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c/Gabriel_Milito.jpg/200px-Gabriel_Milito.jpg || 이름 || 가브리엘 알레한드로 밀리토 (Gabriel Alejandro Milito) || || 생년월일 || [[1980년]] [[9월 7일]] || || 국적 || [[아르헨티나]] || || 출신지 || 베르날 || || 포지션 || 중앙 수비수 || || 키 || 178cm || || 프로 입단 || 1997년 [[인디펜디엔테]] 입단 || || 소속팀 || [[인디펜디엔테]](1997~2003) [br] [[레알 사라고사]](2003~2007) [br] [[FC 바르셀로나]](2007~2011) [br] [[인디펜디엔테]](2011~2012) || || 국가대표 || 42경기 1골 || [목차] == 개요 ==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 경기를 지휘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해 '마리스칼(mariscal, [[총사령관]]이라는 의미)'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패스와 볼 컨트롤 능력이 수준급이다. [[디에고 밀리토]]의 동생으로 유명하다. --그래도 한때는 형보다 유명했는데...-- [[축빠]]들 사이에서는 [[본좌]]급 [[유리몸]] 선수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교하자면 [[프리미어리그]]의 [[오언 하그리브스]] 정도. == 클럽 활약 == === CA 인디펜디엔테 === 1997년 CA 인디펜디엔테에서 데뷔했으며, 2002년 [[아페르투라]] 우승에 공헌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재미있게도 형인 디에고 밀리토는 인디펜디엔테의 [[더비]] 라이벌 팀인 라싱 클럽에서 데뷔했다. --본격 [[우치하 사스케|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형제간의 싸움]]--] 인디펜디엔테에서의 기록은 123경기 3골. === 레알 사라고사 === 이러한 활약으로 [[유럽]] 여러 구단의 러브콜을 받아 2003년 4년 계약으로 [[페르난도 이에로]]의 대체자를 구하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추진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무릎]] [[인대]]에 이상이 발견되어 이적이 무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레알 마드리드가 밀리토 대신 영입했던 선수가 바로 [[미들즈브러]]의 --유리몸의 지존-- [[조나단 우드게이트]]였다.(...)] 하지만 본인은 스페인에 남기로 했으며, 일주일 뒤 받은 [[레알 사라고사]]의 메디컬 테스트에서는 아무런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의 갑작스런 영입 포기에 강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우여곡절끝에 레알 사라고사에 합류한 이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으며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었으며, 2005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형인 [[디에고 밀리토]]가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해 밀리토 형제는 팀의 공수의 핵으로 자리잡았다.사라고사에서의 2003년부터 2007년간 4시즌 총기록은 137경기 5골.진짜 수비의 핵심이었다.~~이때까지만 해도 유리몸기질이 딱히 안보였거든~~ === FC 바르셀로나 === 이러한 활약으로 2006-07 시즌 종료 이후 이전에 영입 직전에 취소했던 레알 마드리드나 같은 리그의 [[FC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C.F.]],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리버풀 FC]] 등의 관심을 받았으며,[* 당시 유벤투스는 [[로베르토 코바치]]와 [[이고르 투도르]]가, 발렌시아는 [[로베르토 아얄라]]가 이적한 상황이었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파비오 칸나바로]]를 맞트레이드 대상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들 중 처음에는 유벤투스로의 이적이 유력했으나 영입 협상 과정에서 2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원하던 사라고사와 이적료에서 이견을 보여 결렬되었다.--예나 지금이나 유베 보드진은 변한게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밀리토의 영입 협상 결렬 이후 유벤투스가 밀리토 대신 영입했던 선수가 바로 --또다른 유리몸-- [[포르투갈]]의 [[조르제 안드라데]]이다.(...)] 이후 사라고사에서 원하는 것과 근접한 이적료에 추가 옵션을 제시한 FC 바르셀로나로의 이적이 확정되었으며,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한 뒤 4년 계약에 400만 [[유로]]의 연봉, 9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금액에 합의한 뒤 이전까지 [[티아고 모타]]가 달았던 등번호 3번을 배정받았다.[* 바르셀로나가 제시한 기본 이적료는 1700만 유로였으며, 여기에 [[트레블]]을 달성할 시에 300만 유로를 추가 지급한다는 옵션을 포함시켰다.] 이적 이후 2007년 9월 2일 [[아틀레틱 빌바오]]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에 교체로 투입되며 데뷔전을 치렀으며, 11월 24일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를 상대로 데뷔골을 넣었다. 