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크리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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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Christen
1921. 06. 29.~1995. 09. 23.

두브로프카의 대전차포
대전차병의 전설, 슈츠슈타펠 최초로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사병.

최종계급은 SS 상사.

산림관리자 빌헬름 크리스텐의 아들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브레덴하겐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으며 1940년 5월 슈츠슈타펠에 자원 입대하여 3사단 토텐코프 제 2대대에 배치되었다. 이듬해 1941년 2월 병과를 대전차포병으로 옮겨 당시 최신예 주력 대전차포였던 Pak 38의 포수가 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평범하고 흔해터진 포수로 알겠지만...

데미얀스크 포위전에서 전설이 시작되었다.

두브로프카 마을 외곽에 배치된 크리스텐의 포반은 공격해온 소련군의 T-34-76 6대를 격파했다. 당장 Pak 38로 T-34를 정면에서 무려 6대나 격파한 것만으로도 보통일이 아니다. 이후 포격에서 크리스텐은 중상을 입었고 포반은 전원 전사 설상가상으로 조준기까지 망가져버렸다.[1] 그러나 크리스텐은 포미를 포신 내부로 직접 적전차를 조준하여 불과 30m도 되지않는 근거리 T-34-76 7대를 추가로 격파했고 소련군의 공격은 다시 좌절되었다.

이후로도 이틀동안 크리스텐은 아무런 보급을 받지 못한 채 홀로 전선에 남아 소련군과 전투를 치루었다. 혼자서 총 13대의 전차를 격파, 소련군 100명 이상 사살했다. 이후 사단장은 크리스텐에게 1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했으며 기사철십자훈장을 추천했다. 1941년 10월 20일 크리스텐은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직접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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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철십자 훈장 수여 포상휴가로 집에 들렀을때 부모와 함께 찍은 사진. 장하다 우리 아들

이후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체코에서 미군에게 항복했다. 토텐코프 사단 소속 병력들은 죽은 선배와 동기들의 만행 독박을 써서 소련에게 인도되었으며 여기엔 그도 포함되었다. 1955년 굴라그에서 살아돌아온 크리스텐은 서베를린에서 살았고 라우라 호프만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전후 그에 생애는 평범한 가정에 평범한 가장이였고 1992년에 아내와 사별했다. 3년 뒤인 1995년 9월 23일, 크리스텐은 바이에른 주 뉘조르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고 저승에 있는 아내를 만나러갔다.

같은 사단 출신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회고록 폭풍 속의 씨앗에서도 언급되며 실제로 둘은 몇 번 만났다고 한다.

한번은 오토 카리우스옹의 티거 아포테케(밀덕,전차덕의 성지)[2]를 방문한 적이 있다(평소 천식을 앓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부전선에선 추위에 잘만싸우더만 그보다 혹독한 시베리아 굴라그에서 어떻게 버틴거지? 사실 꾀병이라 카더라-실제 프리츠 크리스텐의 아버지는 1차대전 참전 종군기자이자 쾰른대학교 공학교수였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히 물리나 공학을 접하게 되었고 전차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1940년 전차병으로 자원입대를 하려고 했지만 키가 너무커서 불가능했는데 그의 키는 188cm로 당시 독일 전차병 평균신장이 172cm인것 감안하면 하늘의 별따기다

인성은 꽤나 온순하였고 침착하였다고 동료들은 언급한다.

하루는 동부전선에서 소변을 보다가 저격수의 저격으로 헬멧에 탄을 맞은 적이 있으나 각도가 안 좋아 피탄으로 끝이 났고 끈을 매지 않았던 그의 헬멧은 벗겨졌지만 그는 몇초 가량 더 소변을 보고 다시 엄폐했다고 한다.
  1. 전차도 조준기가 망가진 경우엔 예외없이 정비대로 직행해야 한다. 왜냐면 제대로 조준할 수 없기 때문.
  2. Tiger Apotheke, 직역하면 호랑이 약국이다. 카리우스가 전후 차린 약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