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이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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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스탠포드 대학교의 학생들이 설립한 검색엔진이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이다. 포털 서비스는 1995년부터 시작한다.

2 역사

2.1 초창기

1993년, 평소에 서로를 잘 알던 6명의 스탠포드 대학교[1]의 학생들은 졸업이 다가오자, 직장을 구하기 전에 경험도 쌓을 겸 창업을 시도한다.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당시 인터넷에 부족한 점을 찾다가, 텍스트 문서로 이루어진 구조화되지 않은[2]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신에게 맞는 문서를 찾는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검색엔진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한다. 맨 처음 창업했을 때 회사의 이름은 익사이트가 아니라 '아키텍스트 소프트웨어(Archietext Software)'였다.

이후 2년 동안 회사는 인포월드 잡지 발행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사용할 검색엔진을 만드는 등 주로 외주 제작을 통해 돈을 벌었으며, 이 과정에서 쌓은 인맥을 통해 여러 기업과 벤처 캐피탈 회사들과 인맥회사맥?!을 쌓으며 투자를 받게 된다. 개중에는 아직 기업공개도 안 한 소규모 벤처기업에 불과한 익사이트를 3백만 달러에 인수할 의향을 보인 회사도 있었지만 익사이트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1995년 경 익사이트는 투자자들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회사의 최종적인 방향을 잡기로 한다. 그러니까 빨리 돈 벌라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온라인 광고, 웹 검색 엔진 중 익사이트는 웹 검색 엔진을 최종적인 방향으로 잡고 1995년 10월에 웹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사이트인 excite.com을 열게 된다.[3]

2.2 전성기

excite.com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투자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익사이트는 대규모 자금 확보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1996년 4월 익사이트는 나스닥에 상장한다.[4] 나스닥에 상장한 이후 익사이트는 1996년 7월에는 마젤란[5], 1996년 11월에는 웹크롤러크롤러와는 다르다! 크롤러와는! 트롤러와도 다르다! 를 인수하며 웹 검색 시장에서 몸집을 키운다. 웹크롤러를 인수하면서, AOL의 검색 결과는 자연스럽게 익사이트가 제공하게 되었다.[6] 1997년에는 당시의 또다른 인터넷 부분의 거대 기업인 넷스케이프에게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이후 MSN에도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시작하며 익사이트는 90년대 후반의 주요 검색엔진 및 인터넷 포털 사이트 중 하나가 된다. 그런데 검색 분야에 집중하지 않았는지 얼마 안 가 다른 기업에 다 뺏겼다.

익사이트는 1997년 중반부터 세계에 진출하기 시작해 1997년 말에는 호주, 프랑스, 독일, 일본, 네덜란드, 영국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당시의 많은 인터넷 기업이 그랬듯, 익사이트는 검색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1998년 4월에 쇼핑 검색 업체인 넷봇을 인수하고, 같은 달에 이용자가 포털의 메인페이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직접 꾸밀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7]도 이와 관련이 있다.

2.3 몰락

익사이트는 당시의 수많은 인터넷 포털처럼 검색에 투자하기보다는 분야 확장을 통해 세계의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및 검색엔진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익사이트는 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바로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닷컴 버블 이전의 거의 모든 주요 인터넷 포털과 검색엔진이 지니고 있었던 문제로, 닷컴 버블 이후 이 업체들이 한꺼번에 붕괴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닷컴버블이 터지기 전까지 인터넷 관련 분야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있었고, 거품을 타고 치솟는 주식가격은 미래에 대한 수익이 지금 미리 평가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익사이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99년 5월,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 포털 사이트였던 익사이트는 고속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인 앳홈(@Home)에게 67억 달러에 인수된다. 4개월 전 인수 계획을 발표할 때 앳홈은 익사이트의 콘텐츠와 앳홈의 브로드밴드 접속의 결혼(...)으로 브로드밴드 시대의 AOL[8]이 탄생했다고 선언한다. 두 회사가 합병한 후 익사이트의 이름은 익사이트앳홈(Excite@Home)으로 바뀐다. 합병할 때는 인터넷 인프라와 콘텐츠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산 것이었겠지만, 그런 건 없다시피 했고, 1999년 4분기에 합병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흑자를 낸 이후(...) 회사는 계속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이후 얼마 안 가 닷컴 버블이 터지고 통신사마저 어려운 상황이 처하게되면서 익사이트앳홈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2001년 4월, 빚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익사이트앳홈은 전환사채[9]까지 발행해가며 버티기를 시도[10]하지만, 본업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카드 돌려막기보다 나을 것이 없는 해결방법이었다. 결국 2001년 10월, 익사이트앳홈은 부도가 난다.

