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동음이의어 == * 加衣 - 책의 겉장이 상하지 아니하게 종이, 비닐, 헝겊 따위로 덧씌우는 일. 책가의라고도 한다. * 加意 - 특별히 마음을 쓰는것을 이르는 말. * 可疑 - '가의하다.' 의심할만하다를 뜻하는 말. * 嘉儀 - 경사스러운 의식을 이르는 말. * 歌意 - 노래나 시가가 가지고 있는 의미. * 佳意 - [[선의]](善意)나 [[가취]](佳趣)와 같은 말. == 전한의 학자 == 賈誼 BC 200~BC 168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출생. 고작 20살의 나이에 [[박사]]가 된 [[전한]]의 최연소 학자다. 시문에 정통하고 [[제자백가]]에 능통해서 [[한문제]]의 신임을 받았으며, 박사가 된지 1년만에 태중대부가 되어 진(秦)나라 때부터 내려온 율령 ·관제 ·예악 등의 제도를 개정하고 전한의 관제를 정비하기 위한 많은 의견을 상주하였다. 하지만 [[주발]]등의 미움을 받아 좌천되었고, 스스로의 처지를 [[굴원]]에 비유하며 복조부, [[조굴원부]], 초사(楚辭)에 수록된 석서(惜誓)등을 썼다. 4년 뒤 복귀하여 문제의 막내아들 양회왕(梁悔王)의 태부가 되었으나 왕이 낙마하여 급서하자 이를 애도한 나머지 1년 후 33세로 죽었다. 저서에 《신서(新書)》 10권이 있으며, 진의 멸망 원인을 추구한 [[과진론]]이 있다. 그는 미래에 있을 제후왕과의 다툼을 꿰뚫어 보고 상소를 올려 개혁을 요구했다. 가의의 개혁 내용은 일단 제후왕들의 세력을 약화시키자는 것이었는데, 왕들을 오히려 수십명을 더 봉하여 작게 갈라놓은 후, 힘이 약해진 이들을 조정이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문제는 이 개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의는 문제의 아들인 회양왕(淮陽王) 유무(劉武)를 죽은 양회왕을 대신해서 양나라 왕으로 삼으라고 주청했다. 황태자인 [[경제]]가 훗날 왕이 될때 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문제는 이 말을 따라 유무를 양왕으로 삼고 40여성을 지배하게 하였다. 이 유무는 훗날 [[오초7국의 난]]에서 대활약을 벌임으로서 한경제가 제후왕들을 물리치는데 큰 힘이 되었다. == [[제로 흐름의 원]]의 등장인물 == [[추가바람]] [[분류:동음이의어/ㄱ]] [[분류:한나라/인물]] 가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