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봉

(장삼풍에서 넘어옴)

張三峯
(? ~ ?)

1 개요

중국 , 대의 도인. 본명은 전일(全一)또는 군보(君寶), 군실(君實). 도호는 원원자(元元子)라 한다.

김용의 소설속 세계관 내에서 무당파의 개파조사로 지속적으로 언급 되었고 이후 등장한 무협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이 차용되어 일반화 되었으나 이는 완전한 소설속 허구이다. 다만 인물 자체는 실존한 것으로 여겨진다.

송말 요동 의주에서 태어나 원나라 시대 고아가 된 이후 섬서 화산에서 화룡진인의 밑에서 도가수행과 신체운동을 배웠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다. 화룡진인의 밑에서 수행을 마친후 무당산에 은거하면서 도인들의 체력관리를 위해 무술과 수행을 결합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여 태극권을 창시, 이후에는 '태극권의 창시자'또는 '권성(拳聖)'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카더라.

말년에 우화등선하여 무당산에 살던 을 때려잡았다는둥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는 인물로 120세 넘게 장수한 걸로도 유명하다. 관우와 함께 아직도 민간에 다양한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인물 중 하나.

태극권을 장삼봉이 창안했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하지만 태극권은 진가구의 진씨 집안 가전무예라는 것이 무술계의 중론. 장삼봉이 창안했다는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면 무당파 역시 장삼봉이 세운 게 아니다.

2 기록

사실 장삼봉에 대한 유일한 정사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당시의 황제인 영락제가 장삼봉 진인을 현자의 예우로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숨었다.”-명사 방기전

이 기록에서는 장삼봉 진인의 나이를 120세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기록 때문인지 중국 민간에서는 실재했던 신선이나 이인으로 대단히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위의 태극권 이야기도 그런 민간 전설의 하나일 뿐이다.

여담으로, 여말선초의 정치가 정도전의 호 삼봉과 한자까지 똑같다.그리고 이 때문인지 훗날 둘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는데...
그리고 훗날 삼한제일검이 되는 제자를 하나 길러냈다

3 장삼풍? 장삼뢰?

때로 장삼풍(張三豐)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峯과 豐이 중국어에서 음이 같기 때문이다. 드물게 한국어로 번역된 중국 무협에서 장삼뢰(張三耒)라고 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豊의 약자로도 쓰이는 예쁠 봉(丰)자를 쟁기 뢰(耒)자로 오독한 탓으로 보인다.

4의천도룡기》의 장삼봉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는 주요한 등장인물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장군보.

무당파의 개파조사. 《신조협려》 말미에서 벌어졌던 2차 화산논검에서 최초로 얼굴을 내민다. 그 때엔 소림사각원대사 밑에 소속된 10대 초중반의 하인 불과했다.

하지만 이미 각원대사에게 구양진경을 일부 전수받고 있었으며, 무공 초식은 전혀 몰랐지만 양과의 몇 수를 지도받고 당세의 고수인 윤극서를 엿먹이는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이 이름을 쓸 때의 사건은 장군보 항목을 참조.

스승인 각원대사의 죽음과 함께 벌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에 소림사에서 도망쳐 나온 후 도가의 원리가 접목된 무공을 창안하여 나중에 소림사와 함께 무림의 양대 산맥으로서 오랫동안 군림하게 되는 무당파를 세운다.

의천도룡기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무당파가 세워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이미 문파의 명성이 높아진 때인, 그가 90세가 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하므로, 본 작품 안에선 고령으로 인해 그다지 많은 활약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주인공인 장무기의 아버지가 장삼봉의 제자였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무당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천하오절곽정, 양과, 주백통, 금륜법왕 등 엇비슷한 수준의 절정고수들이 난립했던 두 전작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에서와는 달리, 의천도룡기에서는 주인공장무기가 대성하기 전까지 장삼봉 혼자서 무림지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장무기가 최고수준의 내공을 보유했고 건곤대나이와 성화령 신공이라는 강력한 무공을 익혔으므로 장무기가 장삼봉과 비슷한 급이라고 추측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위력의 강하를 떠나 무학의 깊이면에서 명백히 장삼봉이 몇수는 더 위인걸 알수있다. [1] [2] [3] [4]

소림사도액 등 소림삼대신승, 명교의 광명좌우사와 사대호교법왕, 아미파의 장문인 멸절사태, 조민의 수하였던 현명이로 등의 당세를 주름잡은 고수들도 장삼봉보단 명백히 몇 수 아래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장무기 전대의 명교 교주 양정천이 높은 경지까지 올라 간 것 같긴 하나 그 역시 몇수 아래로 보인다.[5] 게다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보니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게 되었다.

