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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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No.7
호비뉴 (Robinho)[1]
생년월일1984년 1월 25일[2]
국적브라질
출신지브라질 산투스
포지션포워드
소속팀산투스 FC (2002~2005)
레알 마드리드 (2005~2008)
맨체스터 시티 (2008~2010)
산투스 FC (임대) (2010)
AC 밀란 (2010~2015)
산투스 FC (임대) (2014~2015)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5)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6~)
국가대표99경기 28골

1 클럽

브라질 출신 공격수.

별명은 초딩요. 애 같은 얼굴이기도 하지만 더 애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 한다. 감독의 칭찬이나 자신에게 적합한 포지션에 배치하면 맹활약 하지만, 팀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하거나 자신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면 부진하는 면이 강하다.
그래도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드리블러로 평가받는다. 특히 좁은 지역에서 밀집한 상대 수비를 가볍게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눈이 즐겁다. 다만 호날두메시 같은 '신계' 공격수들에 비하자면 득점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여담으로 소문난 악동 안토니오 카사노 때문에 물들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그 아햏햏한 골세레머니(...). 레알 마드리드 시절이면 호비뉴는 20대 초반일 때인데 벌써 그런 민망한 세레머니를 배웠으니...

2002년 산토스 FC에서 데뷔,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산토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펠레자신의 후계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5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때 루이스 피구가 쓰던 등번호 10번을 받았으니 어느 정도 기대를 모았는지 잘 말해준다. 그리고 이런 기대에 걸맞게 데뷔 첫해 14골을 넣는 활약을 펼친다.

2006/2007 시즌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팀의 좌우 측면을 맡았으며 이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비록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재미없는 축구라는 이유로 해임되고, 2007/2008시즌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취임한다. 레알은 이 시기가 일종의 과도기였는데, 갈락티코 1기가 한계를 드러내고 네덜란드 커넥션으로 팀을 재구성하던 때였다. 호비뉴는 여기서도 변함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며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맛본다.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선 6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레알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기 위해 '호비뉴+현금'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미는 위엄을 선보였다. 당연히 호비뉴 성격에 이런 취급은 참지 못했고, 결국 트레이드가 실패하면서 부랴부랴 호비뉴를 잡으려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처럼 날두와 초딩요 덕분에 2008년 여름 이적시장은 한껏 달아오르고, 찌라시는 신나서 호비뉴 첼시 FC 이적설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단순히 설이 아닌 징후가 여럿 있었는데, 우선 첼시는 호비뉴라면 아낌없이 돈을 퍼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레알도 가격만 맞는다면 호비뉴를 넘길 마음이 있었고, 호비뉴 역시 EPL 특히 런던행 추측성 복선을 적절하게 투척했다. 사실상 얘기는 다 끝났고 첼시 유니폼 들고 사진만 찍으면 끝난 상황이었는데, 이적 마감인 9월 1일, 호비뉴는 맨체스터 시티로 전격 이적했다 .[3]

이때까지 한국 축구팬 사이에서 호비뉴는 해가 갈수록 기대가 되는 눈부신 재능의 소유자로 기대를 받았고, 괜히 레알 마드리드에 갔다가 실패한 불쌍한 애라는 동정표도 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배신을 하면서 개념없는 이단아로 평가가 바닥을 치게 된다. 펠레 역시 정말 심각하게 인생상담이 필요한 아이라며 호비뉴를 맹렬히 비난했다.

맨시티 입장에서 호비뉴의 영입은 장기적으로 이득이 많이 되었다. 사실 활약만 보자면 그런 소리를 못할 정도였지만, 문제는 이미지. 셰이크 만수르가 구단주로 취임하고, 카카디디에 드록바건, 스티븐 제라드건 다 영입해버리겠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기도 했으나, 실제로 거물급은 커녕 준척급에서도 맨시티로 이적하겠다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맨시티가 졸부의 농담거리 취급을 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터진 것이 호비뉴의 영입이었던 것이다. 이후 나름 이름 값 좀 있는 선수들이 입단하기 시작한다.

