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쿡

(캡틴 쿡에서 넘어옴)


[1]
James Cook.
1728년 11월 7일 ~ 1779년 2월 14일
영국군인, 탐험가.

대항해시대의 끝을 장식한 항해사

1 항해 이전

요크셔의 작은 마을 마톤에서 태어난 쿡은 어릴때는 장사, 날품팔이 등 온갖 일을 전전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커서는 등산 등을 통해 모험심을 키웠고 석탄을 나르는 배에서 어느정도 일을 했다. 그 후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 캐나다로 건너가서 지도 제작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영국에 돌아와 엘리자베스 베츠와 결혼했다.

3차례에 걸친 태평양 항해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하와이를 비롯한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북아메리카 서부 해안을 탐사했다. [2] 흔히 캡틴 쿡이라고 불려지는, 역사에서 캡틴이 붙여진 두명의 바다 사나이(?)중 한명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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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항해를 표시한 그림. 붉은색 선이 첫번째 항해, 두 번째 항해는 녹색, 세 번째 항해는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2 1차 항해

그는 국가로부터 금성을 관측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4] 인데버(Endeavour)호의 선장이 되어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향한다.[5] 이때 그는 괴혈병을 막기 위해 절인 양배추과일을 가져갔고 이걸 먹지 않은 선원은 채찍질하는(...) 형벌을 만들어 엄하게 다스렸다. 1769년 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돌았고 그 후 타히티 섬에 도착해 관측소를 설치하다. 그리고 하나의 임무를 더 부여받는데, 그것은 남극을 발견하거나 남극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것이였다.
뉴질랜드로 향해 뉴질랜드가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남극 대륙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입증한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해안에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즉 대보초를 발견하고 1771년 영국으로 돌아온다.

3 2차 항해

1772∼1775년의 제2차 항해 때 쿡은 남극 대륙을 확인하고 북서 항로를 개척하라는 임무를 받고 레졸루션호 선원들을 위해 절인 양배추 9천 킬로그램, 홍당무 잼 135리터, 날 양파 1천 자루를 싣고 베링해협을 통과하여 뉴질랜드로 향해 보급을 받기로 하지만, 원주민들에 의해 선원이 10명 살해되고 남극에 120km 접근한 지점에서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괴혈병의 창궐을 막아서 영국 학회로부터 표창을 받는다.

4 3차 항해와 비극적 최후

1776년 쿡은 같은 임무로 자원하여 레졸루션호, 디스커버리호로 남극으로 향한다. 희망봉, 타히티를 거쳐 유럽인으로썬 최초로 하와이에 도달한다. 거기서 보급을 받으려고 했고 선원과 제임스 쿡은 원주민들에게 대접받고 환대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을 신으로 모신 원주민들은 점점 그들의 신에 대한 의구심과 술을 축내는 것에 불만을 품고(...) 아래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다양한 이유로 쿡을 포함한 선원 5명을 살해하고 그의 항해와 임무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하와이에 상륙한 후 하와이인들이 물건을 훔쳐간 걸 돌려받기위해[6] 당시 하와이의 족장인 칼라니오푸를 인질로 잡으려했다가 실패하고 케알라케쿠아 만에서 배로 도망치던 도중 후두부를 강타당한다.

이후 쿡의 배로 한척의 보트가 자루를 전달하는데, 그 안에는 뼈가 말끔히 제거된 3~4kg짜리 살덩어리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당시 하와이 원주민들은 적의 우두머리 시신을 불태우고 신성한 힘이 깃든 뼈를 발라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원주민들은 해안가에 검게 그을인 팔다리와 머릿가죽, 잘린 두 손을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제임스 쿡 시체의 일부였던 것이다.[7]

제임스 쿡이 하와이에 상륙했던 때가 하와이 풍작의 신인 로노를 위한 축제기간과 겹쳐서 쿡이 로노의 화신으로 숭배받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이에 반발하는 학설도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하와이 원주민들이 제임스 쿡을 불사신으로 믿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렇다 할 근거는 없다.

