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논산시/행정]] {{{+1 江景邑 / Ganggyeong-eup }}} ||<table align=right>|| {{{+2 강경읍}}} [br] 江景邑 / Ganggyeong-eup || || 국가 || [[대한민국]] || || [[광역자치단체]] || 충청남도 || || [[기초자치단체]] || 논산시 || || 면적 || 7.01㎢ || || 하위 [[리(행정구역)|리]] || 13개 || || 시간대 || UTC+9 || || 인구 || 10,026명 [br] ([[2015년]] [[12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 || 읍사무소 소재지 || 남교리 || |||| [[http://ganggyeong.nonsan.go.kr/ganggyeong.do?|강경읍 사무소]] || [목차] == 설명 == 과거 [[군산시|군산]], [[부여군|부여]], [[공주시|공주]] 등을 연결하는 수상 교통의 요지여서 크게 번성하였던 곳이다. [[금강]]이 흐르고 곡창지대인 논산평야, 호남평야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수운을 통한 상거래가 발달하여 [[대구광역시|대구]], [[평양직할시|평양]]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 1896년 [[충청도]]가 남·[[충청북도|북도]]로 분도될 때, 동서로 나뉘어 있음에도 '남북'이라 명명된 이유이기도 하다('북'은 [[충주시|충주]]). [[http://goso.tistory.com/269|#]] 특히 강경이 크게 번성한 때는 구한말 1900년대부터다. [[일본인]]의 유입으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1910년 한일은행 건물이 지어졌고[* 지금도 남아 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no=266123|#]].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운영 중이다.], [[충청남도]]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3만 명에 육박했다. 심지어는 [[전라남도|전남]]의 [[여수시|여수]]처럼 '''강경 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05년 [[호남선]]이 개통된 이후 수운의 메리트가 없어지면서 [[청주시|청주]]와 [[공주시|공주]]가 강경 상권에서 이탈하는 등 안습한 행보를 걷기 시작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공주나 더 나아가서는 [[대전광역시|대전]]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애지당초 강경 위치가 수탈 목표였던(...) 평야들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대량의 물량 수송은 대부분 수운으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 [[군산시|군산]]항이 최대 항구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강경은 이 때까지만 해도 명줄은 붙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육상 교통이 뜨면서 수운은 [[현실은 시궁창|현시창]]. 참고로 강경읍은 [[조치원읍]], [[철원군/행정|철원읍]]과 함께 1931년 4월 [[읍(행정구역)|읍]]제도의 시행과 함께 설치된 유서깊은 읍이다.[* 참고로 이외에도 1931년 4월 설치된 읍은 [[동래구|동래]][[연제구|읍]], [[대전광역시|대전읍]], [[영등포구|영등포읍]], [[안동시|안동읍]], [[의주군|의주읍]], [[회령군|회령읍]]등이 있다.] == 관광 == 옛날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강경읍 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50~1960년대로 워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강경중앙초등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인데([[1905년]] 4월 2일 개교), 이 학교 강당은 [[1937년]]에 지어진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no=291889|#]] 또한 근대식 절충형 한옥인 남일당 한약방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때문인지, 대부분의 문화재 지정 건물들은 거의 방치된 상태이다. 과거에 번성했던 곳이기 때문에, 곳곳에 [[천주교]] 등 종교사와 관련된 [[성지순례]]지도 있다. [[김대건]] 신부가 [[프랑스인]] 선교사제들과 함께 2번째로 상륙한 곳인 나바위 성당[* 행정구역상으로 [[논산시]]가 아닌 [[익산시]] 관할이고, 천주교 [[교구]] 역시 강경([[대전교구]])과 달리 [[전주교구]] 관할이지만, 강경읍 시가지와 인접해 있다. 참고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번째로 상륙한 곳은 현 제주특별자치도 한경면 용수리... 제주도의 대표적 천주교 성지로 기념관까지 건립되어있다.], 조선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 침례교회, [[신사참배]]를 거부한 강경 성결교회가 주요 성지.[[http://ganggyeong.nonsan.go.kr/nshome/user.tdf?a=common.HtmlApp&c=4001&page=/html/ganggyeong/intro/intro_060_010.html&mc=GAN_INT_060|#]] == 특산물 == 특산물로는 [[젓갈]]이 유명하며, 매년 10월 중순에 젓갈 축제가 열린다. 도리어 한 때의 번영이 지나고나서부터 이 곳의 젓갈 유통이 활발해져서, 지금은 전국 젓갈 유통의 70%를 차지한다. [[흠좀무]]... [[동남 방언]]으로 '''갱갱'''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젓갈집 이름 중에 '''갱갱이 젓갈'''이라는 이름도 있다 == 행정기관 == 논산경찰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은 논산 시내에 없고 강경읍에 있다. --진정한 행정막장-- 강경읍이 논산 서쪽 끝에있는 것을 생각하면 독특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공서들을 논산 중심부로 이전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와서, 강경읍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76101|#]] == 교육 == 강경상업고등학교(줄여서 '''강경상고''', 더 줄여서 '''강상''')는 예전에 [[경제]] 엘리트를 배출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금융]] 쪽으로 상당히 잘 나갔던 학교여서, 관련 업계에 빵빵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http://news.mt.co.kr/mtview.php?no=2004090711465351599&type=1|#]] 현재 통합 법인으로 발족한 [[KEB하나은행]]의 행장인 함영주 씨도 강경상고 출신이다. [[웅진 씽크빅]]--, [[코웨이]]--[* 코웨이는 [[2013년]]에 매각.] 등을 가진 [[웅진|웅진그룹]]도 강경이 모태다.[* 윤석금 회장은 [[공주시]] 출신(이 때문에 그룹 이름도 [[공주시]]의 옛 이름인 웅진을 따왔다)인데, 집이 가난해서 은행원을 하려고 강경상고를 다녔다고 한다.] 현재는 그저 그런 시골 학교. [[탤런트]] 겸 前 [[국회의원]]([[통일국민당]]) [[강부자]]가 이 곳 출신인데, 강경중앙국민학교와 강경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장학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현재 강경여자고등학교는 강경고등학교로 바뀌었다.] 덧붙여, 강경여자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스승의 날]]의 발상지이다. 근데 지금은 남녀통합이라 강경고등학교라고 불린다. == 교통 == 호남선이 강경읍을 지나가며, [[강경역]]이 있다. 강경읍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