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명장면

1 살라딘과 이슬람 사제의 대화

1. 살라딘이 케락에서 회군하자, 이에 항의하는 이슬람 사제와의 대화 장면.

이슬람 사제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살라딘을 마주보고, 눈짓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물린다.
천막 안에는 살라딘과 사제, 그리고 나시르만이 남는다. 살라딘은 접시에 담긴 간식을 까먹으며 사제의 말을 듣는다.
"왜 철수합니까? 왜요? 하느님께서는 저들을 돕지 않으십니다. 전투의 결과는 오직 하느님에게 달렸습니다."
"전투의 결과는 하느님에게도 달렸지만, 군사들의 준비 · 숫자 · 건강과 식수의 보급에도 달렸소. 적을 배후에 두고는 포위를 유지할 수 없지.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몇 번이나 무슬림에게 승리를 허락하셨소? 내가 지휘하기 전에,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내가 지휘하도록 주재하시기 전에 말이오."[1]
"거의 없었지요.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간식을 먹던 살라딘은 코웃음치며 응수한다.
"준비가 안 돼서 패한 거요." (It is because you were unprepared.)

2 보두앵 4세의 죽음 후

2. 보두앵 4세가 죽은 뒤, 발리앙과 구호기사단원이 사막에서 대화하는 장면.

사막과도 같은 황량한 계곡에서 발리앙이 망연히 앉아 돌을 던지고 있다.
어느새 나타난 구호기사단원이 발리앙의 등 뒤에서 말을 건다.
"빛을 한 점에 모으면 어느 순간 불꽃이 일죠. 난 여러 번 해봤습니다."
발리앙이 덤불에다 돌을 던지자, 마른 덤불에 불이 붙는다. 발리앙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호기사단원을 마주본다.
"저기 당신의 종교가 있군요. 불똥 하나, 바싹 마른 덤불. 저게 당신의 모세입니다. 허나 저는 저것이 말하는 걸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느님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녀(시빌라)를 사랑하십니까?
"예."
"마음은 치유될 겁니다. 당신의 의무는 도시의 사람들을 향한 것이죠...... 저는 기도하러 갑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구호기사단원은 앞으로 몇 발짝, 발리앙에게 더 가까이 걸어온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요."
"무슨 일이 일어나죠?"
"백 년 전의 일에 대한 응보가 일어날 겁니다. 무슬림들은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The Muslims will never forget.)
잠시 침묵. 구호기사단원이 발리앙을 바라보며 덧붙인다.
"잊어서도 안 되고." (Nor should they.)
구호기사단원이 돌아서서 떠나가자, 옆에 있던 덤불이 불길에 휩싸인다.
잠시 2번째 덤불을 바라본 발리앙이 다시 뒤를 돌아보자 드넓은 벌판에서 구호기사단원이 순식간에 사라져 있다. [2]

3 발리앙의 연설

3. 살라딘의 대군에 포위당한 예루살렘 군민들에게 발리앙의 연설.

발리앙이 성벽에 붙여 마련된 연단 앞에 나선다.
"예루살렘 수호는 우리 손에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대책을 세워 왔다. 이 도시를 무슬림에게서 빼앗은 것은 여기 있는 우리가 아니고, 지금 우리를 몰아내려고 다가오는 무슬림의 대군도 이 도시가 함락될 때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저들과 우리는 앞 세대가 저지른 일로 서로 싸우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성지에는 로마에 의해 무너진 유대인 성전이 있고, 무슬림들에게는 예배를 드리는 사원이 있다. 뭐가 더 신성한가. 통곡의 벽? 바위 돔 모스크? 성묘 교회? 어느 것이 더 정당한가? 어느 하나만 정당하지 않다. 모두가 정당하다!" (All have claim!)
그 말에 대주교가 발끈하며 끼어들지만, 알마릭[3]에게 제지당한다.
"신성 모독이네!"
"조용히 하십시오."
발리앙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잇는다.
"우리가 이 도시를 지키는 것은 그런 돌덩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4 예루살렘 공성전, 살라딘과 나시르

4. 예루살렘 공성전에서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닥치자, 그날 밤 살라딘의 진영 장면.

살라딘이 밤참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살라딘의 오른편에는 나시르가 앉아 있고, 왼편에는 기둥을 사이에 두고 앞서의 이슬람 사제가 서 있다. 살라딘이 나시르에게 묻는다.
"방어측의 지휘자는 누군가?"
"이벨린의 발리앙입니다. 고드프리의 아들이죠."
"고드프리? 고드프리가 레바논에서 날 죽일 뻔했지. 정말이지, 아들이 있는 줄은 몰랐군."
"케락에 있던 것도 그의 아들이었죠."
살라딘이 접시를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시르도 가만히 일어나 그를 따른다.
"자네가 살려준 그 자?"
"네."
"그러지 말지 그랬나(Perhaps you shoudn't have)."
그 말에 나시르의 재치 있는 응수.
"먼저 제가 다른 스승을 구했어야 했겠지요." (Perhaps I should've had a different teacher.) [4]

5 시체의 처분에 대해서

5. 예루살렘 공방전 중 발생한 시체들에 대한 처분을 두고.

