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창작동요제

1 개요

1983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동요제. 이 곳에서 역대 대상 수상 곡을 볼 수 있다.
또 유튜브에서 사용자가 업로드 해놓은 2~9회, 20~21회 전체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작동요제 CD에 수록된 원곡들도 찾아보면 많이 올라와 있으니 참고.

명실상부한 최고의 동요제으며 새싹들이다, 네잎클로버, 아빠! 힘내세요[1], 아기염소 등 유명한 동요가 많이 발굴되었다. 진행 방식은 해당곡의 악보와 곡을 녹음한 CD를 보내 본선 진출자를 가리고[2] 어린이날5월 5일에 TV와 라디오로 방송되는 생방송으로 최종 결선을 치루는 방식이다.[3] 특이한 점은 MBC TV로 생중계되지만 주최자는 라디오 제작국이라는 것이었다. 28년 동안 400여 곡들이 배출되고 수상곡 중 20여 곡이 교과서에도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부터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들, 입상에만 치중한 곡들의 속출[4], 이에 따른 대회의 어린이경연장화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어린이의 방송계 진출 수단으로까지 변질되었다. 심지어 언제부턴가 대중성 있는 동요도 계속 나오지 않아[5]옛 창작동요제[6]의 명성이 퇴색하게 된다. 또 방송사와 기업체의 협찬이 줄어들었고[7] 시청률도 매우 저조해지는 등의 이유로[8] 결국 2010년 제28회를 마지막으로 잠정중단되었다.[9] 현재는 울산MBC에서 개최하는 서덕출 창작동요제[10]를 전국에 방송하고 있다.[11]

2 역대 대상[12] 수상 곡들

제1회1983년새싹들이다[13]
제2회1984년노을[14][15][16]
제3회[17]1985년즐거운 소풍길
제4회1986년종이접기
제5회1987년고향길
제6회1988년이슬[18]
제7회1989년연날리기[19]
제8회1990년[20]
제9회1991년하늘나라 동화[21]
제10회1992년부채춤
제11회1993년봄비[22]
제12회1994년나의 친구[23]
제13회1995년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24]
제14회1996년네잎클로버[25]
제15회1997년반딧불
제16회1998년오솔길
제17회1999년우리 풀꽃[26]
제18회2000년우리집은 동물원
제19회2001년바람[27]
제20회2002년풍금소리 노랫소리
제21회2003년초생달
제22회2004년맷돌[28]
제23회2005년함께 걸어 좋은 길
제24회2006년그날을 위해[29]
제25회2007년참 좋은 말[30]
제26회2008년어느 봄날
제27회2009년아빠 사랑해요
제28회2010년왜 이렇게 덥지?

3 대상 이외 역대 수상 곡들

대상 수상곡들 말고도 찾아보면 좋은 곡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1991년 9회 대회에서 금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아기염소'가 매우 유명하며, 동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윷놀이' 역시 좋은 평을 받았다. 또한, 1987년 5회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섬마을', 1997년 15회 대회에서 입선조차 하지 못한 '아빠 힘내세요' 등 숨은 명곡들이 많이 있다. 자세한 정보는 링크를 참조할 것.

4 노을의 작곡자 논란

1984년 제2회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노을'의 작곡가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안호철 선생이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당시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최현규 씨가 작곡을 한것으로 밝혀졌다.

최현규는 군 복무 중에 노래 '노을'의 일부를 작곡해 뒀다가, 제대한 후에 곡을 완성하였다. 그 후 MBC 창작동요제에 곡을 출품하려 했으나 당시 대회의 작곡자로서의 참가 자격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만 제한되어 있었고, 최현규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당시 경기 평택 성동국민학교 교사였던 안호철 선생의 이름을 빌려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곡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상을 받았고, 그후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요 순위 1위에 꼽힐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동요제가 끝나면 곧바로 작곡가의 이름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던 안호철 선생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도 작곡가의 이름을 돌려주지 않았다. 결국 1998년, 평택 안일여자고등학교 교장직을 지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귀복 부회장이 이 사실을 전해듣고는 안호철, 최현규와 3자 대면 자리를 주선 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안호철 선생은 자신이 '노을'의 작곡가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으며, 작곡자 명의를 돌려줄테니 최현규에게 그해 가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것으로 알려졌다. 최현규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는데, 안호철 선생은 이후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 목사가 되었으며, 2년이 더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없이 잠적을 하였다. 이에 원 작곡자 최현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되어, 결국 신귀복 부회장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노을' 곡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고 한다.

