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신라/인물]] [목차] {{{+1 居道}}} (? ~ ?) == 개요 == [[신라]] 초기의 [[장군]]으로 부산과 울산 지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시켰다. == 생애 == [[탈해 이사금]] 재위기에 활약한 인물이나 국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본기'에는 안 나오고 거도 '열전'에만 행적이 써 있다. 그는 석탈해 때 '간(干)' [[벼슬]]을 했었는데, [[거칠산국]](지금의 [[부산광역시]])과 그 옆의 [[우시산국]](지금의 [[울산광역시]])은 초창기 [[신라]]([[사로국]], 즉 [[경주시]])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국경지대에 위협이 되었는데 신라의 장군 [[거도]]가 변경[* [[경상남도]] [[양산시]]로 추정한다. 울산과 부산 사이로 볼 만한 지역은 지리적으로 양산밖에 없고, 본기에는 석탈해 동시대 때 [[가야]]가 [[낙동강]]을 넘어 양산(물금)으로 쳐들어온 것을 격퇴한 황산진 전투도 나온다.]의 지방관이 되어 두 나라를 병합할 계획을 짰다. 마침 이 당시 이 지역에는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들판에 모아놓고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노는 정기적 행사 마숙(馬叔)이라는 게 있었는데, 거도는 이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위장해 군사를 동원했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 두 나라 사람들도 마숙 행사를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가 평소 하던 대로라고만 생각해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 거도는 이 기병을 이용해 두 나라를 기습 공격해 멸하였다. 삼국사기 기록상에서 신라가 경주 바깥의 다른 나라를 병합한 첫 사례고, 이 때쯤부터 신라가 [[진한]]권 지역 안의 여러 나라 중에서 약간씩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주 코앞인 울산은 그렇다치고 경주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부산 지역은 [[고고학]]적으로는 석탈해([[1세기]])는 커녕 한참 뒤 4~5세기쯤 돼야 [[금관가야]]계 유물 대신 신라계 유물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므로 이 거도의 정복 기록과 맞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사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이것 말고도 앞에서 망한 나라가 나중에 멀쩡히 재등장(...)하는 사례가 종종 있기도 한데,[* 예를 들어 [[온조왕]] 때 [[백제]]에게 항복한 [[마한]] 등] 연대가 잘못됐거나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일시적인 정복이었던가 할 수도 있다. [[분류:신라의 인물]] 거도 문서로 돌아갑니다.