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


Punitive damages.

1 개요

처벌적 손해배상을 말하는 것으로, 민사배상의 경우에 있어서도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특히 영미법에서 발달한 제도이다. 대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의 예로는 연방대법원이 2009년 필립 모리스 담배회사에 대해 7950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선고한 사례가 언급된다. 한 개인이 PG&E에게 승소하며 3억 3300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한 판결을 이끌어낸 실화를 기초로 만든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도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전면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은 제도이나 이 제도의 도입 여부에 대하여 찬반 논의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중이다.
실손해와 관계없이 반사회성이 높을 경우 배상하게 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손해의 XX 배를 배상하게 한다' 는 식의 입법례도 있는데 이와 같은 배수적 손해배상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일종이다.

유의할 점은 처벌적 손해배상은 다소 형벌적인 성격이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민사책임이므로 형사책임, 행정제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 가해자더라도 벌금 등 별도의 형사책임을 지거나 과징금 등의 행정제재를 받을 수 있다.

2 연혁

이 제도는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 중 '도둑이 소나 양, 당나귀, 돼지, 염소중 하나라도 훔쳤더라도 그 값의 열 배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도둑이 보상해 줄 돈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부여 법률에도 '물건을 훔친 자는 12배로 배상하고, 배상하지 못할 경우 노비로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와 같은 고대의 손해배상 제도는 배수적 손해배상과 형벌이 혼합되어 있는 예로 볼 수 있다.

영미법에서는 1763년부터 판례법을 통해 이 제도가 수용되었고,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례가 누적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법을 비롯한 대륙법은 배상제도에 처벌적 의미를 배제하고, 가해행위로써 발생한 책임을 가해자가 그 책임범위만큼 메워준다는 의미의 전보배상(Compensatory damages)을 대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손해액을 넘는 부분까지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입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한국은 대륙법에 근간을 둔 일본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이들과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3 한국의 경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5조 손해배상 책임
② 원사업자가 제4조, 제8조제1항, 제10조, 제11조제1항·제2항 및 제12조의3제3항을 위반함으로써 손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 다만, 원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 조정·중재 또는 시정명령의 내용
② 제1항에 따른 배상액은 차별적 처우로 인하여 기간제근로자 또는 단시간근로자에게 발생한 손해액을 기준으로 정한다. 다만,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차별적 처우에 명백한 고의가 인정되거나 차별적 처우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손해액을 기준으로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을 명령할 수 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43조 손해배상의 책임
② 신용정보회사등이나 그 밖의 신용정보 이용자(수탁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 법을 위반하여 개인신용정보가 누설되거나 분실ㆍ도난ㆍ누출ㆍ변조 또는 훼손되어 신용정보주체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는 해당 신용정보주체에 대하여 그 손해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신용정보회사등이나 그 밖의 신용정보 이용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국제사법 제32조 불법행위
④ 제1항 내지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외국법이 적용되는 경우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성질이 명백히 피해자의 적절한 배상을 위한 것이 아니거나 또는 그 범위가 본질적으로 피해자의 적절한 배상을 위하여 필요한 정도를 넘는 때에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한국은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어서, 손해배상은 어디까지나 전보배상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대개의 손해배상의 경우에는 그런 거 없다. 다만 경제민주화 법률의 대표격으로 일컬어지는 하도급법에서는 이 법률이 적용되는 도급인 등의 갑질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 실제 피해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징벌적 손해배상 (정확히는 3배수 손해배상)규정을 도입했다. 2014년의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에서는 일반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실효성 있게 묻게 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법에는 한국 법원의 재판에서 미국법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에 한국법이 인정하지 않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는 것을 차단하는 규정이 있다.

그 외에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무단 출입시 30배를 배상하는 제도가 있다.

