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center><#00008b><:> {{{#ffffff '''『'''}}}[[위(삼국시대)|{{{#ffffff '''위서'''}}}]]{{{#ffffff '''』'''}}} '''{{{#ffffff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 ||<:> [[유복#s-2|유복]] ||<:> [[사마랑]] ||<:> [[양습]] ||<:> [[장기(삼국지)#s-2|장기]] ||<:> [[온회]] ||<#dcdcdc><:> '''가규''' || 賈逵 (174년 ~ 228년) [목차] == 개요 == [[후한#s-1|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로 [[위(삼국시대)|위]]의 대신이며, [[자#s-2|자]]는 양도(梁道). 하동(河東) 양릉(襄陵) 출신이다. 여담이지만 정발판 삼국지 인명 사전에는 가나다 순서 상 제일 먼저 등장한다. 일본의 경우 [[아회남]]이 제일 먼저 나온다. == 생애 == [[위략]]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구(衢)였으나 규(逵)로 고쳤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군대를 편성하며 놀기를 좋아해 그의 조부 가습(賈習)[* 아버지의 이름은 알 수 없다.]은 가규를 보고 장수가 될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가규는 조부 가습에게 병법을 전수받은 뒤 관직에 나갔다. 정사에는 [[곽원]], [[고간(삼국지)|고간]]이 관서 지방을 공격하자, 막다가 포로로 잡혔는데 곽원은 가규를 등용하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곽원은 가규를 죽이려 했으나 강읍의 아전과 백성들이 반대하여 사면되었다. 곽원이 패배하자, 포로에서 풀렸다. >'''천하의 관리들이 모두 그대와 같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 조조 그 후에 장염 등의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웠다. [[조조(삼국지)|조조]]가 가규를 매우 좋아했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삼국지연의]]에는 비중이 별로 없다. 전쟁보다는 행정 면에서 세운 공적이 많았기 때문일지도? 211년, 조조가 마초를 치러 가다가 홍농을 지나면서, 가규에게 홍농태수를 맡겼다. 어느 날 가규는 둔전도위가 도망친 백성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했는데, 둔전도위의 말투가 불손하여서 분노한 가규는 둔전도위에게 죄를 묻고 다리를 부러트렸다. 이 일로 인해 면직되었으나, 조조는 이를 좋게 여기고는 승상주부로 삼았다. 조조가 죽은 후 장례 의식을 주관했으며, [[조창#s-2|조창]]이 군사를 이끌고 찾아와 [[옥새]]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건 세자([[조비#s-1|조비]])가 신경 쓸 일이지 당신이 알 바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조비에게서도 큰 신임을 받았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가규는 예주자사가 된다. 가규는 전쟁 준비에 힘쓰며 제방을 새로 쌓고 소익양피란 저수지를 만들고 200리의 운하를 뚫었다. 이 운하는 나중에 '가후거'가 된다. 222년에 조휴,장료와 함께 오나라를 쳐, 오나라 대장 [[여범]]의 군대가 폭풍우에 휩쓸린 틈을 타 공격하여 격파했다. [[석정 전투]]에서 [[조휴]]의 부장으로 참전했는데 [[주방#s-2|주방]]의 거짓 항복을 간파했다. 조휴가 패하고 도망칠 때 가규의 부대는 짐짓 기세를 올려 오군의 추격을 막았다. 그러나 [[조휴]]가 가규과 사이가 좋지 않은편이라 버려진 무기를 주워라고 내리자, 이에 대해 가규는 반박했다. 자세히 한것은 [[석정 전투]] 항목 참고. 위략에 따르면, 조휴는 가규가 늦게 온 것을 꾸짖고 조정에 상주하여 가규를 모함했으며, 가규도 돌아온 뒤 상주했다. 조정에서는 비록 가규가 옳지만, 조휴가 종실로 중임을 맡고 있었으므로, 아무에게도 잘못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가규는 마침 병이 위독해져 죽었다. 가규가 죽자 [[장남]] [[가충]]이 뒤를 이었다. [[시호#s-2|시호]]는 숙후(肅侯)이다. [[서진#s-1|서진]]의 권신이자 가황후([[가남풍]])의 아버지인 [[가충]]은 가규의 아들이다. 