반쯤 판 구덩이에 시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앞에서 살라딘이 눈물을 보이는 가운데 살라딘군은 이를 매장한다.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비슷한 상황 아래에서 대주교가 발리앙에게 항의한다.
"시신을 태우면 심판의 날에 부활 못 하네!"
"이 시신들을 태우지 않으면, 우리는 사흘 안[5]에 전염병으로 몰살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해하시겠지요, 대주교님. 이해하지 않으신다면... 그럼 하느님이라 할 수 없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발리앙은 시체 구덩이 안으로 횃불을 던져넣는다.

6 대주교와 발리앙

6. 대주교에게 날리는 발리앙의 돌직구.

예루살렘 공성전이 일단락되고, 살라딘군이 무너진 성벽 밖에 협상장을 마련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알마릭이 발리앙에게 말한다.
"이제는 저들도 협상하려 할 겁니다... 이제는 저들도 협상해야 할 겁니다."
"그냥 이슬람교로 개종하세. 나중에 회개하고."[6]
그러자 발리앙의 일침.
"제게 종교라는 것에 대해 참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예하." (You've taught me a lot about religion, Your Eminence.) [7]

7 발리앙과 살라딘의 협상

7.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발리앙과 살라딘의 협상 장면.

살라딘의 병사들이 협상을 상징하는 천막을 치고, 발리앙은 협상 제안에 응해 무너진 성벽 밖으로 나간다. 살라딘이 발리앙에게 묻는다.
"도시를 넘겨주겠나?"
"이 도시를 잃기 전에 다 태워버리고 말겠소. 당신의, 또한 우리의 성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예루살렘의 모든 것들을."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싹 다 파괴해 버리시겠다?"
"마지막 돌 하나까지. (Every stone.) [8] 그리고 여기 있는 기독교인 기사 하나하나가 각자 사라센 10명씩을 저승길로 데려갈 것이오. 당신은 여기서 당신의 군대를 모조리 잃을 것이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거요. 신께 맹세하건대 이 도시를 점령한 순간 당신도 끝장나게 될 것이오."
발리앙의 강경한 태도에 살라딘은 발리앙의 뒤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흘깃 바라본다.
"자네의 도시는 여자와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지. 나의 군대가 전멸한다면, 자네의 도시도 그리 될 걸세."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조건을 제시하시오.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소."
살라딘은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을 흘깃 바라본다.
"도시 안의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도의 땅으로 보내 주겠네. 모든 사람들을... 여자 · 아이 · 노인, 자네의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자네의 여왕까지. 자네의 왕은, 그가 해온 짓으로 봐서... 자네에게 넘기지. 하느님의 뜻에 맡기겠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이네. 하느님께 맹세하지."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도시의 모든 이슬람교도를 학살했소."
"나는 그들이 아니야. 나는 살라흐 앗 딘이다. 살라흐 앗 딘."[9][10]
잠시 눈길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럼 그 조건 하에, 예루살렘을 내어 드리겠소."
협상이 타결되자, 살라딘과 발리앙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السلام عليكم, 신의 평화가 당신에게)"
"당신에게도 평화가 함께하기를."
살라딘은 돌아서서 자신의 군대에게로 돌아가지만, 발리앙은 돌아서다 말고 살라딘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이란 게 뭡니까?" (What is Jerusalem worth?)"

"아무것도 아닐세. (Nothing.)"

살라딘은 다시 자신의 진영으로 향하고, 발리앙은 망연히 허공을 응시한다.
하지만 살라딘은 이내 다시 돌아서서 주먹을 모은다.

"모든 것이기도 하고! (Everything!)"

8 발리앙을 배웅하는 나시르

8. 나시르가 예루살렘을 떠나는 발리앙을 배웅하는 장면.

나시르가 발리앙에게로 다가와 말을 내어준다.
"이 말, 그다지 좋은 말이 못 되더군. 난 갖기 싫소."
"고맙습니다."
발리앙이 나시르로부터 말을 받아 그 위에 올라탄다. 나시르가 발리앙을 올려다보며 덧붙인다.
"하느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대가 어찌 이토록 많은 일을 해냈을 수 있었겠소? 그대에게 평화가 함께하길."
발리앙도 나시르에게 그들의 말로 작별 인사를 한다.
"와 알레이쿰 살람."[11]

9 발리앙과 새로운 십자군

9. 돌아온 발리앙과 성지로 가는 리처드 1세의 대화 장면.

