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밀러

이 이름을 가진 사람 중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은 두 사람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주요 활동을 거친 후 미국에서 활동을 하며, 두 사람 다 감독이다.

1 Dr. George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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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맥스 시리즈의 창조자이자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아버지.[1]
노익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며 영화팬들이 무병장수, 만수무강을 기원하게 만든 액션 명장.
그러나 정작 매드 맥스 시리즈하곤 영 거리가 먼 푸근한 얼굴이라는 게 함정.(...)~[2]
왠지 의사양반이 떠오른다 근데 진짜 의사양반 맞다

1945년 3월 3일 [3]오스트레일리아 퀸스랜드 친칠라에서 출생. 태어날 당시의 이름은 조지 밀리오티스. 집안이 그리스계 이민이다.

원래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를 다니던 중에 1971년에 멜버른 대학에서 진행한 영화 특강을 공부했고, 이때 그의 큰 동료가 되는 바이런 케네디[4]를 만나서 그와 함께 Violence in the Cinema, Part 1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찍게 된다. 그 후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공의[5]로 일하면서 바이런 케네디와 함께 시나리오를 하나 쓰게 되고, 그 시나리오를 저예산으로 영화화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매드 맥스이고,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며 그를 감독으로 만든다.

이후 매드 맥스 2와 TV시리즈 작업, 환상특급극장판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등의 큰 활약을 하며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다.
1985년에는 미국 워너브라더스의 지원을 받아 매드 맥스 3를 만들게 되고[6], 이후 미국에서 이스트웍의 마녀들을 만든 이후 5년에서 6년 사이에 한편을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들이나 꼬마 돼지 베이브의 제작을 맡기도 한다.[7]

1998년 호주로 돌아가 꼬마 돼지 베이브의 속편을 직접 감독하기도 했으나 영화가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했고[8][9], 이후 절치 부심하다 2006년에 3D 애니메이션인 해피 피트로 다시 돌아왔다. 환경보호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고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상도 수상했다. 이후 해피 피트2까지 감독을 맡았지만 하지만 해피 피트 2는 아쉽게도 흥행에서 부진했다.

이후 2015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로 30년만에 매드 맥스 시리즈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 매드 맥스 신작에 대해 관객과 평론가의 평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데, 70세가 넘은 노령 감독이 30년의 한을 풀겠다는 듯 제대로 미쳐 날뛰고 있다30년간 응축시킨 광기는 평가, 혹은 지금까지의 액션 영화들을 소꿉장난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강렬하며, 다크 나이트, 혹은 터미네이터 2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불멸의 걸작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흠좀무.

정형외과 전문의라 매드 맥스 1, 2편을 찍을 때 부상당한 스턴트맨[10]을 직접 치료해주면서 제작비를 아꼈다고 한다. 이번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찍으면서 다친 스태프들을 직접 치료해 주었다는 후문이 있다.진정한 의미의 의사양반

2016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었으며, 그가 감독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비록 본인은 감독상을 놓쳤지만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상 등 무려 6개 상을 수상하는, 본 얼티메이텀 이후로 액션영화 사상 전례가 없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30년간 다른 영화를 찍어오면서도 여전히 구상을 멈추지 않았던 멋진 시각적 세계관, 혼을 불어넣은 사운드와 편집으로 완성한 한 편의 걸작에 아카데미가 바친 최고의 경의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감독님은 어서 매드 맥스: 웨이스트랜드를 찍어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칸 영화제 수상작 선정에 논란이 생기고 말았다. 자비에 돌란을 참조하길 바란다.

1.1 필모그래피

아무리 봐도 심한 괴리감이 든다
팬들도 안다
액션영화 → 드라마 → 의학 가족영화 → 가족영화 → 애니메이션 → 액션영화

  1. 이 수식어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매드 맥스 시리즈 전체(정확히는1981년작 매드 맥스 2부터)가 이후북두의 권, 폴아웃 시리즈를 비롯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온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원형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2. 실제로 아래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구 매드맥스 삼부작 이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직전까지 대체적으로 '로렌조 오일', '꼬마돼지 베이브', '해피 피트' 등의 푸근한 영화들만 찍었던 건 사실이다....라곤 하지만 해피 피트만 해도 막판으로 갈수록 멘붕하는 연출들을 선사하여 수많은 꼬마 관람객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3. 2016년 기준으로 만 71세다! 흰 머리카락과 나이를 감안해도 저사진이 70대 초반으로 보이는가?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엄청난 동안인 셈
  4. 매드 맥스 2까지 엄청난 동지였고 제작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으나, 1983년 헬기 추락 사고로 요절했다. 호주 영화진흥원은 그를 기념하여 1984년부터 바이런 케네디 상을 만들어서 호주 영화계에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상을 기여하고 있다. 밀러 본인도 매드 맥스 3를 그에게 헌정했다.
  5. 의사인 덕분에 엑스트라들이 액션씬으로 부상을 입었을때 직접진료를 해주면서 많은 제작비를 아꼈다고 한다.
  6. 앞에 적은 바이런 케네디의 사망 사고로 인해 작품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사정상 액션씬만 연출한다는 조건으로 감독을 맡았다. 드라마나 다른 부분은 공동 감독인 조지 오길비가 담당.
  7. 여담으로 니콜 키드먼과 의외로 엮여있는 사람이기도 한데, 그녀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인식 된 죽음의 항해를 제작한 게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방콕 힐튼 이라는 TV시리즈와 청춘 기숙사라는 그녀의 배우 생활에 의외로 큰 기점이 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8. 제작비가 9000만 달러인데, 미국에서 얻은 수익이 고작 1800만 달러…전세계적으로 6913만 달러에 그쳐 이정도면 확실한 실패다.
  9. 이와 반대로 꼬마 돼지 베이브 1편 감독을 맡았던 크리스 누난은 11년후인 2006년에 영화 미스 포터를 개봉했지만 제작비는 3000만달러인데 미국 흥행 수익이 300만달러에 그쳤고 전세계 3500만달러에 그쳐 흥행 실패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차기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10. 2편에서 폭주족 중 하나가 차를 들이받고 공중을 몇바퀴씩 돌며 날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왼쪽 다리가 차에 치여서 정말로 부러졌다고 한다. 이 걸 밀러가 고쳐준 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폭주족을 맡은 스턴트맨은 분노의 도로에서 스턴트 감독을 맡았다.
  11. 바이런 케네디가 사망하자 감독자리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액션씬만 연출한다는 조건으로 연출을 맡았다.