정파무림의 태산북두 격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정파 측에서 무조건적으로 경원하다시피 하는 사파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여, 사파에 몸담은 인물이라 해도 군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친구로 맞아들일 수 있다는 실로 대인배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즉, 정과 사를 이분법적으로 일도양단해 버리는 편파적인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명문정파에 속하여 사파를 매도하면서도 뒷구멍으로는 사파 인물들보다 더 악독한 짓을 저지르기를 일삼는 치사한 놈들[6]이 작품 안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의 이러한 생각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가장 아끼던 제자인 장취산이 죽은 후 사파에 대해서 확실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장무기에게 절대로 명교에 입교하지 말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고, 후에 장무기가 명교의 교주가 되어 나타나기 전까지 명교에게 안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95세 무렵부터 해마다 아홉 달씩 폐관 수행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무당파의 무공은 주로 구양진경의 일부분에서 창출한 것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구양진경의 내용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당파 무공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양진경이 완벽하지 못한 바에야 스스로 무공을 창출하여, 지금까지의 각 문파의 무공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만들려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태극권과 태극검.

100세 가 되도록 여전히 대마법사숫총각이었으며, 80년간 홀로 수행한 끝에 터득한 '순양무극공(純陽無極功)'을 극한까지 연마하고 있다.

무려 110세의 나이로 장무기에게 태극권과 태극검법을 가르침으로써 그의 무공이 대성하도록 돕는다. 제자로는 무당칠협이라 불리는 일곱 명의 속가 제자들이 있으며, 장무기의 아버지인 장취산은 그 중 다섯째다. 아무튼 엄청난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천도룡기 마지막까지 건재함을 과시하며, 장무기는 작품 내내 그를 매우 존경하고 우러러보며 그와 무당파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나서는 자세를 견지한다.

90세 이후로 10주년 생일마다 생일마다 안 좋은 대사건이 터진다.