맨체스터 시티 이적 초반에는 대활약을 하였지만 이후 영국 생활 부적응 및 주전 출장 문제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며 산토스로 임대를 가게 된다.

산토스에서 예전 날카로운 모습을 되찾으면서 다시금 호비뉴의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호비뉴는 산토스에서 계속 뛸 마음이 있었지만, 맨시는 임대를 연장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2010년 8월 30일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AC 밀란으로 이적한 후 몇몇 경기에 교체출전했는데, 이런저런 트러블로 인해 월드컵 이후 훈련을 못 한 것 때문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폼이 올라오며 날카로운 드리블과 패스 능력으로 밀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다.

2010/11 시즌 14골을 넣으며 활약하고 있다.

11/12시즌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가 부상이 회복되고 알렉산드르 파투, 안토니오 카사노 등이 부상으로 아웃되며 많은 경기를 주전으로 출장하고 있다. 지난 유벤투스전에서 페널티킥을 골로 넣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으나, 그냥 대타로 나오면서 간간히 몸을푸는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2/13시즌에는 23경기에 출장. 하지만 극도로 부진했고 교체 출장이 많아서 존재감이 부족했다.

13/14시즌 리그 첫 경기에 선발로 기용되면서 뜬금없이 부활하더니 원톱으로 기용되고 있다. 8라운드까지 성적은 2골 4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하고있다. 챔스에서는 FC 바로셀로나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다. 비록 메시에게 동점골을 먹히며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지만, 카카와 함께 공격루트를 만들어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리그성적이 3승 2무 4패다. 팀이 또 부진하고만다. 그리고 리그 후반기가 되면서 본인도 다시 부진에 빠진다.

2014년 8월 7일 산투스 FC로 임대되었다.

2015년 광저우 헝다에 입단했다. 국내 축구팬들은 이미 올거라 알고 있긴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충격과 공포정도로 여기는 분위기.

리그가 막 후반기로 접어든 시점에 이뤄진 이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다. 리그에선 9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다.

팀 당 외국인 선수 3명 + 아시아 쿼터 1명으로 외국인 선수 등록 제한이 있는 ACL에서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5시즌이 끝나고 광저우를 반 년만에 떠나게 됐다.

이후 스완지 시티EPL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결국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 입단하며 브라질로 돌아갔다. 미네이루와의 계약 기간은 2년이며 주급은 약 1억 7천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2 국가대표

2003년 7월 13일 골드컵 멕시코 전에 성인 국가대표선수로 데뷔하였다.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여 조별리그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한 경기만 더 뛰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데 국대에서 불러주질 않는다.

3 기타

수원에서 영입할 수도 있었다는데 산토스 시절 브라질에 스카우트하러 갔던 수원 스태프가 당시 16세였던 호비뉴를 보고 영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가격도 스카우터가 생각하기에는 적절했다. 그러나 윗선에 보고를 하자 겨우 16세를 그 가격에 영입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으나 리그가 열려 17세가 된 호비뉴는 전반기에 교체로 뛰더니 후반기에는 산토스에서 풀타임을 뛰었다고 한다.

의외로 성폭행 관련으로 구설수가 잦은 선수이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던 2009년에는 리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난 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되었다.[4] 그 뒤에는 AC 밀란 소속이었던 2014년 밀라노의 한 레스토랑에서 브라질 출신의 미성년 여성을 친구들과 함께 집단으로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1. 본명은 호브송 지 소자 (Robson de Souza)이다.
  2. 은근 생일이 주목받는데, 축구계 대표 노안 선수인 아르옌 로벤과 생일이 겨우 이틀 차이이기 때문. 태어난 연도도 똑같고 날짜만 단 이틀 차이이다.
  3. 당시 호비뉴의 첼시 이적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맨체스터 시티의 하이재킹에 놀란 축구팬들도 많았다.
  4.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브라질 축구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며 펠레에게 한 소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