이를 두고 가씨 세 명이 각각 세 왕조(한, 위, 서진)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가남풍]] 항목에 기술되어 있듯이, 이는 억지로 끼워맞춘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가규와 가충, 가남풍은 저마다 역할(?)이 달랐는데, 가규는 조조와 조비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 한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고 가충은 사마씨 일족의 심복으로서 위의 멸망에 깊이 관여했다. 한편 가남풍은 진을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진을 무너뜨리는 데에 크게 공헌(?)한 악녀에 불과하다.]. == 가족 관계 == * [[가충]] : 가규의 장남 * 가혼 : 가규의 [[차남]]. 자는 궁기(宮奇)로 가충의 동생이다. 태강 연간에 종정경이 되었고 진군장군, 성문교위, 시중을 지내고 영평후에 봉했다가 사망했다. 사망 후 중군대장군(中軍大將軍)이 추증되었는데, 재능은 평범했지만 성실하고 인정이 두터우면서 스스로 삼갈 줄 알았다. * [[가남풍]] : 손녀. * [[가포]] : 손녀. == 미디어 믹스 == === [[화봉요원]] === http://pds23.egloos.com/pds/201201/01/00/c0054500_4effd0b3c4ca8.jpg [[화봉요원]]에서 제일 파격적으로 변한 인물 중 하나. 주인공인 [[사마의]]의 심복으로 등장하는데, 본 작품에서의 사마의는 조조에 대한 원한으로 그와 그의 나라를 무너트릴 생각을 품고 있는 역신이다. 그런 그가 복수를 위해 조조군에 심어둔 인물이 바로 가규. 작품 내에서는 파괴밖에 할 줄 모르는 해충이라고 불리며[* 심지어 [[사마의]]는 가규의 아버지 앞에서도 서슴없이 그를 이렇게 부른다.] 캐릭터 디자인도 꽤나 근골에 눈빛이 매서운데다가,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항상 표정의 변화가 없는 등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 [[삼국지 시리즈]] === || http://vignette1.wikia.nocookie.net/dynastywarriors/images/7/70/Jia_Kui_%28ROTK11%29.png || || 삼국지 11 || || http://san.nobuwiki.org/pic/sancg/13/0068.jpg?width=400 || || 삼국지 12, 13 ||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7 이후로는 전투력을 겸비한 정치가형 능력치로 등장하며, 수치는 무력이 60대인 것을 제외하면 거의 70 ~ 80대로 무난한 수준이다. 삼국지 8에서는 전 능력치가 70 이상이면서 성장형이 만능이라, 용맹, 지낭, 지략, 인덕 특기만 있으면 전능 없이도 모든 능력치를 100까지 올릴 수 있다.[* [[조조(삼국지)#s-1|조조]], [[주유(삼국지)|주유]] 등은 무력이 70보다 낮아서 전능이 필요하다. 물론 얻기가 어렵지는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69/지력 82/정치력 83. 분전, 돌파, 제사, 파괴, 덫을 가지고 있다. 준수한 능력치이긴 한데 덫 빼고는 뭔가 강력한 병법만 피해간 병법 보유가 아쉽다. 그래도 좋은 장수.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5/무력 62/지력 80/정치력 86/매력 78.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으며, 특기가 12개이며, 능력치 총합은 381로 전체 3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삼국지 11]]에서도 여전히 균형잡힌 능력치에 능력치 총합은 383으로 약간 상승했다. 병종적성은 창,노,공성 A이고, 여전히 32위에 해당하며, 특기는 [[축성#s-1.1|축성]]. [[삼국지 12]]의 일러스트는 주방의 항복이 거짓 항복임을 간파하고 주방의 말을 믿지 말라고 조휴에게 역설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능력치는 매력만 삭제되고 변동이 없고 병종은 창병이며 병격봉인[* 오리지널에서는 맹사봉인.]으로 안 그래도 지력이 84이라서 전군병격도 캔슬하게 만드는 무서운 창병이다. 아들인 가충 역시 비슷한 전법인 전법봉인이 전법이다. === [[삼국전투기]] === [[삼국전투기]]에는 [[밀러스 크로싱]]의 가브리엘번으로 패러디 되어 나왔다. [[분류:위나라의 인물]] 가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