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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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에서 40년 이상 계속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퇴임한 뒤에 카에타누 정권이 집권했지만 지체되는 산업화와 계속되는 식민지와의 지리한 전쟁으로 경기가 침체되었고 때 마침 닥쳐온 오일쇼크로 경제가 낙후 되어가자 이스타두노부 정권에 비판적인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대부분 위관급 초급장교들이었다), 1974년 4월 25일[1] 발생한 포르투갈의 무혈[2] 쿠데타. '리스본의 봄' 이라는 별명이 있다.

카네이션 혁명이란 이름은 혁명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혁명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거리의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 데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음으로써 화답한다.

시민들이 지지하였으며 무혈인 상태에서 민정 이양이라는 약속까지 확실히 지켜낸 성공적인 쿠데타의 사례로 꼽힌다. 또한, 당시 쿠데타 신호로 쓰인 것이 유명 파두(포르투갈의 전통음악 장르) 가수 '주제 아폰수'의 노래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Grândola, Vila morena)여서 당시 독재정권이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장려한[3] '3F 정책(축구, 파두, 파티마)'을 절묘하게 비웃는 느낌도 주었다. 덕분에 혁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오늘날에도 4월만 되면 포르투갈 전역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Grândola, vila morena

Terra da fraternidade
O povo é quem mais ordena
Dentro de ti, ó cidade
그란돌라, 거무스름한[4] 마을
형제애의 땅
민중이 가장 명령한다네
네 안에서는, 오 도시여

Dentro de ti, ó cidade
O povo é quem mais ordena
Terra da fraternidade
Grândola, vila morena
네 안에서는, 오 도시여
민중이 가장 명령한다네
형제애의 땅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마을

Em cada esquina um amigo
Em cada rosto igualdade
Grândola, vila morena
Terra da fraternidade
매 구석에는 친구가 있고
매 얼굴에는 평등이 있다네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마을
형제애의 땅

Terra da fraternidade
Grândola, vila morena
Em cada rosto igualdade
O povo é quem mais ordena
형제애의 땅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마을
매 얼굴에는 평등이 있다네
매 구석에는 친구가 있고

À sombra duma azinheira
Que já não sabia a idade
Jurei ter por companheira
Grândola a tua vontade
이제 나이를 알 수 없는
월계수 나무 그림자 아래서
동료가 되기를 맹세했다네
그란돌라, 너의 의지

Grândola a tua vontade
Jurei ter por companheira
À sombra duma azinheira
Que já não sabia a idade
그란돌라, 너의 의지
동료가 되기를 맹세했다네
이제 나이를 알 수 없는
월계수 나무 그림자 아래서

진행 과정 등 자세한 것은, 여기 참고.

또한 이 혁명의 결과로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들의 독립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혁명 직후 각 식민지에서 포르투갈군과 식민지 독립군들과의 전투가 중단되었고,곧 기니비사우를 시작으로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다.

2 혁명의 이면

단 국내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카네이션 혁명의 내용은 다소 미화된 감이 없지 않은데, 실제로는 위의 위키피디아 링크처럼 혁명이후 임시대통령에 취임한 스피놀라 장군부터가 권력을 탐하다가 반대파의 역공에 밀려 망명하는 등, 몇차례의 역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이 역 쿠데타 시도는 전부 실패하게 되나 민정 이양도 쿠데타 지도자들끼리 물고 뜯다가 모두 다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이뤄지게 된 것이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긴 하다.

1975년 뜨거운 여름이라고 부르는 좌우파 간 정치투쟁 과정 초기에 공산 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NATO 창설국 출신의 서유럽의 쿠바가 거의 탄생할 뻔 하기도 했다(...)[5] 공산주의가 살자라르 시기 철저하게 핍박받았던지라 오늘날도 카네이션 혁명 몇 주년 기념식 행사만 하면 늘 가장 적극적으로 행사를 여는 곳이 포르투갈 공산당이기하다. 어쨌거나 1975년 4월과 1976년에 두 차례에 걸친 자유총선이 치뤄졌고 사회당이 37%의 득표로 연립정권을 구성하여 민정이 정착되는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 민정도 처음부터 완전한 민정은 아니고 선거로 군부 출신을 뽑긴 했다(...) 그래도 위키피디아에 나오듯 민주주의 이행을 위한 노력을 했단 점에서는 칭찬할 만한 점은 있다.

3 여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파인애플 아미에서 이 카네이션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인 제드 고시가 스피뇰라 장군의 부하인 엘리트 병사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고[6] 그 병사들이 자신감을 얻으면서[7] 혁명을 성공시키고 후에 포르투갈 군의 높으신 분들이 돼서[8] 다시 자신의 부하들을 고시에게 맡긴다는 내용.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시대적 배경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했다.
  1. 이 혁명 이후 살라자르 다리라고 불리던 다리가 4월 25일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이름은 이 날짜를 따서 지은 것이다.
  2. 다만 시민들과 비밀경찰 사이 충돌로 4명 가량의 사망자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3. 단, 주제 아폰수의 곡은 당시 금지곡이었다.
  4. morena의 뉘앙스가 혼혈이거나 햇빛에 그으른 피부를 말하는데, 그란돌라가 위치한 남부 알렌테주 지방은 뜨거운 햇빛과 무더위로 알려진 곳이다.
  5. 혁명의 시발탄이었던 그란돌라, 빌라모레나 노래의 배경이 되는 그란돌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쿠바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는 걸 생각하면 뭔가 묘하다 (...)
  6. 지독한 훈련에다 고시가 용병 출신이라는 점과 겹쳐져서 병사들에게 또라이라고까지 불린다.
  7. 이때 고시는 이 병사들과 먼저 발견하기 시합을 하는데 마지막에 은근슬쩍 져 준다.
  8. 그 당시에는 힘든 훈련 탓에 고시를 원망했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의 속뜻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