓰레기같은 자식한테 자비를 베풀라고? 웃기지 마라. 나는 사회의 법보다는 나의 법을 더 높이 산다. 날 죽이고 싶어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거기까진 좋다. 하지만 심각해진다면 내가 그를 먼저 죽여버린다.

Q> 노르웨이 블랙메탈계에 널리 만연되어있는 그러니까 교회방화, 살인 등등 이런 것이 음악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
A> 내 생각엔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매우 작은 일이라 생각한다. 노르웨이에 블랙메탈씬은 없었다. 이것이 요점인데 신문에 지금 말한 그런 것들이 기사로 쓰여진 그날 이후부터 우리는 유일한 노르웨이 블랙메탈씬을 가지게 되었다.

Q> 형기를 다 마치기전에 나갈 수 있을 것같나 ?
A> 누구나 그렇듯 12년 후에 보호관찰로 나가게 된다.

Q> 당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얘길 부모님이 전해듣고 놀라지 않으셨나?
A> 설마…. 우리 어머니의 반응은 내가 돼지를 죽였다고 생각하시는 정도다. 우리 어머니 역시 그를 결코 좋게 안 보셨다.

Q> 테러행위, 악마적 의식, 강간 등으로 행해지며 운영되던 'Inner Circle' 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것인가 ?
A> 그것은 유로니무스의 또 하나의 꿈이었다. 그는 Inner Black Circle 을 만들려했고 우리는 잠시동안 같이 활동하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 심각했다. 사타니즘에 그렇게 심각하게 빠져들었던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아무도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달리 원하지 않았다. 의식적 강간도 없었고…. 하여튼 그래서 그의 공상은 무산되었고 그때부터 나를 비난했다. 내가 보기엔 사타니즘은 두 가지의 형태로 나뉘어진다. 첫번째로 이러한 사타니즘이 있을 수도 있는데 중년나이의 독일이나 영국 사람이 너무 많은 포르노를 봐서 극도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선 발기가 안되는 그런 상황이있다 치자. 그럼 잠옷속에 뿔달린 악마의 형상같은 것을 넣어두고 그것으로 성행위를 할 경우 그것은 그들의 사타니즘이다. 안 그런가? 나머지가 바로 교회에 대한 사타니즘이다. 첫번째와 같은 걸로 말하자면 비슷한 연배의 여인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중년 남자가 젊은 소녀를 데리고 교회로 들어가서 섹스를 했다면 그들은 그것이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노르웨이의 어느 곳에서도 결코 존재할 수조차 없다. 이 나라에선 엄중한 법들때문에 그런 음란물들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Q> 결혼하러 당신의 여자친구가 온다면 그것은 가능한가 ?
A> 지금 이곳은 당신이 문을 잠글 수도 있는 일반면회실이다. 가장 좋은장소는 아니지만…. 하지만 이것은 가능하다. 친구들이 면회를 왔을때-물론 그들이 이곳에 올 수 있도록 허락이 먼저 나야겠지만 - 방안에는 동시에 경비들이 같이 있게 된다. 행여나 우리가 무슨 활동을 위해 계획 짠다는것 자체가 당연 금지되어 있다. 내 여자친구가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젠장할.

Q> 뭔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있는가?
A> 난 노르웨이의 격한 상황전면에서 혼란에 빠져있다. 노르웨이의 신앙이 어느 한 시점이 되면 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떠한 것이라도 맞서 싸울것이다. 그것이 외계인이라도 해도. 종교적인 뜻에서가 아닌 정략적인 셈어림과 종족적으로 말이다.

Q> 새앨범 'Filosofem'에 대해서 말해달라
A> 그것을 93년 3월에 만들었었다. 정말 오래된 것이다. 그 테잎은 그동안 계속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제일 먼저 카피 작업이 끝났을때 한번 들어봐야겠다.

Q> 앞으로 Burzum은 어떻게 되는가. 다른 앨범녹음도 가능한가 ?
A> Bergen에서 녹음을 해봤다. 키보드 사용과 음악작업하는 것을 허락 받았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녹음해봤다.(주: Balder's Död) 감옥에는 4트랙 MTR녹음기가 이걸로 녹음을 하고 Misanthropy로 보냈다. 모든 트랙은 연주곡에다 일렉트로닉한 앨범이다.