5 기타

대상 수상자들 중에선 남학생 가창자에 비해 여학생 가창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회가 28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남학생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한 것은 7회, 12회, 17회 대회 등 단 3개 대회에 불과하며, 남학생이 대상 수상 팀에 포함된 경우까지 늘려도 총 7개 대회 뿐이다.

탤런트 박시연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제7회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이 대회에서 '봄마중' 이라는 곡을 불렀으나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

2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제20회 창작동요제에서는, 과거 대상 수상자인 1회 대회의 이수지 씨, 7회 대회의 한지웅 씨, 8회 대회의 전혜윤 씨, 9회 대회의 국은선 씨가 성장하여 성인이 된 모습으로 특별출연하였고, 이들은 당시 수상했던 곡을 그대로 불러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아냈다.

22회에 나왔던 곡인 '그림속 풍경'을 부르는 학생의 짤방이 유명하다. 원본 패러디1 패러디2[31]

6 같이 보기

  1. 1997년 대회에서 입선된 노래. 그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다가 2004년 카드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레 명곡이 되었다. 그러나 표절 논란을 겪기도 했다.
  2. 2004년 22회 부터는 3차 실연심사도 거쳐야 했다.
  3. 84년 2회는 5월 4일에, 2002년 20회는 5월 3일에 방송. 83년 1회, 2006년 24회, 2007년 25회, 2009년 27회는 사전녹화 후 어린이날 당일 방송.
  4. 음역대가 높고 길이가 긴 가곡 형태의 곡들이나 혹은 곡 중간에 박자가 갑자기 바뀌는 곡, 즉 노래가 어렵고 가창자의 가창력이나 기교가 크게 강조되는 곡들. 다르게 말하면 어른들이 듣기엔 좋으나 곡에서 순수한 동심이 느껴지지 않고 정작 어린이들이 따라부르기 지루하고 너무 어려운 곡들. 90년대 중반 이후 창작동요제 수상곡의 인지도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한 주 원인이다.
  5. 심지어 2003년을 기점으로 인터넷 플래시 동요(흔히 말하는 엽기송)의 유행으로 인해 창작동요제 출신 동요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최대 피해자 21회 게다가 그나마 성공한 곡인 함께 걸어 좋은 길과 참 좋은 말 마저도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각각 2005년도와 2007년도 대상곡인데, 97년생인 필자는 이것들을 작년 말에서야 처음 들었다. 안습
  6. 80년대~90년대 초중반
  7. 라디오 제작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중에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고 한다. 거기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경기가 어려워져 제작비 지원도 줄어들었고, 오랫동안 제작비의 일부를 협찬하던 국내 아동복 시장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기업체의 협찬도 줄어든 게 컸다.
  8. 2000년대 초반까지는 2부로 나눠져서 진행되었고 방송시간도 2시간 가량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1부만으로 줄어들고 참가자 수도 줄더니 결국 마지막회 직전인 27회에는 방송분량이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9. 그러나 사실상 폐지되었다고 봐야 된다.
  10. 울산 출신의 동요 작사가인 '서덕출'의 이름을 땄다.
  11. 기존 문서에 MBC 창작동요제의 역사를 이어가는 대회로 서덕출 창작동요제와 함께 창작국악동요제와 초록동요제를 들었으나, 창작국악동요제는 국립국악원이 주관하는 대회이고 초록동요제는 어린이(와 가족)의 노래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서 창작동요의 경연장이 아니므로 둘 다 MBC창 작동요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서덕출 창작동요제 또한 MBC 창작동요제가 중단되기 전부터 개최되었으므로 MBC 창작동요제를 더 이상 개최하지 않으면서 서덕출창 작동요제를 전국으로 방송하는 것은 MBC 창작동요제의 역사를 이어가는 의미라기보다는 기존 대회의 공백을 메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비해, KBS창작동요대회는 KBS창작동요대회(1989~1993)가 폐지된 뒤에 KBS부산 창작동요대회(1994~2003)가 시작하였고 KBS부산방송총국이 더 이상 창작동요대회를 개최하지 않게 되면서 다시 서울에서 개최(2004~)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대회 주체가 서울 -> 부산 -> 서울로 옮겼을 뿐 연속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12. 3회까지는 최우수상이었으나, 제4회부터 대상으로 변경되었다.
