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인

天下人(てんかびと, てんかじん)

문자 그대로 천하를 움켜쥔 사람이란 의미다. 주로 일본 센고쿠 시대의 인물에게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 진짜 천하를 제패했거나 사실상 천하를 제패한거나 다름없는 인물, 일본 중앙을 장악한 것과 다름없는 인물에게 쓰이는 호칭이 되었다. 현재 전국 3영걸을 포함한 5명의 인물이 이 호칭으로 불리는 일이 많은데 1명을 제외하곤 전부 자신의 후계자 대에서 박살이 났다. 사실상 춘추오패의 일본 버전일지도...

1 천하인이라 불리는 다이묘들

  • 오우치 요시오키: 스오다이묘. 이와미 은광이 존재하는 이와미를 필두로한 츄고쿠를 호령하여 압도적인 경제력을 얻었다. 영지의 관리와 확대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중앙에서 호소카와의 난이 발발하자 군사를 이끌고 상락하여 전대 쇼군을 옹립하여 복직시켜주는 등 중앙에도 진출할 정도의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아마고 가문이 대두하자 츄고쿠로 돌아와 아마고와 전쟁을 벌여 우세한 정황을 가져나갔으나 병사하고 말았다. 후계는 유능한 문화인인 장남 오우치 요시타카가 이었다.
  • 미요시 나가요시: 셋츠, 카와치의 다이묘. 칸레이 호소카와 하루모토의 가신이었으나 곧 격렬히 대립하여 그를 깨뜨렸으며 오미로 쇼군이 도망쳐 공석이 된 무로마치 막부를 잠시 차지하였다. 이후 쇼군 가문을 쿄토로 불러들였으나 곧 대립하여 자신이 직접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깨뜨리고 막부를 차지, 사실상 기능을 정지시키며 새로운 무가 정권을 세웠다. 5년 정도 지나 막부와는 화친했으나 막부와 거의 동등한 권한을 쥐게 되었으며 최대의 항구도시 사카이를 점거하여 적극적으로 이용하였고 자주 문화 활동에 참여하여 나가요시의 실세와 명망은 높아져갔다. 전성기에는 10개국이 넘는 영지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일본의 부를 움켜쥔, 말그대로 천하인과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전성기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병사하였다. 장남이 자신보다 먼저 사망했기에 후계는 동생의 아들인 미요시 요시츠구가 이었다.
  • 오다 노부나가: 오와리, 미노, 오미의 다이묘. 오와리의 슈고다이(守護代)였던 오다 가문을 급속도로 부흥시켜 토카이도츄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후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여 상락, 그를 쇼군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일본의 중앙인 키나이 또한 그의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상업을 중시하여 자신의 영지 곳곳의 상업을 진흥시킨데다 상락 이후의 수많은 역경을 뚫고 오히려 공세로 나갔으며 동, 서를 가리지않고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쇼군을 쫒아내어 막부를 차지하여 기능을 정지시켰기에 가히 천하인이라 할만하였다. 이후 서쪽의 군사를 지원하기 위해 혼노지에 거처하였으나 가신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장남도 당시에 사망하였기에 후계자가 공표되지 않은 오다 가문은 사분오열되었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가신.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노부나가에게 중용받아 후에는 츄고쿠 공략을 일임받는 군단장의 위치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노부나가 사후 급히 군사를 회군시켜 노부나가의 원수를 물리쳤으며 시바타 카츠이에, 토쿠가와 이에야스같은 정적들을 무력으로 제압해 사실상 오다 가문을 흡수하게 되었다. 이윽고 서일본과 동일본을 자신의 휘하로 끌여들이는데 성공하여 명실상부한 천하인이 되었다. 천하를 통일한 이후 해외 진출을 노리며 군사를 파병하였으며 고타이로(五大老)라는 아슬아슬한 정치체계를 취하였고 아들이 태어나자 후계자로 지명된 조카를 살해하는 등 실정으로 판단될 행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사망하였으며 후계는 아들인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이었다.
  • 토쿠가와 이에야스: 미카와의 다이묘이자 에도 막부의 창시자. 마츠다이라 가문에서 태어나 이마가와 가문에서 인질생활을 했으나 요시모토 사후 노부나가를 따라 그를 보좌해 주었다.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을 차지하자 그와 적극적으로 대립하였으며 칸토로 영지를 전봉당하자 착실히 힘을 길러나갔다. 히데요시 사후 토요토미가 분열하자 토요토미를 지지하는 무장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사실상 새로운 천하인이 되었다. 이후 관위를 얻고 에도 막부를 창시하여 새로운 일본의 시작을 알렸다. 후계는 삼남인 토쿠가와 히데타다가 이었으며 에도 막부는 약 260년 동안 일본을 통치해 나갔다. 이렇기에 센고쿠 시대 최후의 승자로도 평가받는다.

보통 민간에서는 요시오키와 나가요시를 "노부나가 이전의 천하인"으로 보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나가요시부터 시작되는 계보를 "키나이를 제패한 천하인"으로 보며 요시오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않는다.[1]

2 판도를 산산이 깨부숴버린 후계자들

  • 오우치 요시타카: 당주에 취임한 다음 유능함을 여지없이 발휘하여 오우치의 판도를 늘려갔으나 아마고 원정이 그의 모든 것을 뒤틀어버렸다. 원정의 패전이후 본인은 문약해져 문치파의 인사를 중용하여 영지를 통치해 나갔다. 이는 무단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문치파와 무단파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얼마 안가 요시타카는 스에 하루카타의 배반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오우치 가문은 하루카타가 새로운 당주를 옹립하여 존속되었으나 얼마 가지않아 모리 모토나리와의 전투에서 하루카타가 사망, 오우치 가문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곧 모토나리에 의해 멸망하였다.
  • 미요시 요시츠구: 당주에 취임한 요시츠구는 무로마치 막부쇼군을 탐탁지않게 여겼다. 결국 요시츠구는 에이로쿠의 변을 일으켜 쇼군을 살해하고 차기 쇼군을 임명하지 않는 극단적인 정책을 실행하게 된다. 이 정책에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불쾌감을 보였고 결국 키나이 미요시 가문의 중신인 미요시 산닌슈와 히사히데 부자는 격렬히 대립하게 되었다. 요시츠구는 이들을 중재하지 못하고 산닌슈파에 소속하게 되었으며 히사히데를 미요시 가문에서 몰아내는 것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노하라 나가후사를 위시로한 산닌슈는 새로운 쇼군을 임명하고 요시츠구를 경시하게 되어 요시츠구는 히사히데에게 투신하였다. 히사히데 세력으로 넘어간 요시츠구는 상락하는 오다 노부나가 세력에게 투신하였고 산닌슈는 노부나가에 의해 키나이에서 쫒겨나 키나이 미요시 가문은 멸망했다. 이후 아와 미요시 가문 또한 쇠퇴해갔으며 시간이 지나 결국 멸망하였다.
  • 토요토미 히데요리: 당주로 취임할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고 가신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문치파와 무단파의 대립이 일어났고 이시다 미츠나리카토 키요마사에게 암살기도까지 받을 정도로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았다. 이후 문치파와 무단파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격돌하게 되었고 무단파의 무장이 몸을 의탁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게 되면서 토요토미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결국 오사카의 진에서 이에야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전쟁에 패배하게 되면서 토요토미 가문은 멸망하였다.
보면 알겠지만 전부 내분으로 인해 멸망했다.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는 역사가 아닐까.
  1. 만약 요시오키를 천하인으로 지칭하는 학자가 있다면 수정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