Q> 악명높은 평판과 장기간 동안의 감금이 매력이 되어 당신의 앨범이 꽤 많은 판매량를 올리는 점은 기대해도 좋다.
A> 아무것도 보질 못해서 그쪽에 관해선 전혀 모르겠다. 그런 쪽의 정보를 입수해 듣는것은 경비에게 의존하는것 외엔 없다. 94년 중순부턴 음악잡지조차 읽지 못했다. 알다시피 그건 내게 매우 힘든 일이다.

Q> 현재 활동중인 다른 많은 팀들이 당신을 경멸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나 ?
A>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이들이 유로니무스가 아니라 나랑 얘기하려했다. 저것이 그가 날 엿먹이려 했던 이유 중 한 가지이다.

Q> 머리색깔이라든지 외형은 왜 바뀌었는가 ?
A> 92년도에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했었다. 94년도에 잠깐 염색을 풀고 머리를 깎았다가 모든 신문잡지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사타니스트라든지 기타등등의 이미지를 위해 검은색이 좋다고 그렇게 하라고 해서 다시 검은머리로 염색했다.

Q>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상상하는가 ?
A> 글쎄.. 난 내 스스로 교육을 하고 결국엔 풀려날 것이다. 새로운 재판을 할 것이다. 그들은 달랑 편지 한 통으로 내게 21년형이라는 구형을 내렸다. 바로 이곳에서.

Q> 만약 내일 형무소에서 풀려난다면 삶이 좀 두렵지 않은가 ?
A> 뭣 때문에?

Q> 유로니무스의 친구 내지 멤버 또는 그의 가족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은 안해봤나 ?
A> 하하하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걸 확신한다. 하지만 난 내가 말한대로 아직 여기 이렇게 멀쩡히 서 있다. 어리석은 놈들만이 협박을 한다. 진짜 남자는 행동한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날 죽이길 원한다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 뻥까고 다니느니 차라리 그냥 입닥치고 기다렸다가 내가 여기서 나갔을 때 죽이면 되는것 아닌가. 안 그런가? 요점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협박하는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회가 왔을 때는 왜 죽이질 못했나? 내가 유로니무스를 죽였던 그 날은 누구든지 다 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죽이지 못하고있다. 전혀 두려운 것이란 없다.

진짜 아주 제대로 미친 놈이다.

3 현재

카운트는 2009년 16년의 복역 이후 가석방 조치 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2013년 7월 프랑스 사법 당국에 의해 테러 모의 혐의로 체포, 구속되었다.관련기사 그러나 며칠 뒤 확실한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존의 혐의는 벗겨졌고 대신 인종 증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황이다. 만일 노르웨이 정부가 그의 가석방을 취소한다면 카운트는 바로 송환 조치되어 5년을 추가로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가 교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을 다룬 논픽션물인 '혼돈의 제왕'이 나왔고 일본 영화 감독인 소노 시온이 영화화하기로 했으나 카운트가 제작진을 향해 살해협박을 하는 바람에 유야무야된 듯 하다.
  1. 스웨덴, 노르웨이어로 가타(gata)는 '거리'란 뜻이다. 즉 퇴위엔가타는 '퇴위엔街'나 '퇴위엔路'란 뜻이 된다.
  2. 블랙 메탈빠들이 올려둔 사진을 보면, 붉은색 벽돌로 된 4층짜리 공동주택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빌라, 혹은 연립주택이라고 부를 것이다. 구글어스에서 주소창에 +59.91516+010.76931 (ISO 6709에 따른 위경도 표시. 북위 59.91616도, 동경 10.76931도라는 뜻이다.)라고 치면 해당건물을 볼 수 있다.
  3. 전 서술자가 무기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카운트는 징역 21년만 선고받았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 오히려 무기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은 20여년 뒤 총기난사를 저지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
  4. 초명은 크리스티안이었지만, 이 이름의 어원이 '그리스도교인' (라틴어로 그리스도교인을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라고 쓴다. 이 단어가 영어화시킨 것이 크리스천(Christian), 크리스티안도 어원을 같이한다.)인 관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바르그'로 개명했다. '바르그'는 늑대라는 뜻이다.
  5. 실제로도 노르웨이는 스위스와 함께 수감자 처우와 교도소 시설면에서 가장 좋은 편에 속하는 나라이다. 그 '유스호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