2 George Trumbull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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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와 록산느 촬영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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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 촬영하던 때. 많이 늙었다.

1943년 스코틀랜드 출신. 1번보다 연장자이다.

1960년대 말부터 오스트레일리아 TV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1982년에 호주의 건국서사시인 스노위 강에서 온 사나이를 영상화 한 동명의 영화를 감독[1]하면서 감독 데뷔했다. 이후 그는 TV에서 다시 활동하다가 크리스토퍼 리브가 출연한 창공의 도전자를 감독하면서 미국시장에 진입하게 되고, 이후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다.

미국에서 몇편의 TV용 영화를 감독한 이후 그는 네버엔딩 스토리2를 감독하고, 이후에도 TV와 극장용 영화를 반복하면서 1번의 사람과는 달리 여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게 된다. 심지어 한 해에 3편의 영화를 냈을 정도.[2] 그 덕택에 그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으나, 그 다작때문에 몰락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2010년이 되는 현재까지 다작을 했던 이전과 달리 딱 2편만을 만드는 상황에 이른다.[3] 피지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중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엎어졌다.

여담으로 1번항목의 사람과는 달리 이 사람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잘 드러난 적이 없다. 심지어 자신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스노위 강에서 온 사나이가 20주년기념으로 호주에서 DVD로 나올 때조차 이 사람에 대한 건 한부분도 없었다. 이외에도 다른 영화에서도 자료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자료 찾기도 힘들다. 덕택에 대부분의 자료 사이트에서는 1번의 사람과 섞어서 쓰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2.1 필모그래피

프레이(Prey) (2009)[4]
세이버투스의 습격 (2006) - TV용 호러 영화 (눈물겨운 수준의 CG가 일품, 국내 DVD 출시)
사이버무트(Cybermutt) (2002) - TV영화
지하세계의 인디아나 존스(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1999)[5]
도그하우스 (1998) - TV영화
로빈슨 크루소 (1997)[6]
블랙스톰(Tidal Wave: No Escape) (1997) - TV용 재난 영화.
제우스와 록산느 (1997)
사관과 신사(Silver Strand) (1995)[7]
거대 코끼리 탈출 작전 (1995) - TV영화
안드레 (1994)
사랑과 유죄(Gross Misconduct) (1993) - 호주 영화[8]
스펌뱅크(Frozen Asset) (1992) - 미국 시골마을에 있는 정자은행 이야기(…).
Over the Hill (1992) - 호주영화
산타, 뉴욕에 나타나다(In the Nick of Time) (1991) - TV영화. 디즈니 제작.
크리스마스의 기적(A Mom for Christmas) (1990) - TV영화. 디즈니 제작.
네버엔딩 스토리 2 (1990)
위조인생(Spooner) (1989) - TV영화
Goodbye, Miss 4th of July (1988) - TV영화
Badlands 2005 (1988) - TV파일럿
Bushfire Moon (1987) - 호주TV영화
패터슨 대소동(Les Patterson Saves the World) (1987)
Cool Change (1986) - 호주영화
머나먼 여정(The Far Country) (1986) - 호주TV영화
창공의 도전자(The Aviator) (1985) - 미국에서 만든 첫영화.
스노위 맨(The Man from Snowy River) (1982) - 극장용 영화 데뷔작

  1. 국내 출시 제목은 스노위 맨. 악역 비슷한 역할로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인 커크 더글라스가 출연한다.
  2. 이때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이 사람의 영화가 1번의 사람과 헷갈려서 1번의 사람이 연출한 것처럼 소개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덕택의 1번의 사람은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3. 한 편 더 있긴 하지만…밑의 필모그래피 참조.
  4. 호주로 돌아와서 만든 극장용 호러 영화. 그러나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감독 이름 자체를 기제를 안 했고, 영화에서는 가상의 이름으로 감독을 표기했다. 심지어 IMDb 공식 필모에도 기록이 안 되어 있으며 Oscar D'Roccster라는 가짜 이름으로 정보가 올라가 있다. 완성도와 흥행조차 재난이 되면서 그대로 흑역사. 2007년작으로 아프리카에서 사자 떼에게 포위된 백인 식구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제목이 같을 뿐, 다른 영화다.
  5. TV영화. 쥘 베른의 지구 속 탐험을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서는 반작살난(…) 92분으로 출시.
  6. 국내판이 더 상영시간이 긴 이례적인 경우. 원래 TV용 영화로 기획되었다. 주인공은 피어스 브로스넌.
  7. 리처드 기어를 출세시킨 동명의 82년 영화와는 상관없는 TV영화. 원제목도 보란듯이 다르지만 국내 비디오에서는 각본가가 같은 사람인 관계로 붙은 제목이다. 전형적인 비디오 판매용 제목.
  8. 여주인공으로 무명 시절의 나오미 왓츠가 나온다(…). 영화 자체는 위험한 정사의 짝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