부도가 난 후 본래 앳홈이 소유하고 있던 인터넷 인프라는 AT&T가 인수했고, 익사이트재팬을 제외한 익사이트와 세계에 퍼져있던 지사들은 iWon.com에서 인수한다.[11] 이후 익사이트는 iWon.com과 함께 2004년에 애스크 지브스(Ask Jeeves, 현 애스크 닷컴(Ask.com))에 인수된다. 그리고 익사이트재팬은 아시아전역의 상표권와 함계 이토추상사에 인수되면서 독립했다.

3 현황

2015년 7월 기준, 익사이트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활발한 활동을 한다기 보다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들어가보면 그냥 그런 포털로 운영 중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2015년 7월 현재 검색 결과는 도그파일(Dogpile)이라는 메타 검색엔진에 의해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독립한 익사이트재팬을 제외하면 해외자시사이트는 그야말로 안습에 달리고있는데 메일서비스조차도 지원하지 않고 포털사이트의 가장핵심인 검색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이건머... 포털사이트라고 부르기도 밍망할 정도 이다.

4 여담

  • 초기에 검색엔진을 개발할 때, 익사이트는 단어 사이의 관계를 통계 분석으로 알아내어 검색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러한 방식은 키워드 검색보다는 디렉토리 검색이 검색의 대부분을 이뤘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방법이었다.
  • 사용자가 포털 사이트의 메인페이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미는 서비스를 1998년에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2015년 현재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 1999년, 구글의 창업자 두 명이 찾아와서 구글을 75만 달러에 인수해달라고 제안하지만 거절한다.
  • 세계 인터넷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국에 진출한 적이 없어서 그렇다(...).

5 참고자료

[1]
[2]
[3]
[4]
[5]
[6]
[7]

[8]
  1. 익사이트의 창업자와 구글의 창업자는 같은 대학교 출신이다.
  2. 쉽게 말해, 정리되지 않은
  3. 열 당시 데이터베이스의 문서 수는 150만 개로,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데이터베이스였다.
  4. 참고로, 야후!는 1996년 11월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당시는 인터넷 회사들이 자금 확보와 주식 매각을 통한 본인의 현금 확보를 위해 서서히 주식 시장에 상장하기 시작하던 때이다.
  5. 탐험가가 아니라, 그 탐험가의 이름을 딴 검색엔진이다
  6. 웹크롤러는 AOL 산하의 검색 엔진이었다.
  7. 한국에서는 최근에 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8. 2년 뒤 AOL은 이와 똑같은 소리를 하며 타임 워너를 인수하고, 그로부터 10년 후에 다시 분사하며 인수를 '최악의 실수'라고 평가하며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밝힌다. 공교롭게도 브로드밴드 시대의 AOL이 되겠다 선언한 익사이트앳홈은 비슷한 합병으로 타격은 입었지만 살아난 AOL과는 다르게 아예 망하게 된다.
  9. 소유자가 원할 경우 회사의 주식과 교환할 수 있는 회사채이다.
  10. 이즈음, 앳홈의 CEO는 자리에서 물러난다.
  11. 이 때부터 익사이트는 자체적 검색결과 제공은 포기하고 iWon.com 소유의 메타 검색엔진 도그파일의 검색 결과를 제공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