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閑中錄 또는 恨中錄[1]

1 개요

사도세자의 정실 혜경궁 홍씨가 말년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쓴 수필. 인현왕후전, 계축일기와 함께 3대 궁중 문학으로 일컬어지며 조선시대 궁중문학 가운데서는 보기 드물게 왕실의 여성이 저술한 책이다.

한번에 쓰인 책은 아니며, 혜경궁 홍씨가 여러 차례 저술한 문장을 결합한 것이다. 대략 4차례에 걸쳐 쓰여졌다고 여겨지는데, 첫 번째는 정조 대에 조카 홍수영의 요청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회고하여 쓴 것이다. 여기서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2번째는 정조가 승하하고 남동생 홍낙임이 사사되는 슬픔 속에서 친정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며, 3번째 역시 친정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번에는 손자 순조에게 자신의 한을 풀어줄 것을 청하고 있다. 4번째 글은 정순왕후 김씨 사후에 쓰여진 글로 임오화변의 전말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필사본으로 전해졌으며 여러 이본이 있어 조금씩 내용이 다르다. 예컨대 혜경궁의 어린 남동생들이 궁에 들어올 때 현빈 조씨[2]의 가족들에게 "당색이 다르니[3] 같이 못 놀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이본에 따라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2 가치

역사성 :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직접 증언을 저술한 만큼, 사도세자 관련 문제에서는 가장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되며, 사도세자의 광기나 뒤주에 갇혀 죽은 이야기 등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또한 사도세자가 본격적으로 미친 사람으로, 영조편집증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은 2번째 저술부터인데 실제 여러 사료에서도 일치하는 기록이 많다. 그리하여 종래에는 임오화변의 전말을 밝히는 중요한 사료로 여겨졌으나[4] 현대에 와서는 혜경궁 홍씨가 친정을 옹호하고자 쓴 정치적 글이라며 가치를 폄하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버지 홍봉한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막으려 애썼다고 하며,[5] 작은아버지 홍인한의 소위 삼불필지[6]에 대해서도, 홍인한이 "어린 세손이 노론이나 소론을 알겠으며, 남인이나 소북(小北)을 알겠는가?"라는 영조의 말에 혹시 세손이 다 알고 있다고 하면 "내가 금지하는 당쟁을 세손이 어찌 알고 있는가??"라고 영조가 트집을 잡을까봐 사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한 걸 보면 그러고도 남는다 당황해서 "(붕당에 대해)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한 것이 와전된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했다. 그게 사실이면 정조가 즉위하자 말자 홍인한이 유배갔다가 사사되는 일은 없었겠지[7] 다만, 임오화변이 노론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노론 음모론자들이 이 점을 과다하게 부풀려서 마치 혜경궁 홍씨마저 사도세자를 죽이는 것에 참석하고 한중록에서 이를 미화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정치권력 싸움에서 풍비박산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옹호의 시선이 들어간 것까지는 부정하기 힘들지라도, 그게 노론 음모론까지 연결되기에는 부족하다. 아래의 정신과 의사들의 분석을 봐도 그렇고...

문학성 : 조선시대의 궁중문학으로 여인의 관점에서 궁중의 일과 심각한 정치적 격변을 서술한 드문 기록이라는 점에서 문학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문화성 : 상세한 서술에서 궁중 용어, 궁중 풍속 및 사대부 사회의 인정 풍속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간택에 대해 상세히 적고 있으며, 복식을 포함한 궁중 풍속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다.

3 정신과 의사들의 분석

2014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정하은·김창윤 의사한중록을 분석했는데, 여기서 사도세자의 정신병 증세가 현대의 정신의학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오직 상상력만으로 쓴 허구라고 보기엔 어려운 내용이라고 봤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홍씨 집안을 방어하기 위해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 사후에 기록한 것이므로 내용이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사도세자는 당쟁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 Lee DI. The world dreamed by Prince Sado. Goyang: Wisdomhouse;2011. p.53-54. ) 하지만 한중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정신증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술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접근 가능한 역사적 자료의 양이 부족하여 자료 수집에 제약이 많았고, 이로 인해 근거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연구의 가장 큰 제한점이다. 또한 연구자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1차 자료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중록을 살펴보면 증상에 대한 기술이 상당히 상세하고 구체적이어서, 현대의 정신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허구로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하은, & 김창윤. (2014). 사도세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사도세자, 양극성 장애 환자인가 당쟁의 희생양인가. J Korean Neuropsychiatr Assoc, 53(5), 299-309.

4 대중매체에서의 한중록

  1. 이것은 혜경궁 홍씨가 직접 지은 것은 아니고 전해지는 이본에 붙여진 제목들 중 하나를 취해 붙인 것이다. 그 외에도 한중만록, 읍혈록 등 여러 제목이 있다. 당시에 책 제목을 붙이는 방식이나 정서를 고려하면 한가할 한(閑) 쪽이 좀 더 올바르다는 것이 정설. 혜경궁 홍씨가 극도로 비탄에 빠져 있더라도 역설적으로 '한가한 가운데 저술했다'고 제목을 붙이는 편이 당대의 정서상 더 부합한다고 한다. 그러나 恨中錄이라고 표기된 이본도 엄연히 있으니 恨을 써도 오류는 아니다.
  2. 사도세자의 형 효장세자의 빈.
  3. 혜경궁의 친정 풍산 홍씨는 노론, 현빈 조씨의 친정 풍양 조씨는 소론 계열이다.
  4.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너무 간략하고, 승정원일기정조의 청으로 세초되었기 때문에 상세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다.
  5. 심지어 홍봉한은 실제로는 거의 집행관 수준으로 참여했는데 여기선 그 자리에 없었다고 나온다.
  6.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려는 영조에게 홍인한이 "동궁께서는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으며,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조정의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고한 것
  7. 실제로 즉위 후에 다들 정후겸만 탄핵하자 "야 이 대간님들아 큰 놈은 왜 탄핵 안하냐?" 하지 그제서야 몇명이 홍인한도 탄핵해 홍인한을 유배보내고 곧 둘 다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