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함 침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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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8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잠수함 침몰 사건. 수 차례의 인양 시도가 있었지만 생존자는 없었던, 세계 해군 역사에 남을 비극. 러시아군의 부족한 예산 하의 열악한 군용장비 운용이 빚어낸 인재였다.

원잠 침몰 사실은 러시아 정부언론이 아닌 서방 소식통들을 통해 먼저 세계에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끌던 당시 러시아 정부는 사고가 나자 쉬쉬하기에 바빴다. 러시아 정부는 사건이 보도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침몰 사실을 인정했다. 사고 당시 원잠 안에 118명의 승조원이 타고 있었는데, 침몰 뒤에도 상당한 시간 동안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보안을 이유로 들며 승조원 구출작업에 늑장을 부렸고 서방의 구조작업 지원 제안도 거절했다. 가라앉은 원잠에 먼저 접근, 승조원들이 모두 질식해 숨져있음을 확인한 것은 노르웨이 해군 구조대였다. 대통령 취임 100일 전야에 대형 악재를 만난 푸틴은 자국 군인들의 생명보다 위신을 챙기려다 최악 참사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2 발단

2000년 8월 12일 토요일.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소속 오스카급 핵잠수함 쿠르스크 함이 바렌츠 해에서 군사 훈련 중 침몰했다. 당시 쿠르스크 함은 북방함대 기함키로프급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 함을 향해 두 발의 모의 어뢰를 발사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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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29분 잠수함 함수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어뢰 덮개 등을 날려버렸다. 2분15초 뒤엔 이보다 더 큰 폭발이 일어났다. 이 폭발로 선체엔 2㎡의 구멍이 뚫렸다. 길이 154m, 3층 높이에 배수량 13,400t인 쿠르스크는 1,000m 수심 해저에서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러나 격실들로 물이 초당 9만ℓ씩 쏟아져 들어왔고 선체는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108m 해저로 가라앉았다.

3 경과

3.1 사고 파악

사고 당시 폭발음은 훈련 함선들이 감지하였으나 훈련에 따른 폭발음으로 여겨 보고하지 않았다. 당일 저녁이 되어 쿠르스크로부터 응답이 없는 것을 염려하기 시작했고, 거듭된 교신 실패로 늦은 저녁에는 수색구조작전이 발령되었다. 사고 다음날인 13일 아침 파손되어 가라앉은 쿠르스크의 선체가 발견된다.

3.2 구조 지연

잠수함 해난 구조기술에 있어서는 서방국가가 앞선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지원을 거절했다. 과거 냉전 상대였던 나라에 도움을 받는다는 국가적 자존심 문제였을 수도 있고, 혹은 신형 오스카 급 잠수함을 타국에 내보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간에 러시아의 장비와 기술로는 악천후와 온도를 극복할 수 없었고, 이는 귀중한 초동대응 시간을 허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러시아 측 태도에 대해 생존자가 있음에도 구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사고 다음날인 13일 러시아 해군의 해난구조함 프리즈 함이 쿠르스크 함의 9번 격실 탈출해치에 도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화요일목요일은 악천후를 이유로 시도를 하지 못했고, 금요일에는 도킹을 했으나 여압에 실패했다.

러시아는 16일에야 영국노르웨이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이들 구조대는 17일 노르웨이를 출발해 19일 현장에 도착했다. 20일에는 심해잠수사들이 탈출해치에 도달했지만, 그 때는 이미 9번 격실이 침수된 후였다.

4 승조원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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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직후, 생존해 있던 승조원이 남긴 메모[1]

승조원 118명 대부분은 폭발과 함께 순직했지만, 함 후미에 23명의 생존자가 있었다.[2] 100미터 정도는 구조가 가능한 수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여서 구조를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그들을 구조해줄 것을 믿으며...

부검 결과 이들은 사고 후에 최고8시간 정도 생존해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4.1 부적절한 언론대응

러시아 해군은 가족들에게도 냉담했다. 처음엔 언론을 통해 잠수함에 ‘경미한 기술적 문제'[3]가 있다고 밝히며 말을 아꼈고,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밝혀내라 재촉하는 유가족들을 몰아냈다. 덕분에 착잡한 장면 여럿이 나왔는데, 한 예로 8월 18일 쿠르스크 함 승조원 세르게이 대위의 어머니는 쿠르스크의 운명에 관한 뉴스 브리핑을 듣던 중 공황에 휩싸였다 안정을 못 찾자 간호사가 진정제를 강제로 주사해 데리고 나갔다. 이는 정부가 재앙에 대한 대중의 비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불렀다.

