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필로 쿠비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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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테오필로 후안 쿠비야스 아리사가
(Teófilo Juan Cubillas Arizaga)
생년월일1949년 3월 8일
국적페루
출신지리마
신체 조건173cm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소속팀알리안사 리마(1966 - 1972)
FC 바젤(1973)
FC 포르투(1974 - 1977)
알리안사 리마(1977 - 1978)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1979 - 1983)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1983, 인도어 사커)
알리안사 리마(1984)
사우스 플로리다 선(1984 - 1985)
알리안사 리마(1987- 1988)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1988)
마이애미 샤크스(1989)
지도자알리안사 리마(1988)
국가대표81경기, 26골
1970 FIFA 월드컵 신인상
테오필로 쿠비야스

1 개요

페루의 펠레, El Nene[1]

페루 축구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테크닉과 좋은 프리킥 능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2 클럽

이 페루 축구의 영웅은 떡잎부터 달랐다. 만 16세였던 1966년에 자국 리그 최고의 명문팀인 알리안사 리마에서 데뷔하자마자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19골을 넣으며 득점왕까지 차지해버렸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데뷔 시즌. 1972년까지 리마에서 뛰었는데, 리그에서만 120골 가까이 몰아넣으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으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소위 말해 '잘나갔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월드컵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일찍이 증명한 그는 스위스의 명문 클럽인 FC 바젤로 이적했고 1시즌을 뛴 뒤 포르투갈의 FC 포르투로 이적해 3시즌간 활약한다. 1977년 그는 다시 알리안사 리마로 복귀했고, 이후 미국 무대와 알리안사 리마에서 뛰길 반복하다가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20세가 되기 전인 1968년에 데뷔했으며 그가 넣은 26골은 아직까지도 깬 후배가 없다. 약관의 나이로 출전한 70년 월드컵에서는 5골을 집어 넣으며 우고 소틸, 엑토르 춤피타스 등과 함께 페루의 8강행[2]을 주도했다. 197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테오도로 페르난데스로 대변되던 30년대 대표팀에 이어 우승을 맞보았고, 78년 월드컵에도 출전, 5골을 넣으며 페루의 2차리그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82년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득점 없이 귀국했다.

4 여담

1985년 은퇴를 했다가 1988년 알리안사 리마에서 현역 복귀를 한 것이 눈에 띄는 점인데, 이는 1987년 알리안사 리마 선수, 코칭스태프들을 몰살시킨 비행기 사고로 인해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복귀한 것이다. 유일한 감독 커리어도 이때 뿐으로, 잠시 선수 겸 감독을 지낸 것이다.
  1. 아기라는 뜻으로, 앳되보이는 그의 외모에서 기인했다.
  2. 70년 월드컵은 16개팀이 4팀, 4개조로 분할되어 경기를 치뤘다. 조별리그를 통과한게 8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