고향으로 돌아온 발리앙 앞에, 행군하는 한 무리의 군대와 기사들이 나타난다.
"우리는 예루살렘 왕국을 수복하러 가는 십자군이다."
잠시 상념에 잠기는 발리앙.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를 하는 곳으로 가시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언어를 쓸 때까지 계속 가시오."[12]
그러자 기사 뒤에서 투구에 왕관을 쓴 기사가 다가온다. 기사의 옷에는 황금빛 사자 문장이 새겨져 있다. 바로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다.
"우리는 '예루살렘의 수호자(Defender of Jerusalem)'였던 발리앙을 찾아 이 길을 왔다."
"저는 대장장이입니다."[13]
"그리고 나는 잉글랜드의 왕이다."
"저는 '대장장이'입니다."[14]
알겠다는 듯 리처드 1세와 기사들은 도로 군대에 합류한다. 군대는 왔던 길을 도로 돌아간다.

10 영화의 마지막 문구

10. 영화의 마지막 문구.

The King, Richard the Lionheart, went on to the Holy Land and crusaded for three years.
His struggle to regain Jerusalem ended in an uneasy truce with Saladin.
Nearly a thousand years later, peace in the Kingdom of Heaven remains elusive.
성지를 향한 사자심왕 리처드의 십자군 원정은 3년 동안 계속되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으려는 그의 분투는 결국 살라딘과의 불편한 타협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거의 천 년이 지난 뒤에도 '하늘의 왕국'에는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

발리앙은 전투를 끝내고 평화를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영화가 제작된 시점에도 종교에 얽힌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짧고 묵직하게 나타낸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말하는 '하늘의 왕국'이 공간적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인간 내재적인 의미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정한 싸움의 원인은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1. 이 하나의 대사로 종교에 대한 맹신만이 아닌, 현실적인 지휘관이었던 동시에 자신의 전쟁을 지하드로 표명하는 살라흐 앗 딘의 입지를 요약할 수 있다. 정말 잘 정리된 대사.
  2. 구호기사단이 하느님이라는걸 의미한다. 장면 초반에 모세가 불타는 덤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자기는 못 들었다고 말하는 발리앙도 결국 불타는 덤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셈이다 .
  3. 발리앙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당시 고드프리의 검을 보고 발리앙을 미행한 그 민머리 기사이다.
  4. 자신이 살라딘에게 관용을 배웠음을 은유함으로 살라딘의 관용 정신을 암시한다.
  5. 복음서예수가 사흘만에 부활했다고 한 것을 연상시킨다.
  6. 농담조가 아니라 진지한 말투다.
  7. 국내에 출시된 DVD에서는 "참 편한 종교관을 가지셨군"이라고 번역되었다.
  8.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고 한 예수의 말을 연상시킨다. 다만 stone을 반드시 돌이라고만 특정하기는 어려우므로 중의적이라 할 수 있을 듯. 위 발리앙의 연설에서도 예루살렘 내의 성전들을 가리켜 stone이라고 총칭했다.
  9. 가산 마수드의 발음에 따르면 '살라흣-딘'처럼 들리는데, '앗'이 온전히 읽히지 않고 이전 음과 합쳐져 'ㅅ'받침처럼 발음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당 문서 참조.
  10. 참고로 살라흐 앗 딘은 정의와 신념을 뜻하기도 한다.
  11. 같은 단어로 대사를 마무리지었던 살라딘과의 대사를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난다. 살라딘과 대화할 때는 각자의 언어로 살라딘은 "As-salamu alaykum."이라고 말하고 발리앙은 "And peace be with you."라고 답하지만, 나시르와 대화할 때는 서로의 언어로 나시르가 "Peace be upon you."이라고 말하고 발리앙이 "Wa 'alaykum s-salaam."이라고 답한다.
  12. 당시 서유럽에서 중동으로 갈때는 현재의 이탈리아 지역에 위치한 제노바나 시칠리아의 메시나에서 배를 타고 가는게 일반적이였다고 한다. 참고로 리처드의 군대는 잉글랜드를 떠날 무렵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그의 부하기사인 리처드 데 캠빌리가 이끄는 함대로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서 마르세이유로 갔고, 리처드 본인은 육로로 프랑스를 남진하여 리옹을 지나서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다만, 그의 함대가 너무 늦게 와서 먼저 시칠리아로 가서 거기서 함대와 합류한다. 어쨌든 리처드가 프랑스를 육로로 지나간건 맞기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온 발리앙과 만난다는 장면은 문제가 없다.(물론 대대적으로 각색된 발리앙이 프랑스에 없었다는 점만 빼면)
  13. 자신은 '예루살렘의 수호자'니 뭐니가 아닌 일개 대장장이일 뿐이라는 뜻.
  14. 그래도 자신은 일개 대장장이로 남겠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