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세종대왕]] 19년, 1437년에 [[조선]]에서 만들어진 천문관측기기. 특수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거대한 [[각도기]]이다. == 대간의(大簡儀) == [[혼천의]]를 간소화하여 만든 관측기기. 1276년 원나라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만든 것을 세종대에 조선식 간의로 개량한 것이다. 극축(하늘 중앙, [[북극성]] 주변)을 기준으로 하여 적도(赤道)의 위치를 찾은 후 정밀하게 그려진 기준자와 별을 비교해 보며 별의 움직임을 관측한 후 기록했다. 성인의 키보다 조금 컸으며 천체의 움직임, 태양의 고도변화, 별의 남중시각 등을 관측했다. == 소간의(小簡儀) ==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대간의를 간소화하여 이동이 편리하도록 축소해 개발한 관측기기. 궁궐에서는 세종대에 2대를 만들어 [[경복궁]]과 서운관에 설치했고, 이후 성종대에 1대가 더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만들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적도환, 백각환, 사유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는 약 70~100cm, 받침은 40X66cm, 각 환의 크기는 40cm였다. == 의의 == 고려시대까지 한민족은 당나라의 [[선명력]]을 계속 받아 쓰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시기가 오래된 역법일 뿐만 아니라 약간의 별의 움직임에도 차이가 커지는 일월식 계산의 사정상 한반도에서는 착오가 많이 생겼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신기술이었던 명나라의 [[대통력]]을 사정 끝에 들여왔으나 여전히 위치 상의 오차가 생겼다. 세종 대에 처음으로 독자적인 간의들을 만들고 천문 계측을 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한민족 최조의 고유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면서 마침내 고대의 하늘을 우리 손으로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간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