90세 생일때는 제자 유대암이 폐인이 되어 돌아왔고, 100세 생일 때는 장취산이 자살해버렸고…. 110세 때는 장무기가 돌아오는 좋은 일이 있어서 반전이 되긴 했으나 제자들이 납치당하고 무당산은 쑥밭이 될 뻔한 일을 겪었다. 얼마 안 있어 막내 제자인 막성곡이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으니 일종의 징크스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 장삼봉의 무술 실력을 알수있는 가장 큰 부분은 의천도룡기 1권에 나오는데, 현명이로에 잡혀있는 장무기를 뺏는 장면이다. 장삼봉이 현명이로중의 하나가 잡고있던 장무기를 순식간에 뺏어버린다. 눈앞에서 살짝 어깨를 눌러서 순식간에 현명이로를 제압해버린것이다. 이 정도 수준차라면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현명이로는 의천도룡기의 악역중 최고의 무공으로 그 이후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 조차 현명이로2명과 붙어서 단 1초에 패배했다. 만약 죽이려햇으면 단1~2초에 죽였것이다. 이 상황까지 고려하면 장무기와 장삼봉의 수준차는 매우 크다. 그 이후 장무기는 그 이후 무당산에서 장삼봉에게 태극권과 태극검을 직접 지도 받고 본인 무학의 여러부분을 전반적으로 완성시킨다. 그래서 장삼봉에게 세심하게 지도받은지 불과 몇달후에 현명이로와 맞붙어 몇십초만에 패퇴시킬정도의 무공의 상승을 보여준다. 장삼봉과 장무기의 무학의 수준차가 이정도이다.
  2. 나중에 장무기의 내공을 보고 각원대사나 양과급이라고 추측하는데, 김용 월드에서 누가 내공제일인가는 상당한 떡밥이지만, 내공이 극에 이르면 거기서 거기이며 승패는 초식이나 전술등으로 결정나기 마련인지라, 장무기와 장삼봉은 인간이 수련할 수 있는 내력의 거의 정점에 올라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조영웅전 초반은 몰라도, 후반부나 신조협려 당시의 천하오절이 이 경지이며, 이 시대에는 장무기와 장삼봉 정도만이 그 경지에 오른 셈이다. 다만 장삼봉은 이미 민간전설에서 신선취급 받는 실존인물인지라 김용도 장삼봉의 무공 수위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묘사는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천도룡기 시점에서 장삼봉과 장무기가 동급인지, 아니면 둘 중 하나가 좀 더 뛰어난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3. 그러나 굳이 고하를 따지자면, 장삼봉이 나은것이 사실이다. 사실 무공의 고하는 그가 익힌 무공의 갯수나 어떤 무공인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결정적인게 아니다. 개인의 자질과 스승, 수련으로 인한 무술의 완성도가 최종적인 그의 수준을 보여주는것이다. 그 무술을 배운다고해서 모두가 같은수준의 고수가 되는게 아니다. 같은 일양지를 익혔지만, 일등대사와 주자류등 제자의 수준차는 크고, 후일 장무기를 괴롭히던 주씨 일가는 더욱더 떨어진다. 장삼봉의 무공의 자질은 김용월드 통틀어서도 최고수준이다. 애송이 시절 소림의 기초적인 무술로도 소림사모두가 패배한 곤륜파의 최고수와 대결할 정도였다. 무술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익한 사람의 자질과 노력, 성취가 그만큼 중요한것이다. 예를들어, 곽정만해도 애송이 시절 강룡십팔장을 다 익혔지만 구양봉에게 상대가 안됐다. 그러나 수십년간의 고련과 천하오절중 홍칠공 일등대사 황약사등의 지도와 구음진경으로 무공수준이 높아져서 결국 구양봉을 능가하는 고수가 되었다. 일양지만해도 일등대사는 천하제일의 위력을 보여주지만, 그 제자들이나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주씨일가는 일류이긴해도 그 정도 위력이 아니다. 양과만해도 합마공 전진무술 고묘파무술 탄지신공을 완벽하게 익히고 구음진경을 완벽하게 익혔을당시에도 아직 절대 고수는 아니었다. 물론 단기속성코스로 독고구패의 무공을 단숨에 얻는 밸런스파괴를 보여주지만, 그 이후 19년의 수련으로 밸런스를 맞췃다. 양과가 진정 최고고수가 되는건 그 후 19년이후라고 봐야한다. 즉, 내공의 수위, 그가 익힌 무술의 종류는 기초일뿐이다. 장무기는 어릴때부터 사손과 무당파의 무공기초를 탄탄히 익혔고, 구양진경을 수련해서 무술이론이 탄탄한 상태에서 구양진경의 내공을 익힌상태로 건곤일기대에서 전신 경락이 타통하는 기연을 얻어서 단숨에 최고수준의 내공을 완성했고, 내공이 최고수준이면 쉽게 익힐수잇는 건곤대나이 심법을 익히는등 여러모로 속성완성의 길을 밟을수잇었다. 그건 김용월드에서도 아주 예외적인 단기 속성코스이다. 그래서 무공에 빈틈이 많았다고 볼수있다. 그래서 광명전에서 대결시에 화산파와 곤륜파4대고수의 대결에서 빈틈을 보였다. 독학으로 익힌 무공의 한계를 장삼봉이 탄탄하게 조정해준것으로 볼수있다.
  4. 그 이후에 장무기가 젊은 시절에 구양진경 구음진경을 다 익혔으므로 앞으로 장삼봉을 능가할것이냐 아니냐를 문제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배우더래도 개인의 자질면에서 한계가 있다면 과연 어디까지 성취할수있느냐는 의문이고 ( 구양진경과 구음진경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반대무공이다. 한 사람의 몸에 같이 익히기가 힘들다는것이 사손의 설명. 장삼봉이면 가능할거라고 덧붙힘} 구양진경 구음진경을 익히더래도, 젊은 시절 장군보일때의 장삼봉의 놀라운 자질에 비하면 자질이 떨어지는 장무기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알수없는 일이다. 다시 되풀이해서 이야기하지만, 같은 일양지를 익혀도 일등대사 수준이 되기도 하고 장무기를 괴롭히던 주씨일가정도 수준밖에 안될수도있다. 최고급 무공이라 어느 수준까지는 올라가지만 그렇데가 지존의 수준은 안되었던것이 주씨일가이다.
  5. 아무래도 실존한 무학계의 전설이다보니 그만한 대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양정천은 명교의 비전인 건곤대나이 신공도 내공부족으로 다 익히지 못하고 주화입마로 죽었으니 이미 무공의 고하는 꽤 뚜렷한 셈이다. 양정천이 장무기보다 명백히 한수아래이고 그 이후 태극권등을 더 배우고 장삼봉에게 세심한 지도를 받은 장무기에겐 두수이상 아래인데, 장상봉에게는 매우 아래일수밖에
  6. 화산파의 장문인 선우통, 대리국 주씨의 후예 주장령, 곤륜파의 장문인 부부 하태충과 반숙한 등 세어보면 굉장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