  13. 여담이지만 금영노래방 번호가 4444다(...) 번호가 동심 파괴
  14.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창동요 1위로 뽑히기도 했다.
  15. 후에 작곡자가 '최현규'로 정정되었다.
  16. 이 노래를 부른 권진숙씨는 이화여대 약대를 나와서 현재 지명컨설팅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17. 여담으로 이 대회에선 가창자 중에 남자 어린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
  18. 여학생 5명에 남학생 1명으로 구성된 팀이 불렀고, 최초로 남학생이 대상을 수상한 대회이다.
  19. 작사는 어머니가, 작곡은 아버지가 했고, 노래는 아들이 불렀다. 그리고 작곡자 한수성씨는 후에 '아빠! 힘내세요'의 작곡자로 유명해졌다.
  20. 원래 출전하려던 가창자가 감기에 걸려 출전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대회 2주 전 가창자가 바뀌었고, 동요치고는 꽤 난이도가 있는 노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에서 이 노래를 불러 대상을 수상한 전혜윤 어린이는 실로 절륜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21. 당시 가창자 국은선 어린이는 현재 성악가(소프라노)로 활동 중이다.
  22. 대상 수상곡 가운데 유일하게 작곡자가 중학교 교사이다.
  23. 아버지가 작곡을 했고 아들이 노래를 불렀다. 7회 대상곡과 비슷한 케이스.
  24. 당시 국민학교 6학년 정예경 어린이가 직접 작곡한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현재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정예경 어린이는 전년도인 12회 대회에 선생님의 곡으로 출전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수상하지 못했었다.
  25. 작곡자 박영신씨는 12회 대회 당시 초중고 교사로 제한되었던 참가자격에 걸려 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12회 대회는 한 팀이 빠진 14팀으로만 결선이 치뤄졌다. 이를 계기로 13회 대회부터는 작곡자의 참가자격이 완전 폐지되었다.
  26. 후에 표절 논란이 있었다.당시 기사
  27. 이 노래의 가창자는 연변 조선족으로, 17회 대회 때 축하공연 팀이었던 연변tv 꽃봉우리 합창단으로 출연해 '노을'을 부른 후 현장에서 동요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된다. 이로 인해 작곡가 정동수씨를 소개받고 그의 곡으로 18회와 19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작곡자 정동수씨는 15회 반딧불에 이어 대상을 2번 탄 작곡자가 되었으며, 당시 상금을 모두 가창자에게 장학금으로 쓰라고 주었다고 한다.
  28. 당시 여론이 좋지 못했다. 들어보면 알지만, 이 노래는 가사도 곡도 그렇고 동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29. 전년도 함께 걸어 좋은 길을 부른 합창단 멤버였던 가창자는 이 대회에서는 듀엣으로 출전해 2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다른 한 명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른 가창자의 무대 옆에서 도우미(백댄서) 역할을 했었다. 20회 '봄친구' 무대에서도 모습을 볼 수있다. 개구리 복장을 한 소년 뒤에 있다.
  30. 이 노래의 가창자인 강윤 어린이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MBC 창작동요제 역사상 최연소 대상 수상자이다.
  31.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진을 가지고 각종 짤방을 만들어냈지만, 이런 행동은 일반인, 더구나 연예인도 아닌 사람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으로 비쳐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 충분히 자제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