제임스 쿡의 배에서 일등 항해사를 맡았던 윌리엄 블라이는 나중에 바운티호의 반란으로 유명해진 바운티호의 선장이 된다. 1984년의 영화에서는 타히티 추장이 블라이 선장에게 제임스 쿡은 어디갔냐고 하니까 죽었는데 살았다고 구라를 쳐서 의심의 눈총을 받는 장면도 나온다.

5 여담

뉴질랜드의 자치령인 쿡 제도는 제임스 쿡 선장이 발견한 곳이며 그래서 그의 성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외에도 서던 알프스 산맥 최고봉이자 뉴질랜드의 최고봉인 쿡 산도 제임스 쿡의 성을 따서 명명되었다.

휘하 선원들에게 자우어크라우트와 과일을 지급해 세계 최초로 괴혈병 없이 세계 일주를 완수해 냈으며, 또 매일 의무적으로 선원들에게 목욕을 하도록 시켜 다른 전염병의 창궐도 막았다. 이에 비해 그와 함께 출항했던 다른 배의 선장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아서 그 배애선 괴혈병으로 죽은 선원이 상당했다고.(..) 그런데 문제는 목조선이라 불을 제대로 피울수가 없어 찬물을 썼는데, 따듯한 지역뿐만 아니라 춥디 추운 남반구에서도 찬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가 막지 못한 질병은 모기떼를 통해 전염된 말라리아 뿐이라고 한다.

쿡은 괴혈병을 막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자우어크라우트'를 배에 실어 매 식사 때마다 선원들에게 이것을 먹도록 명령했다. 배급받는 고기의 양이 줄어든 대신 자우어크라우트의 양이 늘어나자 선원들은 불만을 품기도 했으나 쿡은 자우어크라우트를 먹지 않는 선원을 채찍으로 다스릴 만큼 엄격하게 대했다. 다만 자우어크라우트를 먹지 않으려는 선원들에게 계속해서 강경하게 대응하다 보면 불만이 커질 것을 염려해 심리적인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 심리전이란 장교들에게만 자우어크라우트를 일부러 많이 배급하고 선원들에게 배급하는 자우어크라우트의 양은 줄여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얼마지나지 않아 자우어크라우트를 먹기 싫어하던 선원들이 이런 차별 배급에 묘한 불만을 품게 되었고, 결국 자신들에게도 장교들과 똑같은 양의 자우어크라우트를 보급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측량과 과학등에 관심이 많아 태평양인들은 아시아에서 왔다는 것과 서로 멀리 떨어져 삶에도 불구하고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추측해내기도 했다.

그의 기함, 인데버 호. 후대에 기록에 따라 복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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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두번째 기함, 레졸루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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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임스 쿡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배츠(Elizabeth Batts, 1742–1835)는 남편이 너무 심각하게 그려져서 이 초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럼 개그스럽게 그리란 거냐
  2. 사실 쿡 이전에도 스페인인들이 이 부근을 탐사하기는 했지만 2세기에 걸쳐 450척의 스페인 교역선이 태평양을 횡단했음에도 하와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별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3. 다른 한명은 프랑스의 한 잠수부. 2차 대전 중 약 1만 미터(!)까지 소형 잠수구를 타고 잠수했다.
  4. 사실 이 임무가 순수하게 과학적 관측만을 위해 항해한 유럽 최초의 경우였다고.
  5. 200207100228-3.jpg
  6. 당시 영국법은 절도를 굉장히 엄중히 다룬데 비해 하와이인을 비롯한 태평양 원주민들은 절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서 자주 충돌이 일어났다. 다만 이러한 기록에 대해서는 백인우월주의적 관점이라고도 하고 실제 쿡의 선원들이 개판쳤다는 견해도 있다.
  7. 외국에서 제임스 쿡과 관련된 기사나 문서의 답글을 보다보면 가끔 쿡의 성(Cook) 때문에 원주민에게 잡아먹힘으로서 이름에 걸맞는 최후를 맞았다는 개드립이 나올때가 있는데, 쿡이 원주민에게 살해당한건 틀림없지만 잡아먹혔다는 기록은 없다. 그냥 고인드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