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무

1 대한민국의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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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 후에 독일 에센 폴크방 대학으로 유학, 전자음악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내에서 작곡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이다.

강석희니콜라우스 아 후버에게 사사했다.

작품의 대부분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이 개척한 장르인 전자음악에 집중되어 있다.

추계예술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숙명여자대학교 출강 중.


주요 작품

-앙상블을 위한 “선형(Lineation)”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타원(Ellipse)”
-앙상블을 위한 “왜곡된 움직임(Distorted motion)”
-4채널 테잎을 위한 “수투(Sootoo)”
-피아노를 위한 “니힐니히츠(Nihilnichts)”
-4채널 테잎을 위한 “시그마 포인트(Sigma Point)”
-타악기와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위한 “소멸에 관하여(Uber das Loschen)”
-소프라노, 알토 색소폰, 타악기와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위한 “정신의 단층- 2006년의 1:1 펄스(A mental tomography – 1:1 pulse in 2006)”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와 스피커를 위한 “상자 속에서 F가 울리다(F ringing in the box)”
-앙상블과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위한 "Iconic loop"
-앙상블과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위한 "요철과 오판"
-3대의 피아노와 실시간 전자음향을 위한 “백색경계”
-4채널 테잎을 위한 “Clone.clone”
-현악 4중주를 위한 “아담의 노래”
-4채널 테잎을 위한 "Tiny Window"
-앙상블을 위한 "가온-아"

2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친일파

이병무(李秉武)
1864년 ~ 1926년
복무조선군
대한제국군
일본군
기간1894년~?
임관무과 급제
최종계급일본군 중장
최종보직?

2.1 개요

구한말일제강점기관료이자 군인. 1864-1926.

2.2 생애

1864년 2월 8일에 태어났다. 음력으론 1월 1일생. 정종의 서자인 무림군의 후손이다.

1894년에 무과에 급제했다. 당시에 의친왕 이강을 따라 일본으로 간 뒤 친일파가 되었다. 1895년에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파견을 가 공부하였고 한국으로 돌아와 육군무관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친일행위로 2년간 구금을 당하기도 하고 1900년에 유배를 가기도 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기를 잡자 복직했다. 1905년에는 이재완의 방일에 수행해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정미칠적, 대한제국 군대해산을 주도했으며, 고종의 퇴위도 요구했다. 칼을 들고 자기 목에 대는 시늉을 하며 겁박했다. 이후 의병 진압에 앞장섰다.

1909년 대한제국군부(현재의 국방부)가 해체되고 친위부가 생기면서 친위대신을 지냈다. 1910년에는 시종무관장이 되었다. 시종무관장이 육군부장[1]에 해당하는 계급자가 보임되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계급도 중장급임을 알 수 있다.

그후 일본군에 편입됐고 최종계급은 일본군 중장이었다. 경술국치 후 귀족작위(자작) 받아 떵떵거렸다.

1926년에 뒈졌다. 뒈짓!

2.3 여담

그의 아들인 이홍묵(1895-1960)은 1927년에 그의 자작 작위를 세습했다. 이홍묵은 1950년에 반민특위에 의해 공민권 3년 정지를 구형받았으나 실질적으로 형을 받았는지는 불명이다.
  1. 현재의 육군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