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强度 == 센 정도. 어떠한 특성이 센가에 따라서 세분화되어 인장강도(얼마나 더 길게 잡아늘일 수 있는가?), 압축강도(얼마나 더 세게 누를 수 있는가?) 등이 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쉽게 풀이하면 그 재료에 충격을 주어 그 재료가 파괴되기에 까지 따른 변형저항을 이야기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응력]] 항목 참조. [[몬트리올 엑스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닛폰햄 파이터즈]] 등에서 뛰었던 한국계 혼혈 야구선수 터멀 슬레지는 (아마도 strength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봤거나 또는 한영사전에서 이 단어를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서) 이 의미로 '강도'라는 한글문신을 어깨에 새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도죄|強盜]]의 의미가 더 일반적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참고로 [[강성]]과는 다르다. 강성은 변형이 되지 않는 선의 최대한의 힘을 이야기한다. == 强盜 == [[강도죄]]를 저지른 자. 자세한 설명은 강도죄 문서를 참고할 것. == 講道 == 도를 강론한다는 뜻으로, 원래는 어떤 [[종교]]던 상관 없이 자신들의 교리를 설파하는 모든 행위를 지칭했으나 [[개신교]] 전래 이후에는 개신교 스타일의 [[설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가 대폭 축소되었다. 그나마도 [[강도죄]] 쪽과 어감이 겹친다는 문제로 설교 쪽으로 완전히 대체되었고, [[21세기]] 들어서는 [[강도사]]라는 직분 명칭으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江都 == 1232년부터 1270년(고종 19년 ~ 원종 11년)까지 [[여몽전쟁]] 중 38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지금의 [[강화군]]을 일컫는 말. [[강화도 천도]]이후, 내성, 중성, 외성의 3중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에는 황도로 불렸던, [[임시수도]]가 아닌 엄연한 [[수도]]였다. 하지만 한반도 본토를 유린하고 강화도 정부에도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한 [[몽골 제국]]에 굴복해 [[개경]]으로의 [[환도]]와 더불어 내성과 외성, 궁궐 대부분을 허물면서 다시 강화로 격하되었고 이후 [[왜구]]와 [[병자호란]], [[병인양요]]에 의해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어 버렸다. 강화로의 천도는 [[무신정권]]기 [[최우]]의 독단으로 갑작스럽게 결정되어 궁궐지나 성의 조성없이 이루어져 전국의 백성들을 징발해서 성과 궁궐([[고려궁지]])을 쌓게 되었는데 불과 2년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얼마나 갈아넣었으면...~~ 새로운 강도에는 주로 개경에서 넘어온 사람들과 근처의 남경(서울)과 광주(경기도 광주)에서 합입한 백성들이 거주했다. [[고려왕릉]]도 당시 죄다 유골을 여기로 옮겼기도 하며, [[고종(고려)]]의 [[홍릉]] 등 일부 [[왕릉(무덤)|왕릉]]은 아직도 강화도에 남아있다. 물론 강화도의 고려왕릉은 전쟁통 혼란기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해도 가 보면 굉장히 초라하다. 이 시기 강도에는 각종 제방이 설치되어 대규모로 둔전이 이루어지고 각도의 산물이 모여 인구가 10만에 달하는 대도시였다고 추정된다. 조선 초 [[한양]] 인구 20만의 절반이며, 현대의 강화군 인구보다 많다! [[분류:동음이의어/ㄱ]] [[분류:절도와 강도의 죄]] [[분류:옛 수도]] [[분류:종교]] 강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