5 원인

인양한 선체를 해체, 분석해 폭발 원인을 찾던 합동조사반은 선체의 머리에 눈길을 모았다. 바로 어뢰실이 완전히 날아갔고, 거기서 연결된 선체의 다른 부분이 특히 피해를 입었기 때문. 이 사고는 러시아 해군의 고질병인 '낡은 장비'와 '안전을 생각지 않은 설계'가 얽혀 만든 인재로 드러났다.

5.1 재앙의 씨앗: 어뢰

어뢰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모든 어뢰는 자체의 추진제를 가지는데, 과산화수소가 포함된 추진제는 금속과 반응성이 대단해서 장전 상태 및 통상 보관 상태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쿠르스크 함이 침몰할 때 진행된 훈련은 그 소련 붕괴 후 10여 년간 엉망진창이던 러시아군답게 거의 주먹구구식에 가까웠고, 훈련용 병기가 지급되는 과정 가운데 제대로 보수되지 않은 구형 어뢰가 쿠르스크 함에 들어갔다. 어뢰는 장전하는 순간 표피가 부서져 추진제가 서서히 누출됐고, 발사관 안에 과산화수소 증기가 차올랐다. 그리고 임계에 이른 증기가 폭발했다.

5.2 재앙의 확대: 격실

장전관이 터진 순간 쿠르스크 함은 가라앉지 않고 어영부영 살아있었다. 그러나 관제실은 이미 1차 폭발의 충격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인원이 없던 터라 화재를 제대로 진압할 수 없었다. 잠수함은 비상 상황이 일어나면 격실 단위로 불길과 유독가스를 차단하도록 설계됐지만 쿠르스크는 이 격실 차단 체계가 허술했다. 엎친 데에 덮쳐 선체의 머리 끝부터 꼬리 끝까지 배기구가 한 줄로 이어져 있었으니…….

5.3 테러? 체첸의 개입?

여담으로 사건 원인을 둘러싸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을 무렵 체첸 반군을 지휘하고 있던 샤밀 바사예프가 뜬금없이 쿠르스크 함의 침몰은 자신들에게 포섭된 승조원 한 명이 저지른 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즉각 부인했다. 또 국제적으로도 바사예프의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6 후일담

쿠르스크의 선체는 2001년 네덜란드의 인양업체에 의해 절단작업 후 대부분이 인양되어 로슬랴코바 해군기지로 운반되었다. 총 94구의 시신이 인양되었고 그 중 3구는 화재로 훼손이 심해 신원확인이 불가능하였다. 함장을 포함한 31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군 국립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쿠르스크의 모항 자파드나야 리츠카에 세워졌다.

2002년 러시아 해군은 해저의 쿠르스크 함의 미인양 잔해를 폭약으로 수중폭파하였다. 이에 따라 관련 음모론도 생겨났다. 가장 널리 퍼진 음모론은 쿠르스크가 훈련을 몰래 정찰하던 미국 또는 영국 해군 핵잠수함과 충돌하여 그 충격으로 어뢰가 폭발했다는 설. 좀더 막나간 음모론으로는 아에 쿠르스크가 미 해군 공격원잠과 교전을 벌여 격침되었다는 설까지 있다. 이 음모론들은 천안함 음모론 등 유사한 사례들과 달리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직접 나왔다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근거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승조원들을 죽게 내버려뒀다는 비난이 강해지자 불만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긴 했다.

추모행사 중 사고 해역을 향해 꽃을 던지는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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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게임으로 제작될 예정

폴란드의 게임개발사인 주주브(Jujubee)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KURSK라는 게임을 발표했다. 장르는 서바이벌 어드벤쳐로, 해당 사건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게 될 것이며 영화 같은 경험게이머를 사로잡은 게임플레이 방식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한다. 본격 꿈도 희망도 없는 게임 확정 트레일러가 공개되었다.

8 같이 보기

  1.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대위(당시 27세)에게서 나온 메모로 내용은 “너무 깜깜하지만 감각으로 쓴다. 살 가망은 없을 거다. 누군가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모두에게 안부를. 절망할 필요도 없다.”
  2. 앞서 언급되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대위의 메모에 "6, 7, 8번 격실의 전 인원이 9번 격실으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23명이 있다. 이 사고의 결과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 중 아무도 수면 위로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나는 지금 어둠 속에서 적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3. 몇 해외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쿠르스크 함의 선체 자체의 문제로 사고가 일어났으리라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