4 국내도입 찬반론

4.1 찬성론

찬성론자들이 드는 논거는 보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피해자에 대해 실효성 있는 손해 배상을 얻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행위의 악성에 대하여 제재를 가함으로써 일반적 예방에 이바지할 수 있다.
  • 가해행위 이후 사후적인 측면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위치에 있는 대기업 등의 위법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손해배상 제도는 실손해액을 피해자가 엄격하게 증명하여야 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환경오염피해, 프라이버시침해 배상 등 현대사회에서 증가하는 배상소송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피해액 증명이 매우 곤란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자의 반사회성을 근거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손해액 증명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피해자에게 유리하다.
  • 소송이 남발된다거나, 악의적/사행적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일단 소송에 가면 실손해액 이상의 배상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다는 점 때문에 당사자들은 소송에 나서기 전에 합의하거나 소송 외 대안적 분쟁해결방법 (중재/조정 등)을 적극적으로 택함으로써 소송을 줄일 유인이 발생하게 된다. 현행 전보배상 일원체제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강자인 대기업측이 배상을 원하면 소송을 걸어보라며 배째라 식으로 나오기 마련이어서 대기업에 일반 소비자가 대응할 방안이 부족하다. 즉, 이 제도는 꼭 소송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가해자인 기업 등이 사후에 적극적인 피해보상방안 모색에 나서게 되는 심리적 강제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대기업 등 법인의 경우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징역,사형 등의 형사제재가 불가능하고 정부부처의 과징금, 영업정지 등 행정 제재의 경우는 정경유착이 되어 있는 경우 곧바로 유명무실해진다는 점에서 그들의 위법행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할 방법은 이 제도의 도입 외에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경유착이 되어 있다면 이런 제도를 도입하건말건 다 구멍이 있을텐데?
  • 찬성론자 중에서는 기업의 손해배상 리스크가 예측불가능하다는 비판에 대응해 무제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보다는 절충 형태인 배수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여 보완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배상 배수에 대하여는 3배수 징벌적 손해 배상(Treble damages)제도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지지를 받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하도급법도 3배수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를 채택했다.
  •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는 대상은 주로 대기업일 것이므로, 일각에서 도입을 주장하는 일수벌금제와 마찬가지로 돈이 많든 적든 실질적으로 똑같은 정도의 배상을 하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이 5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와도 일반 직장인에게는 큰 돈이지만 재벌에게는 그저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
  • 폴린스키 교수와 사벨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경제학적 분석을 하여, 법의 규제를 벗어날 확률이 존재할 경우에 한하여 징벌적 배상을 도입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1]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서 법의 규제를 피해갈 확률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2][3]

4.2 반대론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반대론도 비등하다. 법조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도상의 문제를 이유로 도입을 반대하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소인 가해자의 반사회성, 악성은 지극하게 모호한 요소로서, 그 요소의 유무 및 정도의 판단은 결국 사법부에 의해 내려지는 경우가 많을 것인데, 결국 이는 소송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대략적인 배상액 산정조차 소송에 가서야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기업 운영의 리스크가 커져서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자본을 사내에 유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전체적 경제발전 저해의 결과를 낳는다.
  •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여부 및 그 배상액은 법관의 자의적 판단 하나로 결정되는 것인데 비해, 그 결과는 기업의 존망과 연결될 정도로 막대하기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경우에는 제도가 정착하기 어렵다. 또한 제도의 본 취지와 다르게, 사업자가 경쟁사업자를 침몰시킬 목적으로 손배소송을 하는 경우를 막지 못한다. 애플 삼성 소송전이 그 예다.
  •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이 거의 없게 되면 이 제도는 무의미해지며, 반대로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아진다면 기업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불가피하게 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재화나 용역의 생산원가가 증가하게 되어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 불법행위자가 징벌적 성격의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도 행정벌, 형사벌 등 다른 불이익한 처분을 더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이중처벌금지원칙 내지 일사부재리원칙에 반할 여지가 있다.[4]
  • 손해보전을 넘어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적 제재금이 꼭 피해자의 주머니로 들어가야 할 경험칙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고, 실손해의 정도에 상관없이 막대한 배상금 지급을 가능하게 한다면 소송 = 로또라는 일반의 사행심을 조장하여 솔직히 이게 제일 우려되는 단점, 소송의 폭증 및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천조국에서 소송은 로또입니다
  • 종합하면, 징벌적 배상제가 전체적 사회편익 향상에 이바지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1. Punitive Damages: An Economic Analysis. February 1998. Harvard Law Review, Volume 111 Number 4.
  2. 반면, 가해자의 효용을 제외해야 하는 경우 - 예를 들어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경우라던가 - 법의 규제를 벗어날 확률이 없더라도 징벌적 배상을 도입해야 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3. 또 이들은 징벌적 보상이 개인이 아닌 기업에 대해 이루어질 경우, 실제 문제를 일으킨 개인에 대한 처벌이 적합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주주들이나 다른 임직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우려를 보였다.
  4. 실손해를 보전하는 정도의 배상책임은 이 아니므로 상기한 문제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