이적 이후 맞는 첫 시즌인 2007-08 시즌에는 빠르게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2008년 4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2차전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당초에는 6개월 정도의 결장이 예상되었으나, 과거 2001년에도 같은 부위에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경력이 있는데다가 [[관절경]] [[수술]] 과정에서 왼쪽 무릎에서 [[힘줄]]을 일부 절제해 오른쪽 무릎에 이식하는 재건 수술을 받을 정도로 예상보다 부상 정도가 심각해 결국 9개월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결국 시즌 아웃된 채 2008-09 시즌 후반기에 복귀가 예상되었으나, 2009년 6월 모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재수술을 받아 '''시즌 동안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결국 유리몸화.-- 이후 2009년 9월에는 수술을 받은 지 1년 5개월만에 처음으로 [[공]]을 사용한 [[훈련]]을 시작했으며, 2009년 11월에는 [[볼리비아]]의 축구팀인 볼리바 CF와의 친선 경기에서 전반 45분동안 선발 출전하며 수술을 받은 지 '''1년 7개월'''만에 그라운드에서 활약했다. 2010년 1월에는 [[세비야 FC]]와의 [[코파 델 레이]] 16강전 1차전에 뛰며 수술을 받은 지 '''1년 9개월'''만에 공식 경기에 나올 수 있었으며, 5일 뒤 [[CD 테네리페]]와의 리그 경기에서 후반 [[카를레스 푸욜]]과 교체되며 리그에서도 복귀하였다. 복귀 이후에는 [[히카르두 코스타]]가 떠난 자리를 메우려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볼프스부르크]]로의 이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팀에 잔류했는데,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며 전 시즌 [[트레블]]을 이룩한 중앙 수비 라인인 [[카를레스 푸욜]]과 [[헤라르드 피케]] 및 [[라파엘 마르케스]] 등에 밀린 후보 선수 처지에 머무르며 2009-10 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010-11 시즌 시작 전 --문제의-- [[K리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출전하기도 했는데, 당시 상황은 [[FC 바르셀로나#s-8.2|여기]] 참조. 시즌 시작 이후에는 10월 팀 훈련 도중 [[내전근]] 부상으로 2주 동안 결장했으며, 복귀 이후 11월 [[AD 세우타]]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서 1골을 넣으며 팀의 5:1 대승에 일조했지만 전반전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다시 6주 동안 경기에 뛰지 못했다.(...) --이쯤이면 유리몸의 본좌급.-- 결국 팀의 주축 전력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겨울 이적시장에서 자신의 친정팀인 레알 사라고사 및 같은 리그의 [[말라가 C.F.]], [[안드레아 라노키아]]의 공백을 메우려는 세리에 A의 [[제노아 CFC]]나 [[SSC 나폴리]],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날 FC]]와 [[맨체스터 시티]], 분데스리가의 [[FC 샬케 04]]로의 이적설이 있었지만 [[펩 과르디올라]]의 만류로 결국 잔류하게 되었으나,[* 참고로 제노아 CFC는 형인 디에고 밀리토가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기 전에 활약했던 팀이기도 하다.] 2011년 5월 왼쪽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다시 4주 동안 결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결국 사라고사에서 뛸때와 똑같이 4시즌동안 뛰었지만 총 성적은 48경기 1골.거의 1년에 10경기 뛴 수준이다. === 다시 CA 인디펜디엔테로로, 그리고 은퇴 === 이후 2011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자신의 친정팀인 CA 인디펜디엔테로의 이적에 합의해 아르헨티나 무대로 복귀했으며, 계약 기간이 1년 남아있었으나 바르셀로나가 밀리토가 원하는 팀을 찾으면 계약을 해지해주겠다는 방침이어서 [[FA]]로 이적할 수 있었다. 밀리토는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었으며, 모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연봉]] 삭감까지 감수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부상과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2012년 6월 은퇴를 선언했다. == 국가대표 == 2000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선발되었다. 이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네덜란드]]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밀란 바로시와 교체되어 출전한 것 이외에는 활약이 없었다. 그 뒤 2007년 [[코파 아메리카]]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결승전에서 숙적 [[브라질]]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으며, 그 해 10월 [[베네수엘라]]와의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2010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득점을 기록하였다. 이후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부상 회복 이후에도 계속된 부진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2010 FIFA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수장이 된 [[세르히오 바티스타]]에 의해 [[스페인]]을 상대로 3년여만에 다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으며,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 나왔다. 가브리엘 밀리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