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 선생묘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산에 있는 고려 말 문신 정몽주의 시신을 안장한 묘소.

1392년 이성계의 5남이자 훗날 조선 태종이기도 한 이방원과 술자리를 가지고 난 이후 귀가를 하던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수하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면서 원래 개성 근교 풍덕군(현재의 개풍군)에 안장된 묘소를 용인으로 이장하여서 오늘에 이른 묘소이다.

죽기 전 정몽주는 이방원과 만나 술자리를 나누던 중 이방원이 하여가(드렁칡)를 읊게되자 고려는 망했으니 조선 신왕조에서 일하시오 고려를 망친 반역자 집단으로 들어오라는 권유의 시 구절임을 인식하여 그에 반대하고 거절한다는 화답으로 단심가를 읊게 되었다. 고려를 망하게 한 반역자들과는 뜻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리고나서 말을 타고 귀가를 할 때 개성 선죽교를 건너는 중 이방원이 보낸 부하가 휘두른 철퇴에 직격으로 맞고 낙마하면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정몽주의 시신은 선죽교에서 피투성이가 된 이후 개성 근교에 있는 풍덕군(개풍군) 야산에 안장되었으나 이후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을 하던 중 고인의 명정이 용인땅에 떨어지면서 영천 이장을 포기하고 용인을 장지로 결정하여 부인 경주 이씨의 시신과 합장하면서 조성되었다.

단분으로 봉분된 묘소에 비석, 상석, 망주석 등이 설치되었으며 원래는 둘레돌이 없었던 묘소였지만 1970년 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둘레돌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1980년에는 주변에 있는 민가 3채를 이전하여 묘역 성역화에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